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한강 릴레이 도보 후기<2>
<2024년 2월 3일>
◀ 신길역에서 동작역까지, 즉 샛강에서 반포천까지 한강 구간, 그리고 현충원 참배 ▶
두 번째 한강 릴레이 걷기<1>편에 이어, [심훈문학길] 이후의 사진 기록입니다.
한강대교에서 [현충로]로 올라와 [효사정(孝思亭)]으로 향한다.
건너편 용양봉저정 공원 언덕 위의 찻집, 개점하면 차 한잔하리라 했었는데 ~~~, 어쩌다보니 아직이다. 참, 할 게 많구나!
올림픽대로와 현충로 사이에 조성된 [심훈문학길]로 접어든다.
*** 이 길은 [동작충효길 3코스 한강나들길]이며 [역사공원길]이기도 하다.
심훈의 작품 소개
한강 조망, 노들섬과 한강대교.
좌측 뒤로는 동작대교
심훈의 일생, 심훈(1901. 9.~ 1936. 9)은 본명이 대섭, '훈(熏)'은 필명이다. 탄생지는 현재의 [흑석동 성당]. 생가터 표석만 있다.
*** 경성고보 동기로는 이범석(청산리전투), 박헌영(남로당), 윤극영(반달 작곡가)
시인 소설가 연극 영화 집필에서 감독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1936년 장티푸스로 사망.
건너편 노들섬, 금년에는 정조대왕 능행차 [배다리]를 설치하려나. 올림픽대로 노량대교 구간, 현재 왕복 10차선이다.
[학도의용병 현충비] 꽃다운 젊음이 무참히 쓰러진 전쟁의 참상, 참으로 가슴 아프다.
민족의 비극 6.25! 전쟁이 발발하자 훈련조차 제대로 받을 새도 없이 전장에 투입, 조국 수호를 위해 장렬히 산화,
심훈의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끈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로리까.
~~~.
[효사정] '효(孝)'의 상징. 노한(1376~1443)은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문신. 효사정은 1993년 신축, 그때 그 자리인지는 미지수.
현판은 노한의 17대손인 노태우 전대통령의 글씨.
[한강방어선 흑석동 전투지]
효사정에서 한강 수변으로 내려서면, 올림픽대로 노량대교 구간 아래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나란이 이어진다.
동작대교를 코앞에 두고 마지막 휴식
[동작대교] 가까운 쪽은 노을카페, 건너편은 아마도 구름카페이었지. 우측엔 반포천이 한강으로 흘러든다.
<<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
동작진, 즉 동재기 나루터 표석은 반포천에서 동작역 2번출구로 올라가는 구름다리 계단 모퉁이에 있었으나
지금은 동작역 4번출구 구름다리 계단을 내려서면 만나게 되는 [현충로]의 현충원 울타리 벽면 앞으로 옮겼다.
국립서울현충원 정문.
입장하기 전, 이 코르텐 강판 앞에 잠시 서면 나도 모르게 숙연해진다. "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좌측은 군인(육 해 공), 경찰, 애국지사, 국가유공자를 상징하는 [충성분수대]. 우측은 종합민원실.
[만남의 집]
만남의 집에서 점심식사.
현충탑 참배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충의와 위훈을 상징하는 [현충탑], 높이는 31m, 탑 좌우의 석벽은 제상 뒤편에 쳐놓는 병풍을 상징
현충탑으로 향해 가면서 우측엔 국토방위와 자유수호를 위해 용맹을 떨친 군인, 경찰 등의 용사들을 상징하는 [호국영웅 5인상]
현충탑 좌측에는 국권회복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순국선열을 상징하는 [애국투사 5인상]
방명록 작성
채명신 장군 묘소 가는 길, [육탄십용사 충혼비]
[채명신 묘소 참배]
"그대들 여기 있기에 조국이 있다." Because you soldiers rest here, our country stands tall with pride.
[충성거북상(忠誠龜像)] 개인적으로 엄청 좋아하는 한 글자. "忠",
3년간 복무했던 육군기갑학교 경례 구호는 '충성'이었는데, 당시는 우렁차게 "충 ~!"으로 그냥 그걸로 끝이었다.
이 거북상은 충남 조치원 어느 누각에 있던 것을 일제 때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하여 성동구 행당동으로 옮겨진 후,
동화물산(주) 김봉록 씨에 의해 1958년 국립묘지로 옮겼다.
1972년 거북등에 시계탑을 건립하였던 것을 1990년 서경보 스님의 글씨로 '忠'자를 새긴 무궁화 꽃잎 모양의 자연석을 설치.
[창빈 안씨] 묘소 참배, 입구에 있는 [신도비].
*** 창빈 안씨는 선조의 할머니로 선조에 대한 각자 생각이 매우 달라 '호불호'가 갈리기도 한다.
창빈 안씨(1499~1549)는 1507년 궁녀로 입궁하여, 1520년 상궁, 1529년 중종의 후궁으로 숙원, 1540년 숙용(종3품)이 되었으며
1949년 세상을 떠났다. 중종 이후 인종, 명종이 모두 후사가 없어, 적자가 아닌 중종의 서손(庶孫) 하성군이 선조로 즉위하였으며,
선조 10년(1557년)에 친할머니 안씨는 정1품 창빈(昌嬪)으로 추봉되었다.
*** 조선의 왕위 계승은 적장자 승계원칙이나, 적장자는 고사하고 적자 승계도 어려울 때가 매우 많았다.
멀지않아 목련이 피겠지.
이승만 대통령 내외의 합장 봉분, 묘비와 헌시비,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1875 ~ 1965),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 리 여사(1900 ~ 1992)
박정희 대통령(좌측)과 육영수 영부인 봉분, 묘비와 기념비, 육영수 여사 헌시비가 자리잡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1917 ~ 1979), 영부인 육영수 여사(1925 ~ 1974)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좋아하셨던 목련, 지난번 우리가 함께 다녀온 육영수 여사의 생가에서 오래전에 옮겨왔다고 한다.
방명록 작성
두 번째 한강 릴레이 걷기 마무리.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만나요!"
2024년 갑진년, 설 명절 즐겁게 보내시고,
2월 3주차 토요일 [서울 정릉] 탐방에 많은 참가 있으시기 부탁드리며,
2월 17일 10시, 우이신설경전철 [정릉역]에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번에 창빈 안씨의 묘소는 첨 갔어요
이번기회로 여러군데가서 참배하고 뜻깊은
도보길이었습니다.
청파님의 세세한 설명과 곁들어 많은
사진들을 접하게돼서 감사드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러셨군요.
1550년 창빈 안씨 묘가 조성되고,
400여년 후 1956년 국군묘지가 조성되었으니,
원래 주인은 창빈 안씨.
그러다보니 창빈안씨 묘의 원찰이었던 사찰(당시는 갈궁사, 현재 호국지장사)이 현충원 경내에 있어
혹자는 현충원에 뜬금없이 왠 '절'이냐 하기도 하지요.
암튼 함께 걷는 길,
늘 도와주시고 고맙습니다.
설 명절 즐겁게 보내세요. ^^
완벽한 설명과 사진이 있는 후기에 감사합니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청파님의 후기는 우동길의 품격을 높여 주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갑진날 설 명절 잘 쇠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