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봄 병원에 한통의 편지가 전달됐다. 자신을 키워준 할머니가 수년 전 낙상사고로 허리를 다쳤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는 한 청년의 사연이었다. 할머니를 생각하는 손자의 마음에 감동한 의료진은 편지 속 할머니를 만나러 충북 음성으로 향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남편 윤무열씨(75)와 함께 20년째 복숭아밭을 경영하고 있는 심영숙씨(75). 심씨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줍음이 많아 보였다. 남편의 묻는 말에만 답할 정도로 과묵한 그는 허리가 아프냐는 질문에 “견딜 만하다”고만 했다.
“내가 아파서 병원에 가면 누가 대신 일해주는 것도 아니잖아요. 이 정도 아프다고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참는 데 익숙해진 심씨였지만 현장에서 간단하게 검진해보기만 해도 상태가 심각했다. 등뼈는 육안으로도 확인될 만큼 툭 튀어나와 있고, 한쪽 무릎을 접어 가슴 쪽으로 당기니 반대쪽도 같이 따라 올라왔다. 관절이 굳어버렸으니 다리가 펴지지 않는 건 당연지사. 급한 대로 허리·관절·골반을 펼 수 있는 의료용 베개를 주고 며칠 후 서울에서 정밀검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검사 결과, 퇴행성 척추측만증·척추전방전위증·척추관협착증을 발견했다. 요추 12번 뼈는 사고가 원인이 돼 무너져내린 상태였다. 특히 심씨는 척추전방전위증까지 있어 치료가 시급했다. 척추전방전위증이란 위에 있는 척추가 아래 척추보다 복부 방향으로 더 많이 밀려 나가면서 허리 통증은 물론이고 다리 저림까지 일으키는 질환이다.
요추 4번 뼈 역시 앞으로 어긋나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신경이 눌리는 척추관협착증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휘고 무너진 그의 허리뼈를 보니 치료가 쉽지 않을 듯했다. 골다공증은 또 다른 복병이었다. 심씨는 전체적으로 골다공증이 심해 나사로 뼈를 고정해주는 일반적인 수술방법을 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전문의와 논의한 후 우리 병원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이 방식은 허리에 지름 1㎝ 이내의 구멍을 2개 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의사가 양손을 이용해 한쪽으로는 내시경으로 내부를 크게 확대해 시야를 확보하고, 다른 한쪽으로는 수술기구를 다양한 각도로 움직이면서 문제가 되는 부위를 고쳐나가는 식이다.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은 구멍을 한개 뚫는 기존 방식보다 환부를 최대 10배율로 볼 수 있어 수술의 안전성과 정확성을 높일 수 있다. 또 절개 없이 구멍을 내기 때문에 신경이 다치거나 근육이 망가지는 일도 거의 없다. 수술하면서 식염수를 주입해 세균 감염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내시경 장비가 고도화하면서 척추 내시경 수술을 적용할 수 있는 범위도 점차 넓어진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가령 척추관협착증·추간판탈출증(디스크)은 물론이고 척추수술 후 통증이 있어 재수술해야 할 환자, 심장질환이나 내분비계 질환 등 만성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도 적합한 수술법이다. 뼈·디스크·인대를 광범위하게 다뤄야 하는 척추관협착증을 앓는 환자라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다.
심씨는 황색인대와 후관절이 허리신경을 누르면서 척추관협착증이 생겼다. 황색인대를 비롯한 다양한 인대는 척추의 안정성을 유지해주고, 후관절은 여러 척추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구조물은 성인이 된 후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변형이 생기는데, 이때 척추에 여러 질환을 유발하는 것이다. 양방향 척추 내시경 수술을 받은 심씨는 비정상적으로 커진 황색인대와 후관절의 일부분이 성공적으로 제거됐다.
수술 시 주의해야 할 사항도 있다. 수술과정에선 식염수를 많이 쓰기 때문에 체내에 수분이 많이 흡수되면 압력이 높아진다. 이 압력이 신경에 오랫동안 영향을 줄 수 있는데 수술 후 두통을 유발하거나 목이 뻣뻣해지는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이러한 증상을 방지하려면 압력이 높아진 상태에서 수술시간을 지나치게 길게 끌어선 곤란하다. 심씨를 수술할 때도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해 의료진은 기민하게 움직였다.
어려운 수술이었지만 다행히도 심씨는 빠르게 회복해 웃으며 퇴원했다. 23년간 진료하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심한데도 그걸 견디는 데 이골이 난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가족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고 혹은 강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조건 참는데, 그러지 않으면 좋겠다. 해당 질환을 잘 아는 전문의를 만나 질병을 고친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