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4-6, 요한복음 19:26-27, 에베소서 6:1-3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부모님께) 배웠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 혹은 군자의 나라라는 소리를 중국인들로부터 들었습니다.
그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로 예의를 잘 지키고,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남의 것을 훔치는 일이 드물고
이웃간에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다분히, 우리 민족 전통의 하나님 신앙에서 힘입은 바가 큽니다.
단군왕검은 경천애인 사상,
하나님을 공경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을 전국민에게 가르치고
그것을 유훈으로 남겼습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우리나라의 치안은 타국들에 비해 비교적 좋고,
남의 물건을 함부로 훔치지 않는 일이나,
예의범절, 웃어른 공경도 타국에 비해 낫다고 합니다.
이것은 물론 신시배달국과 단군조선시대 때부터 전해 내려온 경천애인의 국민성과
엄격한 법률 전통에도 일부 원인이 있습니다.
근세조선 시대만 하더라도
도적질한 죄는,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보다 훨씬 더 엄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러일전쟁(1904-1905년)이 일어났던 대한제국 시기의 법률에 관해
영국인 기자 앵거스 해밀턴이 기록한 바에 의하면
살인, 방화, 절도죄에 대한 형벌은 다음과 같습니다.
* 살인죄. 남자: 참수형. 그의 아내는 사약을 받음. 여자의 경우: 교수형 혹은 사약
* 방화죄. 남자: 교수형 혹은 사약. 여자: 사약
* 절도죄. 남자: 교수, 참수 혹은 귀양. 그의 아내는 노예가 됨. 모든 재산을 몰수당함.
누군가가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 하나로,
교수형 혹은 참수형을 받거나 귀양을 가며,
그의 아내는 노예가 되고, 그의 모든 재산을 몰수 당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법률로는 상상하기도 힘든, 극도로 엄중한 형벌이죠.
절도죄에 대한 우리나라의 이런 엄한 형벌은,
근세조선 시대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단군조선 때부터 전해내려온 전통입니다.
단군조선시대의 그런 엄격한 법률은,
단군조선 말기의 번조선지역이었던 위만조선의 형법에 대한,
고대 중국사가의 일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 절도죄가 많이 사라진 데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것과 cctv도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 cctv가 없던 시절, 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도 소매치기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
절도죄는 줄어들었는지 모르나,
한편으로,
불효죄는 물질이 풍요로워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1.
주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십계명 중
제 5 계명이 부모 공경이고,
제 6 계명이 살인죄,
제 8 계명이 도적질 죄입니다.
(1)
근세조선 시대에 살인죄와 절도죄 뿐만 아니라
부모와 조부모에 대한 불효죄, 예컨대 학대하거나 봉양을 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큰 형벌이 가해졌습니다.
부모공경은,
단군조선 이전부터 이어져온 조상전래의 가르침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유교에서도 극도로 중시하는 덕목이었으므로
근세조선 시대에 부모를 학대하는 행위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세종실록>에 의하면,
근세조선 세종 때 부모를 편지로 모욕한 자가
자칫 교수형을 당할 뻔하다가,
이를 면하고 장 100대를 맞은 후 멀리 함경도로 유배를 당해야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부모 공경을 얼마나 중시했는지가,
이런 형법에서도 엿보입니다.
사철에 봄바람 불어잇고
(2)
그러나 우리나라의 요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부모를 잘 공경하는 동방예의지국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선진국들을 포함한 38개 OECD 회원 국가들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노인 빈곤률 1위
노인 학대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고 합니다.
노인학대의 주된 행위자는 아들로,
다음 행위자는 배우자로, 사례 수치상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이 부모를 학대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은 아내나 남편이, 같이 늙어간 배우자를 학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국조 단군왕검께서도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유훈을 남기셨는데요.
이것은 사회적인 여러 요인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거나 공경하는 일이 옛날보다 훨씬 더 약화되었다는 뜻일 것입니다.
노인이 무엇을 물어볼 때 입다물고 대답하지 않는 것도,
정서적인 노인학대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런 정서적인 학대는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어르신 혹은 부모에 대한 불친절, 불공경이니까요.
(3)
현재 우리나라 가정도 핵가족화되고,
출산율이 극도로 저하됨에 따라, 젊은이 인구비율은 점차 낮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1960년 전후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만 65세이상)이 되어가면서
일본처럼 노인들이 일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국가의 경제가 굴러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젊은 세대의 숫자 감소 때문에,
앞으로 점차 심화될 것입니다.
따라서, 노인일자리가 차츰 늘어나고,
지금, 60대연령의 취업률이 젊은이들의 그것보다 높은 현실에서
노인들이 스스로 돈을 버니,
자녀들이 부모를 봉양하던 옛날의 관행은 크게 퇴보하고 있는 추세가 아닌가 합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도
노령기초연금을 지급하는 등,
정부차원에서 노후 삶에 대한 지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도 자식들의 부모 공경과 봉양 의식이 점차 희박해지는데 일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모의 온몸에 심어주신,
자식을 향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고 애절한 사랑을,
결단코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 좀 놀았거든요.
며칠 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자,
내 아내가 기도하면서, 자식 죽었다고 생각한 듯, 얼마나 울던지요!
그것이, 우리 주님께서 부모의 가슴에 주신 자식을 향한 마음입니다.
날마다 주와 버성겨 그 크신 사랑 버리고
낳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넓다 하리오 어머님의 희생은 가이없어라
어려선 안고 업고 얼려 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마음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 위에 주름이 가득
땅 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람의 마음 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 속엔 오직 한 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깎아서 바치는 마음
이 땅에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없어라
2.
예수님은 부모 공경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시고
친히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1)
먼저, 모세의 율법은 부모를 저주하는 자를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7, 레위기 20:9
이는, 그만큼 우리 하나님이, 부모공경을 극도로 중시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은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 5 계명과 이 모세율법을 인용하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불효를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4 이하, 평행(대등)구절 마가복음 7:10 이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가르쳤다고 합니다:
누구든지 자식으로서 부모 부양의 책임을 면하고자 한다면,
그 재산을 성전에 바친다는 서약을 하기만 하면 된다.
바칠 시기는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박윤선)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자기 재산에 대해 "코르반"(하나님께 바친 것)을 선언하고
그 재산을 언제 바칠 것인지는 결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부터는 이 재산을 자기 마음대로 쓰면서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진 헌물이라는 사실을 구실로 삼아,
그 재물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즉 마땅히 부모님께 드려야 할 생활비를 드리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했다고 우리 주님은 지적하셨습니다.
물질을 드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3)
예수님은 30세에 이르기까지 목수일을 하시면서 돈도 벌고
집도 장만해서, 부모님을 편안하도록 봉양하셨습니다.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누가복음 2:51
예수님은 장남이었기(눅 2:7) 때문에
율법에 따라,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다른 형제들보다 두 몫의 유산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집을 상속받았을 것입니다.
공생애 시작하실 무렵에는,
나사렛의 집을 정리하고 모친 및 동생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아마도 집을 사서) 이사하셨습니다.
요 2:12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에 이리저리 전도활동을 다니시다가도
가끔 가버나움의 자택으로 돌아오셨음이,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2:1.
3년여의 공생애 기간에,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들 예수님을 자주 따라다녔고,
예수님은, 받은 헌금으로 제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머니도 봉양하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8:1-3 참조.
그리고 최후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자신이 죽음으로써 어머니께 못 다 한 효를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부탁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27.
사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분이 누구입니까?
이 땅에 오시기 전의 우리 주 예수님이 아닙니까?
천사를 통해 시내산에 강림하신 분은 바로 성자 하나님,
성육신 이전의 주 예수님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
하늘 아버지께 절대 순종하신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공경의 율법을 직접 주신 주님이,
지상 어머니께 지극정성으로 효도하셨음을
이 십자가 임종의 순간에서 우리는 엿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남동생들도 넷이나 있었고,
특히 바로 아래 동생인 야고보(야고보서의 저자)는
훗날 "의인 야고보"라 불릴 정도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지만,
십자가에 달리실 그 때까지도 동생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 같습니다.
학자들의 추정대로 아마 아버지 요셉은 이미 돌아가신 것 같고,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 승천한 후에
어머니가 어떻게 살아가실까 몹시 걱정되었기 때문에
진실한 효심과 애정으로 그렇게 부탁하셨을 것입니다.
사도요한도 예수님의 이 지극한 효심을 잘 깨닫고
그 때부터 주의 모친 마리아를 자기 집에 모셨던 것입니다.
3.
우리나라의 현실이 어떠하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 우리 주님의 가르침을 결코 경시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에 대해서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세상에서의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부모공경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1)
자녀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대로, 그리고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셨듯이,
노부모를 물질로 봉양해야 합니다.
부모가 재산이 넉넉하고 생활비가 넉넉하더라도
자녀가 매달 일정액의 생활비를 드리면, 그것은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돈 없으면, 단돈 1만원이라도 매달 부모님께 드리세요.
부모님이 감격해서 울 것입니다.
"내 자녀가 이렇게 효심이 깊구나."
감동하면서 자녀를 축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자녀가 자신들에게 준 것보다 부모는 더욱 많은 물질을 자녀에게 주기도 합니다.
또한 이렇게 공경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자녀는 "땅에서 잘 되고 장수"하게 됩니다.
(2)
자녀는 노부모의 영혼과 육체의 건강을 위해 기도해 드려야 합니다.
(3)
부모가 어떤 의견을 말하면 귀찮아 하지 말고
최대한 존중해 드려야 합니다.
물론 부모가 자꾸 잔소리해서는 안되겠죠.
부모가 출가한 자녀의 삶에 지나치게 간섭해서는 안 되지만,
부모가 심사숙고한 후 어떤 의견을 줄 경우,
부모의 지혜가 일반적으로 자녀보다 나으니, 부모의 의견을 극히 존중해야 합니다.
(4)
가끔씩 부모를 모시고 식사하는 것이 매우 좋은 효도, 부모공경입니다.
자녀를 출가시키고 외롭게 사는 노부모는
자녀와 함께 하고, 자녀의 얼굴을 보는 것이 지극히 큰 기쁨입니다.
자녀와 함께 식사함으로써, 부모는 자녀를 자랑스러워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자녀를 축복하게 됩니다.
요양원이나 실버타운, 노인 집단 주거생활 공간 등에서 사시는
어르신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눈물이 날 때가 많습니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고 찾아가서 만나뵐 때면,
어머니가 얼마나 반가워하던가요 !
옛 어른들의 말로, "꿈에 용을 봤다고 하더니 네 얼굴을 보는 구나"라며 반가워하십니다.
치매로 단기 기억력이 상당히 많이 상실되어서 얼마 전에 만난 것도 잊어버리고,
처음 보는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하십니다.
헤어질 때는 얼마나 섭섭해하는지요, 눈물까지 흘리십니다.
어머니도 울고, 나도 웃음으로 떠난 직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면
눈발이 날리는 거리, 낙엽이 지는 거리, 봄비 내리는 거리를
울면서 노래부르며 오곤 했습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에"
어머니도 우셨다오 나도 울었소.
눈보라가 휘날리는 *** 거리
돌아서는 이 발걸음, 차마 못 떠나
(5)
부모를 모시고 힘닿는대로,
자주는 못 가더라도 어쩌다 한 번씩은 여행을 가는 것이 매우 좋습니다.
부모를 요양원에 모셔야 할 경우에도
최대한 자주 찾아뵙고, 대화를 나눈다면, 이것이 부모를 크게 기쁘게 하므로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입니다.
치매를 앓으시는 부모님이 자꾸 물어도 귀찮아 하지 말고,
얼굴을 못 알아볼 지경이 되어도
찾아뵈어야 합니다.
부디 노부모를 진실하게 공경하고 힘들고 어려워도 봉양한다면,
주께서 그 자녀를 크게 축복하실 것입니다.
에덴의 동산처럼 복되어라 우리가정
샬롬.
2024. 5. 12. 봄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