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C컷] 시대를 앞서간 사진들은 어떻게 나왔나?
조인원 기자입력 2023. 7. 8. 08:01수정 2023. 7. 8. 09:31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 전시회 ‘Dear Folks’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Willam Klein)이 촬영한 사진 'Gun1, New York’. 파리 퐁피두센터 회고전(2005)의 도록 표지와 포스터로 사용한 페인티드 콘택트/ ⓒEstate of William Klein
총을 든 소년이 카메라를 향해 위협한다. 1954년에 미국 뉴욕에서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이 촬영한 사진 ‘Gun1, New York’을 처음 보면 누구든 깜짝 놀란다. 아무리 미국에 총이 흔하다지만 이런 애들까지 강도가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필름을 그대로 프린트한 밀착인화(contact sheet)의 다음 컷을 보면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소년이 든 총은 장난감 총이었고, 험상궂게 인상 쓴 소년의 표정은 장난이었다. 이렇게 사진은 종종 오해를 부른다. 사진에 대한 오해는 한편으로 상상으로 이끌기도 한다.
〈Gun 1(1954), 퐁피두센터에서의 회고전(2005)의 도록 표지와 포스터로 사용한 페인티드 콘택트〉 2005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은 이렇게 흔들리는 미국 뉴욕 거리의 거친 사진들만 찍지 않았다. 기자가 아는 클라인의 사진들은 사회적인 다큐멘터리보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패션 사진들이 더 많다.
1950년대 초 뉴욕을 자유롭고 거친 앵글로 기록한 사진가 클라인은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혁신적인 패션 사진과 추상화가와 설치미술가로, 그리고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에 관한 다큐 영화(Muhamad Ali: The Greatest(1969)나 미국 사회를 풍자한 극영화 ‘미스터 프리덤(1968)’ 등 수십편의 영화도 감독했다.
Antonia + Simone + Barbershop, New York〉 for Vogue. 1962 ⓒEstate of William Klein
작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96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윌리엄 클라인은 다큐사진과 패션사진, 회화, 설치미술, 영화, TV 등의 분야를 오가면서 활동했던 예술가였다. 남들은 한 가지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전방위 예술을 클라인은 어떻게 이뤄냈을까?
1926년 미국 뉴욕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 태어난 클라인은 고등학교를 14세에 조기 졸업하고 뉴욕시립대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에 입대해서 8년간 프랑스와 독일 등에서 근무했다. 제대를 하고 파리 소르본대학에 들어간 그는 당시 추상화로 유명한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의 작업실에서 건축가들과 교류하면서 배운 키네틱아트로 ‘회전 패널(rotating panel)’을 제작해서 개인전까지 연다.
C컷/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전시된 윌리엄 클라인(Willam Klein)의 회전 패널을 재현했다. /조인원 기자
이때 회전 패널을 돌리면서 기록용으로 사진을 찍는데, 움직이는 회전판이 만드는 포토그램 이미지들이 그가 사진을 처음 찍는 계기가 되었다. 1952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었던 클라인의 두 번째 전시회를 본 당시 패션잡지 <보그(Vogue)>의 아트디렉터였던 알렉산더 리버만(A. Liberman)은 클라인의 포토그램을 보면서 예술적 잠재력을 발견하고 그에게 뉴욕으로 와서 사진을 찍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한다.
제안을 받아들여 8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클라인에게 뉴욕은 낯선 도시였다. 클라인은 렌즈 두 개와 중고 카메라 하나로 3년간 아름답고 활기찬 뉴욕을 자기만의 시각으로 찍는다.
C컷/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Willam Klein) 사진전 /조인원 기자
당시를 그는 이렇게 회고했다. “기존의 사진 구도를 무시하고 내 방식대로 재구성했다. 카메라를 야수처럼 흔들며 혹사 시켰다. 내가 보기에 정갈하고 정교한 기술은 뉴욕에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보그 같은 세련된 패션 잡지나 출판사들이 (당시만 해도) 이런 엉뚱한 사진을 받아줄 리 없었다. 사진가의 3년간의 땀의 결과는 한 장도 잡지에 실리지 못했고, 다른 출판사들에도 출간을 모두 퇴짜 맞는다. 대신 작업했던 사진들을 파리로 가져간 클라인은 자비로 사진집을 제작했다.
결국 이 책은 그해 유럽 최고의 사진집을 뽑는 ‘나다르상’을 받으며 윌리엄 클라인은 사진계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을 현대 다큐멘터리 사진의 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C컷/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Willam Klein) 사진전 /조인원 기자
시대를 앞서간 그의 사진들은 어떻게 나왔나? 1950년대 당시 미국 사진계는 알프레드 스티글리츠나 안셀 아담스 같은 엄격한 구도와 조형미를 추구했던 사진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반면에 클라인은 정규 사진 교육을 배우지 않은 대신에 끊임없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추상화에서 키네틱아트로, 다큐사진에서 패션사진으로, 다큐영화에서 풍자적인 극영화로 새로운 분야로 작품에서 파격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윌리엄 클라인의 사진과 그림, 자료를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요즘 서울 종로구 뮤지엄한미 삼청에서 열리고 있다. 정식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유롭게 찍었던 클라인의 1950년대 뉴욕과 파리, 밀라노, 도쿄, 상해에서 찍은 거리 사진들과 반대로 치밀하고 세련된 구성미가 돋보이는 60, 70년대 패션 사진들 그리고 초기에 찍은 조형적인 포토그램과 회전 패널, 아카이브, 영상 등 140여점이다.
사실 갤러리 벽이 아니라 잡지나 책을 위해 찍었던 다큐멘터리 사진들을 벽에 걸면 좀 밋밋하다. 하지만 이 전시는 사진 앨범이나 만화책을 보듯 사진들을 구성하고 배열해서 클라인 사진의 역동적인 모습을 읽어보도록 구성했다. 9월 17일까지 전시.
〈Antonia and mirrors, Paris〉 for Vogue> 1963 ⓒEstate of William Klein
사진가 윌리엄 클라인 셀피.〈Self Portrait, William Klein Studio, Paris〉1993 ⓒEstate of William Kl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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