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성을 보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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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40편) 20230313
제목 : 백애(白崖)
충 국사에게 어군용이 묻되 "스님께서 백애산의 계실 적에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하니, 국사께서 동자를 불러 세우고 손으로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 또렷 또렷할 때엔 또렷또렷하고, 역력할 때엔 역력하라. 이후로 다시는 남의 속임을 받지 말라" 하니, 군용이 아무런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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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忠國師因魚軍容問 師住白崖山 如何修行 師喚童子 以手摩頂云 惺惺直然惺惺 歷歷直然歷歷 向後莫受人謾 軍容無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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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방긋)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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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 내용은 본성 자리를 보는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인데요.
사실 이것이 허공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 본다고도 할 수가 있고, 안 보인다고 말을 할 수도 있는 그런 건데요.
그러나 오늘 충 국사의 말씀처럼 깨닫고 본성 자리를 보면 아주 또렷 또렷하고 역력한 것을 느낄 수가 있답니다.
그래서 오늘 충 국사의 말씀을 단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수행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나는 본성 자리를 보면서 수행을 했느니라"
라는 내용이랍니다.
왜냐하면 본성 자리를 깨닫고 보면 아주 또렷 또렷하고 역력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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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답니다.
하나는 깨닫기 전의 수행과 하나는 깨닫고 나서의 수행이 있답니다.
깨닫기 전의 수행을 전 공부라 하고 깨닫고 나서의 수행을 후 공부라고 하는데요.
깨닫기 전의 수행은 마음을 비추어 보면서 하는 것이고,
깨닫고 나서의 수행은 본성 자리를 비추어 보면서 수행을 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오늘 내용은 깨닫고 나서의 수행을 말하는 것이고요.
깨닫고 나서는 오늘 충 국사의 말씀처럼 또렷또렷하고, 역력하게 하면서 본성 자리를 비추어 보면서 수행을 하실 수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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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말하는 (정수리를 어루만지면서) 란
[정수리]는 중심이 되는 지점으로 본성 자리를 뜻하는 것이랍니다.
[어루만진다] 란 본성(마음) 자리를 잘 어루만지면서 관리를 잘 하란 뜻이고요.
쉽게 말해 내 마음을 살살 달래면서 어루만진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깨달았다고 해서 아직은 부처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자리를 어루만지면서 관리를 하지 않으면 다시 뒤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얘기와도 같은 뜻이랍니다.
그리고
["또렷 또렷할 때엔 또렷또렷하고, 역력할 때엔 역력 하라."]
라는 뜻은 혜충 국사는 지금 본성 자리를 보는 느낌을 말하고 있는 거랍니다.
아직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
깨닫고 본성 자리를 보면 아주 또렷 또렷하고 확실하답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역력 하라]라는 뜻은 "자취나 기미, 기억 따위가 환히 알 수 있게 또렷하다"라는 뜻이고요.
쉽게 말해
[또렷 또렷하고 확실한 본성 자리를 특별히 노력을 잘 기울여서 어루만지면서 수행을 잘 해야 한다]
라는 뜻이랍니다.
제가 늘 말씀드립니다만 본성 자리는 또렷 또렷하고 역력하게 볼 수 있는 거랍니다.
그리고 "본성 자리는 볼 수가 없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은 모두가 이 자리를 모르고 계시는 분들이라고 보시면 되고요.
볼 수 없는 것이면 왜 견성(見性)이라 했겠습니까?
오늘 내용처럼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은 아주 또렷 또렷할 때엔 또렷또렷하고, 역력할 때엔 역력하게 본성을 보면서 수행을 이어나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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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도 열심히 해보라는 뜻에서 제 경우를 예를 들어보는 건데요.
오늘 내용은 저도 심열을 기울이면서 노력하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답니다.
제 경우는 하루에 95% 정도는 늘 의식이 깨어서 있으려고 노력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의식이 깨어있는 그 자체에서 의식을 살짝만 안으로 돌리면 바로 그 자리에서 또렷 또렷하고 역력하게 본성 자리를 보고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중요※)
제 경우는 일어나자마자 이것부터 챙기는 경우인데요.
어쩔 때에는 잠을 자면서도 챙기는 경우가 있답니다.
운동을 할 때나, 밥을 먹을 때나, 산보를 할 때나, 등산을 할 때나, 운전을 할 때나, 상담을 할때나, 글을 쓸 때나 제 경우는 늘 의식이 깨어 있으려고 노력을 한답니다.
이것은 스스로 노력을 하셔야한답니다.
아무리 글이나 말로 들어도 직접 노력을 하지 않으면 죽었다 다시 태어나도 모를 수 박에 없답니다.
그래야 오늘 충 국사의 말씀처럼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서 보면 바로 그 자리에서 또렷 또렷하고 확실한 본성 자리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의식이 깨어서 있어보라고 하는 것이고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을 [늘 깨어있으라]라고 표현을 하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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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는 남의 속임을 받지 말라)는 뜻은
가짜 스승인 들여우(野狐精)들에게 속지 말라는 뜻이랍니다.
특히 본성은 볼 수 없는 것이네? 있는 것이네? 하면서 대중들을 헷갈리게 가르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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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깨닫고 본성 자리를 보면 오늘 내용처럼 아주 맑고 청명하고 또렷또렷하고, 역력한 것을 알아차릴 수가 있는데요.
깨닫기 전의 분들은 이 자리를 아직 모르시기 때문에..
본인들의 마음을 자주 보시면서 수행을 할 수박에 없답니다.
깨닫기 전에는 본성 자리를 모르고 수행을 하기 때문에 재미가 없을 수는 있는데요.
이 고비만 잘 넘기고 본성 자리를 보면서 수행을 하시면 훨씬 재미도 있고 진도도 무척 빠르답니다. (진실)
깨달은 사람들은 오늘 내용처럼 아주 맑고 청명하고 또렷또렷하고, 역력하게 수행을 이어나갈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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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이렇게 아주 맑고 청명하고 또렷또렷하고, 역력하게 하는 자리라 해서 지혜광불(智慧光佛)이라고도 하는데요.
지혜광불이란 "지혜의 빛이 스스로 일어난다" 이런 뜻인데요.
왜냐하면 또렷또렷하고 역력한 바로 이 자리에서 모든 지혜는 물론이고 모든 것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팔정도(八正道), 육바라밀(六波羅蜜) 등의 마음들도 일어난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렇게 불성의 마음이나 지혜는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나는 거랍니다. (※)
이뿐만이 아니라 전부 다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극대화되려면 충 국사처럼 매일 열심히..
정수리(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내 마음을 잘 관리를 하면서..
또렷 또렷할 때엔 또렷또렷하게 역력할 때엔 역력히 들여우(野狐精/가짜)에게 속지 말고 잘 보고 관찰하면서 수행을 해나가야 한다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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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이런 느낌으로 해보세요. ^^
(1) 내가 나를 보는 느낌으로 알아차려 보십시오.
(2) 눈이 눈을 보는 느낌으로 알아차려 보십시오.
(3)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4) 의식이 깨어서 있어보십시오.
(5) 이것도 저것도 다 어려우시면 그냥 내 마음을 보십시오.
(제 경우도 마음보기로 했답니다. 효과도 좋았고요.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것으로 하시든 하시면서 의식을 살짝만 안으로 돌려보세요.
그러면 본성 자리를 알아차릴 수가 있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를 본다고 해서 나의 행동, 동작, 등의 물질이나 대상을 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떤 대상이나 형상 등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라 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는 것이랍니다.
특히 제일로 중요한 것은 속된 말로 머리가 돌아가면 절대로 안 된답니다.
수행을 하는 이유도 이 생각을 없애기 위한 방편인 것이고요.
생각이 끊긴 바로 그 상태에서 의식을 안으로 돌려보세요.
아무리 부처님이라 해도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또렷또렷하고 역력한 본성은 자리는 사라지고 말 것이니까요.
이것은 저도 수도 없이 시험을 해봤던 건데요.
생각을 하면 바로 없어지더라고요. (진실)
그러나 처음 하시는 분들은 번뇌 망상 등이 또는 허깨비 같은 것이 막 일어날 수 있는데요
이러한 현상들은 처음에는 누구나 겪는 것이니 당황하지 마시고 그냥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십시오.
생각이 일어나면 생각을 바라보시고, 허깨비가 보이시면 즐기는 마음으로 허깨비를 바라보십시오.
어차피 이러한 것들도 모두 오온의 작용이니까요.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덧 마음은 안정이 된답니다.
중요한 것은 하루에 한 번이라도 꾸준히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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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이나 위파사나로 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랍니다.
현재 이 순간 의식이 깨어 있으되..
또는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으되..
앞에 있는 어떤 물건이나 형상에 의식이 가 있으되 보고 있는 안쪽을 알아차려보십시오.
무슨 말이냐 하면 앞에 있는 어떤 대상이나 형상에 의식이 끌려가면 안 되고 보고 있든, 듣고 있든 바로 보고 있는 그 자리에도 의식을 두라는 뜻입니다.
보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이것이 매우 중요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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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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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내용)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학생입니다
저도 도인이 되고 십은데 도인이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림니다?
그리고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궁금해서 문의 드림니다.
(답변)
어느 선원에서 보내온 질문인데요.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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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안녕하세요?^^♡
학생이라고 하셨는데 중고등학생인지 대학생인지 모르겠지만 질문을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
학생이 질문을 주신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요. ^^
반갑습니다. ^♡^
아무쪼록 많은 학생들이 마음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요.♡
이번 내용은 가급적이면 어려운 한문식 표현들보다는 이야기 형식으로 내용을 꾸며 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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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도(道)를 "수리 수리마하 수리" 하면서 "금 나와라 뚝딱" 하면 금이 막 나오거나? 하늘을 막 날아다니고 그러는 것을 [도]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런 것은 아니고요.^^
도(道)는 [길]이란 뜻이랍니다.
쉽게 도(道)를 표현하면 드라마 같은 곳에서 보면 이런 대사가 있잖아요?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 길(道)을 알려주십시오?"
또는
"세상(우주 포함)은 지금 어떤 길(道/法)로 가고 있습니까?" 또는 "가야 합니까?"
또는
"세상(우주 포함)의 이치(道/法)는 무엇입니까?"
라는 표현들이 모두 도(道)에 해당하는 내용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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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道)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지는데요.
하나는 세상에서 말하는 도(道)가 있답니다.
흔히 세상의 도를 법도(法道)라 하지요.
그리고 불교에서 말하는 도(道)는 불도(佛道)라 하는데요.
이 둘은 그 대상(對象)부터가 전혀 다르답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말하는 법도(法道)는 그 대상이 모두 밖으로 향해 있는 도(道) 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은 그 대상이 모두 안으로 향해있기 때문입니다.
나를 기준점으로 했을 때 밖을 대상으로 하느냐? 아니면 안을 대상으로 하느냐?의 차이랍니다.
나의 의식이 밖으로 향해 있느냐? 아니면 나를 향해 있느냐?의 차이랍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법도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하는 외형적이고 구속력을 띠고 있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불법은 "이렇게, 저렇게 살아야 한다" 하는 구속력이 전혀 없는 그런 도(道/길)을 말한답니다.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하는 것이고요.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막 살아가는 것이 아니랍니다.
세상 법보다는 훨씬 높은 도(道/길)가 있답니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점들을 아시고 아래의 글들을 보시면 이해하기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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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도(道/길)부터 설명드리면 세상의 도(道)는 그동안 학문(學文) 적으로 발전을 해왔는데요.
세상에서 말하는 도(道)는 보통은 예절, 법도, 덕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도(道/길)를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절, 법도, 덕, 방법 등이 가장 크게 번성했던 시대가 중국에서 있었는데요.
이 시대를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라고 한답니다.
그리고 제자백가(諸子百家) 시대에는 도(道/길)를 가르치는 많은 스승들이 있었는데요.
얼마나 많았는지 백 개가 넘는다 해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했답니다.
백집이 넘었다는 뜻이지요.
또 이러한 스승들 밑에는 수많은 제자들도 몰려들었는데요.
당시에는 이러한 제자들을 한집 식구들(一家)이라 표현했답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집(家)은 유가(儒家)와 종횡가(縱橫家) 그리고 도가(道家) 정도가 남아 있는데요.
그 뒤로 인도에서 티베트를 거쳐서 중국으로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가(佛家)가 탄생하였답니다.
지금도 중국 사람들은 일가(一家)라는 말을 아주 많이 쓰는데요, 이 말은 '같은 식구'라는 뜻이랍니다.
불가(佛家) 그러면 부처님을 스승으로 해서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란 뜻이고요.
이렇게 제자백가 시대에는 여러 스승들과 집(家)들이 있었는데요.
대강 그 당시 사람들을 살펴보면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답니다.
[춘추 전국 시대의 여러 학파. 공자(孔子), 관자(管子), 노자(老子), 맹자(孟子), 장자(莊子), 묵자(墨子), 열자(列子), 한비자(韓非子), 윤문 좌(尹文子), 손자(孫子), 오자(吳子), 귀곡자(鬼谷子) 등의 유가(儒家), 도가(道家), 묵가(墨家), 법가(法家), 명가(名家), 병가(兵家), 종횡가(縱橫家), 음양가(陰陽家) 등을 통틀어 이른다.]
대충 보아도 무진장 많지요.^^
그중에서도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집(家) 은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는 공자(孔子) 계열의 유가(儒家)가 있고요.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귀곡자(鬼谷子) 계열의 종횡가(縱橫家)가 대표적인 도(道/길)를 가르치는 집(家)이었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교를 대단하게 여기고 있잖아요?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그렇지가 않답니다.
제자백가 시절이나 지금이나 유교는 널리 퍼지기는 했지만 실용성 면에서는 별 볼일이 없었기 때문에 종횡가에 완전히 눌리다시피 했었는데요.
공자만 해도 나라에는 크게 쓰이지를 못했답니다.
그러나 귀곡자 쪽으로는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인물들이 수두룩한데요.
이들 모두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도(道/길)를 가르치던 집(家)들 이였답니다.
유가와 종횡가 두 집안을 살펴보면..
유가(儒家) 쪽으로는 굳이 설명을 안 하더라도 공자의 제자로는 자로(子路), 안회(顔回), 자공(子貢), 증자(曾子) 등과 뒤에 맹자(孟子) 정도가 있는데요.
만약에 맹자가 없었다면 공자도 없었을 정도로 유교 쪽은 그 당시에는 별 볼일이 없었답니다.
그러나 종횡가 쪽으로는 당시에나 지금이나 군사, 정치, 외교, 사업 쪽으로는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는데요.
여기서 배출된 인물들만 보아도..
진시황제를 도와 전하를 통일한 이사(李斯)를 비롯해서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한 한비자(韓非子)가 있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손자병법을 지은 손무(孫武)를 비롯해서 강태공(姜太公), 방통, 제갈공명, 조조, 사마의, 이순신, 다케다 신겐, 도꾸가와 이에야스, 등이 모두 종횡가의 달인 들이랍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경제 쪽으로도 응용이 되어 크게 성공한 사람들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은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와 이병철 같은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병철 같은 경우는 일본에 갈 때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의 책들을 보면서 그의 기법을 그대로 배워서 삼성에 응용한 인물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인물들 모두가 종횡가의 도(道/길)에 뿌리를 두고 있답니다.
종횡가의 가르침들을 잠깐 살펴보면..
종횡가를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전략(戰略)과 전술(戰術)을 가르치는 도(道/길)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우리도 고려 때까지만 해도 널리 공부하던 학문이지만 조선이 들어서면서 금지된 책이랍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너무 똑똑하고 사악하면 다루기가 힘들다는 이유에서 였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양반들과 귀족들은 몰래 뒤에서 배우고 익혔다고 전해진답니다.
그리고 병법(兵法) 만큼은 나라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병법만 따로 뽑아서 전했다고 하는데요.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략(略)이나 술(術) 같은 글들은 모두가 남의 눈을 속여서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그런 기술들을 가르치는 도(道/길)라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략(略)은?
계략(計略), 묘략(妙略), 중상모략(中傷謀略), 책략(策略), 정략(政略), 전략(戰略), 침략(侵略) 등이 있고,
술(術) 은?
마술(魔術), 도술(道術), 요술(妖術), 전술(戰術), 술수(術數), 주술(呪術), 술책(術策), 술법(術法) 등이 있는데요.
단어들만 보아도 섬뜩한 단어들이잖아요?
모두가 사람들 눈과 귀를 속이거나 꼬여서 궁지에 몰아넣는 단어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래서 군인이나 외교관 쪽 사람들이 많이 공부하는 학문이고요.
군인이나 외교관은 전부가 상대를 속여야 하는 집업이거든요.
전쟁을 할 때 적들을 속이지 않으면 어떻게 이기겠어요?
병법이라는 것이 모두 상대를 속이는 기술들이거든요.
사업도 전략과 전술을 모르면 큰 사업을 하기에는 어렵답니다.
요즘은 특히 더 하고요.
종횡가를 잘 펼지는 나라로는 중국, 북한, 일본, 미국 등이 있는데요.
한국은 아직까지도 유교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다고 보시면 되고요.
공자 계열의 유교도 크게 다르지 않답니다.
유교의 내용들을 보면 대부분이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를 잘 모셔야 한다." 등
유교의 근본은 철학, 윤리, 정치 등에 한정되어 있는데요.
뒤에 노자(老子)에 의해 덕(
德)을 중요시하는 도덕경(道德經)이 나오긴 했지만
이 또한..
사람들 간에는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하고, 나라와 부모와 친구들 간에는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들이 유교 계통의 주류 가르침인데요.
이러한 가르침들은 모두가 외형적으로 "내가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 하는 가르침들이 대부분이랍니다.
사실 유교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마음을 속이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구속력을 가지고 있고, 가식(假飾的)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물론 진정으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형식적으로 인사하고 사람들을 대하지 않나요?
기본적인 예절이나 예법에 따라서 형식적으로 지키고 있잖아요.
불성(마음)처럼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나 하는 것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불교도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그래서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했다면 불성의 마음이 보여야 한다는 뜻이고요.
물론 진정으로 마음에서 울어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가 않지요.
그렇지 않나요?
내가 하기 싫을 때도 있는데 군자의 법도를 따지다 보면 예의상 하기 싫어도 해야 할 때가 더 많잖아요?
그래서 조선의 유교도 겉으로는 선하고 착한척했지만 뒤에서는 일반 백성들 보다 더한 악행들을 저지르는 일들이 흔했던 것이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학생도 대강은 알잖아요?
정치판이나 사업 쪽으로만 보아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마음)으로는 다들 그렇고 그런 것을요?
이렇게 세상의 도(道/길)는 외형적이고 가식적인 도(道/길)가 대부분이랍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가르치는 도(道/길)가 아니거든요.
모든 것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인데도 말이지요.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얘기가 나오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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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도(佛道)는 정 반대의 가르침이랍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외형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랍니다.
진정한 불교의 도(道/길)는 깨닫고 증득을 해서 모든 것을 이 마음 한자리에서 이루어지는 도(道/길)랍니다.
이 마음 하나로 말이지요..
서산대사처럼 어쩔 수 없이 상대와 싸움을 할 때에도 상대가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가르침이 불교의 가르침이랍니다.
학생이 몰라서 그렇지 불도(佛道)에도 어마 무시한 마음이 있답니다.
예를 들면
야차(夜叉)의 마음도 있고, 절 입구에 있는 무섭게 생긴 사천왕(四天王) 들의 마음도 모두 불도(佛道)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랍니다.
대표적인 것이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이 유황과 불로 전부 멸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창세기 19장)
이 또한 성령(불성)의 마음을 뜻하는 내용이랍니다.
그래서 불교는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의 가르침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가 정답이랍니다.
그러려면 불성을 증득해야 하는 것이고요.
아무리 "착하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하면서 가르치고 배우고는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던가요?
잘 안되잖아요?
안되는 이유는 다들 머리로만 알고 있을 뿐이지 마음으로는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거든요.
이렇게 불교에서 말하는 불도(佛道)란
[불성의 길]을 뜻하는 것인데요,
불성의 길이란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바뀐 마음의 길을 말하는 거랍니다.
쉽게 말하면 마음에도 크게 두 종류의 마음이 있는데요.
하나는 일반 중생들의 마음이 있고요.
이것을 한문으로 중생심(衆生心)이라 한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불심(佛心)이 있는데요.
이 불심(佛心) 이 가는 길을 불도(佛道)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렇게 불도(佛道)의 길을 가는 사람들을 도인(道人)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이렇게 불심(佛心)을 갈고닦는 사람들을 도사(道士)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도사들이 갈고닦아야 하는 것이 팔정도(八正道)와 육바라밀(六波羅蜜) 등이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렇게 불심(佛心)의 마음 법을 불법(佛法)이라 하는 것이랍니다.
이 불법(佛法) 안에는 인간 세상은 물론이고 전 우주를 포함해 세상의 모든 이치(理致)가 들어 있다고 보시면 되는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불법(佛法)이든, 불도(佛道)든, 불(佛) 자가 들어가는 모든 단어들은 [불성의 마음]을 뜻하는 것이랍니다.
그리고 또 여기서 말하는 [불성의 마음]이란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중생의 마음에서 불성의 마음으로 바뀌게 된다는 뜻이고요.
이렇게 불성의 마음으로 바뀌는 것을 [증득]이라 한답니다.
이렇게 불성의 마음을 증득했을 때 비로소 학생이 질문한 불도(佛道)의 길을 제대로 갈 수가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이 불도의 길은 그 어떠한 것에도 거침이 없고 당당하고 지혜롭답니다.
그래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고도 하는 것이고요.
그러면 학생이 질문한 내용처럼..
[저도 도인이 되고 싶은데 도인이되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질문드림니다?
그리고 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궁금해서 문의 드림니다.]
라는 답변은 불성을 증득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답니다.
그리고 불성을 증득하는 방법은 오직하나..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시고 계시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멸성제(滅聖諦)라 하는 것이고,
이 멸성제를 이루려면 앞에 있는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에 숙달이 되어야 하는데요.
그 방법이
1. 내 마음을 알아차려라.. (苦)
2. 내 마음에 모여 있는 것들을 알아차려라.. (集)
랍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이것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이 말의 뜻은 알아차림이 100%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비우고 버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어떻게 나를 버릴 수가 있을까요..?
,,
그리고 외도(外道)라는 것도 있는데요.
외도(外道)란 불도(佛道) 외에 가르침들은 모두가 외도로 보시면 된답니다.
어떤 가르침이 나쁘다, 좋다를 떠나서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불도(佛道)에는 나쁘고, 좋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좋자고 했는데 나쁘게 되는 경우도 많고, 나쁘자고 했는데 좋게 되는 것들도 많은 것이 세상의 도(道/길) 라면..
깨닫고 보면 불도는 좋고 나쁜 것 자체가 아예 없답니다.
좋게 마음을 먹으면 좋은 것이고, 나쁘게 마음을 먹으면 나쁜 것이 불심(佛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 것이고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성에는 야차나 사천왕 같은 마음도 있다고 했잖아요?
불성의 마음에는 이렇게 자비심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웬만하면 그런 경우는 아주 드물지만 불성의 마음이 한번 돌아서면 정말로 무섭답니다.
그 자리는 삶과 죽음이 없는 자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요.
그래서 '부처가 한번 마음이 돌아서면 돌려세우기가 어렵다' 하는 거랍니다.
"이거는 이대로 두어서는 많은 중생들의 마음이 다쳐서 안되겠다"
싶으면 불성의 마음은 자비의 마음에서 야차의 마음으로 돌려서 불같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데요.
대표적인 인물이 서산대사나 사명당 외에도 고려 때에는 법언(法言)과 같은 도인도 계셨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도인들이 있었고요.
어쩔 때에는 일부러 마음에서 화를 일으켜서 처리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앞에서도 의연한 윤봉길이나 안중근 같은 사람들도 현생에는 불법을 못 만나 못 깨달았을 뿐이지 전생에는 큰 도인들이었다고 보는데요.
왜냐하면 불법의 특징 중 하나가 죽음 앞에서도 아주 의연한 특징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속된 말로 겁이 없답니다.
이렇게 불도란 일부러 착하게 살려고도 안 하고 그렇다고 일부러 나쁘게 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불심(佛心)의 길이고 이러한 길을 불도(佛道)라 하는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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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외도란 특히 현재 절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는 천도재나 명패 봉안 등은 모두가 외도로 보시면 되는데요.
그 이유는 부처님 가르침에는 이러한 가르침들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부처님은 이러한 것들을 경멸하셨답니다.
불심(佛心)에는 이러한 마음은 전혀 없거든요.
따라서 이러한 것들은 불도(佛道)가 아니랍니다.
,,
그러면 어떻게 해야 불성의 마음을 증득할 수 있느냐 하면?
다시 반복하면..
불성을 증득하는 방법은 오직하나..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부처님은 말씀하시고 계시답니다.
이것을 한문으로 멸성제(滅聖諦)라 하는 것이고,
이 멸성제를 이루려면 앞에 있는 고성제(苦聖諦)와 집성제(集聖諦)에 숙달이 되어야 하는데요.
그 방법이
1. 내 마음을 알아차려라.. (苦)
2. 내 마음에 모여 있는 것들을 알아차려라.. (集)
왜냐하면 이렇게 마음에 모여 있는 것들 때문에 원인이 되어 많은 것들을 일으키거든요.
그리고 부처님은 이것을 [알아차림의 확립]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이 말은 알아차림이 100%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내 마음을 비우고 버릴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대강 이정로 하고요.
차후에도 또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을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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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를 끝내고 도성제(道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보시면 된답니다.
도(道)는 깨닫고 난 후의 후 공부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이것은 깨닫고 증득을 하기 전의 분들은 신경을 안 쓰셔도 된답니다.
왜냐하면 도성제(道聖諦)는 마음의 힘(道力)이 없으면 행하기 어러운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이 마음의 힘을 도력(道力)이라고 표현하는 것이고요,
혹자들은 도성제를 거쳐야 깨닫고 증득을 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분들도 많은데요.
이러한 내용들은 모두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마음에 힘이 없는데 어떻게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행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것들을 걸림이 없이 행하기 위해서 깨닫고 증득을 하려는 것인데요.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苦)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모이고,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集)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滅)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육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道)
초보자분들은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苦) 와 집(集)>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럼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시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시지요.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 (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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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 16 법념처 E 4성제 4도성제(道聖諦 Maggasaccam)
2. 괴로움의 소멸로 이끄는 길의 진리 도성제
도성제는 본성(불성/성령/마음)의 길로 이끄는 가르침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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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5:07~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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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늘도 마음을 관찰하면서 알아차리는 수행법인데요.
초보자분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그냥 부처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시면 된답니다.^^
오늘 내용도 간단하답니다.
좌선을 하시든, 아니면 산보를 하시든, 아니면 일을 하시든 하시면 되는데요.
수행은 고집멸도(苦集滅道)가 전부랍니다.
① 고(苦)는 [내 마음을 보는 거랍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오늘 내용처럼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라고 하셨던 거랍니다.
그리고
"아주 열심히 무상에 대한 지속적이며 철저한 이해를 가지고 알아차림을 지니며,"
란
② 집(集)은 [내 마음에 어떤 것들이 돌아다니는지 잘 관찰해 보시고 "이러한 것들은 무상한 것이다" 하면서..]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 대한 어떠한 혐오도 제거하면서 지낸다."
라고 말씀하셨듯이..
③ 멸(滅)은 [내 마음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들을 제거하면서 지낸다.]
라는 내용이랍니다.
그러면 도(道)는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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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유마경(維摩經) 내용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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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유마의 가르침을 받는 보살들)
1:17:59~
보리에 대하여
보리란 정작 뉘라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미륵이시여, 부디 저 천신들로 하여금 보리를 무언가 특별한 것인 양 망상케 하는 일은 삼가해 주십시오.
보리란 몸으로 깨닫는 것도 아니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도 아닙니다.
보리란 모든 상(相)이 적멸한 자리입니다. 보리란 일체의 인식 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리란 아무런 의지도 일어나지 않는 것, 모든 견해를 끊어내는 것입니다.
보리는 모든 분별을 여의고 움직임과 생각과 마음에 동요로부터 훌쩍 벗어나 있습니다.
보리란 아무런 바람도 품지 않는 것, 일체의 얽애임에서 벗어나 집착 없는 상태에 이르는 것입니다.
보리란 진실의 극한(極限)에 머무는 일로서 마음은 물론 그 인식 대상인 법도 없는 까닭에 문자 그대로 불이
(不二/차별이 없음)이며 허공과 같기 때문에 진실로 평등합니다.
보리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멈추지도 않고 변화하지도 않는 무위(無爲/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음) 그 자체입니다.
보리란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과 의지를 꿰뚫는 것이지만 결코 인식의 장(場)인 십이처(十二處/육근과 육경)를 그 문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보리란 또 다른 생활을 유인하는 번뇌 및 일체의 습관적인 오류(習氣/습기)를 벗어나 있기 때문에 불순물이 전혀 뒤섞여 있지 않는 것입니다.
보리란 처(處/이곳)와 비처(非處/저곳)를 떠나 있기 때문에 장소와 방위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보리란 결코 무엇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여성(如性/같은 성품) 안에 존재하는 것도 아닙니다.
보리는 단지 하나의 명칭일 뿐이며 모든 명칭은 실제와 무관합니다.
보리는 취할 것도 버릴 것도 아니기에 생각의 물결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보리란 아무런 혼란도 없고 청정하며 밝게 빛나는 것으로서 원래 깨끗합니다.
보리는 인식이라는 것도 없고 아무런 대상도 갖지 않습니다.
보리란 모든 존재의 평등성을 이해하는 일이기에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유로서 말할 수 없는 것이기에 절대적입니다.
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기에 미묘하다고 말합니다.
보리란 허공과 같은 성질의 것이기에 어디에든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그것은 몸에 의해서든 마음에 의해서든 깨달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몸은 단지 풀이나, 나무나, 돌담이나, 도로나, 그림자 같은 것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은 정작 비물질적인 것이고 모양과 근거가 없는 것이며 내보일만한 대상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그의 이 같은 말에 당시 무리 가운데에 있던 이백 명의 천신들이 그 자리에서 제법(諸法/가지가지의 모든 법)은 불생(不生/모든 현상은 진여 그대로의 모양이며 늘 존재하는 것으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님을 뜻하는 말.)이라는 확신(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습니다.
저는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하기에 저는 저 고매하신 분의 병문안을 엄두조차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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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여기서 말하는 보리(菩提)란 쉽게 말해 [깨달음]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용하 운허 [불교사전]에는 이렇게 해석되어 있었답니다.
[도(道), 지(智), 각(覺)이라 번역은 두가지가 있다. 1, 불교 최고의 이상(理想)인 불타 정각의 지혜, 곧 불과(佛果) 2. 불타 정각의 지혜를 얻기 위하여 닦는 도(道). 곧 불과에 이르는 길을 말함]
이쪽 분들은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될 것 같은데요.^^
이해가 안 가는 한문은 해석을 해보시면서 스스로 공부해 나가시면 된답니다.
중요한 것은 위에 내용들과 자신의 현재 마음과 비교를 해보시면서 부족한 것이 있으면 마음을 닦아 나가면 되는 것이고요..
그리고 위에 내용에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요.
[그것은 몸에 의해서든 마음에 의해서든 깨달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라는 내용이 나오잖아요?
이 내용은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깨달음이란 지금 유마거사도 말씀하셨듯이
깨달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쉽게 말해 깨달음을 증득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엄청 많은데요.
다 틀린 말씀들이랍니다.
이미 깨여있는데 뭘 더 깨달을 수 있을까요?
깨달음이란 이미 내가 깨어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깨달음이랍니다.
그래서 늘 의식이 깨어있어보라고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예수님도 [늘 깨어있으라] 했던 거랍니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본래 있는 본성(불성/성령) 자리를 보고 아는 것인데 어떻게 '얻는 것이다' '증득하는 것이다' 할 수가 있을까요?
의식이 깨어있는 그 자체가 본성 자리인데요.
"본성을 얻는다" "증득한다"라는 말은 깨달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중생의 마음에서 본성(불성/성령)의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증득이라 하는 것이고 얻었다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견성만 말할 뿐 증득은 말하지 않는다" 란 어느 종파의 가르침은 매우 잘못된 가르침이라 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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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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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능엄경의 말씀하시기를 "견을 볼 때에 견은 견이 아니다. 견은 견까지도 여의었으므로 견으로도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ㅡ
(선답)
누가 저에게..
"불교에서 말하는 견(見)은 무엇입니까?"
하고 선문을 한다면 저는 이렇게 선답을 하겠습니다.
"무견(無見)입니다"
라고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볼 것도 없기(無) 때문입니다.
안과 밖이 모두 무(無)요 공(空)인데 무엇을 보고 들을 수 있을까요?
이 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들이 무상(無常)인 것을요..🙏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능엄경에 말씀하시기를 "견을 볼 때에 견은 견이 아니다. 견은 견까지도 여의었으므로 견으로도 미치지 못한다" 하였다.]
,
이번 내용은 본성 자리를 깊이 견(見) 할 때에 느낌을 표현한 내용인데요.
합당한 선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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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41편) 20230403
제목 : 간희(看戱)
충 국사에게 숙종황제가 광대놀이 구경을 가자고 하니, 국사가 대답호대 "어느 몸과 어느 마음으로 구경을 하리까?" 하였다. 황제가 거듭 청하니, 국사가 말호대 "몹시도 구경을 좋아 하시는군요" 하였다.
(한문 원본)
忠國師因肅宗帝請看戱 師云 有什麽身心看戱 帝再請 師云 幸自好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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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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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혹시 지난 글들이 필요하신 분들은 아래의 사이트로 들어오시면 보관해둔 자료들이 있답니다.
https://cafe.daum.net/119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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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서암 큰스님의 법문을 시리즈로 보고 있는데요.
같이 들으면서 공부해 보시지요.^^~
(7) 법문 동영상
제목: 서암스님 - 생명의 실상을 바로 알아라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4yzpqVBZOIQ
~♡~
《음악과 함게 수행을..》
연세가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그동안 우리들끼리만 공유하고 있었던 [추억의 음악 캠프]인데요.
건달바(乾達婆)처럼 얼마든지 음악을 통해서도 수행을 할 수가 있답니다.
방법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중에서 귀에 의식을 집중하면서..
"지금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인데요.
★ 중요
의식이 음악에만 끌려들어 가면 내가 지는 것이고요.
듣고 있는 [나]로 의식을 집중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조견오온(照見五蘊)법 이랍니다.
오늘 곡은 너무나 유명한 곡이지요.
같이 귀로 들어보시면서 듣고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참구해 보시지요.
제목 : My Heart Will Go On (1998 "These are Special Times" TV special) (Official HD Video)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bf-HGyke89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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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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