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연: “갑오왜란과 아관망명”(청계, 2017)을 읽고서
최근에 동학 공부를 하던 중 위와 같은 책 제목이 어쩌다가 내 눈에 들어왔다.
국사 시간에 ‘아관파천’이란 사건에 관해 어설프게 배운 적이 있었는데, 고종이 국왕의 체신을 지키지 못하고 남의 나라 공관으로 피신해 들어간 ‘치욕적 사건’ 운운으로 어렴풋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기에, ‘아관망명’이라는 개념 자체가 내게는 뭔가 심상치 않은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었다.
게다가 ‘갑오왜란’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갑오년의 전쟁이라면, 1894년 갑오년의 청일전쟁을 이렇게 칭한단 말인가? 전봉준의 제1차 봉기로 조정에서는 ‘동학란’을 진압하고자 청에 파병을 요청한 것이었는데, 청군도 왔지만, 청하지도 않은 일본군도 대거 한반도에 들어오게 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해서 힘없는 조선을 서로 차지하고자 청일전쟁이 일어났고, 일본이 승리한 결과, 김홍집 개화 내각이 들어서서 ‘갑오경장’을 단행, 우리 조선의 제도가 현대적으로 재정비되고...... 이런 식으로 국사를 배웠던 내 세대의 국사 이해에 갑자기 ‘갑오왜란’은 신 개념이 아닐 수 없었으며, 뒤의 ‘아관망명’이란 개념과 더불어, 무엇인가 내게 새로운 도발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황태연이란 학자와는 일면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존함을 들은 적도 없지만, 나는 일단 문제의 책을 구해 읽어보기로 했다.
아, 국사에 대한 나의 무지라니!
1894년(갑오년) 7월 23일, 왜군은 전국의 항만으로 처들어오는 것과 동시에, 경복궁을 범하여 국왕을 사실상 ‘연금 상태’로 만들고, ‘김홍집 괴뢰정권’을 수립하였다. 명문대가의 식솔들이 피란을 가고 도성 안팎의 백성들은 난리를 만나 어쩔 줄을 몰랐다. 당시 한양 사람들은 이것을 ‘갑오왜란’이라 불렀으며, 이틀 후인 7월 25일에 일본은 청일전쟁을 일으켰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갑오경장’을 통해 국왕이 친림(親臨)하는 의정부 제도를 폐기하고 국무대신을 수반으로 하는 내각회의제를 도입함으로써 고종은 사실상 ‘연금상태’에 들게 되었고, 국가 통치권을 거의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고종의 밀지를 통해 알게 된 전봉준 등은 그해 9월에 제2차 봉기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고종 임금을 보위하고 왜적과 그 왜적에 빌붙은 간신배들을 척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302년 전의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임금은 ‘연금상태’에 있었고, ‘괴뢰정부’는 왜적의 편이었다. 여기에 동도(東道) 대장 전봉준의 고립무원한 싸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봉기를 고무하는 고종의 밀지(密旨)도 있었지만, 나중에는 관군과 백성들은 일본군을 의심하지 말고 일본군을 도와 동학군을 진압하라는 고종의 ‘칙유’(고종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가짜 칙유)까지 내려서, 동학농민혁명군에게는 이 칙유가 일본군의 신식무기보다도 더 뼈아픈 독화살이 되었다.
저자 황태연 교수는 갑오년 7월에 일어난 ‘7월 궁궐 침입 사태’와 청일전쟁, 김홍집 괴뢰정부의 수립과 왕권 찬탈(갑오경장),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군의 봉기와 패배까지를 모두 합해서 ‘갑오왜란’으로 부르는 듯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며칠 심히 앓았다. 물론 그건 유행성 감기의 증상이었겠지만, 나는 식욕을 잃고 오한과 신열에 떨어야 했다. 우리 역사에 대해 무지했던 나 자신에 대한 모멸감도 조금은 섞여 있었던 것인지, 나는 정말 열에 들떠 꿈결에 이 나라 산야를 헤매었고, 귀신의 눈으로 전봉준의 의분강개를 직접 목격하기도 했으며, 그를 따르다가 전선에서 희망과 절망의 순간들을 겪는 민초들과 함께 나아가다가 총알을 맞고 비명을 내지르기도 했다. 악몽에서 깨어나서 텔레비전을 통해 이 나라 선거판의 저열한 싸움을 보자니, 오히려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갑오년 연말 장흥 석대들의 그 싸움보다는 이건 그래도 ‘우리끼리의’ 싸움질이니까 말이다.
황태연 교수님께 짙은 고마움을 느낀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분이 우리 현대사에서 국사학자들보다도 더 열심히 사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갑오왜란’이란 개념을 학계에 내어놓으신 데 대하여 존경심을 금할 길 없다. 우리가 겪은, 뼈아픈 전란을 마치 남의 나라 소관 사항인 양 ‘청일전쟁’이라 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국왕의 실권을 빼앗은 일본 괴뢰정부의 ‘개혁’을 ‘갑오경장’으로 호도한 것 자체가 일본의 교묘한 술책에 걸려 넘어간 국사학자들의 무지요, 나태이며, 직무유기다, ‘연금 상태’에 있던 국왕이 아관으로 피란을 간 것은 치욕이 아니라, 국제법상 존중받아 마땅한 ‘영토외적(exterritorial) 망명(asylum)’을 한 것이다, 동학농민혁명군은 ‘갑오왜란’ 당시에는 임진왜란의 의병에 해당하는 가장 의미있는 저항세력이었다. - 이런 여러 깨달음을 나에게 선사하신 황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혹시 나처럼 소식이 늦어서, 아직도 이 책을 모르시는 분들에게 삼가아관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안삼환 교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