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그리스도냐?
마가복음 14:53-65 권오진 목사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말씀은 성 금요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에, 성 금요일 말씀을 생각하기에 성급한 감이 있는 것 같지만 지금 설교 계획대로라면 부활주일이면 마가복음에 나오는 부활의 기쁜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성 금요일 오전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 성 금요일 시간표 】 ① 겟세마네의 기도, 잡히심 (밤 12시~새벽 2시경) ② 안나스의 심문 (새벽 2~3시경) ③ 가야바의 심문, 헤롯 심문, 공회의 정죄 (새벽 3~6시경) ④ 빌라도의 판결 (오전 6시~7시경) 이 행적을 염두에 두고 오늘 말씀으로 들어가 봅시다. 53절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민병대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끌려서 대제사장의 관정으로 끌려갑니다.
당시 대제사장은 가야바였습니다. 그는 주후 18년〜36년까지 대제사장직을 감당했습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을 가야바에게로 데리고 가기 전에 가야바의 장인이었고, 전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에게로 먼저 데리고 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도 안나스를 거쳐서 가아뱌의 관정으로 왔구나! 하는 정도는 아시면 좋겠습니다. 다시 53절을 보세요.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가야바의 관정에는 끌려오신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이 다 모였다고 합니다. 대제사장, 장로들, 서기관들의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라고 합니다.
55절에 ‘온 공회’라는 말이 나오지요. 의장 – 대제사장 회원 – 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으로 대략 70명쯤 되었습니다. 공회의 주요 기능 – 이스라엘 백성들의 종교 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보면 대법관회의나, 헌법재판소의 기능을 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공회는 판결을 통해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기관이었습니다. 단, 사형권, 사형집행권은 로마에 속한 권한이었습니다. 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분들이 새벽 3시쯤에 가야바의 집으로 모였습니다. 모인 이유는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럼 본문을 이어서 봅시다. 54절에 보면, 엉뚱하게 베드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베드로 이야기는 다음 주일에 생각할 것이니 미루어 놓겠습니다. 55절로 넘어갑니다.
55절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이 말씀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지금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재판하기 위해서 새벽바람에 모였는데 이미 그들은 암묵적으로 한 가지 결정을 해 놓은 상태입니다. 결정사항은 : 예수를 죽인다. 이미 그들은 오래전부터 자신의 기득권을 흔드는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었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팔면서 현실화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민병대대를 동원해 가룟 유다를 잡아 오는 순간 실행되었습니다.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것이었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예수가 이러 이러한 사람이기에? 죽이기로 했다는 명분이 필요했습니다.
명분이 있어야 총독 빌라도가 사형 선고를 내려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공회 의원들은 예수를 죽일만한 증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55절 하반절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절에는 거짓 증언을 하는 자들이 많았지만, 결론적으로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면서 증거를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의 말이 나옵니다. 57-59절 보세요. 57-59절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거짓 증언을 하기 위해서 동원된 그 사람들이 한 말은 <예수님이 헤롯 성전을 헌다고 했다. 그리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짓는다고 했다>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최고 범죄는 성전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야훼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면 그는 사형감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성전이야기를 가지고 거짓 증언을 한 것입니다. 그들의 증언은 예수님이 하신 행적이나 말씀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을 정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감람산 강화에서 성전이 앞으로 파괴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예수님이 ‘성전을 무너뜨리겠다’ 라고 주장하신 적이 없습니다. 거짓 증언자들과 가장 유사한 말을 한 것은 요한복음 2장 19절 말씀으로 예수님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라고 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니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증인들의 말은 거짓말입니다. 예수님은 개인적으로 성전을 위협하지 않으셨으며, 대신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예언하셨기 때문입니다. 거짓 증인을 동원한 결과는 59절에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라며 끝납니다.
55절 하반절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절 하반절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9절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이 정도 되면 심문을 포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털어도 예수님을 죽일 명분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구입니까? 그들 모두는 예수를 죽이려고 이미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어떻게든 죽일 명목을 찾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대제사장이 직접 신문을 시작합니다.> 사실 공회가 소집되고 재판이 진행되는 이 모든 과정은 불법에 해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 안식일과 절기를 제외하고는 매일 열렸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유월절이 시작되는 지금 열리면 불법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 아침 번제가 끝난 후부터 저녁 번제가 시작될 때까지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처럼 새벽에 열리는 것은 불법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 당시에는 성전의 성소에서 재판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가야바의 집에서 모인 것도 불법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 정당하고 투명한 심문 과정을 통해 죄과를 밝혀야 하는데, 지금처럼 <정해진 결론>을 내어놓고, 증거를 수집하는 것 역시 불법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철저히 불법을 자행했던 것입니다. 그럼 대제사장이 직접 심문을 하는 내용을 살펴봅시다. 60-61절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대제사장은 예수님에게 3가지 질문을 합니다. 첫째 질문 :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60절) 둘째 질문 :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60절 하) 이 두 가지 질문에 예수님은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신 이유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이유는 그들의 증언이 모두 거짓말이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에 대해서 일일이 시시비비를 따진다는 건 무의미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따진다고 해도,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침묵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더욱 답답해진 대제사장이 세번째 질문을 합니다. 셋째 질문 :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61절 하) 여기에서 ‘찬송 받을 이’는 – 신적 이름을 말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경건한 완곡어법입니다. 그러니 ‘찬송 받으실 이’는 하나님을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냐?”가 세 번째 질문입니다.
그동안 침묵하셨던 예수님은 셋째 질문에는 명확하게 답을 합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62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62절) 대제사장에게 “그대가 그리스도냐?”는 질문을 받은 예수님은 주저하지 않고 “내가 그니라” / 다시 말하면 <그렇다>고 답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마가복음은 어떤 말씀으로 시작하시는지 아십니까?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라는 말씀을 선포함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들이시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그렇게 기다렸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다. 예수님으로 통하여 기쁜 소식이 시작되었다는 선언으로 시작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라고 선언하며 시작한 마가복음에는 계속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임을 반복하여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1:11)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하셨을 때(9:7) - 하나님이 음성으로 예수께서 아들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때로는 귀신들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했습니다(3:11; 5:7). 베드로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8:29).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직접 자신의 정체성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그동안은 당신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나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3:12, 8:30). 그러나 십자가의 죽음이 예견되는 그 자리에서는 당신의 정체를 분명하게 밝히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그니라” 라고 밝히는 순간, 사형에 처하게 될 것도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가장 위험한 순간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힙니다.> 왜 밝히셨을까요?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예수님의 용기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에서 나왔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로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예수님의 이 용기가 아닐까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나는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나는 예수를 믿기에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자다. 라고 언제 어디서나 확실하게 고백할 수 있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질문에 “내가 그니라”고 답하시면서 부연하여 몇 마디 더 하셨습니다.
62절 다시 보세요. 6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 - 이 말은 하나님과 동등한 신적 능력을 갖춘 자로서, 영향력과 명성을 지닌 자리에 앉는다는 뜻입니다.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는 – 심판 주로서 재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곧 있을 십자가 사역 이후의 자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대제사장의 반응을 봅시다. 63-64절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 그 신성 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는 말을 들은 대제사장은 극한의 분노를 표시하며 옷을 찢었고, <신성 모독> 죄가 분명하니 예수는 <사형이다>라고 정죄합니다.
정해진 결론(예수를 죽인다.)에 합당한 명분을 확보한 것입니다. 그들의 뜻대로 된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 절을 봅시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65절) 이 장면은 성화를 보며, 말씀을 듣으면 더욱 공감될 것입니다. <그림 1.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 프라 안젤리코 작> 이 성화는 이탈리아 화가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 1387-1455)’ 가 그렸습니다. 프라 안젤리코는 프라(수도사) + 안젤리코(천사 같은)로서 <천사 같은 수도사> 라는 뜻입니다. 도미니크 수도회의 수사였던 그가, 수도원 수사의 방에서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의 내용은 가야바 관정, 헤롯과 빌라도 법정에서 주님이 당하신 모욕과 수치의 순간을 모두 종합하여 한 화폭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앉아계신 뒤편 벽은 베이지색 톤인데, 그 가운데는 에메랄드빛 대리석이 마치 포인트 벽지처럼 우뚝 서 있었습니다. 얼핏 보면 영화 스크린처럼 보입니다. 아래쪽에는 묵상에 두 사람의 모습이 보입니다. 왼쪽이 성모 마리아, 오른쪽이 성 도미니크입니다. 세상이 소란해도 두 분은 명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림 앞부분을 확대해서 보겠습니다. <그림 2. 조롱당하는 그리스도 – 확대 그림> 예수님은 흰옷을 입고 보혈을 의미하는 붉은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관이 쓰여있습니다. 오른손에는 조롱하기 위해서 준 갈대가 들렸는데 꼭 왕 홀처럼 보입니다. 왼손에는 커다란 구슬이 하나 들려있는데,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된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제 예수님 얼굴 주변을 돌아봅시다. 좌측에는 모자를 쓴 군인 한 사람이 예수님께 침을 뱉고 있습니다.
그리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 예수님의 뺨을 치는 손만 덩그러니 그려져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예수님의 머리를 갈대로 때리는 손도 나옵니다. 좌측에는 손바닥 하나는 예수님을 향하지 않고, 우리를 향하여 내밀고 있습니다. ‘예수를 때리는 손이 너희들의 손이 아니냐’ 질문하는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눈을 보세요. 눈은 오늘 말씀처럼 흰 천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하얀 천 아래로 예수님의 눈매가 드러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눈매는 지긋하게 감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핍박을 받으실 때, 눈을 지그시 감고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요? 예수님은 심문당하실 때, 조롱당하실 때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행동합니다.
이사야 53:7에 이렇게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님은 말씀하지 않으시고, 조롱과 채찍을 자신의 몸으로 받아냅니다. 그 길이 구원의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힘들 때, 조롱당할 때, 핍박당할 때 예수님처럼 행동하면 안 될까요? 말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말입니다. 그럴 때 그곳에 사랑의 역사, 화해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도 나처럼 행하지 않을래!>라고 말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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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좋다오 원문보기 글쓴이: (一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