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요한복음 6:26-44)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독일의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조항을 붙이면서 시작되었다. 이 내용은 주로 면죄부 혹은 면벌부 판매의 부당성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당시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 공사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죄 혹은 벌을 사해주는 문서를 돈을 주고 팔고 있었다. 이 면죄부를 사면 자신의 죄뿐 아니라 조상의 죄도 사해 진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연옥에 있던 부모가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천국행 티켓인 셈이다. 하지만 루터는 95개 조항에서 교황은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는 것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고 신자들에게 회개와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말했다. 특히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는 말씀을 재발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의를 죄에 대해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 배웠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 온갖 고행을 했다. 고해 성사, 금식, 성물 숭배 등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이후 그는 하나님의 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갖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신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의를 주신다.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 교리이다. 이 진리를 알게 된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나는 하나님의 공의는 은혜와 순전한 자비를 통해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서야 나는 다시 태어나 낙원의 열린 문을 통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루터는 2가지를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믿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루터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를 “교회가 서거나 쓰러지는 신념”이라고 불렀다. 이후 교회는 이것을 “교회를 세우거나 무너뜨리는 명제”로 부르게 된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 논쟁은 역사 속에서 계속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믿음만이 아니라 인간의 행위를 여전히 구원의 수단으로 여긴 것이다.
또 사람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강조하기보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한다. 인간은 타락하지 않았고 여전히 선과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선택하시지 않았고 인간이 선택하였다고 말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 보다 인간의 행위를 강조한다. 이러한 생각은 결국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 자를 용서하기 위한 죽임이라는 것이다. 또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하는데 인간이 이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택이 아닌 인간의 선택으로 구원이 결정된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논쟁이 바로 1618년에 네델란드의 도르트 회의에서 있었다. 이 회의에서 반대파는 아르미니우스파라고 한다. 아르미니우스가 죽은 후 그에게 배운 제자들이 앞서 말한 주장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서 교회는 성경을 근거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였다. 이 내용이 바로 도르트 신경이다. 그 내용은 다섯가지다. 첫째,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다(전적 타락). 둘째, 하나님께서 어떤 조건 없이 인간을 선택하셨다(무조건적 선택). 셋째,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에게만 적용된다(제한 속죄). 넷째,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할 수 없다(불가항력적인 은혜). 다섯째,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성도의 견인). 이 내용은 도르트 신조의 내용과 같지만, 순서는 칼빈주의 5대 교리 즉 튤립(TULIP) 따랐다. 오늘은 칼빈주의 5대 교리를 요약하여 설교하겠다. 설교 제목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이다.
1.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였다(전적 타락).
이 말은 인간이 죄인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났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에 있어서 죽은 자이다. 이러한 상태를 가장 잘 말해주는 말씀이 에베소서 2장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1-3절). 사람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 허물과 죄로 죽어 있는 상태는 단순히 죽어 있는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른다. 또 악한 영을 따른다. 그래서 욕심대로 산다. 이들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자들이다.
로마서 3장은 더 구체적으로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보여준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9-19절)
인간은 타락하였다. 부패하였다. 그래서 선을 선택할 수 없다. 악을 선택할 뿐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착한 일을 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대신 죽기도 한다. 이러한 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칭찬받아야 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선이란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궁극적으로 선이라 할 수 없다. 이렇데 선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람들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선은 선이 아니다. 선이 하나님에게서 왔기 때문이다. 인간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도 하나님의 기준에 이르지 못한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성경은 인간의 참모습과 상태를 보여준다. 인간의 상태를 바로 알아야 구원을 호소할 수 있다. 건강한 사람은 의사를 찾지 않는다. 병든 자들이 찾는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오셨다. 환자가 의사를 찾듯이 자신이 죄인인 줄을 아는 자들이 예수님을 찾는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했다. 죄인이라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찾지 않았다.
2. 하나님께서 어떤 조건 없이 인간을 선택하셨다(무조건적 선택).
이제, 구원받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조건이 있는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지 않나요? 맞다. 하지만 믿음은 구원의 수단이다. 구원의 근거가 아니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사랑, 은혜이다. 즉 하나님의 선택이다. 이를 예정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말하고 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44절).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증거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3-6절).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택 혹은 예정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타락할지 아셨다. 그럼에도 그들을 선택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택은 불공평하지 않다.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인들을 선택한 것은 하나님의 결정이다. 죄인들은 마땅이 심판받는 것이 공정한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죄인들의 일부를 기쁨으로 선택하셨다. 그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다고 한 것이다. 인간이 타락했음에도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선택하신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것을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은 구원을 얻는 이들에게는 은혜이다. 그들은 구원 얻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 받은 자이다. 믿음과 순종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다.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수단이며 순종은 결과이다. 구원의 근거는 하나님의 선택이다. 하나님의 예정과 선택은 예수님께 이끌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3.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에게만 적용된다(제한 속죄).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백성을 선택하셨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자를 위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양들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4, 15절). 모두가 예수님이 양이 아니다. 예수님의 양은 따로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양이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이다.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죽으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속죄는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의 속죄가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완전하고 영원하다. 그리스도는 모든 이들을 구원할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분은 구원을 제한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정하신 자들을 구원하신다고 로마서 8장은 증거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29, 30절).
4.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할 수 없다(불가항력적인 은혜).
그러면, 인간이 하나님의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가? 즉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는가? 답은 거부할 수 없다.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교회를 다니고 예수님을 믿는다. 부모 때문에, 친구 때문에, 아니면 스스로 교회에 가고 싶어서 예수님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 때문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이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진다. 죄를 짓는다. 사람들의 방해가 있다. 우리의 환경이 방해한다. 마귀와 악한 영이 유혹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장애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내가 믿고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가룟 유다가 그랬다고 말한다. 그러면, 베드로는 왜 회복되었는가? 그가 선택했는가? 아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셨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그럼,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지 않으셨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를 부르시고 그가 떠나자 버리셨는가? 가룟 유다를 부르심은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다. 하나님은 고레스에게 기름 부으셨다. 그를 선택하시고 사용하셨다. 하지만 그의 구원을 위한 부르심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다고 모두를 구원하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기로 선택된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항할 수 없다. 웨슬리는 선행 은총과 함께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행 은총은 맞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틀렸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하나님은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주시고 믿음을 유지하도록 붙드신다. 하나님의 선택은 변함이 없다. 영원하다. 사도행전 13장에서 이를 증거한다.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18절).
5.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성도의 견인).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들은 구원에서 이탈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이루신다. 여러 성경 구절에서 언급한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한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8이다. “주께서 너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끝까지 견고케 하시리라". 빌립보서 1:6이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너무 죄를 많이 지어서 하나님께서 포기하시지 않을까? 하나님은 그가 택하신 자를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럼, 마음대로 살아도 되는가? 그럴 수 없다. 그렇게 살도록 내버려 두시지도 않는다. 속이는 야곱을 하나님은 변화시켰다. 방탕한 유다를 하나님께서 바꾸셨다. 살인자 다윗도 회개하게 하셨다. 십자가의 강도도 회개하였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반드시 구원하신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복음을 붙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이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1, 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