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치일란(一治一亂)
한번은 다스려진다면 한번은 어지러워진다
一 : 한 일(一/0)
治 : 다스릴 치(氵/5)
一 : 한 일(一/0)
亂 : 어지러울 란(乙/12)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하편(下篇) 9장에 '일치일란(一治一亂)'이란 말이 나온다.
맹자의 제자인 공도자(公都子)가 스승에게 묻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보고 모두 '말솜씨가 좋아서 말을 말이 한다'고들 하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그러자 맹자는 "내 어이 말을 많이 하고 싶어 그리했겠는가? 그것은 부득이하여 그리한 것이지. 인류의 역사가 오래되어 한번은 다스려진다면 한번은 어지러워지니까 어지러운 시대를 당하여 부득이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堯)임금 시대에는 물이 역류하여 나라 가운데에 범람하자 물짐승들이 사람 사는 곳에 삶으로써 백성들이 발붙여 살 곳이 없었지. 그리하여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새처럼 나무 위에다 둥지(새집)를 만들어 살고, 높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땅을 파서 굴속에 살았다. 그래서 당시를 기록한 '서경(書經)'에는 요임금이 '홍수가 나를 경계 하는구나'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우(禹)임금으로 하여금 물을 다스리게 하자 우는 땅을 파서 물을 바다로 빼내고 물짐승들을 몰아내어 늪으로 내쫓았으니 오늘날 양자강(江)과 회수(淮)와 한수(漢)가 바로 이것이다. 홍수와 짐승들이 멀리 물러가자 사람들이 평평한 땅을 얻어 살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한 번의 다스려짐이라 한다.
요임금과 순임금이 돌아가시어 성인의 도가 다시 쇠약해지자 포악한 임금이 교대로 나타나 사람들이 사는 집들을 부수어 못으로 만들자 백성들은 편안히 쉴 곳이 없었다. 그 포악한 임금들은 백성들이 농사짓는 밭을 그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백성들로 하여금 옷과 밥을 얻지 못하게 하며, 사악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나타났다. 임금들의 놀이터인 동산과 사냥터가 많이 만들어지니 짐승들조차 이르는데, 은(殷)나라 말기 주(紂)에 이르러 천하는 또 한 번 크게 어지러웠으니 이것이 한 번의 어지러움이라고 한다.
이에 주(周)나라의 주공(周公)이 형인 무왕(武王)을 도와 은나라의 주(紂)의 목을 베고 엄(奄)나라를 공격한 3년 만에 엄 나라 임금을 토벌하고 비렴(飛廉)을 바닷가로 몰아서 죽여 버렸으니, 나라를 없애버림이 50개가 되며 사나운 짐승들을 몰아내자 천하는 크게 기뻐하였다.
이에 당시를 기록한 '서경'에는 '크게 드러내었도다. 문왕의 계책이여. 크게 이었도다. 무왕의 매움이여. 우리를 돕고 계발하시되 모두가 올발라서 흠결이 없고녀!' 하였으니 이는 또한 다스려짐인 것이다.
세상의 도가 쇠미해지자 사악한 말과 포악한 행실이 또 일어나 그 임금을 시해하는 자도 있으며 자식이 그 아비를 시해하는 자도 있었다. 이에 공자께서는 '춘추(春秋)'라는 책을 만들었으니, '춘추'는 임금(天子)의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자는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도 춘추로서 하며, 나를 욕하는 사람도 춘추로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상의 말씀은 바로 공자가 제창한 '왕조순환론'의 단초가 되는 부분입니다.
주나라도 처음처럼 한결같을 수는 없었다. 주공이 천년제국을 꿈꾸며 나라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져놨더라도 쇠락의 길은 면할 수 없었다. 주왕실의 권위가 무너지면서 중원 대륙은 다시 평화를 잃고 난세(亂世)를 맞이한다. 신하 중에 자기 임금을 시해하는 자가 생기고,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 일조차 생기게 된 것이다.
그후, 공자가 세상을 떠나신 후 맹자가 인지하는 세상은 제후들이 방자하고 학자들은 사설(邪說)을 늘어놓는 일대 혼란기가 찾아온 것이다. 맹자는 여기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역사는 일치일란(一治一亂) 하느니, 내 이제 혼란기에 이르러 주공과 공자의 도로써 세상을 평정케 하리라. 내가 입 아프게 떠들고 다니는 이유 또한 여기 있음이니라."
어떻습니까? 천지가 생겨나고 맹자 대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고난의 역사를 들여다보며 평화와 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도 변하지 않는 그 무엇이 있어 인간을 오늘에까지 이르게 했을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것은 눈에 보이거나 손으로 만져지는 유형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형태 있는 것은 언젠가는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원칙이다.
■ 일치일란(一治一亂)
한 번은 잘 다스려지고 한 번은 혼란(一治一亂)한 이유 - 인구와 식량의 불균형
태어나는 사람의 숫자는 날로 많아져 끝이 없는데 생산되는 곡식의 양은 한도가 있고 많지도 않다. 유한한 곡식으로 무한한 인구를 먹여 살리려 하니 반드시 넉넉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운 법령이 날마다 나오지 않는다면 인구가 많아져 난세의 혼란이 곧 닥치고 말 것이다.
맹자는 "천하가 생긴 지 오래 되었는데, 한 번은 잘 다스려지고 한 번은 혼란하다"고 하였다.
세간에서는 하늘의 운세가 그러한 것이라고만 여기지 태어나는 인구가 많은 데 반해 음식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러한 변동이 있게 된다는 것은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중국에서 2, 3백 년마다 반드시 한 번씩 크게 어지러웠던 것은 인구가 너무 많이 증가했기 때문이었다.
■ 맹자의 일치일난(一治一亂)과 하워드 막스의 시계추 움직임
군웅이 할거하고 피 튀기는 전쟁이 난무하던 전국시대의 중국.
병가와 법가; 전쟁에 필요한 병법이 중요하고 통치할 법이 필요한 그 시대에 왜 맹자는 생뚱맞게 인과 의를 강조했을까?
양혜왕과 맹자가 처음 만났던 그 첫 번째 장면!
王曰: 叟不遠千里而來, 亦將有以利吾國乎.
왕왈: "노선생께서 천리를 멀다 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오셨으니, 장차 내 나라에 이로움이 있겠지요?"
孟子對曰: 王, 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맹자대왈: "왕께서는 왜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단지, 인의가 있을 뿐이옵니다."
내가 맹자에게 묻고 싶다. 나라의 왕으로써 내 나라에 이득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데 왜 하필 인과 의를 말했는가?
당시의 시대를 간략이 이야기하자면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던 시기 이미 전국은 법가의 정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진나라 효공왕과 재상 상앙의 만남으로 상앙의 법을 토대로 한 정치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법이라고 하는 것은 왕을 제외한 모든 백성이 법에 의해 상과 벌을 받는 것이다.
상앙은 전쟁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투에나 쓰이는 자잘한 병법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아야 그 사기로 인해 전국을 제패할 수 있는 전쟁 수행능력을 갖는다고 말하였다. 백성들로부터의 전쟁, 민전(民戰)을 주장한 것이다.
상앙이 주장한 백성들이 잘 먹고, 잘 살게 해주는 방법은 바로 법을 통해서인데 법을 어긴 자는 벌을 주고, 법을 지킨 자는 큰 상을 내려 백성들이 잘 살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구체적인 법으로 백성들에게 땅을 개간하게 한 것인데 과거에는 땅을 개간하면 모두 중간관리가 그것을 착취했기 때문에 아무도 땅을 개간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간 관료를 없애고 땅을 개간한 자에게 그 땅을 매매할 수 있게 하고 땅의 소유권을 주면 백성들은 백성대로 생산량이 늘어 부유해지고, 국가는 국가대로 개간된 땅이 늘어나니 세입이 늘어난다. 그렇게 되면 백성들도 잘 먹고 잘 살게 되고 국가도 전쟁을 위한 기초체력을 다질 수 있다.
또 하나, 전쟁에 참전하여 공을 세운 자에게 큰 상을 내리고 단계별 작위를 부여한 것이다. 그렇게 작위를 부여받게 되면 내가 전쟁에 나가 죽더라도 자식들은 좋은 작위를 받게 되고 그 작위를 통해 국가로부터 보호와 인정을 받게 되니 너도 나도 전쟁에 나가 싸우려고 하는 사기가 높아질 것이라는 것이 상앙이 제시한 법이었다.
진나라에서 법의 상과 벌을 적용하는 최초의 이벤트가 기둥을 옮기는 것이었는데 가벼운 기둥을 옮기기만 해도 수백 금을 준다고 하니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다음날 더 많은 금을 준다고 써 붙였는데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는 더 많은 금을 준다고 하니 행인이 속는 셈 치고 기둥을 옮겼는데 상앙이 그 자리에서 수백 금을 내주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법은 시행되었고 진나라는 상앙의 법 제도 아래 국가의 기초를 마련하고 전쟁을 통해 공을 세우기 위해 달려드는 백성들의 사기를 통해 전쟁에 나가면 지는 법이 없었다. 전쟁에 이기면 상을 받는다는 백성들 사기와 의욕을 자잘한 병법의 수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법치에도 부작용은 있었다 너무 법이 가혹했기에 그것 때문에 죽는 사람들도 많았으며 특히 왕족과 귀족들에게 상앙은 눈엣가시였다. 상앙도 나중에 자신이 만든 그 법 때문에 죽게 된다.
어쨌든 그 법을 통해서 진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가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기. 진효공과 상앙이 극적으로 만나 나라가 발전하던 그 시기에 우리의 맹자와 양혜왕이 극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는 왜 법과는 정반대되는 인과 의를 말했던 것일까? 맹자는 역사의 흐름을 일치일난(一治一亂)으로 보았다. 세상이 다스림의 정치가 극에 달하면 난(亂)이 일어나고 난(亂)이 일어나는 것이 극에 달하면 누군가의 다스림을 원하는 쪽으로 간다는 것이다.
잠시 맹자로 빙의하여 이야기해보자면 전국이 나눠져 싸우고 있는 지금, 싸움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세상은 모두가 다스림을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一治一亂). 앞으로 곧 그 다스림의 세상이 올 것인데, 그렇다면 다스림을 잘하는 것은 무엇이냐?
이미 법을 통해 백성들은 개간할 땅은 모두 개간했고, 오히려 법 때문에 두려워하고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이 시기! 지금 필요한 것은 법이 아니라 백성이 따뜻한 밥을 먹고 마음 편히 잘 수 있는, 바로 인과 의를 베푸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게 인과 의를 베푸는 왕에게 백성들은 다스림을 원하게 될 것이고, 전쟁이 난무하는 이 시기에 더 이상의 죽음 없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 그것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인과 의를 통한 왕도정치이다. 이것은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맹자도 공자처럼 결국 자신의 정치 철학이 먹히지 않아 13년을 떠돌다 돌아왔다. 그래서 인과 의라는 이상적 것만 주장하여 실패한 철학, 시대와 맞지 않는 철학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맹자의 깊은 고민과 시대에 대한 통찰력이 있었고 68세에 돌아와서 83세까지 써서 남긴 책 '맹자'가 지금까지 살아남았고 대를 이어 꾸준히 시대를 반성하는 언어로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맹자의 정치 철학은 그것만으로도 성공 아닐까?
맹자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맹자가 바라본 일치일난(一治一亂)의 세상이 하워드 막스의 시계추 움직임 이론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계추 움직임 이론을 간략히 정리하자면
○ 공포와 탐욕처럼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이론에서 시계 추는 양극단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주로 머문다. 그러나 그 시간은 길지 않다.
○ 투자자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시계 추는 평소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으로 왔다 갔다 한다.
○ 시계 추는 한쪽 끝을 향해 계속 움직일 수 없고, 그 끝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수도 없다.
○ 시계 추처럼 한쪽 끝을 향해 투자자 심리가 움직이면서 결국 역방향으로 되돌아가는 데 필요한 동력이 계속 만들어진다. 때로 억제된 동력은 그 자체로 역방향 움직임의 원인이 된다.
○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맹자의 일치일난과 매우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극단으로 갈수록 그 반대의 극단으로 가는 동력은 점점 더 커진다. 다스림의 세상이 극에 달하면 난이 일어나고 난이 일어나는 것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다스림을 원한다.
하워드 막스의 시계추 움직임 이론처럼 그리고 맹자의 일치일난(一治一亂)처럼 세상은 주기를 갖고 움직이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심리와 몸이 늘 동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아프면 건강한 몸을 위해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여 몸이 건강해지면 술을 마시고, 야식을 먹으며 점점 건강이 나빠지는 양쪽 어딘가에서 그 중간 어디를 계속 찾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하워드 막스가 이야기한 시계추 움직임 이론은 경제와 투자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투자자의 심리에 의해 시계 추와 같은 주기를 갖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맹자의 일치일난과 하워드 막스의 시계추 이론에 빗대에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전 세계는 1945년 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세상에서 70여 년을 살았다. 물론 국지적 전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세계 대전만큼은 아니었다. 이것은 두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더 극단적 세계 전쟁으로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노력하여 잘 해결해온 것이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과정으로 가기 위한 무수한 시그널로써 작용을 하거나이다.
모든 나라가 이것을 잘 해결 온 것이길 바라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경제적, 군사적 세계 1위 국가인 미국이 '무역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총, 칼 없는 전쟁을 시작하였다. 전쟁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규제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쳤고, 드러나지 않았을 뿐 결국 그 피해는 미국과 전 세계에 전해졌다.
여기에 더불어 최근 코로나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대봉쇄 위기에 빠지며 많은 사람들이 일자릴 잃고 먹고살기 힘들어지자 정부의 대응에 반대하며 폭력적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맹자의 이론에 따르면 난(亂)이 점점 더 심해지는 시기에 있는 것이며, 하워드 막스의 시계추 이론에 의하면 실물경제는 점점 더 안 좋은 쪽으로 시계 추가 기울고 있는 것이다.
반면 자산 시장은 어떤가? 금리를 제로로 낮추고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는 전 세계 시장에서 주식, 부동산, 채권, 원자재의 가격은 매일매일 최고점을 기록하고 있다. 사람들은 주식과 부동산을 사고팔며, 자기들끼리 가격경쟁을 하고 자산의 가격을 끊임없이 올리는 중이다. 과연 코로나로 인해 경제가 어려운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아주 뜨겁고 축제의 분위기다. 자산 시장의 시계 추는 실물경제와는 반대로 점점 더 상승하는 쪽으로 시계 추가 기울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코스톨라니는 주인과 개에 비유를 든다. 주인과 개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집이라는 목표를 두고 가는 것처럼 경제와 주식도 경제가 성장하는데 주식이 떨어질 수 있고, 경제가 하락할 때 주식은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경제와 주식은 방향성을 같이 하기 때문에 주식이 너무 상승했을 때는 따라오지 못하는 경제와 맞추기 위해 폭락하기도, 경제는 성장하는데 주식이 지지부진할 때에는 성장하는 경제와 맞추기 위해 주식이 크게 상승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지금 이러한 시장에서 주식이 앞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극단으로 가면 갈수록 그 반대로 돌리기 위한 동력은 점점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금리를 제로로 만들고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낸다면 그 반대는 금리를 잠깐이라도 올리고 돈 찍어 내는 것을 멈추는 것이다. 대출이 잘 되고 빚내기 쉬운 세상에서 그 반대인 빚내기 어려운 쪽, 돈을 갚아야 하는 쪽으로 갈 동력을 점점 더 키우고 있는 것이다.
작년에 6억이던 아파트가 올해 12억이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는 그러한 가격 상승이 일어나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 실물경제와 자산 시장의 괴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 괴리를 극복하기 위한 희생의 강도는 점점 더 세진다. 금융의 역사만 봐도 그렇듯 결국 그 희생은 누가 치렀던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찍어 낸 돈들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그 돈들의 대부분 원래 자산을 가지고 있었던 유산계급에게로 돌아갔다.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을 풀려면 누군가에게 자산을 사야 한다. 그래야 시장에 돈이 풀릴 수 있다. 원래 자산을 가지고 있던 '그'는 누구 인가? 그것은 농부도, 기술자도, 노동자도, 서민도 아닌 자본가이다.
국가는 피해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본가에게 돈을 대준다. 왜냐 그들이 혁신을 하고 재분배를 가능하게 함을 알기 때문이다. 2008년 미국이 양적완화를 시작하고, 유럽과 일본이 2012년 양적완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오늘 이 순간까지의 시기 동안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더욱 가속화 돼가고 있다.
자산이 없는 자는 극빈자로, 자산이 있는 자는 더욱더 부유하게 되었던 지난 10년이었다. 그렇지 않기를 정말 바라지만 만약 아주 만약 사회적으로 난(亂)한 이 시기에 자산의 버블까지 겹쳐진다면, 또 그것이 한순간에 꺼져버린다면, 1998년 IMF 사태처럼 극빈자는 쏟아질 것이고 우리가 70년 동안 잘 지켜온 혹은, 미뤄온 또 다른 극단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 같은 중요한 시기에 자산을 사고팔며 버블을 조장하기 보다 제대로 된 자산을 적절히 가치 평가하여 소유하는 자본가가 되는 일. 올바른 투자문화를 만들어 우리 주변의 자산을 지키는 일은 사실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보는 분들이 '무슨 망상이냐? 그럴 일은 없다.'라고 하셔도 좋다. 나도 그렇게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그렇게 되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이 글을 통해 전해드리고 싶은 것은 모두가 양혜왕처럼 이득과 이익을 이야기 하는 이런 시기에 더욱 중요한 것이 인과 의 일수도 있음을, 투자는 절대 돈만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굳건히 지키는 일이자 함께 공생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길이라는 것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끝으로 하워드 막스는 시계추 이론에서 사람들이 절대로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추가 아치를 그리며 얼마나 멀리 움직일 것인가?' '무엇이 움직이던 추를 멈추게 하고,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오게 하는가?' '방향 전환이 언제 일어날 것인가?' '반대 방향으로 얼마나 멀리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들이다.
지금의 시장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 맹자는 상서를 인용하며 "하늘이 지은 재앙은 오히려 피할 수 있으나, 스스로 지은 재앙은 도저히 도망갈 길이 없다"고 하였다.
투자에서 삶에서 나부터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 탐욕에 눈이 뒤집히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올바른 투자문화를 만드는데 씨앗이 될 것임을 다시한번 느끼며 고전을 통해, 그리고 투자의 대가들의 언어를 통해 나의 투자의 원칙을 올바르게 만들어 갈 수 있길 희망해 본다.
맹자(孟子) 등문공장구(滕文公章句) 하(下) 제9장
치국(治國)하는 사례(事例)와 아울러 맹자는 제후들에게 옛 성현들과 같은 인의(仁義)에 대한 신념이 뚜렷한 기개를 세울 것을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대한 자기 향상(向上)의 목표를 향해 부단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음과 동시에 백성들에게는 지식있는 현인(賢人)을 스승으로 받들어 남의 좋은 점을 취하도록 독려하고 예(禮)와 의(義)를 권면(勸勉)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趙岐)는 주장하고 있다. "정치란 옛날의 도(道)로 돌아감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없는데 '등(滕) 문공(文公)은 그를 본받기를 좋아 하였다.' 그래서 등문공(滕文公)과의 대담(對談)을 첫 장(章)에 놓고 그의 이름을 따서 편명(篇名)을 정(定)한 것이다."
이 편(篇)에서는 또한 인민을 계몽 선도할 수 있는 군자(君子)의 상(像)과 효도(孝道)의 모범을 아울러 보이고 있다.
양주나 묵자를 배격하기 위해 호변할 뿐이다
公都子曰 : 外人, 皆稱夫子好辯, 敢問何也.
공도자(公都子)가 말하기를, "외부의 사람들이 모두 선생님이 논변(論辯)을 좋아한다고 이르는데, 무엇을 두고 그러는지 감히 여쭈어 보겠습니다" 하니,
孟子曰 : 予豈好辯哉, 予不得已也.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어찌 논변(論辯)을 좋아 하겠느냐? 나는 할 수 없이 그러는 것이다.
天下之生, 久矣一治一亂.
이 세상에 사람이 살게 된 지가, 오래되어 그동안 한번 다스려졌고 한번 혼란해졌다 해왔다.
當堯之時, 水逆行, 氾濫於中國, 蛇龍居之.
요(堯)임금 때에는 물이 역류하여 나라 안에 범람하여 뱀과 용이 사람 살 곳에 우글거렸고,
民無所定, 下者爲巢, 上者爲營窟.
백성들은 안주할 곳이 없어서, 낮은 곳의 사람들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높은 곳의 사람들은 굴을 파서 삶을 영위하였다.
書曰; 洚水警余, 洚水者洪水也.
서경(書經)에 말하기를, '홍수(洚水)가 나에게 경각심을 갖게 했다'고 하였는데, 홍수(洚水)라는 것은 곧 홍수(洪水)를 말하는 것이다.
使禹治之, 禹掘地而注之海, 驅蛇龍而放之菹.
우(禹)를 시켜 그 홍수를 다스리게 하니, 우(禹)는 땅을 파서 홍수를 바다로 흘러 보내고, 뱀과 용을 몰아서 늪지대로 쫓아 내었다.
水由地中行, 江淮河漢是也.
물길은 터 놓은 데로 따라 흐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곧 장강(長江)과 회수(淮水)와 황하(黃河)와 한수(漢水)가 되었다.
險阻旣遠, 鳥獸之害人者, 消然後, 人得平土而居之.
험한 곳에서 이미 벗어났고, 새와 짐승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 사라진 뒤에야 사람들은 평탄한 땅을 얻어 살게 되었다.
堯舜旣沒聖人之道衰, 暴君代作.
요임금과 순임금이 죽고 성인(聖人)의 도(道)가 쇠퇴해지자, 포악한 임금이 번갈아 일어났다.
壞宮室以爲汚池, 民無所安息, 棄田以爲園囿, 使民不得衣食.
궁실을 헐어서 연못을 만드니 백성들은 편안히 살 곳이 없어지고, 밭을 몰수하여 동산을 꾸며서 백성들은 의복과 음식을 얻지 못하게 되었다.
邪說暴行又作, 園囿汚池沛澤.
사설(邪說)과 폭행(暴行)이 또 일어나서, 동산과 연못과 늪지대가 더욱 늘어나고,
多而禽獸至, 及紂之身, 天下又大亂.
새와 짐승이 많아 지더니, 주(紂)에 이르러서는 천하가 또 크게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周公相武王, 誅紂; 伐奄三年, 討其君, 驅飛廉於海隅而戮之.
주공(周公)이 무왕(武王)을 도와서 주(紂)를 쳐 죽이고, 엄(奄)나라를 정벌한 지 3년이 되어 그 임금을 죽이고, 비렴(飛廉)을 바닷가 모퉁이로 내 몰아 죽였다.
滅國者五十, 驅虎豹犀象而遠之, 天下大悅.
그 동안 멸한 나라가 50이나 되고, 범과 표범과 외뿔소와 코끼리등의 맹수를 멀리 쫓아 버려 천하가 크게 기뻐 하였다.
書曰 ; 丕顯哉, 文王謨. 丕承哉, 武王烈. 佑啓我後人, 咸以正無缺.
서경(書經)에 이것을 말하기를, '위대하도다. 문왕의 계획은! 이어 받음은 크도다. 무왕의 위대한 뜻은! 우리들 뒷사람을 도와 길을 열어주고, 모두가 정도(正道)로써 결함없게 하였도다.'
世衰道微, 邪說暴行有作.
또한 세상이 쇠퇴하고 정도가 희미해져서 사설(邪說)과 폭행이 있게 되었다.
臣弑其君者有之, 子弑其父者有之.
신하가 자기 임금을 죽이는 일이 있게 되고, 자식이 자기 아비를 죽이는 일이 있게 되었다.
孔子懼作春秋, 春秋.
공자는 이것이 두려워 춘추(春秋)를 지었다.
天子之事也.
'춘추'라는 것은 천자로서 해야 할 일을 다룬 것이다.
是故, 孔子曰 : 知我者, 其惟春秋乎; 罪我者, 其惟春秋乎.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말씀하시기를, '나를 이해하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일 것이고,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를 통해서일 뿐이다'고 하셨다.
聖王不作, 諸侯放恣, 處士橫議, 楊朱墨翟之言, 盈天下, 天下之言, 不歸楊則歸墨.
성왕(聖王)이 나오지 않고 제후는 방자해져 가고, 학자들이 불온한 의론(議論)을 내세우며, 양주(楊朱)와 묵주(墨朱)의 이론이 천하에 가득 차서, 천하의 언론이 양주의 이론을 찬성하지 않으면 곧 묵적을 찬성하는데 돌아갔다.
楊氏, 爲我, 是無君也.
양씨(楊氏)는 위아(爲我)를 말했으니, 그것은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고,
墨氏, 兼愛, 是無父也.
묵씨(墨氏)는 겸애(兼愛)를 내세웠으니, 자신의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다.
無父無君, 是禽獸也.
자기 아비를 무시하고 그 임금을 무시하는 것은, 새나 짐승이 하는 짓이다.
公明儀曰 : 庖有肥肉, 廏有肥馬, 民有飢色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
공맹의(公明儀)가 말하기를, '푸줏간에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굿간에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주린 기색이 드러나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다.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 먹게 한 것과 같다'고 하였다.
楊墨之道, 不息孔子之道不著, 是邪說, 誣民, 充塞仁義也.
양주(楊朱)나 묵적(墨翟)의 도(道)가 없어지지 않으면 공자의 도(道)는 드러나지 않게 되니, 그것은 사설(邪說)이, 백성을 속이고, 인의(仁義)의 길을 막아 버리기 때문이다.
仁義充塞, 則率獸食人, 人將相食.
인의(仁義)의 길을 막는 것은, 곧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잡아먹게 하고, 장차는 사람들 서로가 잡아먹게 까지 하는 것이 된다.
吾爲此懼, 閑先聖之道, 距楊墨, 放淫辭, 邪說者不得作.
나는 이것 때문에 두려워서 옛 성인의 도(道)를 지키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이론을 배격하여 방자스런 언사를 내몰고, 사설(邪說)을 내세우는 자가 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作於其心, 害於其事; 作於其事, 害於其政.
만일 사설(邪說)이 그 마음에 작용하면 하는 일을 해롭게 하고, 그 일에 작용하면 정치에 해가 되게 한다.
聖人復起, 不易吾言矣.
옛 성인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내 말은 고치지 않을 것이다.
昔者禹抑洪水而天下平, 周公兼夷狄驅猛獸而百姓寧, 孔子成春秋而亂臣賊子懼.
옛날에 우(禹)가 홍수를 막았기에 천하가 평온했고, 주공(周公)이 이적(夷狄)을 정복하고 맹수를 몰아내니 백성이 평안했으며, 공자가 '춘추'를 완성했기에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 하게 되었다.
詩云; 戎狄是膺, 荊舒是懲, 則莫我敢承.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융적(戎狄)을 치고, 형서(荊舒)를 징계하니, 아무도 우리에게 감히 대항하지 못하였다'고 했으니,
無父無君, 是周公所膺也.
자기 아비를 무시하고 그 임금을 무시하는 자는, 곧 주공의 정벌 대상이 되었다.
我亦欲正人心, 息邪說, 距詖行, 放淫辭, 以承三聖者.
나도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하여, 사설(邪說)을 없이하여, 치우친 행동을 막고, 방자스런 말을 내몰아, 세 분의 성자(聖者)를 계승하려고 한다.
豈好辯哉. 予不得已也.
이 어찌 내가 논변(論辯)을 좋아하는 것이겠는가? 나는 어쩔 수 없어서 그러는 것이다.
能言距楊墨者, 聖人之徒也.
언론으로 양주(楊朱)와 묵자(墨子)를 막아낼 수 있는 사람이 성인의 무리이기 때문인 것이다."
(解)
능란한 설득술을 마음대로 구사하면서 위정자들에 대한 신랄한 추궁의 손을 조금도 늦추지 않는 맹자를 보고 사람들은 호변가(好辯家)라고 불렀다. 그러나 맹자는 날로 혼란이 거듭되는 사회 속에서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이단(異端)을 배격하기 위하여 부득이하게 호변(好辯)을 하는 것이지 남들이야 뭐라고 해도 내가 어찌 호변(好辯) 그 자체를 좋아하겠느냐고 자신의 입장에서 해명을 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맹자는 역시 자신을 변명하는 변설가일 뿐, 상대방의 입장이나 당시의 묵가나 양주의 학설이 공자나 맹자의 유가파에 대립할 만큼 왕성했던 시대를 감안 한다면, 오로지 유가(儒家)의 변호에 열을 올린 호변가였을 뿐이라고 여겨진다.
교묘한 솜씨의 화술로써 신랄한 추궁을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있는 그의 호변술(好辯術)뒤에 숨어 있는 진정한 의도는 신분적 정치 질서의 역사적 재수립과 봉건도덕의 부흥을 염원하는 데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홍수를 다스려서 천하를 모두다 평온하게 한 우왕(禹王)이나 이적(夷狄)들을 정벌해서 온 백성들을 편히 살수 있게 해준 주공(周公), 그리고 공자가 춘추(春秋)를 지으면서 부터는 난신적자(亂臣賊者)들이 모두 자기의 잘못을 깨닫게된 사연을 생각할때 맹자의 역할은 지대(至大)하다는 것이다.
지금 이 시기에 양주(楊朱)와 묵자(墨子)의 이론을 배격하지 못한다면 공자의 사회적 인(仁)의 실현은 완전히 차단되고 봉건도덕 신분질서는 파괴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양주(楊朱)는 인간의 생명을 자연의 한 기능으로 해석한 맹자의 사상적 대립자였다. 자기에게 가능한 능력에 따라 자신의 행복을 추구해 가는 태도가, 곧 자연이며, 이것은 어떤 형태의 권력에 의해서도 결코 침해당할 수 없다는 것이 양주가 주장한 골자(骨字)였다. 그러나 맹자는 양주의 이 이론을 군신과 상하 신분 관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사회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 사상이라고 비판하였다.
한편 묵자(墨子)의 이론은 권력층에 의한 이(利)의 독점을 배제하고 일반대중에게 실질적인 이(利)를 보장하기 위한 기존 질서의 타파를 배격한 혁명적 사고를 표방하고 나섰다. 특히 공자의 인(仁)을 혈연적인 집단속에 폐쇄된 도덕의식으로 간주하고 그에 반대하여 애정은 누구에게도 차별없이 대등하게 미치는 겸애(兼愛)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이를지적하여 가정에 있어서 부자간의 관계를 부정하고 사회 도덕을 퇴폐 시키는 이론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우왕(禹王)이나 주공(周公)이나 공자(孔子)등이 지닌 본래의 뜻을 계승하며, 양주(楊朱)와 묵자(墨子)의 이론을 배격하여, 인의(仁義)가 행해지는 왕도(王道)를 이루고자 부득이 하게 호변(好辯)을 하는 것이라고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신흥생산 귀족에 의한 통치권력의 재편성이 진행되고 이러한 시대풍조를 타고 속속 대두되는 새로운 풍조가 범람했던 당시의 시대상이 한 눈에 보이는 듯하다.
▶️ 一(한 일)은 ❶지사문자로 한 손가락을 옆으로 펴거나 나무젓가락 하나를 옆으로 뉘어 놓은 모양을 나타내어 하나를 뜻한다. 一(일), 二(이), 三(삼)을 弌(일), 弍(이), 弎(삼)으로도 썼으나 주살익(弋; 줄 달린 화살)部는 안표인 막대기이며 한 자루, 두 자루라 세는 것이었다. ❷상형문자로 一자는 '하나'나 '첫째', '오로지'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一자는 막대기를 옆으로 눕혀놓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고대에는 막대기 하나를 눕혀 숫자 '하나'라 했고 두 개는 '둘'이라는 식으로 표기를 했다. 이렇게 수를 세는 것을 '산가지(算木)'라 한다. 그래서 一자는 숫자 '하나'를 뜻하지만 하나만 있는 것은 유일한 것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오로지'나 '모든'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一자가 부수로 지정된 글자들은 숫자와는 관계없이 모양자만을 빌려 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一(일)은 (1)하나 (2)한-의 뜻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나, 일 ②첫째, 첫번째 ③오로지 ④온, 전, 모든 ⑤하나의, 한결같은 ⑥다른, 또 하나의 ⑦잠시(暫時), 한번 ⑧좀, 약간(若干) ⑨만일(萬一) ⑩혹시(或時) ⑪어느 ⑫같다, 동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한가지 공(共), 한가지 동(同),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무리 등(等)이다. 용례로는 전체의 한 부분을 일부(一部), 한 모양이나 같은 모양을 일반(一般), 한번이나 우선 또는 잠깐을 일단(一旦), 하나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음을 고정(一定), 어긋남이 없이 한결같게 서로 맞음을 일치(一致), 어느 지역의 전부를 일대(一帶), 한데 묶음이나 한데 아우르는 일을 일괄(一括), 모든 것 또는 온갖 것을 일체(一切), 한 종류나 어떤 종류를 일종(一種), 한집안이나 한가족을 일가(一家), 하나로 연계된 것을 일련(一連), 모조리 쓸어버림이나 죄다 없애 버림을 일소(一掃), 한바탕의 봄꿈처럼 헛된 영화나 덧없는 일이란 뜻으로 인생의 허무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일장춘몽(一場春夢), 한 번 닿기만 하여도 곧 폭발한다는 뜻으로 조그만 자극에도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태를 이르는 말을 일촉즉발(一觸卽發), 한 개의 돌을 던져 두 마리의 새를 맞추어 떨어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해서 두 가지 이익을 얻음을 이르는 말을 일석이조(一石二鳥), 한 번 들어 둘을 얻음 또는 한 가지의 일로 두 가지의 이익을 보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거양득(一擧兩得), 한 사람을 벌주어 백 사람을 경계한다는 뜻으로 한 가지 죄와 또는 한 사람을 벌줌으로써 여러 사람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킴을 일컫는 말을 일벌백계(一罰百戒), 한 조각의 붉은 마음이란 뜻으로 한결같은 참된 정성과 변치 않는 참된 마음을 일컫는 말을 일편단심(一片丹心), 한 글자도 알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일자무식(一字無識), 한꺼번에 많은 돈을 얻는다는 뜻으로 노력함이 없이 벼락부자가 되는 것을 이르는 말을 일확천금(一攫千金), 한 번 돌아보고도 성을 기울게 한다는 뜻으로 요염한 여자 곧 절세의 미인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일고경성(一顧傾城), 옷의 띠와 같은 물이라는 뜻으로 좁은 강이나 해협 또는 그와 같은 강을 사이에 두고 가까이 접해 있음을 이르는 말을 일의대수(一衣帶水), 밥 지을 동안의 꿈이라는 뜻으로 세상의 부귀영화가 덧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취지몽(一炊之夢), 화살 하나로 수리 두 마리를 떨어 뜨린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로 두 가지 이득을 취함을 이르는 말을 일전쌍조(一箭雙鵰),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하루가 천 년 같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사람끼리의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일일천추(一日千秋), 그물을 한번 쳐서 물고기를 모조리 잡는다는 뜻으로 한꺼번에 죄다 잡는다는 말을 일망타진(一網打盡), 생각과 성질과 처지 등이 어느 면에서 한 가지로 서로 통함이나 서로 비슷함을 일컫는 말을 일맥상통(一脈相通), 한 번 던져서 하늘이냐 땅이냐를 결정한다는 뜻으로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를 겨룸을 일컫는 말을 일척건곤(一擲乾坤),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 또는 문장이나 글이 명쾌함을 일컫는 말을 일사천리(一瀉千里), 하나로써 그것을 꿰뚫었다는 뜻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변하지 않음 또는 막힘 없이 끝까지 밀고 나감을 일컫는 말을 일이관지(一以貫之), 기쁜 일과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이나 한편 기쁘고 한편 슬픔을 일컫는 말을 일희일비(一喜一悲), 한 입으로 두 말을 한다는 뜻으로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함을 이르는 말을 일구이언(一口二言) 등에 쓰인다.
▶️ 治(다스릴 치, 강 이름 이)는 ❶형성문자로 乿(치), 乨(치)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치)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물(水)의 넘침에 의한 피해를 잘 수습한다는 뜻이 합(合)하여 '다스리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治자는 '다스리다'나 '질서가 잡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治자는 水(물 수)자와 台(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台자는 수저를 입에 가져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台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먹이다'라는 뜻을 전달하게 된다. 농경사회에서는 강이나 하천의 물을 잘 다스리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治자는 물을 다스려 백성들을 먹여 살린다는 의미에서 '다스리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治(치, 이)는 ①다스리다 ②다스려지다, 질서가 바로 잡히다 ③병을 고치다 ④익히다, 배우다 ⑤견주다(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기 위하여 서로 대어 보다), 비교하다 ⑥돕다 ⑦성(盛)해지다, 왕성(旺盛)해지다 ⑧도읍(都邑)하다 ⑨수양(修養)하다 ⑩구걸(求乞)하다 ⑪공(功), 공적(功績) ⑫도읍(都邑) ⑬정사(政事), 정치(政治) ⑭정도(正道), 사람의 도리(道理) ⑮조서(調書: 조사한 사실을 적은 문서) ⑯말, 언사(言辭) ⑰감영(監營) 그리고 ⓐ강(江)의 이름(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리(厘), 다스릴 발(撥), 다스릴 섭(攝), 다스릴 리(理), 다스릴 할(轄), 다스릴 리(釐), 지날 경(經),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지러울 란(亂)이다. 용례로는 나라를 다스림을 치국(治國), 병이나 상처를 다스려서 낫게 함을 치료(治療), 치료하여 병을 낫게 함을 치유(治癒),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림을 치안(治安), 하천이나 호수 등을 잘 다스려 범람을 막고 관개용 물의 편리를 꾀함을 치수(治水), 잘 매만져서 꾸밈을 치장(治粧), 백성을 다스림 또는 그 사람을 치인(治人), 혼란한 세상을 다스림을 치란(治亂), 병의 열기를 다스림을 치열(治熱),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을 치자(治者), 잘 다스린 공적 또는 정치상의 업적을 치적(治績), 국가의 주권자가 국가 권력을 행사하여 그 영토와 국민을 다스리는 일을 정치(政治), 도맡아 다스림을 통치(統治), 자기 일을 자기 스스로 다스림을 자치(自治), 물리쳐서 아주 없애버림을 퇴치(退治), 나라의 관리가 맡아 다스리는 정치를 관치(官治), 법률에 의하여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정치를 법치(法治), 나라 안의 정치를 내치(內治), 병을 고침을 요치(療治), 병을 고치기 어려움을 난치(難治), 병을 완전히 고침을 완치(完治), 다스려질 때 어지러워짐을 잊지 않는다는 뜻으로 군자는 먼 훗날의 일을 생각함을 이르는 말을 치이불망란(治而不忘亂), 산과 물을 다스려 재해를 막는 일을 일컫는 말을 치산치수(治山治水),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하게 함을 일컫는 말을 치국안민(治國安民),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농부가 밭의 김을 매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치국은 백성을 괴롭히는 자를 제거하는 데 있음을 이르는 말을 치국약누전(治國若鎒田), 다스리는 것은 농사를 근본으로 하니 중농 정치를 이르는 말을 치본어농(治本於農), 실을 급히 풀려고 하면 오히려 엉킨다는 뜻으로 가지런히 하려고 하나 차근차근 하지 못하고 급히 해서 오히려 엉키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을 치사분지(治絲焚之), 말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뒤에 손을 쓴다는 말을 실마치구(失馬治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뜻으로 실패한 후에 일을 대비함을 일컫는 말을 실우치구(失牛治廐), 성인의 덕이 커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유능한 인재를 얻어 천하가 저절로 잘 다스려짐을 이르는 말을 무위이치(無爲而治),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으로 힘에는 힘으로 또는 강한 것에는 강한 것으로 상대함을 이르는 말을 이열치열(以熱治熱), 아무 작용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이상적 정치를 이르는 말을 무위지치(無爲之治), 어떤 한 가지 약이 여러 가지 병에 다 효력이 있음 또는 어떤 한 가지 사물이 여러 가지 사물에 다 효력을 나타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만병통치(萬病通治), 까막눈인 사람들을 가르쳐 글 모르는 이가 없도록 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문맹퇴치(文盲退治), 내 몸을 닦아 남을 교화함을 일컫는 말을 수기치인(修己治人), 애써 법을 정함이 없이 인덕으로 백성을 교화시키고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일컫는 말을 의상지치(衣裳之治), 백성의 사정을 잘 살펴서 정치를 잘함을 일컫는 말을 선치민정(善治民情), 어떠한 약이 무슨 병에든지 다 보람이 있음을 이르는 말을 백병통치(百病通治) 등에 쓰인다.
▶️ 亂(어지러울 란/난)은 ❶형성문자로 乨(란), 乱(란), 釠(란)은 통자(通字), 乱(란)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새 을(乙=乚; 초목이 자라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란(실패에 감긴 실의 상하에 손을 대고 푸는 모양으로 일이 어지러움)으로 이루어졌다. 얽힌 것을 바로잡는 일로, 나중에 얽힌다는 뜻으로 쓰였다. ❷회의문자로 亂자는 '어지럽다'나 '손상시키다'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亂자는 실타래를 손으로 풀고 있는 모습과 乙(새 을)자가 결합한 것이다. (난)자는 엉킨 실타래를 손으로 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금문까지만 하더라도 '어지럽다'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소전에서는 여기에 乙자가 더해지면서 도구를 이용해 실타래를 푸는 모습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亂(란)은 ①어지럽다 ②어지럽히다, 손상시키다 ③다스리다 ④음란하다, 간음하다 ⑤무도하다, 포악하다 ⑥물을 건너다 ⑦가득 차다, 널리 퍼지다 ⑧난리(亂離), 반란(叛亂) ⑨위해(危害), 재앙(災殃) ⑩음행(淫行), 음란(淫亂)한 행위 ⑪버릇없는 행동 ⑫풍류(風流), 악장(樂章) ⑬요지(要旨) ⑭함부로, 마구잡이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스릴 치(治), 다스릴 리(理)이다. 용례로는 전쟁이나 재해 등으로 세상이 소란하고 질서가 어지러워진 상태를 난리(亂離), 어지럽게 마구 추는 춤을 난무(亂舞), 총이나 활 따위를 함부로 쏘는 것을 난사(亂射), 이리저리 흩어져서 질서나 체계가 서지 않는 일을 난맥(亂脈), 질서없이 여기 저기서 마구 나서는 것을 난립(亂立), 몹시 거칠고 사나움을 난폭(亂暴), 어지러운 판국을 난국(亂局), 어지럽게 함부로 들어가는 것을 난입(亂入), 공기나 물의 불규칙한 흐름을 난류(亂流), 사물이 얽히고 뒤섞여 어지럽고 수선스러움을 난잡(亂雜), 질서를 어지럽히며 마구 행동하는 것 또는 그런 행동을 난동(亂動), 조화나 정상을 잃은 흐트러진 상태를 난조(亂調), 마구 때림을 난타(亂打), 어지러워 살기가 힘든 세상을 난세(亂世), 세상이 어지러운 때를 난시(亂時), 양편이 서로 뒤섞여서 어지럽게 싸움을 난투(亂鬪), 갈피를 잡을 수 없이 어지러움을 혼란(混亂), 시끄럽고 어지러움을 요란(搖亂), 뒤흔들어서 어지럽게 함을 교란(攪亂), 음탕하고 난잡함을 음란(淫亂), 야단스럽고 시끄러움을 소란(騷亂), 도덕이나 질서나 규칙 등이 어지러움을 문란(紊亂), 크게 어지러움이나 큰 난리를 대란(大亂), 마음이 어둡고 어지러움을 혼란(昏亂), 어수선하고 떠들썩함을 분란(紛亂), 왜인이 일으킨 난리를 왜란(倭亂), 사변으로 일어난 소란을 변란(變亂), 나라 안에서 정권을 차지하려고 싸움을 벌이는 난리나 반란을 내란(內亂), 나라를 어지럽게 하는 신하와 어버이를 해치는 자식 또는 불충한 무리를 일컫는 말을 난신적자(亂臣賊子), 한 오라기의 실도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질서나 체계 따위가 잘 잡혀 있어서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일사불란(一絲不亂), 같은 패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일컫는 말을 자중지란(自中之亂), 헝클어진 삼을 잘 드는 칼로 자른다는 뜻으로 복잡하게 얽힌 사물이나 비꼬인 문제들을 솜씨 있고 바르게 처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쾌도난마(快刀亂麻),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