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인 아프리카와 슈팅스타
우리 동네 입구, 그러니까 시내버스 정류소에 앞에 배스킨 라빈스 31 가게가 있다. 아내는 가끔 나를 데리고 그곳에 들린다. 체질상 따뜻한 음식을 좋아하고 아이스크림과 같이 차가운 성향의 음식을 잘 찾지 않는 나는 이런 아내의 행동이 마땅찮았다. 게다가 이곳의 아이스크림 가격은 슈퍼의 빙과류나 아이스콘에 비해 족히 두 세배를 될 정도로 비싸기까지 해서 썩 내키지 않는 곳이다.
아내의 손을 뿌리치지 못하고 억지로 그 곳에 들어간 나는 또 아이스크림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모르는 편치 않는 상황에 부딪혔다. 아내는 이런 내게, “이것이 바로 ‘골라 먹는 재미’야”라면서 꼭 이 가게 홍보직원과 같은 말을 한다.
이 아이스크림 전문 판매점은 ‘버튼 배스킨’과 ‘어니 라빈스’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현재 세계 40여개에 약 6천개의 판매망이 있는 세계적인 아이스크림 브랜드이며 개발한 아이스크림 종류만도 무려 9백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아저씨 어떤게 맛있어요?” 아이스크림 이름도 생소하고, 더더욱 맛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나는 하는 수 없이 점원에게 도움을 구했다. 한복에 구두를 신는 것 마냥 가게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내게 점원은 선뜻 무엇을 권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고개만 갸웃거렸다.
“아니 어떤 것이 가장 잘 나가요?” 점원의 고민을 덜어줄 요량으로 다시 물었다.
“올 여름 신제품으로 이 ‘러브인 아프리카’가 나왔는데... 괜찮아요.”
이 제품에는 ‘여러 가지 향과 색상이 혼합되어 있는 환상의 여름 맛’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이 제품을 설명대로라면 이 아이스크림만 입에 물면 환상의 세계로 들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점원이 권하는 이 ‘러브 인 아프리카’를 입에 물었다. 그런대로 괜찮았다. 슈퍼에서 파는 콘 종류와는 다른 맛이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 배스킨 라빈스를 찾는가 싶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들 녀석이 맘에 걸렸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아내는 MBTI 연수차 서울에 가고 혼자 산책을 마친 뒤 그냥 집에 들어가려다가 문득 얼마 전에 먹었던 ‘러브 인 아프리카’가 생각났다. 이 ‘러브 인 아프리카’를 가지고 ‘러브 인 썬(아들)’의 모습을 보여줄 마음으로 버스정류장 옆 배스킨 라빈스 가게에 들어갔다. 스스로 이런 곳에 들어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내가 이런 곳에 다 들리고’, 속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할 필요도 없이, “러브 인 아프리카 2개 콘으로 주세요”라고 주문했다. 이 가게에서 우리 집까지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날씨가 꽤 더운 유월의 오후인지라 그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도록 뛰었다. 두개의 콘을 양손에 잡고 아파트 사이 길을 잽싸게 달렸다. 지나가는 어린이들이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듯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우리 집은 아파트 10층이었다. 뛰면서 생각했다. 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엘리베이터가 1층에 있기 원했다. 바랐던 대로 엘리베이터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곧 녀석에게 이 ‘러브 인 아프리카’를 안겨줄 수 있었다. 어떤 모습으로 이것을 받아들까? 또 얼마나 좋아할까? 아이스크림을 받아들고 좋아할 녀석의 얼굴을 그려보는 내 마음이 벌써 환해졌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엘리베이터 안에 걸린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스스로 대견한 마음에 웃음이 나왔다.
“하림아 아빠다 네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왔다. 그것도 배스킨 라빈스 31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들뜬 기분으로 말하는 내게 녀석의 반응은 냉랭하였다.
“아빠 아이스크림 종류가 뭔데...”
“응 이거 러브 인 아프리카야, 올여름에 새로 나온 신제품이야”
“나 그거 안 좋아하는데...”
“......”
순간 언짢은 기분이 머리끝까지 올라오면서 말문이 막혔다. 땀까지 흘리면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사 왔는데... ‘이놈아, 이 애비의 성의를 봐서라도, 고맙다고 인사는 못할망정 냉큼 나와서 받아먹어야 하지 않겠느냐’하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그럼 네가 좋아하는 것은 뭔데...”
“슈팅스타!, 아빠는 베스킨 라빈스 31에서 아이스크림 살려면 전화해야지...”
“이게 신제품이고 맛있어, 지난번에 아빠가 한 번 먹어봤거든...”
“그래도 나는 슈팅스타가 제일 좋아, 아빠는 아들이 무슨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있어야지”
“.......”
평소에 안 하던 일을 해서 그런지, 아들 녀석에게 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다주면서 이렇게 잔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그래 네가 좋아하지도 않는 이 아이스크림 아버지의 성의를 생각해서 먹어주니 오히려 고맙구나’하는 비아냥을 속으로 삼켜야 했다. 아내와 함께 먹었던 것에 지난번 것에 비해 형편없이 맛없는 러브 인 아프리카를 떨떠름하게 씹고 있는데...
“아빠, 먹어보니까 이것도 그런대로 괜찮네...”
“아이고 이 녀석 꿀밤을 먹여, 말어.” 슈팅스타, 언제 또 내가 배스킨 라빈스에 들릴지 모르지만 이 이름은 잊지 말고 잘 기억해 두어야 하겠다. 나는 이 ‘러브 인 아프리카’가 맛있는데, 녀석은 아닌가? 사랑은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인가 보다
* 저희 회사에 계신 분의 경험담이랍니다.
첫댓글 이글을 읽고보니 가족사랑이 느껴지네요, 넘 단란한가족 삶의 이야기 행복이 흐름니다. 그래요남을 베려할줄알고남을 생각할줄아는 진정한삶 행복 넘 좋아요 월리님 감사합니다.
슈팅 스타 와 러브인 아프리카 둘다 먹어보고 싶네여...^^
생활의 발견 '성게군!' 이 아닌 월리군!... ^^
저도 베스킨 라빈스, 골라 먹는거 어려운 거 같아요.. 그런데 갈때마다(패밀리 레스토랑 등) 내가 알 수 없는 메뉴가 많아서 위축된답니다 T..T
전 요즘 엄마는 외계인이 ㅋㅋㅋ 생활의 발견! 맞네욤 ㅋㅋㅋ
윌리님 가족예기가 아니였어요??? 난 읽으면서 아~~ 우리 윌리님의 자상한 아빠의 마음 하면서 내심 좋아(?) 했었는데... 캬~~~ 다른사람 예기라니.... 실망... 하지만~!!!!!!!!!!!!!! 사랑은 내 입장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든말... 진짜 맘에 듭니다~! ^_^
ㅋㅋ 나두 뭔소린가 했는데.... 세호가 망고가 맛잇다구해서 어던게 햇더니 노란것.......... 그럼 빨간것은 뭐지???? 에휴 아빠 그건 러브인 아프리카야!!!!!!!!!!! 애한테 야단 맞았네여!!!!!!!!!! 6살이 어떻게 그걸알지???? 이해가 안되는 세호 할아버지가...... 앞으로는 전 세호 할아버지.. 이유는 나중에.....ㅋ
색깔별로 모두 다 사주셔야 할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