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적막
최수일
울다 그쳤다를 되풀이하는 매미들이
여름 한낮의 고요를 살찌운다
두엄자리를 헤집던 벼슬 어여쁜, 장닭도
혀를 내밀고 할딱거리던 검둥이도
뒤란 대숲 바람 속으로 숨어든다
감나무 그늘이 두껍게 펼쳐진, 덕석으로
청백색 하늘의 비행운(飛行雲)이 스며든다
고요의 푸른 하늘바다,
나는 먹다 남은 소주 반병을 생각한다
소주병에 生에 대한 시름 한 타래 풀어
적막한 고요와 흔들어 섞는다
내 안의 고요가
순간, 한낮의 적막으로 출렁거린다
이따금
호박벌, 허공에 걸린 고요를 살짝 흔들다 날아간다
대빗자루 끝, 고추잠자리
생각의 무게에 짓눌린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그렇게
따가운 한낮을 멍석 말듯
느슨하게 말다가, 나는
까무룩 잠이 든다
작은 돌개바람, 내 잠든 그림자 걷어 허공으로 솟구친다
그 흙냄새
뙤약볕에
완전군장하고 적 진지로 포복하다
쉬어! 구령에
땅바닥에 쿡, 코를 박은 순간
후욱, 콧속으로 뛰어든
그 냄새!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내 몸을
순식간에 파고들어
근육에 불끈 힘을 불어넣고
산하(山河)를 향한 내 가슴에 확, 불을 지폈던
그 흙냄새는
할매를 콩밭에 혼자 두고
외솔나무 그늘에 앉아
먼산에 걸린 설익은 뭉게구름을 바라보다
이 골짝 저 골짝을 날아드는
뻐꾸기의 울음에 흠뻑 빠져있는 내게
쪼그려 앉았던 무릎을 펴며
아이쿠 아이쿠,
꾸부정한 걸음으로 다가온 할매가
황혼을 등에 지고
흙 묻은 두 손으로
어린 내 두 뺨을 꼬옥 감싸줄 때 났던,
바로 그 할매 냄새였다
『열린시학』 2023. 겨울호
최수일 시인
경북 김천 출생
연세대학교 공과대학 토목공학과 졸업
호서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박사
시집『감천』
<시사문단>으로 시 등단
[출처] 스무 살의 적막 외 / 최수일|작성자 마경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