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 관계없이 개신교회는 스스로 교인들을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개신교회도 그 규몽에 따라 큰교회와 작은교회등 양국화가 심합니다
요즈음 사람들은 교회에서 봉사하기보다는 대접받기를 더 원합니다
역심히 헌신하기 보다는 연륜에 따라 상위직분을 받기를 원합니다
개신교는 특히 장로교에서 직분이 뚜렷합니다
장로 권사 집사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직분을 받아야만 어떤 단체장이나
역할을 할수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노력하지만 천주교회나 개신교회가 다들 뜻대로
되기란 어려운일이지요
그런데 이에 대한 대처방안이 아주 다르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것이 좋은 방법이고 아니고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천주교회는 요즘 들어서 이런 문제를 성당안이 되든 아니면 야외행사가 되든
신앙외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눈에 많이 띈다는 것입니다
일부 소식에 의하면 개신교봉사자들이나 직분자들도 비공식적인
모임에 술도 마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이 사실과 다릅니다
개신교회 작은교회에서는 미자립교회가 많습니다
미자립교회란 그교회에서 예배떄 들어오는 봉헌금의 수입으로
교회운영비도 안나오는 교회를 말하는데요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려움속에서 놀랍게 그 규모가 크든 어려움에 속하는 작은 교회에도
평일에 새벽기도는 매일 드린다는 것입니다
새벽 5시에 드리는 교회가 많습니다
새벽에 어떤일이 있어서 골목을 빠져나가면 그골목안의 교회에는
기도소리를 들을수가 있지요
그들도 교회내에서 가끔 노래방기계를 놓고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간혹 가요나 유행가를 부르기도 하지만 대부분 성가나 복음성가를 부릅니다
그들은 자체 식당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들처럼 교우 일부사람만이 봉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신교는 천주교에 배해서 교우수에 비해 그 규모는 10배가 됩니다
즉 개신교 신자수가 5백명이라면 아마도 천주교회5천명의 능력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5천명의 천주교인이 있는 성당이라도 실제로 봉사하는 이는
100명수준을 넘지 못하지만 5백명의 개신교에서는 봉사자수가 100명이 넘습니다
그들이 가능한것중에는 직분을 받기 떄문이라는 말도 있지만
다들 성서공부나 기도모임을 열심히 하고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놀랍게도 대부분의 신도들이 성서귀절을 암송하기도 합니다
그들은퀴즈를 통해서 선물도 주기도 하고
그리고 제자교육이라고 해서 경험이 많은 평신도가 초보신자들을 1:1이나
아니면 소모임에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들을 돕기 위한 많은 묵상책들이 나와있고요
이들은 실제적으로 성서를 읽고 묵살할수있도록 책이 짜여있지요
매달 월간지 형채로 나오는데요 가격도 3천원에서 5천원정도수준입니다
저는 10여년전에 성서주해서를 볼려고 성서주해서가 달린 책을 구입했어요
가격이 10만원이어서 부담이 되었지만 사실 가격보다는 그 내용수준이 너무 빈약
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구교구에서 발간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서울교구에서는 한창 구역모임이 잘될때에는 구역마다 무료로 구역소식과 구역묵상자료가
든 잡지를 배포한것입니다 물론 이를 배포한다고 해서 다들 이런 묵상자료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이들로 훈련된 사람들이 필요한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성당에서 적지 않는 금액으로 교구등지에서 교육이나 수련을
시킨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이들은 교육을 받을때 뿐이고요
대부분은 그 교육을 활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련 소모임에서 이들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전달교육을 하게 한다면
적은 비용으로 더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받은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늘 성당안에서나 성당밖에서 긴장하고
살아갈수만은 없을것입니다
그렇다고 약간의 여흥은 필요하지만 이들을 세속적인 것으로 채울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아름대학에서 내부적으로 전문강사수준의 봉사자가 있어서
좋은데요 컵을 이용하는것이나 막간의 사간을 이용하는 율동등은 아름대학에서
외부의 전문강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호감이 가는 좋은일이라 여겨집니다
요즈음에는 퍼실리테이션이나 여러가지 교육방법이나 의사결정방법이 제공되어서
우릳 약간만 관심을 자겨본다면 얼마든지 우리신앙과 관련해서 활용이 가능할것입니다
우리는 떄로는 좋은 의미에서 야외행사를 가지게됩니다
그곳에서 여러사람들이 만나는데요 간혹 그럴수는 있을것입니다
자신들과 특별히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중의 하나일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끼리끼리의 문화는 우리공동체를 성장시키는데 장애요소가 됩니다
누가 우스개소리로 말합니다
'사소한 일로 목숨 걸지 맙시다'
즉 우리는 여러단체활동이나 성당내에서난 야외활동중에서
아주 무거운 교리논쟁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것 그러니까 이들을 궂이
안해도 되는것들을 표를 내면서 하는 일로 사람들은 마음을 다치기도 합니다
오늘날 성당에서도 본격적으로 대화법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ME나 꾸르실요가 거기에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은 주말과정을 마친이들이 모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았지만 미국의 공개사이트를 통해서 그 정보를 얻지만
그리고 이런 교육은 우리나라와 미국과 차이가 있는지도 잘 알수가 없지만
새로운 대화법인데요 가장 근간이 된다는 것은 대표부부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말과정은 사실상 소개수준인데 이들이 이어서 후속프로그램이 뭔지는 잘 알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성당에는개신교회와 달리 평신도내에서는 계급의 직분이 없다는 것인데요
사실 가만히 들여다 보면 좋은 역할과 그렇지 않는 역할이 구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신적인 역할을 하는 일에는 인기가 없고 지원자도 적다는 것입니다
매주 한차례 저녁 성서공부를 하지만
이또한 제한적이고 사실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는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 주요
참석자이고 기도모이은 거의 이루워지지 않고 있고요
기도는 단지 책자에 적힌대로 읽어가는 정도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기도서의 가도도 필요하지만 자신의 솔직한 고백이 든 기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달 성모성월을 맞이해서 미사전에 묵주를 바치는 것도 좋은일이라 여깁니다
이는 묵상기도이고 통성기도라는 것입니다
레지오회합에 익숙한 사람들이 묵주기도의 패턴입니다
이 기도안에는 지향도 자신이 원하는 묵상도 들어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발음을 정확히 하고 정확한 절차도 중요하지요
그런데 성모신심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다들 한가지만 집중하기에
성모님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이해될수밖에 없고 성모님과 함꼐하는
기도로서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거나 아니면 공동체내의 소통을 기원하는 등의
역할은 점차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것으로 미사전의 침묵시간이 방해받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어느것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든지 잘 따라오고 열시밓 하십니다
다만 아마도 대부분이 여기에 속하겠지만
미사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분이나 초신자들에게는 이런 아주 사소한것도
그들을 온통 흔들수가 있기에 우리는 현명하게 잘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오로서간을 보면 바오로는 자신이 믿음이 약한자앞에서는 그 자신도
믿음이 약한 자처럼 행동한다고 합니다
측히 그때 교회가 이방신에게 바친 예물을 먹어도 되느냐에 관심이 솔렸나
봅니다 여기에 대한 여러생각이 나왔는 모양이고요
그런데 현명하게 사도 바오로는 대처합니다
이방신에게 마치는 예물은 먹어도 아무상관이 없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약한 사람들이 이를 주저할때에는 먹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의식중에 믿음이 약한 사람을 흔들어놓고 나서 그사람의 문제라고
치부해서는 안될것입니다 바오로서간을 보면 지도자를 뽑느데요
반드시 가져야 할 요건중에 평판이 좋을것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서로가 필요에 의해서 만나기만 한다면 너무 건조합니다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간절히 필요하는것을 상대방에게 준다면 그도 이를 중히 여길것입니다
아멘
사족 : 어떤 분은 자신이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느님이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모세가 신구역에 걸쳐서 두루 영향력이 있는 이물같습니다
믿음의 아버지라는 아브라함이 계시지만 그분은 성막에서 하느님과 개화하기도 하였지요
그때에는 하느님을 만나는것은 죽음을 의미할때인데도 말입니다
성서는 이를 몇십페이지를 할애하고 말하고 있지만
모세는 이를 위해서 40년이나 전생야 120년을 다 받쳐서 이룬것이라 여겨집니다
저는 신명기 끝장면에 모세가 하느님께서 가나안땅을 바라보기만 해달라고 하였지만
하느님은 묵살했고 그곳에서 모세는 죽었다고 하면서 아무도 그가 어디에 묻쳤는지는
모른다고 적고 있는데요 제가듣기로는 히브리어 원서에는
'하느님이 모세를 직접 묻었다'라고 기록한다고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은 유대관습에 의해서도 아무도모른다는 의미인데
저는 한동안 이를 두고 하느님이 모세를 버린것으로이해가 되었지만
요즈음 하느님이 모세를 특별히 그분안에 두었다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마음안에 모시는 분으로 되시기를 빌어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