젬병
김 철 희
무릇 남자라면 연장 하나쯤은 잘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나는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무슨 일이라도 할라치면 매번 남의 손을 빌려야 한다. 그때마다 지불해야 할 비용도 걱정이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내가 원하는 탁자를 만들기로 마음먹고 거실장으로 사용하던 원목을 인테리어 업자에게 갖다 주며 제작을 의뢰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멋진 탁자를 고대하면서.
원목은 거실에 텔레비전을 놓기 위해 지인으로부터 오래전에 구입했던 것이다. 지인은 목발을 짚고 살아가는 장애인으로 목공예에 타고난 재주가 있었다. 그의 삶이 하도 애련해 큰 맘 먹고 장만했다. 아내는 가구점에 가면 예쁘고 저렴한 것이 많은데 왜 샀느냐며 볼멘소리로 심경을 건드렸다. 지인의 신산한 인생고를 설명하면 이해할까 싶어 구매한 사유를 이야기하려 했으나 자칫 내 호의에 금이 갈까 저어하기도 했거니와 그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참았다.
얼마 전에 나의 멘토이신 시인 박찬선 선생님을 카페 ‘소풍’에서 만났다. 박 선생님의 단골가게로 테이블이라고 해봤자 고작 다섯 개뿐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와는 지척 간이다. 하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를 스무 개쯤 건너면 바로 가 닿을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봄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이곳 방천길은 풍광이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가끔 그 앞을 지나치면서도 카페의 존재를 몰랐던 것은 아마도 여느 가게와 달리 눈에 잘 띄지 않은 작은 나무간판 때문이리라.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니 커피향이 코를 간질이고, 피아노를 연주하던 여성이 “어서 오세요” 라며 반긴다. 아는 분이다.
“언제부터 하셨어요. 가게가 이쁩니다.”
덕담을 건네며 가게 안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탁자의 상판은 나뭇결이 오롯이 살아있다. 건축용 철근을 사용해 만든 탁자의 다리가 차가워 보였지만 제법 멋스러운 핸드메이드 테이블이 눈에 쏙 들어왔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재료들이었는데도 어찌나 조화로워 보이던지 생경함에 감탄이 절로 났다.
여주인은 한때 여성복 가게를 운영했는데 피아노 연주 수준도 대단했다. 가게는 아담하고 멋졌다. 모든 액세서리는 인테리어 업자가 손수 만든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저 솜씨가 놀라울 따름이다.
문득 오랫동안 방치해둔 원목이 생각나 인테리어 업자의 전화번호를 물었다.
얼마 뒤 혼자서는 원목을 옮길 수 없어 아들과 함께 옮기기로 했다. 아들은 대학에서 산업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데 마침 방학을 맞아 내려왔다. 인테리어 업자와는 미리 약속이 돼 있었다. 업자의 작업실은 집에서 차로 5분 남짓한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차 소리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던 업자와 인사를 건네고 싣고 온 원목을 보여주니 벚나무라고 한다. 실상 나는 지금까지 내가 소유하고 있던 원목이 어떤 수종이었는지에 대해서 조차 알지 못했다.
이러저러 원하는 형태의 탁자를 이야기하는데 결국은 비용이 문제였다. 장인(匠人)에게 돈을 논한다는 게 어찌 이리 어색할까. 주춤주춤 입을 떼니 그 역시 잠시 머뭇하더니 40만 원만 달란다. 자재를 제공했는데 그리 비쌀까? 내심 생각했던 비용과는 차이가 커 망설였다.
“목공소에 갖다 와야지요, 작업을 하다보면 손볼 곳이 많습니다. 다리를 만들 철근도 녹슬지 않게 칠해야 합니다.”
업자는 자신이 제시한 가격 방어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너무 비용에 집착하다가 원하는 탁자에 대한 환상에 흠이 갈까 싶어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마음은 내내 개운하지 않았다.
갑자기 허드레 목재로 얼기설기 만든 그의 작업실 내부가 궁금했다. 아들도 구경하고 싶어했다. 작업실은 갖가지 나무들과 널브러져 있는 도구들로 어수선 했다.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장인의 손길을 거치는 순간 멋드러진 작품으로 탄생하는 결과물을 생각할 때는 그저 시기할 따름이다. 남이 가지지 못한 재주를 갖는다는 건 노력이 만들어 낸 무형의 훈장 같은 것이다.
“다들 한 가지 재주만 있으면 먹고 산다.”
잠시 후 차를 타고 내려오면서 아들에게 불쑥 한마디 건넸으나 아무런 말이 없다.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한 녀석은 내년이면 졸업을 한다. 졸업과 동시에 직장을 구해야 하는데, 이 살벌한 취업 전쟁 속에서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심란한 아비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한참 후에야 아들은 “나무는 내 취향이 아니야.”라며 대답한다. 남루한 작업복, 수염을 깎지 않은 까칠한 얼굴의 인테리어 업자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못내 거북해 하는 심사다.
나는 아들 다루는 재주도 젬병이다.
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전교 어린이 회장을 하며 제법 남들보다 앞서가는 듯 보였지만,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학교 성적은 그다지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좀 더 나은 학원에서 공부를 시켰더라면 어떠했을까 하는 뒤늦은 후회가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학원을 보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부족한 부분을 제때 채워주지 못한 것이 지금에 와서 못내 후회스러울 뿐이다.
아들이 선택한 진로에 대해 한 번도 싫은 내색을 해본 적이 없다.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거뜬히 해내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먼 훗날, 이러한 나의 믿음과 소신이 헛되지 않았음 하는 바람이다.
나는 아들과 시방 전화 중이다.
첫댓글 김철희작가님의 젬병을 읽고 그 아름다운 까폐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습나.tv 받힘대로 이용될 원목 탁자도
보고 싶습니다.무거운 원목을 같이 드는 아버지와 아들의 따뜻한 정 그림을 보는 듯 합니다
장인의 손이 어떻게 둔갑을 할지 고 고 할 것 같습니다 아무것을 보아도 김작가님은 젬병은 아닌 듯
젬병은 나무 다루는 일에 국한되어 서술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들 이야기까지 곁들어지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옆으로 샌 느낌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 작가님의 '젬병'을 읽고 나니 70평생 살아온 내 삶이 되짚어집니다.
현직에 있을 때는 그래도 '내가 하는 일들'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었는데,
정년퇴임을 하고 집안에 갇혀 살아보니 정말 내가 얼마나 젬병인지 알겠더이다.
'의식주 생활' 하나만 놓고 봐도 뭐 하나 신통한 구석이 없는 겁니다.
당장 전기밥솥과 세탁기 다루는 법도 잘 모르겠고,
전구 하나 갈아끼우는 일도 걱정거리가 되더라구요.
그러면서도 주부의 가사노동을 우습게 알았으니 정말 얼마나 젬병인가요.
가족에게 심히 미안한 생각이 드는 날 아침입니다.
앞으로 기본적인 가사노동부터 새로 배워나가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누구나 다 잘 할 수는 없지요. 때로는 공구를 다루는 일이나 전기를 고치는 일등에 꽉 막힐 때가 있습니다.
젬병이 오히려 인간적이죠. 그래야 또 그 방면에 특기를 가진 사람이 자기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철희님은 다른 건 몰라도 글쓰는 일은 젬병이 아니잖아요? 좋은 글 읽었습니다.
아울러 김한식씨의 댓글에 관심을 두셔도 좋을 듯 합니다. 원목으로 가구 만드는 일 때문에 젬병이란 말을 사용
했는데 젬병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적하신 부분을 염두고 다시 읽고...문맥이 주제와 일관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목이 적절치 않다는 결과에 도달했고,
고민 끝에 제목을 '무형의 훈장'으로 바꾸었습니다.
제목
무형의 훈장
1 목발을 짚고 살아가는 장애인이 만든 가구
2 옷가게를 했지만 숨겨진 피아노 솜씨
3 텁수룩하고 허럼해보이지만 빛나는 솜씨를 가진 목재 장인
4 어릴때 공부 잘하고 지금은 비록 남들이 평가하는 그런 아들은 못되지만 언젠가는 그 아이는 빛날것이다 믿음이 간다 등등..
이렇게 연결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