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정
투어일자: 2018.8-9.
참석자: 통통한토끼
투어목적지(경로): 시간이 되는 목요일부터 월요일사이에 다녀본 곳 위주로 후기를 남겨봅니다. 일단 오름으로는
거문오름, 다랑쉬오름, 아끈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섯알오름, 동일오름, 가마오름을 구경하고
알뜨르 비행장과 평화박물관, 서귀포 시내의 이중섭 거리, 삼매봉 산책로, 법환포구 해안길,
탐라왕자묘, 1118번도로, 1119번도로, 혼인지, 송당초등학교, 모구리 오름 그리고 1100도로.....
2. 감상 및 투어 포인트: 제주도에서의 라이딩은 그냥 관광객들이라면 해안도로를 주구장장 돌고 516도로와
1100도로 정도 달릴것이다. 허나 정말 이쁘고 한적한 도로는 1118, 1119번 1115번, 그리고
1112번 도로를 강추한다.
또 516도로와 1100도로를 한낮보다는 새벽이나 해가 질때 한번 여유를 갖고 천천히 달려보길
권한다. 사슴가족을 구경할수도 있고 노오란 황금빛 노을을 안고 달릴수 있고 서귀포 앞바다의
집어등을 켠 검푸른 바다에 별도 구경할수 있으니 낮에만 달릴것이 아니다.
더욱이 1110도로에서의 별구경은 시원한 한라산의 밤바람과 더불어 별구경은 낭만 그자체가
아닐까 싶다. 여건만 된다면 이제 은하구를 구경하러 가야겠다.
3. 견문 및 사진 기타 기록:
<다랑쉬 오름 주차장에서 본 아끈다랑쉬 오름의 앙증맞은 모습>
<날씨도 그렇고 시간도 그렇지만 비와 어둠을 준비해서 다랑쉬 오름까지 바이크로 타고와서 다시 30여분 배낭을 메고
오름 정상을 비맞으며 우중투어와 우중산행을 해본다. >
<다랑쉬 오름을 오르면서 바로 옆에 있는 아끈다랑쉬 오름을 내려다 본다.>
<안개가 해안가에서 내력으로 오면서 아끈다랑쉬를 집어 삼키기 직전모습>
<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비오는 날 밤 혼자 오름에 오르니 적막하다 못해 을씬년스럽기도 하다. 안개바람이 부니 으스스하다.>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다랑쉬 오름의 모습>
<다랑쉬 오름 바로 아래 주차장>
<아끈다랑쉬 가는 길>
<아끈다랑쉬에서 바라본 용눈이 오름, 언뜬 여인이 옆으로 누운 모습이 연상딘다.>
<아끈다랑쉬 오름 정상의 억새와 멀리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 오름 정상에서 바라본 다랑쉬오름의 모습>
<정석항공관과 가시리사이에 있는 길, 이곳은 한적하고 길이 이쁘다. 허나 안개가 잘낀다.>
<부지런한 코스모스 한송이와 애마>
<다랑쉬오름 옆에 다랑쉬굴......여기도43사건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1115번 도로, 산록도로를 달리면 보는 서귀포 야경>
<용눈이오름에서 바라본 북서쪽의 오름들과 도로>
<용눈이 오름은 오름 전체가 목장이다. 해서 이렇게 말들이 방목되어 있다. 또 탐방로에 말똥이 참 많이 있다.>
<말, 애마~~>
<산수국>
<이중섭 거리의 야경>
[이중섭]
이중섭(1916~1956)은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매우 부유한 대지주의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어요. 형과는 열한 살, 누나와는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내아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지요. 그러나 4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슬픔을 겪게 돼요. 이중섭은 어려서부터
사과 같은 것을 주면 우선 그림을 그리고 나서 먹을 정도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다닐 때 스승
임용련을 만나 크게 영향을 받았어요. 임용련은 미국으로 유학 가서 미술을 공부하고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했던 당시 흔치 않은
서양화가였어요.
그를 통해 자유로운 서양 미술에 눈을 뜬 이중섭은 당시 많은 지식인이 그랬듯이 미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갔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모전에서 수상을 해 주목을 받았어요. 그 당시 이중섭은 소를 주제로 한 그림을 많이 그렸어요.
이중섭은 1943년 유학을 마치고 우리나라로 돌아왔어요. 그리고 일본 유학 시절에 만난 일본인 후배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마사코가 홀로 조선으로 건너와 1945년에 결혼을 했지요. 이때 마사코는 이남덕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얼마 후, 한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어요. 북한 지역에 살던 이중섭은 남한으로 내려와 부산, 제주, 통영, 진주, 대구 등지로
피란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어요. 이때는 모두가 다 어려운 시절이었지요. 1952년, 어려운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부인이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어요. 이후 그는 늘 외롭게 살면서 부인과 아들들을 그리워했어요.
하지만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중섭은 1955년에 미도파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어요. 전시회는 성공적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중섭의 그림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팔린 그림 값을 떼이는 등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크게 실망하고 좌절하지요.
이중섭의 마음에는 일본으로 건너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예술인으로 감당해야 하는 좌절감 등이 커져 갔어요.
마음의 병이 깊어진 이중섭은 조현증(정신 분열)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어요. 몸과 마음이 모두 쇠약해진 그는 결국
1956년 9월 6일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홀로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그는 겨우 40세였지요.
부유한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서 일본 유학까지 했지만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며 힘겹게 살아온 이중섭.
그러나 그는 살아 있는 동안 힘찬 소와 행복한 어린이들을 그렸고, 오늘날 한국의 고흐이자 천재 화가로 인정을
받고 있어요. 그의 삶은 외롭고 불행했지만 늘 행복을 꿈꾸는 이상적인 사람, 어린아이와 같은사람이었답니다.
<이중섭의 생애와 작품을 다시 한번 와서 음미해봐야겠다. 가족을 부양하지 못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한 한 남자의
비극적인 생애가 가슴 짠하다.>
<서귀포의 골목길>
<여인숙과 여관의 차이점은???!!!???>
<한때 손님이 붐볐을 서귀포 극장>
<서귀포 혁신도시안에 있는 공원>
<알뜨르 비행장에서 본 산방산??!!>
<1100고지에 구름이 걸리고>
<이렇게 쏟아지는 날 우비 입고 바이크 타는게 정상은 아니지만, 열정이라 말하고 싶다. ㅋㅋㅋ >
<법환포구 밤바리>
< 제주도 입도 2달이 채 안되서 2천km 주행하고 뒷타이어 교체>
<2차대전에 일본군은 제주도를 최후 방어선으로 구축하고 4개 사진 7만여병의 병력이 주둔했다. 그 가운데는 관동군 731부대도 있었다는데.....>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은 왜이렇게 땅굴을 팠을까????>
<탐라왕자묘지를 보고 잠시 상념에 젖는다.>
<산록도로인 1115번 을 달리다가 범섬이 보여서 한 컷 찍어 본다.>
<모구리 오름 뒷길에서>
<혼인지에서>
<마지막 복귀길에 멀리 한란산 중턱을 타고 구름이 올라가고 있다.>
<알뜨르 비행장의 폐허가 된 시설물>
<비행장 지하벙커 들어가는 길....>
<강추하는 1119번 도로 풍경>
<서귀포 삼매봉 산책로에서 >
<송당초앞에서>
<혼인지는 삼성혈과 연관이 있다. 제주도의 역사의 시작점이라 할수 있다. 그 사연은????? >
1971년 8월 26일 제주특별자치도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마을 서쪽 지경의 숲에 자연적으로 생성된
약 500평 정도의 큰 연못이다.
이 연못에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3신인(神人)과 3공주(公主)가 혼인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연못 남쪽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기록된 현무암 비(碑)가 세워져 있다.
아득한 옛날 모흥(毛興)이라는 곳에서 고을나(高乙那)·양을나(梁乙那)·부을나(夫乙那)라는 3신인(神人)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하며 생활 하였다. 하루는 이들이 한라산 3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玉函)이 있고 관대(冠帶)를 하고 자의(紫衣)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었는데, 그 안에는 푸른
옷을 입은 15∼16세 가량의 3공주와 우마(牛馬) 및 오곡(五穀)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3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요. 우리 임금께서 이 세 분 공주를 두셨는데, 혼기가 차도록
배필을 구하지 못해 안타깝게 여기고 계셨소. 그러던 중 서해 높은 산에 3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는 걸 아시고, 신(臣)에게 명하여 3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 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버렸다.
3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3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연못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다. 이로부터 제주특별자치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3공주가 들어 있던 목함이 발견된 곳은 속칭 '쾌성개'라고 불리는 곳이며, 이것이 도착한 해안은 '황루알'이라고 불린다.
지금도 여기에는 3신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국이 암반에 남아 있다고 한다.
벽랑국은 "벽랑국(碧浪國)은 현재 전라남도 완도군" 탐라에 농경과 가축, 직조, 의상, 국가조직을 전했다. 신라 후기 경덕왕
때 불렸던 탐진현 남쪽 섬의 하나인 벽랑도(현재 소랑도)
[네이버 지식백과] 혼인지 [婚姻池] (두산백과)
<서귀포의 야경>
<법환포구에서 파는 당근주스....의의로 맛이 좋다.>
<성산 일출봉>
<탐라왕자묘지 앞에서 주인 기다리는 애마>
<1100도로 가는 길에서>
<실루엣>
<밤하늘 서귀포 그리고 망원경>
<한라산 바로위에 뜬 별들 그리고 구름>
깊어가는 가을은 정말 달리기 좋은 계절이다. 허나 노상 달릴수도 없는 노릇......보은병에 커피한잔 책한권,
멋진벗들과 좋은 음악 한소절 같이 들을수 있는 투어를 한번 기획해 봄이 어떨지.....
첫댓글 우와~~♥♥♥♥
😅토끼님 대박
고기는 많이 잡으셨어용??
눈이 정화되는 사진 감사합니다~
과찬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저두 드바꾸로 꼭 한번 가보고 쉽네요
사진 잘 봤씁니다
가을에 좋습니다!
나중 계획 있는데 참고하겠습니다~ㅎ
가시리 1118, 1119번 도로 강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