제8차 도이 남도기행 2004. 8 -밀양, 거제도- / 도이 김재권
밀양역에 내리니 마침 열애중인 고추잠자리가 나를 반긴다. 혹시나 하고 둘러보았더니 역시나... 특수교육학에서는 그런 괴이하고 괴팍하고 괴패한 인심을 뭐라 할까? 공자의 논어 ‘학이’(學而)’편 제1장에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자원방래 불여낙호: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하랴) 하였거늘,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밀양아리랑의 노랫말처럼 밀양의 인심은 입만 벙긋하는가 보다. “나는 ‘생이지지’한(生而知之: 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다. 옛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워 알려고 다니는 사람이다.” 쓰르라미 정신없이 울어대는 무심(無心)의 역 광장에서, 내리쬐는 한여름 땡볕에 얼마나 오래 유심(有心)으로 있었던가? 그건 유정(有情)이 아니다, 이미 무정(無情)인 것이다. 오른편 잔디밭에 서있는 밀양아리랑 노래비를 보았다.
(1)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동지 섣달 꽃본 듯이 날좀 보소
후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소
(2) 정든 님이 오시는데 인사를 못해
행주치마 입에 물고 입만 벙긋
(3) 남천강 굽이쳐서 영남루를 감돌고
벽공에 걸린 달은 아랑각을 비추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방에서 유일하게 전해오는 흥겨운 노래이다. 작자와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아랑각을 둘러싼 한 여인의 애절한 한을 달래는 이야기가 정(情)으로 이어져 초동(樵童)들에 의해 지게목발 장단에 맞추어 후렴부분에서 아리랑닥궁 쓰리랑닥궁으로 불리워지는 것을 박남포(1984~1939) 선생이 다시 간추려서 오늘에 이어져 오고 있다. 한편 지난날 만주 벌판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싸우던 독립군의 군가의 곡조로 부쳐서 널리 불리워진 노래이다. -1989.10.23. 밀양 라이온스클럽-
어디부터 갈까? 그래, 한겨울에도 개나리꽃이 핀다던 미친 개나리꽃 길로 가자. 송림을 지나 남천강을 건너 내일동에 있는 영남루로 가자. 밀양역에서 영남루로 가는 길, 가는 곳마다 ‘빈 점포 있음’, ‘점포 세놓음’, ‘점포임대’ ‘점포정리 마지막 세일’ 아, 아 IMF보다 더한 패망의 경제. 그 깊은 늪 속에 가라앉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서글프다.
영남루(嶺南樓): 조선시대 밀양군의 손님을 머물게 하던 밀주관(密州館)의 부속건물. 영남루 현판은 명필 성파(星波) 하동주가 쓴 것으로 유명.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힘. 현재 보물 제147호. 동쪽에 침류각(枕流閣), 서쪽에 능파각(凌波閣)의 부속 누각을 거느리고 있음.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에 앉아서 밀양시내를 가로지르는 남천강을 바라본다. 전생이었을까? 도무지 진실이 없는 게임, 뭐가 뭔지 모르겠어... 다시 꾸고 싶지 않은 요마의 꿈... 누각 위에 앉으니 전생인 듯 기억이 아득하다. 가벼운 인연 뒤로 한여름인데도 남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어찌 이리도 시원하고 여유로운가.
천진궁(天眞宮): 단군 왕검의 위패와 역대 8 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으로 영남루 바로 뒤에 자리하고 있다. 중앙 수좌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동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락의 시조왕과 고려 태조왕을 모시었고, 서벽에는 신라, 백제 시조왕과 발해 시조인 고왕, 후조선 태조의 위패를 봉안하여,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0월 3일에 각각 어천대제와 개천대제를 거행한다고 한다.
석화(石花): 영남루 경내 주변에 산발적으로 분포되어 그 형태가 국화꽃 모양의 군(群)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으나, 석재(石材)의 재질이 연한 납석으로 자연적인 영향에 의거 쉽게 부식 또는 훼손되기도 한다. 특히 비 온 후에 그 자태가 선명하고 아름다워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이채로운 현상임.
밀양시립박물관: 붉은 벽돌의 3층 건물 입구에서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목장승을 만난다. 안녕하세요, 대장군님, 여장군님? Guten Tag! Ich heiβe Dichter Doi. 1층 사무실, 향토 자료실. 2층 서화 제1전시실, 서화 제2전시실. 3층 도자기 전시실(고려, 조선시대), 토기 전시실(삼국시대). 건물 왼쪽에 핀 무궁화꽃이 청초하다. 앞쪽에는 거북모양으로 만든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는 얼마나 미지근한지 올해 전국에서 가장 덥다는 밀양의 무더위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른쪽엔 1544년 밀양시 무안면 고나리에서 출생한 임유정 사명대사의 동상이 있고, 그 주변엔 붉은 보랏빛 꽃이 촘촘히 피어 한여름의 느낌을 더 여유롭게 한다. 박물관을 내려와 오솔길을 따라 무봉사(無鳳寺)에 오르는 길은 노송의 표피만큼이나 무성한 대숲의 길이다. 보물 제493호인 무봉사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아랑각(阿狼閣): TV프로 ‘전설의 고향’을 통해 잘 알려진 밀양 태수의 딸 아랑의 정절을 기리는 사당. 아랑각 옆 대나무숲에 아랑탑이라는 작은 비석이 있고, 아랑각 앞에는 노랑분꽃, 빨강분꽃이 활짝 피었다. 어린 시절 내 아버님이 소중히 가꾸시던 화단의 기억이 새롭다. 그래, 신당동 우리 집에는 유난히도 화초가 많았지. 그래서 동네사람 모두 우리 집을 ‘화초밭집’으로 불렀었지... 유년시절 내게 늘 신선함을 주었던 꽃은 붉은 홍초였었어... 그립다, 아버지가...
아랑각 옆 오솔길을 거닐다 석화가 무수히 산재해 있는 바위에 올라 사뿐히 석화를 즈려밟아 본다. 석화가 여기도 있네, 아. 저것도 석화야! 밀양시립 도서관, 밀양문화원으로 나오는 길에는 배롱나무(간지럼나무)라 불리는 목백일홍이 나를 반긴다. 문뜩 강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니 아, 아 그리운 강진! 목백일홍, 선수화꽃이 활짝 피어 나를 반기던 강진의 산야들이 하냥 그립다.
시내구경을 겸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그 소탈한 쌈밥은 먹지 않았더라도 밀양 중앙시장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밀양 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의 시내를 둘러본다. 터미널 앞 시장의 이름을 물으니 그냥 ‘월장’이라고 부른단다. 마침 장이 선 것 같아 활기찬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난다.
저녁 무렵, 아예 표충사로 들어가서 민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터미널에서 전화로 민박사정을 알아보니 기가 막히다. 예상은 하였지만 민박비가 상당한 금액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몇 명이냐고 묻기에 혼자라고 하였더니 방이 없다고 시치미를 뗀다. ‘그래, 한참 피서철에 혼자 여행 다니는 내가 잘못이지, 그대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덕분에 터미널 근처 모텔(민박비의 반값)에서 쾌적하게 하룻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첫차를 타고 표충사로 향한다. 밀양시에서 동쪽으로 20km 떨어진 단장면 재약산(수미봉)기슭에 위치한 천년고찰 표충사가 있다.
매표소 입구에서 표충사 들어가는 길을 무심으로 걸으니 오른쪽에는 사과나무 과수원이 있는데, 어? 홍조를 띤 까치 한 마리 날더니 과수원으로 날아드네? 아, 아 너는 참 염치도 좋구나! 백합 꽃봉오리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깊은 사색에 잠겨있다. 꺾인 백합만 보았지, 저리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피는 백합을 보는 것은 참 드문 일이지 싶다. 얼마쯤 걸었을까, 막 짜내는 재약산 칡즙을 마셨다. 얼마나 진한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입안에 칡향이 가득하다. 표충사 가는 길 왼편엔 계곡을 따라 민박과 텐트촌이 형성되어 있다. 형형색색의 텐트와 얼기 설긴 빨랫줄의 옷가지들... BYC, TRY, VICMAN, JAMESDEAN, BODYGUARD, VENUS, VIVIEN, LAVORA, WACOAL, TRIUMPH... 그래도 예전에는 살에 닿는 속옷 우에 겉옷이라도 걸쳐놓기라도 했건만... 알롱달롱 적나라하니 참 좋은 시대다. 그래, 나도 젊은 날에는 참 많이 돌아다녔지, 엄청난 무게의 배낭과 텐트를 아주 가볍게 짊어지고... 젊음! 청춘이란 참 좋은 것이야!
사명대사 호국성지 표충사: 신라 흥덕왕 4년(829년) 인도스님 황면선사가 창건했으며 사명대사와 효봉스님을 배출한 대찰(大刹)이다. 현대의 마지막 고승인 효봉스님은 표충사 서래각(西來閣)에서 그가 미리 말한 시간에 앉은 그대로 입적했다. 그의 사리탑은 표충사와 본사인 송광사에 세워졌다. 일주문에 들어서니 일제히 울려 퍼지는 매미합창단의 찬불가 소리가 청량(淸亮)하다. 경내로 가는 길 양 옆에는 고목이 즐비하니 소나무, 느티나무, 상수리나무가 무성하다. 사천왕문(四天王門) 양옆에는 진홍의 목백일홍이 피고 지는데, 살그니 다가서니 삼귀의(三歸依)로 찬불하던 매미보살이 그만 노래를 그친다. ‘괘념하지 말고 찬불하십시오, 나는 찰나(刹那)의 먼지보다 못한 중생이외다.’ 한 여인이 목백일홍을 간지럼 태우고 있다. 간지럼나무라고도 불리는데 정말 간지러운 듯 꺼떡꺼떡 몸을 흔들어대고 있다. 재약산 표충사 경내, 종무소 앞엔 매화나무가 있고, 사철나무가 연둣빛 열매를 달고 있다. 잎을 떠나보낸 상사화가 분홍빛으로 맞이하는데...
상사화 / 도이 김재권
전생에 무슨 죄업이 그리 많아
꽃은 잎을 보지를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를 못하나
현생에 이 무슨 애별이런가
분홍은 초록을 보지 못하고
초록은 분홍을 보지 못하네
부디 다음 세상에 피울 때는
잎과 꽃이 하루같이 만나세
허공계와 중생계가 다할 때까지
종무소 뒤편엔 후박나무가 특유의 열매를 달고 있고, 서래각 선원 옆에는 선홍색 목백일홍이 눈부시다. 만일루(萬日樓)는 H자형의 독특한 건물로 1860년(철종 11) 당시 방장(方丈) 월암상인(月庵上人)이 그의 조실(祖室)인 혜원법사(慧遠法師)의 유풍을 떨치고자 발심(發心)하여 만일(萬日)의 기도 끝에 이룩한 건물이다. 불교의 48원(願)을 표증(表證)하는 48칸의 선실(禪室)을 108번뇌(煩惱)를 상징하는 108평(坪)의 부지에 지어 처음에는 동림고사(東林古社))라고 이름하였는데, 후에 서래각이란 이름으로 편액(扁額) 되어 선방(禪房)으로 사용되었다. 만일루 옆 저 목백일홍도 100일 동안을 피고 지리라. 목백일홍 그늘 안에 영정약수(靈井藥水)가 있고 그 옆에 석류가 알알이 익어가고 있다.
각영(閣影) 앞뜰에 활짝 핀 순애꽃이 나를 유혹한다. 아, 아 순애여, 순애여, 각영 앞뜰에 핀 그대여, 그대여, 그대는 나의 아편! 나는 중독자! 삼층 석탑, 석등(石燈) 옆 느티나무는 저리도 잘 자라고 있는데, 나는 또 무엇을 비우려 하는가. 참매미 한 마리가 하늘로 올라간다. 아, 아 색(色)이 아니고 공(空)인 것을...
윤회(輪廻) / 도이 김재권
가끔 속간(俗間)의 바랑을 비우려 오지만은
산문(山門)을 나서면 다시 채워야하는 바랑
빈 바랑에 담아지는 부질없는 속정(俗情)에
미혹(迷惑)은 끊임없는 반복인 듯싶습니다
큰 법당인 대광전(大光殿)의 문살은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 예스러운 풍치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왼쪽에 있는 팔상전(八相殿) 또한 참으로 고풍스럽다. 부처님의 생애를 여덟 가지 모습으로 나누어 표현한 탱화와 굴상을 모신 곳. 오른쪽엔 관음전(觀音殿), 관음전 옆에는 명부전(冥府殿), 명부전 앞 산나리꽃에 애틋함이 이는데, 서화루 앞 단풍나무 연둣빛 이파리 사이로 햇빛이 반짝거린다. 서화루에 앉아 범종루를 바라보고 재약산 등성과 계곡을 바라본다. 아. 아. 저기 선수화 나무 있어라. 진한 그리움이다. 강진도 그립고, 영암도 그립고 아, 아 새털 같은 구름 몇 조각 흘러가는구나.
표충사를 뒤로 금곡삼거리로 가는 길, 가로수는 온통 대추나무다. 여기저기 눈에 들어오는 oo대추농원이라는 간판에서 이곳이 대추 주산지라는 것을 직감한다. 밤송이가 실하다. 밤나무, 은행나무가 중간 중간 있는데, 삼거리부터 아불리에 이르기까지는 온통 연둣빛 대추가 싱그럽게 열려있다. 금곡삼거리에서 하차, 건너편 아담한 양옥집에 핀 능소화가 가슴을 설레게 한다. 별다른 사연도 특별한 연유도 없는 능소화를 보기만 하면 나는 왜 이리도 진정을 못할까, 금곡리에서 산내면 얼음골로 가는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의 풍경에 또 정신을 놓는다.
얼음골: 재약산 북쪽 중턱의 높이 600~750m 쯤 되는 곳의 골짜기 9천여 평의 전부를 얼음골이라 한다. 삼복더위인 7월 하순에 얼음이 얼고, 8월 초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처서가 지나야 녹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이미 얼음은 다 녹아 없다. 반대로 겨울철에는 계곡물이 얼지 않고 오히려 더운 김이 오른다니 참으로 신비한 곳이다. 얼음골의 정식이름이 시례빙곡(詩禮氷谷)이라, 시로서 예를 다하는 얼음계곡이라 풀이하니, 이 어찌 시 한 수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에서 얼음골로 알려진 곳은 이곳 밀양의 재약산 얼음골, 의성군 빙혈(氷穴), 전라북도 진안군의 풍혈(風穴), 냉천(冷泉), 울릉도 나리분지의 에어컨굴 등 네 곳이라 한다. 이러한 곳은 특이한 기상현상으로 인하여 기상관광의 대상이 되는데, 지질학상 이러한 지형을 애추(崖錐,talus 혹은 scree)라고 한다. 단애(斷崖)면으로부터 중력에 의해 떨어지는 풍화 산물이 단애 밑에 쌓여 만들어진 지형을 애추라고 한다. 얼음골에서 냉기가 나오는 곳은 이 애추 사면인데 주로 주빙하 기후하에서 풍화작용에 의해 발달한 화석지형으로서, 구성물질이 모난 바윗덩어리로 되어 있다. 바위 속 온도계는 현재 영상 2도를 가리키고 있다. 표지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결빙지.(結氷地) The Freezing place. 작은딸 보연이가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아빠! 정말 거기 얼음 얼었어요!? 참 신기한 곳이다~ 이 더운 여름에~ 여긴 잠깐 비 왔었는데 거긴 날씨 좋아요?♥”
돌 위에 앉으니 어찌나 바람이 시원한지 땀에 젖은 옷가지가 속옷까지 다 말랐다. 시원한 얼음바람에 한참을 쉬고 있는데 옆에 있던 30 중반의 여인네가 참외 하나를 권한다. “이 참외 하나 드이소.” ‘아, 예, 뭐, 저까지 주실 게 있으십니까?’ “그래도 옆에 계신데 나눠 먹어야지 예.” ‘아, 참외가 참 다네요.’ “혼자서 여행 다니시나 봐 예.” ‘예.’ “메모하시는 거 보니 그냥 다니시는 것 같지는 않네 예.” ‘아, 예, 이렇고, 저렇고 해서... 이번이 여덟 번째 남도기행입니다.’ “와, 참, 멋지네 예” ... ... ‘참외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똘이야, 아저씨 먼저 간다. 재밌게 놀다가거라.’... ... 얼음골은 유명한 사과주산지다. 곳곳에 사과가 익어가고 있다. 사과가 익어가는 계절 8월의 얼음골에는 키 작은 나무에도 사과가 발그스레하게 익어가고 있다. 큰딸 보령이의 휴대폰 문자메시지, “사랑하는 아빠! 즐거운 여행 되세요~ 다리에 무리 가지 않게 조심해서 다니시고요~ 아빠 사랑해요^^♥”
얼음골을 지나 계곡으로 조금 더 올라 연두색 철 난간계단을 따라 200M 더 올라가니 가마불폭포 협곡이 있다. 아주 최근에 철골 테그로드 설치가 되어 오르기가 싶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자연의 멋! 깍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 잘 조각된 바위 표면의 굴곡들과 요철들... 한 면은 날이 서고 한 면은 편편하고, 잔잔한 폭포는 마치 비를 내리는 듯, 밑에 서있으니 대책 없이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이 젖는다. 부딪히는 물소리에 시원한 바람도 불어 한참을 쉬었는데, 일순간에 손바닥이 뜨끔해 놀라니 그만 벌에 쏘이고 만 것을, 아, 아 저 벌은 내게 그토록 벌침을 놓아주고 싶었더란 말인가! 저 벌도 틀림없이 암놈인 게 분명할 게야, 가만한 나를 그냥 두지 못하는 것을 보면... 후, 후... 그 옆의 폭포는 아주 보일 듯 말 듯 잔잔하게 물이 흐르는데, 비스듬히 바라보면 마치 ‘Y'자형으로 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하물며 그곳엔 깊이 있는 구멍까지 열려 촉촉하게 물이 흐르고 있으니... 아, 아. 미혹(迷惑)이 따로 없구나!
미련 없이 밀양을 떠난다. 수산제 수문이 이곳 하남읍 수산리에 있다는데, 전북 김제의 벽골제, 충북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농경문화유적으로 삼한 시대에 축조되었다는데, 결국은 보지를 못하고 떠난다. 단장면에 있는 ‘약산가든’에 들려, 재약산 사자평의 고지대에서 방목하여 육질이 연하고 담백하다는 흑염소불고기를 먹어보려 하였으나, 그것도 그만두었다. 600년 된 차나무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혜산서원, 그곳 산외면 다죽리에 있는 손씨 고가 `손병사고택‘(孫兵使古宅)으로 불리는 곳을 둘러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밀양에서 마산, 마산에서 통영을 거쳐 드디어 거제도 입도(入島)! 우리나라 섬 중에서 제주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섬에 닿았다. 동부, 남부, 중부, 서부로 구분하고 있다. 신거제대교를 건너자 야자수 형상을 한 네온 조형물이 반갑게 맞이한다. 묘하게도 8월 8일 밤 8시다. 아, 아 나는 왜 이렇게 ‘8’ 자가 좋더냐! 내 생일이 정월 8일, 아내 순애 생일이 정월 28일,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10월 18일. 아, 아 조타! 조타! 나는 ‘8’ 자가 좋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의 바다 야경이 참으로 이국적이어 멀리 떠나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종점인 장승포에서 하차. 이제는 저녁을 먹자! 저, 살아 꿈틀대는 바닷장어를 구워먹자! 장어야, 장어야, 나오너라!
"龜何龜何(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놓아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만약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구지가(龜旨歌)-
長何長何(장하장하) 장어야 장어야 首其現也(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놓아라. 若不現也(약불현야) 만약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장지가(長旨歌)-
장어 양념구이 정식으로 식사를 하며, 손님들이 떠드는 경상도 방언에 귀 기울여 메모를 시작하니, ‘습니꺼?’ ‘안 까지노?’ ‘아이가?’ ‘축하한데이!’ ‘돌아뿐다마!’ ‘안 쓰놨나?’ ‘니 어데고?’ ‘그제?’ ‘장어 안 묵나?’ ‘어데 가노?’ ‘이리 온나, 요리 온나.’ ‘와 인자 연락하노?’ ‘됐다! 그마해라!’...
거제도 해수온천 찜질방에서 깊은 명상에 잠겨본다. 인연은 언제 어디서든 만나지고 헤어지는 구름과 같은가. 처음엔 유별한 색깔인 줄 알고 혹(惑)하지만, 지나고 보면 매양 마찬가지지. 그런대도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미혹(迷惑)해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새로운 것을 끼웃거리다 소중한 먼저 것을 잃어버린다면, 아, 아 그래도 기어이 새로운 것이 좋다고 뜬 구름을 쫓으려 하겠는가. 연리지(連理枝)의 깊은 의미도 모르는 무지(無知)함, 또 다른 악연을 찾아나서는 어리석음, 인연의 소중함도 모르면서 무슨 시를 쓰겠다고 이리저리 기웃대는지... 피와 땀의 삶을 유배시킨 무능을 철저하게 위장하고는 끊임없이 숙주(宿主)를 만들어 기생(寄生)하려는 위선, 물밑작업으로 미끼를 던지고는 끊임없이 먹이가 될 부나비를 찾으려 헤매는 아, 아 저 가여운 인생... 신중하지 못했던 지난겨울의 악몽(惡夢)을 미련없이 지워버린다.
1998년 처음 남도기행을 기획했을 때엔, 일상의 삶 속에서 기행이라는 직접적 체험을 통하여 인(人)과 물(物), 즉 사람의 정리(情理)와 자연의 섭리(燮理)를 배우고 익히며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내기(內氣)를 얻으려함이었다. 그러나 해가 거듭하면 할수록 깨우치는 게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많은 번뇌(煩惱)와 괴리(乖離) -욕(慾), 정(情), 집(執), 망(望)- 등을 하나 둘씩 버리고 오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기행을 통하여 ‘실아’(實我)를 찾는 일,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으며 혼자 묵묵히 걸어다니는 일은 어느새 내 삶의 한 부분이 되어있었다. 얻으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버리려 다니는 것이다. 아마 나는 죽는 날까지 이 버림의 기행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 예감한다.
"처사께서 억지 비우신다 하여 비워지는 것이 아니지요. 또한, 처사께서 허(虛)를 만들고 싶다 하여 일부러 만들어지는 것 또한 아니지요. 그냥 다 절로 그리 되는 것이지요.”
-1999년 8월 남도기행 중, 행각승 지산(紙山)스님과의 대화 중에서-
거제도! 거제도의 모든 길은 ‘고현’으로 통한다. 거제시 최대의 번화가이자 거제시청이 있는 곳. 시내버스요금은 800원, 거제시 전 지역이 당일 요금 800원이다. 그러나 버스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하늘이 많이 흐리다. 장승포항에서 거제문화예술회관을 둘러보고 학동 가는 버스에 올랐다. 거제도 동부에서 남부로 이어지는 해안도로... 옥포만, 멀리 ‘골리앗’이라 불리는 대우조선해양의 크레인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옥림아파트를 지난다. 옥림APT... 그래, 19년 전 거기서 이틀 밤을 묵었었지. 그러나 이제는 영겁이어도 연(緣)이 닿고 싶지 않은 인연이 되어 버렸다... 기억을 지우며 해변이 울창한 해안도로를 바라본다. 바닷바람과 바다 냄새, 유람선과 고깃배들, 그리고 수평선의 바다 정경들... 천주교마산교구 지세포성당의 적별돌 건축양식이 온유하다.
산 너머 등대가 있다는 와현 해수욕장을 지난다. 고운 모래, 조용한 바닷가. 구조라 해수욕장을 지난다. 예전에 어린 큰 딸아이 보령이를 보트에 앉히고 노를 저어 배를 타던 바다, 구조라. 버스는 거제도 남부 끝 해금강을 향해 계속 내려간다. 구조라→ 망향→ 망치→ 양화→ 학동→ 동백림과 팔색조 도래지→ 남부면 함목 해수욕장→ 도장포 신선대→ 해금강. 바다를 끼고 곳곳의 크고 작은 많은 펜션의 모습이 아름답다. 아, 아 펜션! 펜션! 언제든 나는 너를 잊지 않으리!
해안도로의 가로수는 동백과 목백일홍이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닐 듯. 천연기념물 제233호로 지정된 학동 동백림과 팔색조 도래지는 해금강으로 가는 국도 변에 있다. 숲의 길이는 4㎞나 이어져 있는데, 그 숲 속에 세계적 희귀조인 팔색조가 대만, 일본, 인도, 보르네오 등지에서 월동하다가, 매년 6월 중순에 찾아와 아늑한 산세 안에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남쪽의 극락조와 함께 새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조(美鳥)다. 색깔이 빨강, 노랑, 파랑, 자주, 흰색, 회색, 보라, 검정 등으로 무지개 색깔에 검은색을 더 가지고 있다 하여 팔색조라 한다. 그러나 나는 보지를 못하였다. 학동만 해변에 자생하는 동백은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꽃이 피며, 꽃은 10여 일 만에 낙화한다.
해금강에 도착하니 선착장 가는 안내판 옆에 ‘거제 노래비’(거제의 노래)가 우뚝 서있다.
거제 노래비(거제의 노래)
무원 김기호 선생 작사 금수현 선생 작곡
섬은 섬을 돌아 연연 칠백 리
굽이굽이 스며 배인 충무공의 그 자취.
반역의 무리에서 지켜온 강터
에야디야 우리 거제 영광의 고장
구천 삼거리 물 따라 골도 깊어
계룡산 기슭에 폭포도 장관인데
갈곶이 해금강은 고을의 절승
에야디야 우리거제 금수의 고장
동백꽃 그늘 여지러진 바위 끝에
미역이랑 까시리랑 캐는 아기 꿈을랑
두둥실 갈매기의 등에다 싣고
에야디야 우리 거제 평화의 고장
해금강: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갈개마을의 남쪽 약 500m 해상에 위치한 바위섬. 동백나무와 해송나무가 자생하는 아름다운 바위섬이다. 해금강 3호 유람선에 올랐다. 눈앞에 바로 보이는 작은 무인도가 해금강. 기도하는 소녀바위가 있고, 사자바위가 있고, 천년적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돌장승미륵바위에 있다. 신랑바위(촛대바위), 곰바위(두꺼비바위), 사랑바위(사모바위)가 있고, 섬 가운데 있는 계곡을 지나니 십자동굴이 있다. 우제봉이 보인다. 해금강 선상에서 둘러보는 남쪽바다의 절경, 아, 아 여기는 한려수도 청정해역이다. 멀리 멸치잡이 배 두 척이 지나간다. 멸치잡이 배는 멸치가공선과 멸치 잡는 어선이 항상 같이 다닌단다. 제목이 무엇인지 가수 또한 누구인지 알 수 없으나 선상에는 “천상에서 그대를 만나면~~~”이란 애절한 노래가 가슴을 후린다.
외도: The Botanic Garden of ODEO PARADISE ISLAND. 여름바다의 천국 ‘외도’에 닿았다. 외도해상농원, 섬에 가득한 꽃향기에 취하고 해금강의 절경과 남해의 푸른 바다에 취한다는 외도. 드라마, CF촬영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곳. KBS 드라마 ‘겨울연가’ 마지막회가 이곳 외도해상농원에서 촬영(2002.3.18)되었단다. 섬 전체가 식물원이다. 관람권은 1인 5,000원. 소 떼를 몰로 휴전선을 건넌 사람이나, 섬을 통째로 매입하여(약 4만 4천 평의 개인소유) 개발을 한 사람이나 참으로 대단한 사람들이다. 내, 일찍이 20대에 이런 곳에 왔다면 ‘아, 이런 데서 살고 싶다.’ 했을 텐데, ‘아, 아 이거 관리하려면 엄청나겠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드니, 인간의 사고(思考)는 나이가 들면서 참으로 현실적이지 싶다.
먼저, 야자과의 코코스야자(브라질)가 눈앞에 펼쳐진다. 선인장동산은 신선의 손바닥 같은 선인장이 군무를 이루고 있는데, 노랑꽃이 피고는 그 열매를 맺고 있는 선인장도 있다. 비너스가든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사이 사모트라케의 니케(NIKE OF SAMOTHRACE) ‘얼굴 없는 천사’ (제작연도 BC 3세기경.)의 복제품이 있다. 비너스가든이란 곳은 말 그대로 정원인데, 다윗, 비너스의 탄생을 비롯한 기타 조각 복제품 등은 작품성과는 거리가 먼 완전한 관광용이다. 그러나 푸른 바다와 흰색의 조각품이 아주 잘 어울린다. 화훼단지에는 용설란과 유카, 진분홍빛 유도화나무가 있는데, 파인애플이 농익어 그 향이 하냥 싱그럽다. 제주도 참꽃나무, 은환엽 유카리가 인상적이다. 야자과의 당종료나무 숲길을 지나니 ‘대죽로’라는 대나무 숲길로 이어지고, 대숲의 터널을 지나니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 망원경으로 해금강, 홍도(갈매기섬) 안경섬은 물론 날씨 좋은 날에는 대마도까지 보인단다.
워싱턴야자와 종려나무와 대숲이 잘 어우러져 또 다른 도원(桃源)인 듯싶다. 용설란이 신선하다. 용설란을 보니 제주도 신혼여행길에 본 허니문하우스의 용설란이 생각난다. 싱그러운 기억이다. 명상의 언덕 아래에는 사각정 위에 십자가가 있는 아담한 건물이 있는데, 바다를 바라보며 기도하는 곳인 듯 찬송가와 성경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조각공원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조각한 ‘동심시리즈’ 작품이 여럿 있다. 편백나무 숲으로 만든 천국의 계단을 지나니 외도에서 자생하는 두룹나무과의 송악(HEDERA RHOMBEA)이 있고, 종려나무에 넝쿨을 이루고 있는 만개한 능소화는 참으로 환상적이다. 작은 연못 수련꽃에서 20년 전의 순애를 떠올려본다. 청초한 수련의 지순한 꽃향기까지 온전히 내게 쏟아 분 아, 아 지고지순한 내 사람...
섬을 돌아 나오기까지 1시간 반 동안에 못내 아쉬운 것이 있으니, 끝내 청마 유치환 선생의 시 한 편을 스쳐보지도 못하였다. 식물 키우기와 너무 상업적인 것에만 온통 신경을 쓰는 것 같아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유야 어떻든 이 넓은 외도 어디에도, 거제도가 고향인 청마 선생의 흔적 하나 없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학동 몽돌해수욕장: 거제시 동부면 학동리에 소재. 지형이 학이 비상하는 모습과 비슷하여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검은빛이 몽글몽글한 몽돌의 해변, 낮에는 몽돌에 파도가 구르는 소리가 나고, 밤에는 파도에 몽돌이 구르는 소리가 나는...
거제자연예술랜드: 동부면 구천리 노자산 자연휴양림을 지나 선자산 기슭에 자리 잡은 거제자연예술랜드에 왔다. 이번 남도기행엔 식물구경은 원 없이 하는 듯싶다. 수필가이며 시조시인, 거제도 능포 출생인 능곡 이성보 선생이 설립한 인간(人間)과 자연(自然)이 만난 곳. 입장권은 1인 4,000원이다. 수석과 식물이 잘 어우러진 작품들. 제1전시실: 자연이 빚은 갖가지 형상석과 석/목부작의 조화. 남근석과 여근석인 성석(性石)의 음양조화 ‘너는 내꺼.’ ‘고개 숙인 남자’등의 작품과 ‘분기탱천(憤氣撐天)’은 글지이들 특유의 에로 특성을 잘 엿볼 수 있다. 제2전시실: 돌과 풀이 들려주는 자연 이야기. 분재의 제목도 시조시인답다. 윤회(輪廻)의 강(江), 사무사(思無邪), 천애(天涯), 담쟁이 사랑, 진달래의 꿈, 해고목의 재생(再生), 사후천년(死后天年), 미망(迷妄)의 세월... 분경(盆景)이란 것이 있다. 분(盆) 위의 절경(絶景). 자연의 아름다운 경관을 ‘대형 수반’이라는 제한된 공간 위에 연출한 작품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제3전시실: 풍란 석/목부작(風蘭 石/木附作)이 어우러진 자연의 향연. 수석 또는 고목에 풍란을 비롯한 착생식물을 부착하여 만든 작품을 전시. 석림지실(石林之室)에는 길쭉한 조각조각의 돌들을 하나하나 이어붙여 만든 작품이 ‘돌의 숲’을 이루고 있다. 목공예전시실은 고사목을 다듬어 최대한 자연미를 살려 만든 추상적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민속관은 옥에 티다! 차라리 없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한 가지 흠 없는 것이 어디 있으랴, 전문(專門)으로만 향하는 것이 더 나을 듯싶다. 통나무 휴게실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5,000평의 땅, ‘글지이는 가난하다.’라는 일반적이자 보편적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린 능곡 선생, 본디 여유가 있으신 분이었는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선생의 후손들은 여유롭게 살겠구나 싶다. 본인이 좋아하는 그 모든 취향을 사업적으로 이끌어내는 것 또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거제도 신현읍 고현리 포로수용소 유적공원 관람.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국기와 유엔기, 태극기가 분수광장 앞에서 펄럭인다. 6.25 한국전쟁의 참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포로수용소 유적관은 포로들과 포로수용소의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는 유적관이 있고, 야외에는 포로들이 사용하던 막사와 수용소, 병원, 식당 등을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잔존건물 일부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곳 거제도 포로수용소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에 의한 포로들을 수용하기 위하여 1951년 2월부터 고현, 수월지구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당시에는 여군과 중공군, 소련군 포로까지 모두 17만8천 명의 포로가 수용되었다고 한다. 포로수용, 포로의 소요와 폭동, 반공포로의 투쟁, 포로의 송환으로 이어진 역사의 현장이다. 국내최초, 세계최대의 단일 디오라마관이라는 포로수용소 '디오라마관'(Diorama of POW CAMP)이 인상적이다. 포로수용소의 배치상황, 생활상, 폭동현장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 가는 길, 청포마을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거제바다, 요트장이 있는 바다 위에는, 마치 십여 마리의 노랑깃나비가 바다 위를 나는 듯 수상요트가 바다에서 너울댄다. 바다와 붙어있는 사등초등학교 울타리는 온통 방풍림으로 둘러있다. 앞에 작은 갯바위 서너 개가 있고, 그 앞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아이들의 푸른 꿈을 키우고 있다. 아사→학산(학산리 지석묘)→내평→술역→호곡→녹산→하둔. 호곡마을 왼편에는 바다가 한눈에 펼쳐져 가슴이 탁! 트인다. 성포 구 거제대교 쪽에서 청마생가까지는 12km, 폐왕성은 14km. 방하에서 하차. 아, 아 지칠 줄 모르게 다니더니 드디어 다리에 무리가 온 듯 걸음걸이가 많이 무겁다. 기어이 폐왕성은 오르지 못하고, 그저 방산교를 건너며 올려다보았을 뿐... 폐왕성은 둔덕면 거림리의 뒷산 우두봉(牛頭峰)의 중허리에 있는 산성(山城)이다. 이 성은 1170년(고려 제18대 의종24년) 9월에 상장군 정중부(上將軍 鄭仲夫)등 무신(武臣)들이 경인란을 일으켜 왕이 거제도로 쫓겨 와서 3년간 살았던 산성이라 한다.
청마생가: 들깨꽃이 하얗게 피어 보랏빛 달개비꽃과 어우러져 상큼하다. 길 숲에 핀 달맞이꽃을 보니 문뜩 사반세기 전의 일이 생각난다. 강릉으로 가는 야간열차, 동해바다... 달맞이꽃만 보면 그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아, 아 그녀의 청순함... 완도에서 느껴보던 이 논 냄새, 한가로운 시골길을 거닐며 청마 유치환 선생의 생가를 찾으니, 마을 어르신 몇 분이 마을 수호목(守護木)인 듯한 정자나무 그늘에서 쉬고 계신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드렸더니, “이 땡볕에 걸어오능교, 예 앉아 쉬었다 가이소마.” “예, 감사합니다, 어르신” “어디서 왔어요?” “서울서 왔습니다.”
덕분에 마을 어르신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 “생가는 4년 전쯤 새로 지었는데, 원래 집 기둥은 그대로 두고 복원해야 하는 건데, 기둥까지 철거하고 엉성하게 개조하여 비가 새고 보기도 안 좋다. 옛날 집보다 작게 지었고 벌레가 생기고 하여 이웃에도 영 안 좋다. 옛것을 그대로 보존하려면 차라리 갈대 짚으로 하던가, 아니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아예 기와로 하면 더 좋았을 것인데 아무튼 잘못되었다.” - 마을 어르신 ‘제형덕’ 옹의 말씀이다. 자상하신 말씀과 음색이 꼭 내 아버님의 모습을 뵙는 듯싶어 한참을 앉아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생가 터는 예전의 둔덕면사무소 자리였단다. 또한, 이 오래된 나무는 포구나무인데, 그만 너무 오래되어 나무속이 썩어서 최근에 속을 파내고 보수공사를 했다고 말씀하신다.
청마 유치환 선생,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 507-5번지에서 출생. 1931년「문예월간」제2호에 시 《정적(靜寂)》을 발표하면서 문단등단. 1967년 부산 남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 재임시 부산 좌천동에서 교통사고로 생을 마친 시인. 거제도 둔덕골은 8대가 살아온 고향이다. 돌담엔 담쟁이가 둘러 있고, 대문은 나무 울타리로 되어있다. ‘ㄱ’자형 초가집. 방으로 향하는 벽에는 선생의 시《출생기》가 표구 되어있고, 텃밭엔 깻잎향이 가득, 가지와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있다. 우물곁에는 장광이 있고 뜰에는 봉숭아, 맨드라미꽃이 피어있다. 주황색 석류꽃이 활짝 피어있는데, 어찌나 현란하던지 잔돌을 주어다 꽃잎을 으깨고 꽃즙을 내어 주홍글씨를 써 본다. “過도이... 現도이... 來도이...”(과거의 도이... 현재의 도이... 미래의 도이...), 시인 청마 유치환,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 : 시인 도이 김재권, ... ... ...
돌아 나오는 길 오른편 비닐하우스에서 음악소리가 들린다.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아마도 포도나무에 음악(찬송가)을 들려주는 것 같다. 재미있는 풍경이다. 찬송가 소리를 들으며 자라 영적으로 익은 포도는 또 어떤 맛일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말씀으로 알알이 싱그러우리라, 그럼에도 저 포도세상에서조차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 알알이 번뇌하겠지? 믿음이 있어도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는 벽을 만들어 놓듯이... 모다 100년도 살지 못하고 헤어지고 말 부질없음인 것을... 늘 외고 다니는 법구경의 말씀을 새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지 말라, 미운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그러므로 사랑을 일부러 만들지 말라, 사랑은 미움의 근본이 되느니, 사랑도 미움도 없는 사람은 모든 구속과 걱정이 없다." 아, 아 도이야, 이제 그만 집착(執着)의 바랑을 놓아라!
기성관(岐城館): 청마생가에서 오는 길에 들려본다. 거제면 동상리 소재. 조선조 거제현에는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옥포, 조라, 가배, 영등, 장목, 지세포, 율포에 7진을 두었다. 조선성종원년(1470년)에 거제현은 거제부로 승격되고 문무를 통괄하게 되었으며, 당시 고현성에 거제7진의 통제영으로 기성관을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중, 고현성이 함락되고 1663년 현령 이동고가 부임하여 거제현을 거제면에 옮기면서 기성관도 그때 옮겼다. 조선시대 거제현의 부속건물객사(영빈관)로 사용하던 곳으로 경남 4대 누각(촉석루, 세병관, 영남루, 기성관)중의 하나. 거제면사무소 바로 옆은 거제초등학교, 그 옆이 기성관. 기성관 주변에 피어있는 무궁화꽃이 유난히 색이 짙어 잠시 마음을 두었다. 아무래도 수술한 다리에 무리가 오는 듯하여 옥산금성은 오르지 아니하였다. 장평 오거리에서 하차 거제 어촌 민속전시관을 둘러본다.
거제도 동부, 남부, 중부, 서부 기행을 모두 마치었다. 보통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의 여정들, 내일은 동부 끝으로 가자! 고현의 한 모텔에 들었는데, 어찌나 넓고 쾌적하고 좋은지, 바닥은 온통 나무로 되어있다. 그것도 기찻길 침목과 같은 생나무여서 밞고 다니는 촉감도 아주 조타! 에어컨 성능도 Gut! Gut!, 샤워시설 완벽하고, 킹사이즈 침대에 창가엔 등나무로 만들어진 티 테이블에 의자까지 아늑하다. 작은 냉장고에는 캔 음료수와 피로회복 음료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가히 호텔급이다. 혼자 자기 너무 아깝다. 우와~ 북적대는 현지 민박 값의 반값으로 이런 쾌적함을 누릴 수 있다니, 잠자리 선택을 아주 잘한 듯싶다. 아내 순애에게서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왔다. “지금은 너무 먼 곳에 계시네요. 오늘은 너무 더웠어요, 내일 뵈요. 김치찌개 맛있게 해놓을게요, 푹 주무시고 나머지 여정도 많은 것들 가슴에 가득 채워오세요♥” 오랜만에 숙면을 취하고 이른 아침을 맞이하니 다시 힘이 솟는 듯 아, 아 조타! 조타!
첫차를 타고 들어간 거제도 동부 도로의 끝점 유호마을. 유호는 전형적인 어촌이다. 마을 바로 앞까지 바다가 있어 고기잡이배가 포구에 가득 진을 치고 있다. 이 동부 끝쪽은 남부 쪽과 달리 평범한 어촌 풍경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다. 해금강 관광코스로 이어져 북적대는 남부 쪽보다 훨씬 한가롭고 여유롭다. 거제시 장목면 농소리. 궁농에서 임호, 간곡, 농소 앞 바닷가까지 거제에서 가장 긴 몽돌로 된 해변이 이곳에 있다. 이름하여 거제농소몽돌해수욕장, 길이는 약 2km정도로 해변에는 새알 같은 둥글고 작은 몽돌이 늘어져 있다. 말 그대로 해변이 참으로 길고 아름답다. 몽돌밭 위에 텐트를 친 청춘남녀가 싱그럽다. 원피스 차림의 여인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해변을 거닌다. 아, 아 해변의 여인아... “물위에 떠있는 황혼의 종이배~~ 말없이 거니는 해변의 여인아~~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황혼빛에 물들은 여인의 눈동자~~ 조용히 들려오는 조개들의 옛이야기~~ 말없이 바라보는 해변의 여인아~~~”
장목진객사(長木鎭客舍): 장목면 장목리 강서마을에 있는 이 건물은 거제 7진 중의 하나였던 장목진 관아(官衙)의 부속건물. 이 장목진객사의 자리는 삼도수군통제영이 설치되기 전에 진해를 마주보는 거제도의 북단에 위치한 군사적 요충지로, 진해항 일대를 방어하고 대한해협을 바라보기 위한 전략지였다. 특히 임진란 당시 이 충무공과 이영남 장군이 전략을 숙의하였던 장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객사는 정조 9년(1785)별장 어해장군 이진국이 중건하고 순조 2년(1802)에 다시 중수되었는데, 건물 형식은 조선후기의 것이라 볼 수 있다.
히치하이크(hitchhike)로 다시 고현으로 나왔다. 손 한번 흔들자 선뜻 태워주신 고현 시내 아파트에 사신다는 노부부께 감사 드린다. 곧 바로 통영으로 해서 다시 마산에 도착하니 서울행 기차를 한 시간 반이나 남겨두고 있다. 애초 계획엔 거제도 장승포항에서 배를 타고 동백섬 지심도까지 가보고자 했는데, 그곳은 일부러 가지 않았다. 조용하고 평온하다는 동백섬 지심도는 왠지 아내 순애랑 같이 거닐고 싶은 곳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동백섬 지심도, 이른 새벽 동박새와 직박구리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잠에서 깨어 그녀를 바라볼 수 있는 곳, 쪽빛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활주로잔디밭에서 두 손 꼭 잡고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곳, 몽돌밭을 거닐며 고동이나 따개비, 굴, 홍합들의 바다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 오솔길을 따라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자연휴양림 속으로의 산책... 아, 아 가능한 머지않은 시기에 그녀와 함께 동행하리라! 언제가 좋을까? 그래, 4월이면 좋겠다. 동백꽃이 한창 만발해 있을 때 그녀의 머리에 붉은 동백꽃을 꽃아 주리라! “지심도에 가면 머리에 동백꽃을 꽂으세요.” 후, 후... "Jisimdo - Be sure to wear some Dongbaek flowers in SoonAi's hair". 마산역 광장에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마신다. 뜨거운 남자! 아, 아 비둘기와 매미소리와 분수와 도이가 하나가 된다. 가자, 서울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첫댓글 지난여름에 다녀온 제8차 도이 남도기행 2004. 8 -밀양, 거제도- 편의 기행문을 이제야 탈고를 했습니다. 밀양에 여행을 가시거나 거제도 기행을 꿈꾸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도이 김재권-
우와 ~ 정말 대단 하십니다 ..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정말 대단하셔요 .. 부럽습니다 건필 기원 드려요
도이 김재권 선생님~~~ 늘 넉넉한 웃음을 머금은 선생님의 인자하신 모습을 떠올립니다. 귀한 기행문 감사합니다. 거제도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아직 못가봤지요.선생님의 도움이 있어 미래에 여행할 거제도는 더욱 의미가 있겠네요.감사드립니다. 11월 6일 뵙겠습니다.
시인님 가신 그 길, 저도 그대로 다녔는데... 왜 이렇게 아름답고 운치있게 느껴지지요? 외도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지만, 거제가 이리 아름다운 지 몰랐습니다. 이 글 읽고 다시 가 보고 싶습니다. 푸르게 일렁이던 구조라 해수욕장, 외도로 이어지던 가득 채운 배들... 아련한 기억입니다.
금비 서광숙 시인님, 秋水 박지영 시인님, 문우님.. 관심 주시어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소서! -도이 김재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