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훈교수님 홈페이지에서 퍼옵니다..
https://professorkim.wixsite.com/kshlab/forum/freeboard/3deunggigwansaro-geunmu-jungin-joleobsaengyi-bang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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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SM 해운에서 3등 기관사로 근무 중인 제자가 휴가를 받아 찾아와서 “교수님, 3년 타고 딱 반년만 더 타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일반적인 졸업생은 내게 그런 것을 물을 필요도 없고 실제로 묻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졸업생은 내 실험실에서 4년을 지냈다. 한 두 학기 있다 가는 학생은 많지만 1학년 때 들어와서 졸업할 때까지 있는 학생은 많지 않고, 또 해사대 졸업생 중에서는 이 학생이 처음이었다. 나를 찾아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장래문제를 협의하기 위해서였다.
배마다 장비가 다르고 운영방식이 다르다. 학교에서 어떤 창치를 아무리 숙달을 해서 승선한다고 해도 올라가보면 대부분 처음 보는 장비다. 상급자에게 혼나면서 배우고 새로운 배를 탈 때마다 장비가 다르니 겁이 난다. 혹시라도 항해 중에 배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리고 빨리 하선하기만을 기다린다. 이것이 의무승선기간의 기관사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그런데 이 과정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승선자의 약 10%가 의무승선기간 중에 하선하여 군대를 가고, 의무승선을 마친 해기사의 90%가 하선한다.
천안에 모 4년제 대학이 있는데 취업률이 전국 최고 수준이다. 이 대학은 회사에서 사용하는 장비와 똑 같은 장비를 학교에 설치하고 훈련을 시킨다. 그래서 취업하면 재교육기간 없이 바로 현장에 투입하여 일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장비란 항상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 장비가 바뀌면 학교 장비도 바뀌고, 때로는 취업한 졸업생들을 불러 새로운 장비로 다시 교육시켜 회사로 내보내기도 한도.
보통 회사에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교육에만 1년이 걸리고 따라서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 교육과정이 힘들어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퇴직하는 직원들도 많다. 그런데 그럴 위험성이 줄어드니 회사는 환영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졸업생 취업률은 올라가는 것이다. 우리 학교 해기사 교육이 추구하는 방법도 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비 해기사 출신인 내 생각은 다르다. 배마다 장비가 다르고, 사용법이 다르고, 수리하는 방법이 다른데, 어떻게 이를 일일이 숙달시킬 것인가? 그래서 학교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쓸모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또 배는 장비가 바뀐다고 해서 학교로 다시 불러 교육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해기사는 어떤 장비를 보더라고 이해할 수 있는 기본능력을 갖추어 졸업시켜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내가 해기사 출신이 아니기 때문에 내 실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 중에 해기사가 목표인 학생은 없다. 다들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할 목적으로 들어오고 이 학생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실험실에서 해기사와 관련하여 가르치는 것은 없고, 더욱이 기관사 관련 교육은 하지 않는다. 당연히 학교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없다.
이 제자는 4학년 때 KAIST에 진학하여 병역특례를 받을 생각으로 시험 준비를 하다가 생각이 바뀌어 기관사를 먼저 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3기사로 취업하였고 두 번째 승선을 마치고 휴가를 받은 것이다. 보통 6개월 승선하고 2개월 쉬는데, 1등 항해사나 1등 기관사가 되지 않는 한 휴가기간에는 월급이 없다.
첫 승선 초기는 힘들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후부터는 아주 편하다고 하였다. 6개월 승선을 마치면 기관장이 각 기관사에 대한 평가서를 작성하여 회사에 제출하고, 회사는 그 평가서를 다음 승선시의 기관장에게 주는데 그 평가서를 굉장히 잘 써 준 것이다.
모든 배에는 여러 권의 책으로 된 선박 설명서가 있다. 어느 나라 사람이 승선하더라도 볼 수 있도록 다 영어로 되어있다. 배선도, 회로도 등등 모든 것이 다 있고, 문제가 발생할 시 원인과 대처 방법까지 모두 다 있다. 이 졸업생은 물어보면 별로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는데, 막상 배에 문제가 생기면 설명서를 찾아보고 무엇이 원인인지를 파악하여 정확히 그곳만 고치는 것이다. 돌팔이 의사가 어디가 아픈지 몰라 여기 저기 절개해보고 수술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진단하여 딱 거기만 핀셋으로 잡아내는 것과 같다.
어떤 배를 타든, 기관 장비든, 항해 장비든, 통신 장비든, 무슨 장비든 설명서만 보면 다 수리가 가능하므로 아무 걱정이 없다. 예전에 기관사들이 모여 대여섯 시간 하고도 제대로 했는지 걱정되는 일들이, 이 3기사 오고는 어떤 장비에 무슨 문제가 발생해도 단시간 안에 완벽하게 수리되고 나머지 시간은 모두 자유시간이니 선장과 기관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거기 해기사들은 이런 기관사를 본 일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첫 승선 시에는 잘 이해하지 못하여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두 번째 부터는 이해를 하고 VIP 대우를 해준 것인데, 군대보다 서열이 엄격한 배에서 3기사가 VIP 대우를 받는 것은 쉽지 않다.
승선만 하면 다들 자기를 챙겨주니 세상에서 배가 가장 편하다고 했다. 6개월 타고 내릴 때마다 통장에 3으로 시작되는 숫자가 하나씩 더 찍히고 있다. 회사에서 3년 타면 1기사 시켜준다고 하니, 딱 반년만 더 타고 1기사 한 번 해보고 내리겠다고 하였다.
기관사 하려고 내 실험실에 들어온 것이 아닌 학생이 어쩌다 기관사를 나가서 발생한 일이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관사 만들려고 가르친 것은 아닌데, 배에서 이렇게 된 것이 오히려 자기 발전에 독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첫댓글 6개월뒤이야기가 궁금하네요.~^^
그래도 열심히하는 친군가보내요 화이팅하세요
김상훈 교수님 랩에서 4년을 있었다는걸 보면
보통 친구는 아닐껍니다..
이런 친구들이 뭘해도 해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