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연재
道德三皇五帝 삼황오제 도덕을 세우고
功名夏后商周 하·은·주 삼대(三代) 공명을 이룩했네.
英雄五霸鬧春秋 오패의 영웅들이 춘추시대를 시끄럽게 하였으나
頃刻興亡過手 흥망성쇠 경각에 지나갔도다.
青史幾行名姓 청사에 몇 줄 이름을 남겼으나
北邙無數荒邱 북망산엔 황량한 무덤만 무수하네.
前人田地後人收 앞사람이 차지한 땅 뒷사람이 거두니
說甚龍爭虎鬬 용쟁호투 말해 무엇 하리.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犧氏)·신농씨(神農氏)·수인씨(燧人氏), ‘오제(五帝)’는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을 가리킨다. 중국 고대의 세 왕조인 하·은·주를 ‘삼대’라 한다.
제후들의 우두머리를 패자(覇者)라고 하는데, 춘추시대에 차례로 등장한 다섯 명의 패자를 ‘춘추오패(春秋五覇)’라고 한다. 역사가에 따라 조금 다른데, 제환공(齊桓公)·진문공(晉文公)·초장왕(楚莊王)·진목공(秦穆公)·송양공(宋襄公)을 말하기도 하고, 진목공과 송양공 대신에 오왕(吳王) 합려(闔閭)와 월왕(越王) 구천(勾踐)을 넣기도 한다.
‘북망산’은 낙양의 동북쪽에 위치한 산 이름으로 한대(漢代) 이후 묘지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북망산은 묘지가 있는 곳이나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 列國志 제1회
주(周)왕조는 무왕(武王)이 은(殷)왕조의 폭군 주왕(紂王)을 정벌하고 천자에 즉위한 이후, 성왕(成王)과 강왕(康王)이 계승하여 나라의 기반을 튼튼히 하였다. 또 주공(周公), 소공(召公), 필공(畢公), 사일(史佚) 등의 현명한 신하들이 천자를 보좌하여 문화가 부흥하고 물자가 풍부해져 민생이 안락하였다.
[‘주공’은 무왕의 첫째 동복아우인 희단(姬旦)의 시호이다. 무왕을 도와 주왕조를 세우는 데 절대적 공헌을 하였으며, 무왕 사후에는 어린 조카 성왕을 보좌해 섭정하면서 각종 문물제도와 예악(禮樂) 질서를 정비해 주나라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무왕이 노(魯)나라에 봉하여 그 시조가 되었다. 주나라의 문화를 부흥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던 공자(孔子)가 가장 존경했던 성현(聖賢)이다.]
무왕으로부터 9대 천자가 이왕(夷王)인데, 그때부터 제후가 천자를 뵙는 의례인 근례(覲禮)가 잘 지켜지지 않으면서 제후들의 힘이 점점 강대해져 갔다. 10대 천자인 여왕(厲王)은 포학무도(暴虐無道)하여 백성들에 의해 죽음을 당하였으니, 이때부터 천년 동안 이어진 민란(民亂)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여왕이 죽고 태자 정(靖)이 천자가 되었는데, 그가 선왕(宣王)이다. 선왕은 영명하고 법도를 잘 지켰으며, 현명한 신하인 방숙(方叔)·소호(召虎)·윤길보(尹吉甫)·신백(申伯)·중산보(仲山甫) 등을 임용하여 문왕·무왕·성왕·강왕의 정사를 다시 펼쳐 주왕실을 중흥하였다.
[시호(諡號)는 임금이 죽은 후 사관들이 그 업적을 평가하여 정하므로, 시호를 보면 그가 어떤 임금이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무(武)’는 무력, ‘성(成)’은 태평성대, ‘강(康)’은 평안함을 뜻한다. ‘여(厲)’는 사납다는 뜻이고, ‘선(宣)’는 베푼다는 뜻이다. 선왕은 초기에 좋은 정사를 베풀었는데, 말년에 실정을 하게 된다.]
夷厲相仍政不綱 이왕과 여왕이 정사를 이어 기강이 바로 서지 못했는데
任賢圖治賴宣王 어진 신하 임용하여 바른 정치 도모한 것은 선왕이었다.
共和若沒中興主 공화 시대에 중흥주가 없었더라면
周曆安能八百長 주나라가 어찌 8백년이나 오래 갈 수 있었으랴!
[여왕이 쫓겨난 후 일부 제후와 재상이 왕을 대신하여 집정하던 시기를 ‘공화(共和)’라고 하였는데, 왕 없이 정치가 이루어지는 ‘공화제’란 말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선왕이 정치를 잘하긴 했으나 무왕의 치적에는 미치지 못하였고, 또 중흥했다고는 하지만 성왕이나 강왕 때처럼 교화가 크게 이루어지지는 못하였다. 선왕 39년에 서북방의 이민족인 강융(姜戎)이 천자의 명에 항거하자, 선왕이 친히 정벌에 나섰지만 천묘(千畝)에서 패전하고 군사를 많이 잃었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중화(中華; 가운데의 꽃)’라 하며 세상의 중심으로 생각하였고, 사방의 민족들은 모두 오랑캐(야만족)라고 하였다. 북쪽의 이민족은 북적(北狄), 남쪽의 이민족은 남만(南蠻), 동쪽의 이민족은 동이(東夷), 서쪽의 이민족은 서융(西戎)이라 지칭했다. ‘狄’ 자에는 ‘개(犭=犬)’가 들어있고 ‘蠻’ 자에는 ‘벌레(虫)’가 들어있다. 짐승 같은 자들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夷’는 ‘大’와 ‘弓’이 겹쳐진 글자이니 ‘큰 활’을 의미하고, ‘戎’ 자에는 ‘창(戈)’이 들어있다. 난폭한 자들이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선왕은 다시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지만, 군사를 충원하지 못할까 염려하여 태원(太原)에서 친히 요민(料民)을 실시하였다. 태원은 지금의 고원주(固原州)로서 인근에 오랑캐의 땅이 있었다. 요민이란, 땅과 호구를 호적에 대비하여 조사하고 인구의 숫자와 거마·곡식·사료 등의 양을 살펴 조세 징수와 출정(出征)에 대비하는 것이다. 백관의 우두머리인 태재(太宰) 중산보(仲山甫)가 간하였으나, 선왕은 듣지 않았다.
犬彘何須辱劍鋩 개나 돼지를 잡으려고 하필이면 칼날을 더럽히려 하는가?
隋珠彈雀總堪傷 수주로 참새를 쏘니 구슬만 상하는구나!
皇威褻盡無能報 천자의 위엄이 더럽혀지면 보상할 수도 없는데
枉自將民料一場 헛되이 요민(料民)만 한바탕 일으키네.
[‘수주(隋珠)’는 수후(隋侯)의 구슬인데, 춘추전국시대의 수나라 임금이 큰 상처를 입은 뱀을 구해준 보답으로 야광주(夜光珠)를 받았다고 한다. 그 수후의 귀중한 구슬로 참새를 쏘아 잡으려 하는 것은, 하찮은 것을 얻으려고 귀중한 것을 낭비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자성어로 ‘수주탄작(隋珠彈雀)’이라 한다.]
선왕이 태원에서 요민을 실시하고 돌아와 수도인 호경(鎬京)에 들어섰을 때, 거리에서 아이들 수십 명이 무리를 지어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선왕이 어가(御駕)를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月將升 달이 장차 떠오르면
日將沒 해는 장차 지리라.
檿弧箕箙 염호와 기복으로
幾亡周國 주나라는 망하리라.
선왕은 노랫말이 귀에 거슬려 어가를 몰던 어자(御者)들에게 명을 내려 아이들을 모두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아이들은 놀라서 도망쳤는데, 그 중 나이가 좀 든 아이와 어린 아이가 붙잡혀 와서 어가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선왕이 아이들에게 물었다.
“네 이놈들! 이 노래는 누가 지은 것이냐?”
어린 아이는 두려워 벌벌 떨면서 말을 하지 못했고, 나이 든 아이가 대답했다.
“이 노래는 저희들이 지은 것이 아니옵니다. 사흘 전에 붉은 옷을 입은 아이가 거리에 나타나 저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저희들은 멋모르고 그냥 노래를 불렀는데, 어찌된 까닭인지는 모르겠으나 순식간에 퍼져나가 도성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 붉은 옷을 입은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저희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후에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선왕은 한동안 말없이 생각하다가, 저자를 관리하는 사시관(司市官)을 불러 분부하였다.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도록 금지하라. 만약 이 노래를 다시 부르는 아이가 있으면 그 부형(父兄)까지 같은 죄로 다스릴 것이다.”
호령을 내린 후, 선왕은 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조회 때 삼공(三公)·육경(六卿)을 비롯한 대신들이 모두 어전에 모여 천자에게 절을 올렸다.
[‘삼공’은 최고위의 대신들로서 주나라 때에는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가리킨다. 육경은 육관(六官)의 우두머리로서, 궁중의 일을 맡은 총재(冢宰), 내정과 교육을 맡은 사도(司徒), 제사와 예악을 맡은 종백(宗伯), 군사를 맡은 사마(司馬), 형벌과 외교를 맡은 사구(司寇), 건축과 공작을 맡은 사공(司空)을 말한다. 조선시대의 삼정승과 육조판서에 해당한다.]
선왕이 어젯밤 들은 아이들의 노래를 들려주면서 대신들에게 물었다.
“이 노랫말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겠소?”
종백 소호(召虎)가 대답했다.
“염(檿)은 산뽕나무를 말하는데, 그걸로 활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염호(檿弧)라고 합니다. 기(箕)는 풀이름인데, 그걸 엮어서 화살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걸 기복(箕箙)이라고 합니다. 신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국가에 궁시지변(弓矢之變) 즉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태재 중산보가 아뢰었다.
“궁시는 무기입니다. 지금 왕께서 태원에서 요민을 실시하여 견융(犬戎)에게 원수를 갚으려고 하시는데, 만약 군대를 해산하지 않으시면 필시 망국(亡國)의 근심이 있게 될 것입니다.”
선왕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수긍하였다. 선왕이 또 물었다.
“이 노래를 지은 자는 붉은 옷을 입은 아이라고 했는데, 그놈은 대체 어떤 놈일까?”
천문(天文)을 관장하는 태사(太史) 백양부(伯陽父)가 아뢰었다.
“길거리에 떠도는 근거 없는 말을 요언(謠言)이라 합니다. 하늘이 군주를 경계할 때에 형혹성(熒惑星)이 어린아이로 변신하여 요언을 짓고 아이들에게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것을 동요(童謠)라고 합니다. 작게는 한 사람의 길흉을 말하기도 하고, 크게는 국가의 흥망에 관계되기도 합니다. 형혹성은 화성(火星)이므로 색깔이 붉습니다. 오늘의 망국의 동요는 하늘이 왕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중국 역사에는 이런 동요들이 많이 등장한다. 당시의 형세나 여론을 반영하여 사람들이 왕을 경계하기 위해 지어낸 것들도 있고, 일을 꾸미는 자들이 의도적으로 지어낸 것들도 있으며, 일의 결과를 놓고서 훗날에 지어낸 것들도 있다. 국가의 흥망과 관련하여 미래를 예언하는 것을 도참(圖讖)사상이라 하고, 그런 말을 참언(讖言)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역사에도 많이 등장한다.
‘형혹(熒惑)’이란 말은 정신이 어수선하고 의혹한다는 뜻이므로, ‘형혹성’이란 말 자체가 이미 불길함을 나타낸다. 군주가 예법을 잃으면 하늘이 형혹성을 통해서 징벌하며, 형혹성이 출현하면 전쟁이 일어난다고 한다. 오행설(五行說)에 따르면 형혹성은 오방(五方) 중에 남방을 상징하고 불에 속한다고 한다.
특정한 별이나 별자리를 가지고 미래의 일을 점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많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도 일부 지속되고 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오행(五行)’이란 만물의 근원이 되는 다섯 가지 물질 즉 ‘火·水·木·金·土’를 말하는데, 이를 근거로 하여 길흉을 점치는 것이 오행설이다. 음양설과 합해서 음양오행설이라고 하며, 옛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시 터무니없는 미신이다.]
선왕이 말했다.
“짐이 이제 강융의 죄를 사면하고, 태원의 군대를 해산하며, 무기고에 있는 활과 화살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라 안에서 활과 화살을 만들거나 팔지 못하게 명을 내리면, 그 재앙을 면할 수 있겠소?”
[무기고에 있는 활과 화살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또 새로 만들거나 팔지 못하게 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떡할 건가? 영명한 군주였다고 하는 사람이 동요를 듣고서부터 이상해진다. 아니면 군주가 이상해졌기 때문에 동요가 등장하는 것일까?]
백양부가 대답했다.
“신이 천문을 보니, 그런 징조가 이미 있습니다. 하지만 재앙은 바깥의 궁시와는 상관없고 왕궁 내에 있는 것 같습니다. 필시 후세에 여주(女主)가 나라를 혼란하게 할 재앙입니다. 요언에서도 ‘달이 장차 떠오르면, 해는 장차 지리라.’라고 했습니다. 해는 양(陽)이므로 군주를 가리키고, 달은 음(陰)에 속하는 사람 즉 여자를 가리킵니다. 달이 뜨고 해가 진다는 것은 음기가 성하고 양기가 쇠한다는 뜻입니다. 여주가 정사에 간여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달을 음으로 보고 해를 양으로 보는 소위 ‘음양설’은 옛사람들이 지어낸 근거 없는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달빛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것이니, 달빛과 햇빛은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단지 빛의 강약이 다를 뿐이다. 그리고 여자는 음이고, 남자는 양이라는 생각도 터무니없는 것이다.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만들어진 왜곡된 생각일 뿐이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음양설에 크게 영향을 받았으며,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 경우도 많았다.]
선왕이 또 말했다.
“짐은 강후(姜后)에 의지하여 육궁(六宮)을 다스리고 있는데, 강후는 어진 덕을 지니고 있소. 그리고 궁빈(宮嬪)들도 모두 가려 뽑은 사람들인데, 여자로 인한 재앙이 어디서 온단 말이오?”
[‘강후’는 강씨 성을 가진 왕후를 가리킨다.]
백양부가 대답했다.
“요언에 ‘장차’라고 했으니, 목전의 일은 아닙니다. 게다가 ‘장차’라는 말은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왕께서 지금 덕을 닦음으로써 재앙을 물리치시면, 흉한 일도 절로 길한 일로 바뀔 것입니다. 활과 화살을 굳이 불태우지 않아도 됩니다.”
선왕은 대신들의 말을 듣고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별로 즐겁지 않은 기분으로 조회를 마치고 내궁으로 돌아갔다.
강후가 선왕을 영접하여 좌정한 다음, 선왕은 대신들의 말을 강후에게 자세히 얘기했다. 그러자 강후가 말했다.
“궁중에 이상한 일이 하나 있어, 마침 아뢰려던 참입니다.”
선왕이 물었다.
“무슨 이상한 일이 있었소?”
“선왕(先王)을 모시던 늙은 궁녀가 있는데, 나이가 오십이 넘었습니다. 선왕 때 임신을 했는데, 40여 년이 지난 어젯밤에 여자아이를 출산했습니다.”
선왕은 크게 놀라며 물었다.
“그 여자아이는 어디 있소?”
강후가 말했다.
“첩이 생각하기에, 아무래도 상서롭지 못한 아이인 것 같아서 돗자리에 싸서 20리 밖의 청수하(清水河)에 내다버리게 하였습니다.”
[옛 이야기에 아이를 강에 버리는 경우가 많다. 왜 하필이면 강일까? 강물은 흘러가는 것이므로 운명에 맡긴다는 의미가 있다. 반드시 죽이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냥 버리지 않고 물에 뜰 수 있는 돗자리에 싸서 버리는 것이다.]
선왕은 즉시 그 늙은 궁녀를 내궁으로 불러 임신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늙은 궁녀가 무릎을 꿇고 대답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하(夏)나라 걸왕(桀王) 말년에 포성(褒城)에 신인(神人)이 있었는데, 그 신인이 두 마리 용으로 변하여 궁궐 뜰에 내려왔다. 용이 입에서 침과 거품을 흘리면서 사람의 말로 걸왕에게 말했다.
“나는 포성의 두 임금이다.”
[신인이 용으로 변한 것이나, 용이 궁에 나타난 것이나, 모두 뜬금없다.]
걸왕은 두려워서 두 용을 죽이려고 생각하고 태사에게 점을 치게 했는데, 점괘가 불길하다고 나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쫓아버리면 어떨까 생각하고 다시 점을 치게 했는데, 또 불길하다고 점괘가 나왔다. 태사가 아뢰었다.
“신인이 하강하셨으니, 필시 경사가 있을 조짐입니다. 왕께서는 그 거품을 받아 보관하십시오. 거품은 용의 정기(精氣)이니, 보관해 두면 필시 복을 얻을 것입니다.”
걸왕은 태사에게 다시 점을 쳐 보게 했더니, 크게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
[점괘도 터무니없다.]
걸왕은 예물을 차려놓고 용 앞에 제사를 지내고, 황금 쟁반에 용의 침과 거품을 받아 붉은 궤 속에 보관해 두었다. 홀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면서 두 용은 날아가 버렸다. 걸왕은 궤를 창고에 보관하게 하였다.
걸왕 때 하나라가 망하고, 뒤를 이은 은나라가 28대 644년을 지나 주나라가 되었다. 주나라도 또 3백 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아무도 그 궤를 열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선왕인 여왕(厲王) 말년에 궤에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창고를 관리하던 관원이 여왕에게 그 일을 아뢰자, 여왕이 물었다.
“궤 속에 무엇이 들었느냐?”
관원이 장부를 가져와서 바쳤는데, 용의 거품을 담은 일이 기록되어 있었다. 여왕은 궤를 가져와 열어 보라고 하였다. 시신(侍臣)이 궤를 열어 황금쟁반을 두 손으로 받들어 왕에게 바쳤는데, 여왕이 쟁반을 받다가 손에서 놓쳐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쟁반에 담겼던 거품과 침이 바닥에 흘렀는데, 홀연 작은 도마뱀으로 변해 뜰을 이리저리 기어 다녔다. 내시들이 쫓아가자, 도마뱀은 곧장 내궁으로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그때 12살 먹은 어린 궁녀가 우연히 도마뱀이 지나간 자취를 발로 밟았는데, 마음속에 뭔가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그때부터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해 마치 임신한 것 같이 되었다. 여왕은 남편도 없이 임신한 것을 괴이하게 여겨 깊숙한 방에 궁녀를 가두었다.
그 후 40년이 지난 어젯밤에 복통이 일어나더니 여자아이를 낳았다. 내궁을 지키는 시자(侍者)들이 감히 숨길 수 없어 황후에게 아뢰었고, 왕후는 그런 괴물을 용납할 수 없어 시자들에게 명하여 강에 내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이 여자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또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얘기를 마친 궁녀가 아뢰었다.
“저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합니다!”
선왕이 말했다.
“이는 선조(先朝) 때의 일이니, 네가 무슨 상관있겠느냐?”
선왕은 늙은 궁녀를 물러가게 하고, 내궁을 지키는 시자들을 청수하로 보내 여자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보고 오게 하였다. 얼마 후 시자들이 돌아와 보고하였다.
“이미 흐르는 물에 떠내려갔습니다.”
선왕은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선왕은 태사 백양부를 불러 용의 거품에 관한 일을 얘기하고 말했다.
“그 여자아이가 강에 빠져 죽었는지, 점을 쳐 보시오. 그리고 요기(妖氣)가 소멸했는지 어떤지도 알아보시오.”
백양부가 점괘를 뽑아 보고 괘사(卦辭)를 바쳤다.
哭又笑 울다가 또 웃다가
笑又哭 웃다가 또 운다.
羊被鬼吞 양은 귀신에게 잡아먹히고
馬逢犬逐 말은 개를 만나 쫓긴다.
慎之慎之 삼가고 삼가라
檿弧箕箙 염호기복을.
* 춘추전국시대 지도
-https://m.blog.naver.com/yusim59/222877484597
첫댓글 후후껄껄 장편 역사 연재 열국지 제1회 출발 시작 축하 드림니다 흥망성쇠 역사 흥미 재미 기대 만발 입니다 세월 이기는 장사 없듯이 70넘으니 여기저기 고장 생겨 거동불편 으로 방바닥에 눕어 있는 처량한 신세인뎨 후후껄껄 볼꺼리 읽을꺼리 흥미꺼리 감사함니다
첫번째 손님 이십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게 잘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연재를 시작 하셨군여~
중국역사도 알고 내용도 즐겁고
지식도 늘어납니다
약속 했으니 지켜야지요
哭又笑
笑又哭
笑又笑
재밌어서
웃기만 합니다.
곡은 안하구요.^^
무조건 땡큐요 ㅎㅎ
열국지를 열독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어렴풋이라도 뭘 좀 알게 될 것 같습니다.
새 연재 개시에 축하 말씀 드립니다.
혹시 부족한 부분은 채워 주시고
재미있는 부록 부탁 드리옵니다
곡 성님~~~~~~~~!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넵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