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한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지난달 아름다운 '쌍샘자연교회' 이야기를 쓸 때, 교회는 청주 달동네에서 시작해서 낭성면으로 옮겨온 것인데, 그만 다른 도시 이름을 썼다. 남의 고향을 도둑질한 듯 아찔했다. 뒤늦게 정정하려고 했지만 원고는 이미 인쇄에 들어간 후였다. 부끄럽고 미안해서 혼자 끌탕을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는 '청주'라는 도시가 자주 눈에 띠고 귀에 들어온다. TV를 보다가도 아래 화면으로 전국주요도시의 날씨가 지나갈 때면 '청주'가 눈에 딱 걸린다. 무관하던 도시가 정물 같은 지도에서 일어나서 이름처럼 맑은 고을(淸州)이 되어 다가오는 이 신비! 문득, 이 실수조차 관심을 갖게 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듯해 감사하다.
이제 짧은 여행의 두 번째, '보은 예수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보나콤' 이야기를 해야겠다. 라틴어로 '좋은'을 뜻하는 '보나'와 공동체를 뜻하는 '콤'이 어우러져 말 그대로 '좋은 공동체'가 된다. 백지상태로 '살림나들이'에 동행한 나였지만, 열정과 성실이 담긴 안내를 받고 돌아올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이곳에는 공동체 밖의 세상을 향해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솔직히 나는 "우리끼리만"을 강조하는 신앙공동체를 경계하는 편이다. 일종의 트라우마 때문인지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감람나무 박장로'에 대한 무성한 소문과 열기가 치솟고 있을 때 어머니의 간호사 동료 한 분이 남매를 데리고 '신앙촌'으로 들어갔다. 한 때의 열기로 그치기는 했지만 학교에서는 '전도관 패거리'들이 거기 들지 않는 아이들을 고약한 방식으로 따돌리며 세를 불려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여름, 옛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소사에 간 일이 있다. 택시 기사도 잘 모르는 동네가 된 그곳은 폐광촌 같이 쓸쓸해 보였다.
안타까운 일은 또 있다. 1992년, 어느 날부터인가 동네 상가 앞에 움직이지 않는 봉고차 한 대가 '종말과 휴거' 날짜가 적힌 플래카드를 붙여놓고 있었다. 정작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날 이후로 우리 동네 친절하기로 소문난 쌀집 부부와 인심 좋은 생선가게 아저씨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사는 날 끝까지 주님의 나라를 확장해가는 일이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는 삶이라면, 초대교회를 닮은 '보나콤'은 그런 삶을 지향하고 있었다. 지금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분명해 보였다. 그 8년 전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성경공부모임이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농촌사역을 하면서 농촌선교에 대한 비전과 사명을 갖게 되었고, 같은 뜻을 가진 몇 사람이 "기도와 고민 끝에" 다니던 직장과 교회를 사임하고 보은에서도 후미진 마을 대원리로 찾아들어와 땅을 빌려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가 1998년이었다. "마을어른들은 '젊은 사람들이 제 정신이 아니다. 왜 돈도 안 되는 농사를 지으려 하느냐'며 타박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것이다"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믿으며 농사를 지었다. 그리고 살 집을 지었다. 그동안 실수와 실패, 시행착오도 무수히 겪었지만, 가장 큰 위기는 공동체 정체성에 대하 노선갈등으로 공동체가 무너질 뻔한 일이었다. 이틀 동안 대토론회를 갖기로 하고 먹고 싸우기를 반복하며 지쳐가던 마지막 저녁, "성령님께서 강하게 임하시면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이제 식구들은 안다. '보나콤'은 하나님이 시작하셨고, 하나님의 소망과 뜻을 이루는 도구라는 것을.
우리가 짧은 시간에 만난 '보나콤'은 "기독공동체, 가정공동체, 농촌공동체, 마을공동체, 선교공동체"를 표방하며 "떡과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목표로 조용하면서도 역동적으로 살고 있었다. 우리는 친환경적인 닭장에서 좋은 사료를 먹으며 자라는 닭들을 보고, 간단한 원리로 쉽게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작업장도 보았다. 알고 보니 '보나콤'의 농사와 양계는 처음부터 "복음 들고 가난한 선교지로 떠난 선교사들에게 떡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을 나누는 일"이고, 풍력발전은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처럼 "어둠을 밝히는 빛을 나누는 일"이었다.
좋은 것으로 나누는 일-그래서 지금은 '양계스쿨'을 열어 선교사나 선교지망생들, 미자립 농촌교회 목회자들, 귀농을 꿈꾸는 비기독교인들을 돕고 있다. '풍력학교"에서는 오지로 가는 선교사에게 발전기술을 가르쳐보내는 일을 한다. '보나콤'이 들어온 이 두메마을은 이제 '녹색농촌체험마을'이 되어 있다.
보나팜(농장)에서 사온 건강한 계란을 먹고 청국장을 나눠먹는 동안 나의 기도가 늘었다. 날마다 깨어서 사는 일이 너무나 어려운 시절에, 삶으로 사도행전을 쓰는 이 공동체가 초심을 잃지 않고 선한 열매를 계속 맺어가도록…….
(주부편지 7월호 '일상의 길목에서' 코너에 실은 글입니다.)
첫댓글 사진은 인간님이 생명나들이에 올린 것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자료를 지우다가 잘못해 통째로 날아갔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