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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산 마곡사
어 디 : 공주 태화산 마곡사
뭐하러 : 국민학교 모임
누구랑 : 국민학교 동창들
언 재 : 2010 . 4. 18 일요일
어제 식장산에 갔었다 세천에서 산내 3거리까지 아주 산행하기 좋은 코스다
혼자 간 관계로
막걸리 한병 가지고가 반은 혼자 마시고 반은 모르는 분을 만나
점심 먹으며 반병 마시고
대전역을 거처
집으로 왔다
오후에 일이있어 어디좀 갔다올데가 있더 저녁을 먹고 집에 있는데
청주 사는 친구넘 한태 전화가 온다
소주나 한잔하자 그래 10 정도에 만나
소주 몇잔하며 치현이 한태 전화을 하니 내일
그이름도 거룩한
수덕사에 간단다
9.30분에 출발 한다는 걸 10분 땡겨 9.20 분약속
아침에 일어나 8.50 분에 전화을 한다 그래 온단다
오늘 9.20 분 우리집에서 만나 공주로 간다 터미널 까지는 아무래도 2-3 분정도 늦을 것같다
공주터미널에서
그냥 마곡사로 들어간다 마곡사 도착하니
먼저 출발한 친구들이 아직 오질 않았다
우린 공주식당에 들어가 아침부터 공주 밤 막걸리 비빕밥 도토리묵을
먹으며 친구들을 기다린다
기두린다
10 . 24 분 마곡사 주차장 도착
마곡사 주차장은 주차 요금음 받지 않는다 화장실이
실실 웃기며 서있다 우산을 쓰고 있는 것 처럼 아니면 버섯이 피다 만 것인가
아무튼 관계없이
공주에서 먼저 출발한 친구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치현이 기필토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막걸리을 한장 하고 가야한단다
요즘 기고 만장한 한가들이다
우린 공주 식당에서 밤막걸리 도토리묵 비빕밥을 먹는다
조금 있다가 치구들은 오고
자 태화산으로 출발
10. 45 분 마곡사 일주문 도착
부처님 법문을 하는데 대중들의 모습이 삼의 麻대 같다고 하여 마곡사
이란다
막곡사 배치
마곡사 유래
태화산 기슭 맑은 계곡을 끼고 위치한 마곡사는 조계종(曹溪宗)의 대전 ․ 충남지역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이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는 말이 전해질 만큼 봄(春)의 경치가 뛰어나다.
백제 의자왕 3년(643년) 자장율사(慈裝律師)가 창건하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 보조국사가 중건하였다.
절의 이름은 신라보철화상(補綴和尙)이 법문(法問)을 열때 모인 대중(大衆)이 삼밭(麻田)의 삼대(麻)같이 많다하여
마곡사(麻谷寺)라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가람의 배치는
태극도형
으로 사찰을 감싸고 흐르는 태화천(泰華川)을 중심으로 오층석탑 및 대광보전과 대웅보전 등 부처님의 공간을 상징하며 하천
남쪽으로는 영산전 및 매화당 수선사 등을 배치하여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배치하였고, 이를 극락교로 연결하여 스님들의 수행 목적을 일깨우고 있다.
주위에 영은암, 대원암, 은적암, 백련암, 청련암, 부용암, 북가섭암 등의 부속암자가 산재해 있다.
마곡사는 경내의 모든 불전(대웅보전 보물 제801호, 대광보전 보물 제802호, 영산전 보물 제800호, 5층석탑 보물 제799호)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문화적 가치와 역사적 위치가 매우 크다.
세조의 친필로 알려진 영산전 현판, 표암 강세황의 대광보전 현판, 송하 조윤형이 쓴 심검당의 현판,
해강 김규진의 마곡사 현판 등 명필들의 흔적이 살아 있으며 많은 유물을 간직한 천년의 고찰이다.
절을 휘감아 흐르는 계곡과 무성한 소나무 숲, 벚나무가 잘 어우러진 마곡사는 선경 속에 불심을 닦아 참된 「나」를 깨닫는 기도도량이다.
마곡사의 절 이름의 연원에 대해서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청양 장곡사와 마곡사 그리고 지금은 없어져버린 예산 안곡사의 셋을 이 지역에서는 삼곡사라고 불렀다
하니 ‘긴골’, ‘삼골’이란 우리말
이름을 한자로 ‘장곡(長谷)’, ‘마곡(麻谷)’으로 단순히 바꾼 것이
이 절의 이름의 연원이다.”라는 설과 “성주산문의 개창자인 낭혜(朗慧) 무염(無染)이 중국 마곡사에서 법을 이어 왔다고 하여 마곡이라는
별칭이 생기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마곡사 배치도
북측의 대지에는 대광보전을 중심으로 그 뒤의 대웅보전과 앞의 오층석탑이 남북으로 중심축을 이루며
그 서쪽의 대지에는 응진전이, 동편의 대지에는 심검당을 비롯, 요사와 영각, 그리고 대웅보전의 동편에 대향각이 자리잡고 있다.
계류(溪流)를 사이에 두고 극락교로 연결되는
남쪽 대지에는 대웅보전, 대광보전, 오층석탑으로 이어지는 축이 극락교를 통해 천왕문, 해탈문으로 교묘하게 연결되어 있고 천왕문의
서편으로 계단을 오르면 명부전이 있다.
1920 년대 마곡사
막곡사 일주문 잘정비된 도올위에 일주문이 있다
그냥 상징적 건물이 되어버린
일주문
이곳도 어김없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
진정 제일 많은것을 소유 하신분이 법정스님이 아닌가
이 세상을 다 한몸에 품고
저 하늘을 도 아주작은 가슴으로 다
혼자
본이만 가지시고 누구도 못가지게
영원히 가저 가시고 말이다
태화산 등산로
영은암 입구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으니 옛날에 보지 못하던
주차장이 나오고 차들이 있다 무슨
좋은 빽이라도 있나 우린 한참을 걸어왔는데 이곳까지 차을 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부처님 빽인가
어디로 가란 말인가
우린 망설임도 없이 등산로로 향한다
아주 멋진 소나가 저기 서있고
소나무 아래 진달래가 반긴다
좀 경사가 있는 계단으로 이루어진 산등성이을 산등성이을 조금 오르니
태화산 산허리는
우리을 반기고
쭉쭉빵빵 소나무는 솔잎의 솔향을 은은히 풍기고
소나무가 거의 70-80 %을 차지한다
은은한 솔향은 천년고찰 마곡사의 정취와 함께
이 계곡을 감싼다
바람이 분다 저 계곡에서
막걸리 한잔 200 냥 이람니다
이정표는 대웅보전만 보이고
산사의 조용함과
번내의 산속에서 께어 나듯이 여기 까지 와서 막걸리을 한잔 마신다
인것이
인간사 인생사 인가
조용히 들려오는 목탁 소리에 ...
태화산 등산로
우리가 올라온 곳은 영은암 에서 갈가진 곳
역시 이곳도 막걸리 장터나 이넘의 산하 어디에 가도
막걸리 장터
요즘 인기가 있는 막걸리 분위게
어울리질 않는다
우리가 부끄럽지 않다는 것의 제일 쉬운 기준이 자식하고 함께 할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을 보던 티비을 보던
야한 농담을 하던 술을 마시던
백련암으로 하산 하면서
오늘 함께한 국민하교 친구들
누구 키가 한번 큰지 재봐라 도토리 키재기
고만 고만한 것들
나라고 안낄수는 없지 요
자 이제 백범 김구 선생이 살았다는 백련함으로 하산이다
백련암 하산중
백련암 하산길은 역시 소나무가 많다
백련암 마애블로 가는 곳
연등이 초파일을 알린다 사월초파일
마애블로 간다 난
마곡사 마애블인가 아니면 백련암 마애블인가
백련암 내려 가는길
연꽃을 보니 마음이 설래인다
한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는 디
재수 |
재수 정희 |
백련암에서
꽃보다 아름다운 그녀들 의
함성
아우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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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 에서
정희 용문 웃기는
정희 앗 하늘이 보인다 |
양종 용문 정희 |
백련암
바람소리 풍경소리는
떵그렁 거리고 이놈의 시간은 배속에서 점심시간을 알린다
가련한
인간사 들
추녀는 추녀을 떠받들고 힘겹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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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암의 마케이팅이다
깁구 선생 은거지라
뭐가 보이는가 아 하늘이 보입니다
거기서 무엇을 하지요
바람을 갈라 쏘이지요 어서와요
백련암 전경
백련암 꽃
내려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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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백련암 이정표
올챙이 새끼도 보이고
아 뭐 안보입니까
요
아 미나리 새끼도 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겨
마곡사 보도탑
마곡사 해탈문
마곡사의 정문으로서
이 문을 지나면 속세(俗世)를 벗어나 불교 세계(法界) 들어가게 되며 해탈을 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고 하여 해탈문이라 한다.
중앙 통로 양편에 금강역사상(金剛力士像)과 보현(普賢) ․ 문수(文殊동자상(童子像)을 모시고 있다.
영산전
절을 가로지르는 개울 남쪽 수행지역의 중심법당이며,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보물 제80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납작한 단층맞배에 박공을 댄 지붕을 하고 있다.
칸살이 넓고 지붕이 높이 솟지 않아 평평한 느낌을 주며
기둥은 배흘림을 한 주심포계로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51년(효종 2년)에 각순대사(覺淳大師)가 다시 세웠다.
영산전은 본래 영산회상의 모습을 재현하는 곳으로, 내부에는 「ㄷ」자형 불단을 마련하여 천분의 부처님을 봉안하였다.
불단 가운데에는 과거칠불(過去七佛)을 모셨는데 모두가 목조불이며 그 후면과 좌우 불단에는 천불(千佛)을 봉안하였다.
현판의 글씨가 조선시대 세조의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천왕문
이 건물은 조선시대 후기에 세워진 사천왕문으로 사찰의 입구에서 해탈문(解脫門)을 거쳐 두 번째로 지나는 대문을 말한다.
사천왕은
천상계(天上界)의 가장 낮은 곳인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4지역을 관할하는 신격적 존재이다.
이들은 부처님이 계신다는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면서 인간세계의 인간들이 불도(佛道)를 따라 사는지 살피어 그들을 올바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천왕문에는 사천왕 그림이나 조각상(四天王像)이 있다.
천왕문을 지나면 조그만 터가 나오고 바로 극락교가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문과 문사이
극락교 범종각
극학교 위에서 극락교 밑 태화천은 잉어가 있다
굽고 굽은 태화천은
부처님 세상과 수미산 세속의 공간을 가르지는 지
유우히 태화천 밑에는 잉어들이 한가로이
놀고있다
시간과 공간의 속에서
극락교 건너 요사체
극락교를 건너면 5층석탑과 대광보전 그 뒤로 대웅보전
우측건물은 심검당입니다
대웅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는데, 1813년(순조13년)에 다시 지었다.
건물 안 바닥에는 참나무로 만든 돗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으며,
부처님이 서쪽에서 동쪽을 보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건축양식은 외관이 장대하면서도 화려한 특징을 갖는 다포식(多包式)이며, 건물의 앞쪽엔 다양한 무늬의 꽃살무늬의 문을 달았다.
건물 내부의 화려한 공간 구성과 함께 조선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 주는 훌륭한 전통목조건물이다.
단종이 자기 작은 아버지 한태 노산군으로 유배을 당하고 4개월만에 사약을 받으니
단종 아버지 즉 문종도 죽기전 자기 동생을 약간 의심
성삼문등 충신들에게 자기 아들을 부탁하였으나
결국 세조 수양대군은 조카에게 사약을 내리며 까지 임금 자리에 올라으니
이 비정한 세월과 역사는 유유히 흐른다
생육신 김시습은 단종이 유배되던 청녕포 근처에 뭐불다가
사약을 받았다는 것을 아록
이곳 유구을 거처 마곡사 까지 오게 되었단다
세조가 이것을 알고 마곡사로 왔으나 이미 김시습은 떠나버리고
세조가
그때 세조는 이렇게 한탄하며 마곡사를 떠났다
" 김시습이 나를 버리니 가마를 타고 갈 수 없다 "
하여 세조는 소을 타고 한양으로 향하고
세조가 타고온 연은 지금도
550 면을 김시습을 기다리는 임금님 연이 대광보전에 보관되어 있단다
5 층 석탑
보물 제799호인 오층석탑은 대광보전 앞에 위치하여 다보탑 또는 금탑이라고도 한다.
탑의 전체 높이는 8.67m로 1층 몸돌 남면에는 자물쇠 모양이,
2층 몸돌 네 면에는 소박한 솜씨로 사방불(四方佛)을 양각하였다. 사방불의 조각은 밀교적 의미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상륜부에는 청동제인 풍마동(風磨銅)으로 만들었는데 라마식 보탑과 유사하여
중국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귀중한 탑으로 나라의 기근을 3일간 막을 수 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5 층석탑 상륜
신검당
심검당은 스님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사용하거나 신도들이 거처하는 방이다.
건물은 ㄷ자형으로 온돌방과 부엌 및 마루를 만들어 조선시대 상류층 가옥과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다.
기둥은 네모기둥과 두리기둥을 혼합하여 세웠고, 마루 한편에는 목어(木魚)와 범종(梵鐘)등이 보관되어 있다.고방은 심검당 북쪽에
한편에는 목어(木魚)와 범종(梵鐘)등이 보관되어 있다. 고방은 심검당 북쪽에 붙어 있는 2층으로 된 창고이다.
대광보전 우측으로 돌아 대웅보전 바로 옆
한마디로 들어도지 마슈
대광보전
이 건물은 대광보전과 함께 마곡사의 본전(本殿)이다.
원래의 건물은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졌고,
현재의 건물은 1651년(효종 2년)에 각순대사(覺淳大師)와 공주목사(公州牧使) 이주연(李奏淵)이 다시 지은 것이다.
외관상으로는 2층 건물 형태인 중층(中層)이나 내부는 하나의 공간이다. 중심에 석가여래불을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건축양식은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던 다포식(多包式)으로서 외관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감을 준다.
팔작지붕으로 된 네 모서리에 처마를 받쳐주기 위한 활주(活柱)가 세워져 있다.
현존하는 전통 목조건축물 가운데 많지 않은 중층건물로 목조 건축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철사로 되어있다 |
이상한 철부치 |
심지어는 철근까지 |
이것이 정식 장식 인것을 |
놀라운 대웅보전 발견이다 천년고찰 막곡사 정전인
대웅보전
문 장식이 철근으로 되어 있다니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웅보전에서 마곡사
대웅보전에서 응진전
유구쪽에서 오는 곳 태화천
응진전
이곳은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곳으로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한다.
원래 응진전은 수도승(修道僧)의 신앙 형태를 나타내는 건물 중의 하나이다.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모시고, 주위에 16나한상을,
끝에 법천(法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모신다. 16나한은 수행을 완성하여
성자(聖子)의 지위에 올라 중생에게 복을 주고 바른 법(正法)으로 인도하기를 원하는 존재를 말한다.
건물은 1852년(철종 3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석가여래(釋迦如來)를 중심으로 좌우에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김구선생 대광보전 앞 사진
대광보전
대광보전 옆 약수터도 보이고
옆에
건물을 건축하고 있다
대광보전 앞
5층 석탑
둥둥 복소리을 울려라
둥둥 둥
수선사
이제 주차장으로
돌아 돌면서 영은암 입구 바로 전
태화 식당에서 오늘 재수 생일
꾸부러진 초 만큼 꺽어진 나이들
불어라 바람아
터저라 세월아
우린 마곡사 태화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이들면 배심으로 산다는 말이 실감난다
배속이 비어 있으니
정신도 멊고 힌도없고 생도 없는것 같다
오
랜
만
에
만
난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세상야기
물같은 발람처럼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넘어지는
우리들의 영웅적인 삶을
전설처럼 야기 하면서
역사을 쓴다
이렇게 이름모을 역사는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누가 알아주는 않는다 하여도
아마 오늘의 마음속 그림같은 노래을
태화산 소나무는 아고 있겠지
그놈들이 재잘 거리며 다녀 갔다고
역사적으로ㅁ
If my mother kno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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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친구들과 즐거운 하루보내셨군요 가까운곳인데도 못 가봤어여 함 가봐야겠군요 ㅎㅎ
천리길을 다녀온듯..리장님의 산행은 뒷이야기가 잼나^^ㅗ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