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되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전나무가 얼마나 푸른가를 알 수 있다. -<논어> 목욕탕에서 그림 전시회를 열었던 이를 만났는데 작가보다 늦게 와서 일찍 나가려고 한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에 전시회하느라 수고 많으셨지요?라고 덧붙였더니 어제 날짜로 갤러리에 있던 그림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오늘은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다녀야 한단다. 그녀에게 '그동안 세 군데에서 전시회를 가졌더군요~'라고 하며 첫 번째 전시를 했던 장소는 작가가 가보지 못한 곳이라고 하니 그곳은 시골 시장에 있는 상가 2층의 카페란다. 무인카페이기에 사람이 지키지 않는 곳이라 값비싼 그림은 전시를 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무인카페 곳곳에 CCTV를 달았지만 도난의 대비는 스스로 해야 한단다. 아끼는 그림을 잃어버리고 나면 그 처리가 복잡하니까요~라고 작가가 대답을 해 주었다. 되찾으려고 하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시간도 들여야 한다. 우리 어머니는 도둑을 맞으면 도둑맞은 사람의 책임이 더 크다고 가르치셨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허술하게 간수하고 나서 가져간 이를 탓하면 안 된다는 의미이지만 더 큰 뜻은 매사에 야무지지 못한 작가를 깨우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어제는 김장을 하고 있을 6촌 언니네 집에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언제나 제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가는 화가에게 오늘은 늦게 가는 것이 미덕이라고 조언을 했기 때문이다. 한참 김장을 하고 있을 시간인 11시보다는 점심시간이 가까운 때가 알맞을 것이다. 화가는 최대한 늦게 가려고 애썼지만 11시가 조금 넘어서 도착을 했다. 언니네 이불가게 앞이 훤하다. 언제나 흰색 승용차가 자리 잡고 있던 곳이 비어 있어서 그곳에 주차를 했더니 형부가 우리 차를 수월하게 주차시키라고 자신의 차를 먼 곳으로 피신시켰단다. 작은 배려가 큰 감동을 몰고 온다. 닫힌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며 언니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신발을 벗고 가게와 이어진 뒷쪽문을 열었더니 다섯 명이 빙둘러 앉아서 김장 작업이 한창이다. 안녕하세요~ 솜씨가 소문났다는 다섯 분이 모이셨군요. 작가의 인사에 형부가 바깥에도 세 사람이 더 있단다. 시멘트 포장이 된 뒤뜰에 세 사람이 서서 김치를 담그고 있다. 언니에게 사람들이 많네요~ 했더니 두 시간 만에 김장을 다 담그려면 사람이 많아야 한단다. 언니는 우리 부부가 도착하는 시간에 김장을 모두 마치려고 계획을 했던 것 같다. 가게 문 옆에 우리가 가져갈 김치통이 벌써 준비되어 있고 형부는 최고로 맛나게 담근 것이라며 굴도 넣었다고 자랑을 한다. 형부가 손에 장갑을 끼고 있어서 화가가 형님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김장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배추도 공급하고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주는 데모도(잔심부름 담당자)란다. 허리가 두터운 남자분이 바깥에서 네모진 상을 들고 오더니 상다리를 펴서 가게 안에 놓았다. 형부가 형님으로 부르는 자그마한 몸집의 남자도 조용히 가게 안에 들어와서 앉았다. 이웃집에서 가져온 상을 닦으려고 행주를 가지러 식당 방으로 갔더니 형부가 싱크대 앞에서 돼지고기 수육을 썰고 있다. 언니가 형부에게 수육 썰기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될 텐데 기어이 자기가 하고 있단다. 형부는 그 뒤로도 몇 번이나 언니에게 작은 핀잔을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서 한참이 지난 때에 화가가 '형님은 일을 해 주고도 처형에게 잔소리를 듣더라~'라고 한다. 누구 닮은 분이 생각이 나시나요?라고 대답을 하고선 웃었다. 화가도 따라 웃는다. 직장 생활만 하던 남편이 퇴직하여 아내가 도맡아 하던 집안일을 거들려고 하면 으레 듣는 핀잔들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전에 언니는 이불을 두 채나 팔고 화장품까지 팔았다. 모녀가 와서 이불을 고르고 있는 중에 화장품 하나를 골라서 계산을 기다리고 있는 여성에게 작가가 대신 돈을 받겠다고 했더랬다. 언니는 뒷방에서 김장 담기 마무리 중이었다. 5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화장품 가격이 10,800원으로 붙어 있다며 11,000원을 내어놓고 200원 거스름돈을 기다린다. 화가가 우리 차에서 동전을 가져오면 되겠단다. 아무리 찾아도 차 안에는 500원짜리 동전뿐이다. 그녀에게 기다린 값으로 300원을 깎아 드린다며 500원짜리를 건네주었다. 언니가 가게로 와서 화장품을 들고 있는 이에게 거스름돈 200원을 내어 주겠다고 한다. 작가가 300원을 깎아 주었다고 했더니 그 화장품은 정가 그대로 와서 그대로 판매하기 때문에 깎아 주면 안 된단다. 500원짜리를 도로 받고 200원을 내어줄 기세이다. 작가가 서둘러서 많이 기다려서 감사의 표시로 드렸다고 얘기하고 화장품을 들고 있는 이는 그렇게 많이 기다린 것도 아닌데~라고 중얼거린 뒤에 어정쩡한 자세로 돌아갔다. 300원에 예민했던 언니가 이불을 팔 때는 의외의 태도를 보인다. 구입을 망설이는 이에게 10만 원에서 1만 원을 깎아주더니 돈을 지불하지도 않고 8만 원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나이 든 이에게 5천 원을 더 에누리해 주겠단다. 나이 든 이는 지갑에서 천 원짜리 세 개를 꺼내어 하나씩 펴본다. 언니는 그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더 이상은 깎을 수 없고 만 원짜리를 주면 5천 원을 거슬러 준단다. 나이 든 이는 느릿느릿 만 원권 하나를 더 찾아낸다. 언니는 얼른 김장김치 한쪽을 비닐봉지에 담아서 나이 든 이에게 건넸다. 집으로 돌아와서 화가가 처형이 이불장사를 참 잘한단다. 가게의 벽면 두 개를 칸으로 나누어 이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데 손님이 지적하는 대로 언니는 이불 가격을 읊어 주었다. 정가 표를 붙이지도 않았는데 헷갈리지도 않는 언니가 신기하다. 아홉 명이 먹기로 예정되어 있던 수육을 열네 명이 먹었다. 언니는 삶은 수육을 모두 다 먹었고 남은 것은 집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주겠다는 이에게 싸서 보냈단다. 작가에게 김장김치를 줄 때 삶은 수육도 함께 주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한다는 설명으로 알아들었다. 언니는 찜국을 담고 김치 세포기를 따로 더 넣어 준다. 주는 것을 무지무지 좋아하는 언니다. 저녁식사로 생식도 먹기가 거북하여 배와 밀감을 갈아 만든 주스만 한 잔씩 마셨다.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낮에 너무 잘 먹어서 주스만 먹었다고 했더니 웃는다. 수육 거리는 한 줄을 남겨두었는데 아들네가 오면 삶아 줄 것이란다. 이모부가 수육 거리를 샀다고 아들에게 벌써 알려 주었단다.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익숙함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 언니네와 함께 할 때마다 도시에 살면서 까마득히 잊었던 것들을 느끼게 된다. 형부는 장날 장꾼보다 오늘 우리 집에 모인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사람들이 떠난 시골 장날은 한산하지만 형부와 언니는 아직도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산다. 서리태 가루가 들어 있는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생식을 먹을 때 서리태 가루를 첨가해서 먹었는데 지금쯤은 그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생식만으로 몇 번을 먹었더니 화가가 맛이 거북하단다. 서리태 가루가 필요하냐고 물어온 이에게 이젠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답했는데 번복을 하고 다시 주문을 했다. 택배 상자를 열었더니 마늘 한 봉지가 들어 있다. 서리태 가루를 판매하는 이가 올해 처음으로 심고 거두었다는 밭마늘이다. 주문한 것만 보내지 않고 덤으로 뭐든 넣어주는 것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고향 냄새이다. 이런 정이 그리워서 귀촌을 한다.
첫댓글 따뜻한 인심들이
보기참 좋습니다~♡♡
네~
참 따뜻합니다.
상농군으로 어서 회복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