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조망..
영동 민주지산
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물한계곡-주차장<13.6km. 5시간>
전북 무주에서 용화를 지나
충북 영동 황간으로 넘어가는 49번 지방도 도마령,
칼을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었다고 하여 '도마령(刀馬岺)'이다
고갯마루가 해발 800m,
산을 접으면서 올라가는 것 같이
구불구불 포개지는 오르막길이기에
산악회 버스도 힘겹게 고갯길을 오르고
맨 뒷자석에 앉아 있는 나도 함께 숨이 차다
[도마령(刀馬岺 800m)에서 바라본 'S자형 길'과 덕유산]
그래서 더 아름다운 도마령,
고개 아래 충북 최남단인 조동마을에는
인체에 최적의 기압으로 생체리듬에 가장 좋다는
해발 700m에 자리잡은, 민주지산 자연휴양림이 있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자연 그대로의 숲속에서
다양한 식물군락들이 분포한 생태계와 호흡하며
자연과 하나되어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 갈 수 있다
[덕유산(줌)]
고갯길 서쪽은 천만산(960.1m)이 있고
용호정이 있는 동쪽에는 각호산(1,176m)이 자리해
천만산 아래는 천마령이, 각호산 아래에는 민주지산 산줄기가 첩첩산중을 이루는데
그 사이를 비집고 산을 넘는 길이 바로 '도마령'이다
삼국시대 때는 신라와 백제가 접경을 이루었던 산이어
'천만산'과 '천마령' 부근에는 옛 성터가 남아 있고, 능선 주변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데
마을 사람들 이야기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그곳은 군대에 쓰일 말을 조련하던 터였고,
당시 말 천 마리를 키웠다고 해서 '천만산 천마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하산(633.9m) 저 멀리 금남정맥 상의 대둔산과 계룡산 방면(줌)]
그런데 2002년과 2003년,
태풍 ‘루사’와 ‘매미‘가
차례로 영동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때 나라 곳곳은 심한 물난리로 큰 재해를 당했는데
이곳 도마령과 주변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다
[도마령(刀馬岺) 주차장]
도마령은
구불구불 고갯길 자체의 아름다움도 있지만
첩첩이 둘러싸인 영동의 무수한 산들을 그 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로, 재해 복구 사업을 하면서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는 명소를 만들고자 정자를 세우게 되었고
[상용정(上龍亭)]
정자의 위치는
고갯마루에서 40m 더 높은 해발 840m의 언덕에 세워
이름을, 상촌면(上材面)의 '上'자와 용화면(龍化面)의 '龍'자를 따
상용정(上龍亭)이라 명명했다
[상용정(上龍亭)과 천만산(960m) 산자락]
2005년 6월 준공한 상용정은
목조 와가 팔각정으로 이익공식 공포로 시공하여 웅장함을 더하였다
목재는 토종 소나무를 사용하였으며
초석은 화강암으로 우리나라 대표적 국악기인 대금을 형상화하였는데
이는 국악의 고장 영동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뜻에서다
[상용정에서 바라본 둔전리와 삼봉산(930.4m) 방향(줌)]
도마령 길은 구절양장 춤을 추며
영동의 상촌으로.. 무주의 용화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뻗어 나가는데
그 풍경이 하도 조화로워 바라보는 시선을 한참 묶어 둔다
[소나무가 빽빽한 길]
10:15분,
그런 아름다운 고갯마루에서 산행을 시작해
소나무와 굴참나무 빽빽한 산길을 오른다
[겹쳐질듯 S자의 곡선이 진풍경을 이루는 도마령길]
주변의 산보다 기온이 낮고
눈도 많이 내리는 산으로 알려져 있기에
산행을 나서기 몇일 전부터 내심, 눈이 쌓여 있거나
눈이 내려 주기를 내심 기대했지만, 하늘은..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라는 듯 날씨가 청명했다
그래서 산행내내 탁트인 시야로
봉봉마다 운무가 아름답게 펼쳐진 꿈결같은 산릉을 바라보면서
구름 위를 걷듯 신선처럼 산길을 걷는 행복을 누렸다
산세는 처음부터 가팔랐다
그러나 힘들때 쯤이면 내리막이 나와 허리를 펼 수 있고
그렇게 봉우리 2개를 넘으면,
키 작은 산죽이 나타나 분위기를 돋우고
그러한 봉우리를 2,3개 더 넘으면,
[가야할 각호산(角虎山), 민주지산(岷周之山), 석기봉(石奇峰), 삼도봉(三道峰)]
앞으로 걸어야할
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등
한눈에 보아도 봉봉의 이름을 알아챌 수 있을 만큼 개성을 보이는
고봉준령들이 시야에 들어와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헤아려 본다
도마령에서부터 줄곧
별유선경(別有仙境)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걷는 덕유산은
산길을 걸을수록 조금씩 눈앞으로 다가와 감동을 더하고
걸을수록
점점 멀어지는 도마령과
조동리 마을과 백하산 언저리의 선계같은 운무는 여전히 압권이다
[각호산(角虎山 1,176m) 정상부의 분위기]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는 각호산(角虎山),
호랑이 자체도 위협적인 존재인데 거기에 뿔까지 달렸다니..
이런 전설을 만들어낼 만큼의 위협적인 기세는 어떤 모습일까
그래서 그런지
각호산의 정상은 두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고,
멀리 동쪽과 서쪽에서 바라보면 M자형을 이룬 뿔처럼 보이며
남쪽 용화면에서 바라보면 사람이 아기를 업고 있는 모습으로도 보인다고 한다
[밧줄을 붙잡고 몇굽이를 올라서야 비로서 각호산 정상이다]
바로 저 앞이 각호산 정상이지만
굴곡진 바위를 몇 굽이 오르내려야 비로서 올라 설 수 있다
[각호산(1176m) 표지석. 충청북도 영동군]<도마령 1.5km, 민주지산 3.4km>
도마령에서 1.5km,
약 30여분을 걸으니
충북의 최남단인 영동군 상촌면과
용화면 경계지점에 위치한 각호산(角虎山) 정상이다
그리고 눈앞에 다가오는 선계같은 풍경들!
[각호산(角虎山)에서 바라본 덕유산 설천봉(德裕山 雪川峰,1520m) 일원]
구름이 떠받치고 있는 듯
봉긋 솟아오른 덕유산 설천봉과
그림같이 펼쳐진 은빛 하늘 아래
슬로프에 그려진 하얀 눈의 향연이
신의 축복을 받은 듯 너무 환상적이다
[각호산(角虎山)에서 바라본 조동리와 백하산(633.9m) 방면]
이런 모습을
1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가야할 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능선]
[각호산 내림 길]
이곳에 눌러앉아
하염없이.. 펼쳐진 사위들을 바라보고 싶지만
갈길이 멀기에
각호산 험준한 바위벽을
밧줄을 잡고서
또는 클라이밍 다운으로 내려 선다
[내려와 뒤돌아 본 각호산(角虎山)]
[닭벼슬 같은 암릉길]
[분위기가 있는.. 키 작은 산죽길]
바위지대를 올라
지나온 각호산 준봉과 무명봉을 돌아본다
[민주지산(岷周之山) 대피소. 삼도봉에서 300m 지점]
그리고 만나는 민주지산 대피소,
이 산에 들기 몇일 전, 동영상을 통해
특전사 사고 소식을 접하곤 큰 충격을 받았던 곳이다
민주지산은 산에 드는 사람들이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아픈 사례가 있다
1998년 4월 1일,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는 봄날에
특전사 흑룡부대는 '천리행군'이라는 특수 훈련을 거행했다
사고가 있던 날 기상대에서는 약 10mm 정도의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으나
봄이기에 특전사 흑룡부대는 계획대로 민주지산을 통과하는 행군을 강행하였다
그러나 기상예보 와는 다르게 비는 거세게 쏟아져내렸고 급기야는 눈으로 변했다
해가 기울어 어둠이 깊어지니 비에 흠뻑 젖은 특전사의 체온은 급격히 떨어졌고
날씨는 점점 더 추워져 체감온도가 영하 30도를 웃돌았다
그러나 특전사 행군은 이미 민주지산 정상 부근을 오르고 있었기에
되돌아 가는 것보다 앞으로 전진하는 게 더 유리한 상황이었다
눈에 미끄러지고 자빠지면서 행군을 하다보니 시간은 자꾸 지체되었고
엄습하는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요원이 발생했다
급격히 떨어진 기후에 무전기까지 먹통이 되어 구원 요청도 할 수 없는 상황..
최고의 훈련으로 단련된 특전 용사들이었지만 천재지변에 있어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서둘러 간이 천막을 설치하고 대원들의 체온을 유지하려
불을 피우고 인공호흡을 하는 등 응급처치를 하였으나
쓰러진 병사들은 깨어나지 못하고 하나 둘 죽어 갔다
한참 후에 급파된 119 구급대와 구조대원들의 활약으로
더 이상의 희생자는 나오지 않았으나 이미 유명을 달리한 특전사는 6명이나 되었다
.................................
그래서 이 사고 이후
민주지산 정상 아래에 대피소를 만들고 동편엔 팔각정을 세웠으며
민주지산 주변 곳곳에 물한계곡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여러 갈래 만들어 두었다
[민주지산(岷周之山) 표지석(1,241.7m)].<각호산 3.4km, 석기봉 2.9km>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민주지산 정상에 올랐다<12:00>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용화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6.25동란 때 빨치산들과 치열하게 싸웠던 격전지이기도 하다
지형상으로는 소백산맥을 따라 덕유산 중심의 산지에 속하는 산으로
물한계곡을 끼고 있어 그 위세를 더하고 있으며,
특히 대불리에서 석기봉으로 이어지는 계곡과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계곡은 5km가 넘는 심산유곡으로
아직도 때묻지 않은 자연미가 돋보일 뿐 아니라
삼도봉과 석기봉을 거쳐 민주지산을 잇는 능선에는
봄이면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민주지산(岷周之山)에서 바라본 천만산(960.1m), 도마령(843m), 각호산(1,176m)]
민주지산(岷周之山)은
산 이름이 왜 민주지산으로 불리는지에 대해선 정확한 내력이 없다
다만 충청도 쪽에서 바라봤을 때 산세가 민두름(밋밋)하다고 해서
'민두름산'이라 불렸고 일제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민주지산으로 굳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나온 각호산 아래 무명봉 방면을 줌으로 당겨본 풍경]
[가야할 석기봉과 삼도봉 저 멀리 가야산을 줌으로 당겨본 풍경]
[대덕산 저 멀리 마치 지리산 반야봉과 흡사한 봉우리가 정녕 반야봉?]
[덕유산 줌]
[백하산 방면 줌]
[민주지산 하산길에서 물한리로 내려가는 쪽새골 삼거리]
[뒤돌아본 민주지산(岷周之山)]
[가야 할 석기봉(石奇峰)]
[운치 있는 산죽길과 석기봉(石奇峰)]
[원시의 숲속 같은 산길]
[나무계단]
[산죽과 석기봉(石奇峰)]
암릉을 에돌아 오르면
또 다른 바위군이 나타나고
이어 밧줄을 매어 놓아
힘겨워 보이는 나무 한 그루 있어
가던 길을 멈춘다
이 나무가 무슨 죄 인가..
나무를 지나 서면
기기묘묘한 석기봉(石奇峰)이 저 만큼 모습을 드러내고
또 다시 바위덤을 올라서고 내려서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면
표지석이 없는.. 석기봉(石奇峰) 정상에 오른다<12:35>
[석기봉(石奇峰 1,200m)]
석기봉은 민주지산 주릉 중에서 가장 빼어난 봉으로
"기이(奇異)한 돌(石)로 된 봉(峰)우리"라 하여 석기봉(石奇峰)이다
암석이 돌출되어 마치 송곳처럼 솟아난 봉우리,
모습이 마치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고도 부르는 이 바위봉은
전북 무주군 설천면 미천리(美川里)와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의 도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일명 식품봉(食品峰), 산에 바위옷(石衣)이 많아
석의봉(石衣峰)이라고도 부른다
[석기봉(石奇峰)에서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으로 내려가는 남쪽 길]
석기봉에서 남쪽 설천면 방면으로 100m쯤 내려가면
60° 경사진 암벽에 높이 6m, 폭 2m 크기로 양각된
머리가 셋 달린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이 있다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석간수(石間水), 제석단(祭石壇) 전경]
몸 하나에
천(天), 지(地), 인(人)을 상징한다는 머리 세개가
탑처럼, 3단으로 올려진 특이한 모습의 마애불!
그런데 더 신기한 건
이 삼두마애불(三頭磨崖佛)이 바라보고 있는 곳이
옛 백제와 신라의 접경지인, 무주군 설천면 나제통문이라니,
혹여 이 마애불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하여 조성된 수호신이 아닌지..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오른 어깨에 납의를 걸치고
양쪽어깨에서 가슴까지 영락(瓔珞)을 두르고 있으며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 한 모습인데
왼쪽 발가락이 오른쪽 정강이 밑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몸에 비해 비대한 얼굴로
소발머리에 귀는 목까지 내려와 있으며
비교적 짧은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고
양손을 가슴에 대고 있는 모습으로
3단으로 된 머리 꼭대기에는
보개와 보주와 연꽃봉우리를 올려 더 독특한데
오랜 풍화로 인하여 윤곽이 뚜렷하진 않으나
가늘게 뜬 눈, 다문 입술, 얇은 콧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쌓인 눈으로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난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펌)]
마애불에 눈이 쌓이고
바람에 쌓인 눈이 날려 가니
일신삼두상의 윤곽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
이 마애불은 어느 시기에 조성된 것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사람들은 머리가 셋 달린 이 마애불을 보고 삼신상(三神像)이라 한다
삼신(三神)은 믿는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 신이 있으나
이곳에서의 삼신(三神)은 천지인(天地人)을 말한다고 하는데,
천(天)은 칠성(七星)을, 지(地)는 용왕(龍王)을, 인(人)은 산신(山神)을 뜻한다고..
[일신삼두상(一身三頭像) 바로 아래의 석간수]
불상 오른 무릎 바로 아래에는
높이 1m 천정암(天井岩)에서 떨어지는 석간수가 있는데
돌에서 흘러나오는 샘치고 제법 수량은 많으나 주위가 깨끗치 못하여 망설이다가,
대장균 마리수 헤아리지 않고 큰 바가지에 가득 퍼
벌컥벌컥 들이켜니 얼마나 시원한지..
그 옛날 이곳에 마애불을 새겼던 석공도 이렇게 샘물을 마셨으리라,
마을 사람들은 이 약수를 마시고 목욕을 하면
중풍과 피부병이 완치된다고 믿고 있다 한다
그렇게 마을 사람과 민중들에게 힘이 되는 약수,
민주지산 능선에 하나 밖에 없는 이 소중한 샘터를 왜 깨끗하게 사용하지 못할까..
누구의 몸에서 쏟아낸건지.. 저 황금빛 오물은 무언가?
먹기도 잘 먹었는지 때깔도 예쁘다. 어떻게 샘물 바로 옆에다
이러한 추태를 부릴 수 있는지.. 그 속을 들여다 보고 싶다
[작은 암자 한채 있었을 법한 마애불 뜨락]
마애불 옆 동쪽으로 펼쳐진 4,5평 남짓한 평탄한 터,
요즈음 산객들의 비박지로 많이 이용되고 있지만
먼 옛날 어쩌면 이 평탄한 산자락엔
작은 암자 하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덕유산과 지리산 자락이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길다란 평지..
이곳에 암자가 있었다면, 그 모습은 또 얼마나 소박했을까..
[석기봉(石奇峰)에서 돌아본 민주지산과 각호산]
흥분을 다스리며
다시 석기봉 정상으로 올라와 사위를 살피니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풍경들..
[백하산 방향- 1]
[백하산 방향- 2]
[석기봉(石奇峰) 바위 넘어 민주지산]
[가야 할 삼도봉]
[석기봉(石奇峰)에서 삼도봉으로 내려서는 약한 슬랩성 바위]
[마치 미륵 같은 바위암]
[석기봉을 내려와 뒤돌아본 석기봉]
[석기봉 동쪽 아래의 정자]
[정자에서 내려오는 나무계단]
삼도봉으로 가는 능선길을 따르다가
산죽이 탐스럽게 자라는 산길 한켠에서
때늦은 점심식사를 즐기는 님들을 만나
함께 오붓한 식사를 마치니 13:40분,
햇살은 따사롭고
머리 위에서 소용돌이 치는 겨울바람만이 저 혼자 씽씽거린다
유별나게도 조붓한 길가에, 발목을 간질일 듯한 산죽이 도열하듯 산길 따라 자라고 있다
겨울 산, 무채색 능선을 꾸미는 유일한 녹음이다
[뒤돌아본 석기봉]
[헬기장에서 본 삼도봉(三道峰)]
삼도봉에 이르니 14:00,
거기엔 물한리 주차장에서 역순으로 올라온 몇분의 산님이
아름답게 펼쳐진 산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조선 태종 때인 1414년, 조선을 8道로 나눌 때
충청,전라,경상 三南의 분기점이 되면서 얻은 이름이 三道峰이다
현재 충북 영동군 상촌면, 경북 김천시 부항면, 전북 무주군 설천면 등
三道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옛부터 사람들은
이곳에 봉우리가 3개 있다고 하였다
[삼도봉(三道峰)에 마련된 '삼도대화합탑(三道大和合塔)']
옛날 삼도봉 정상에는
돌무더기가 세 곳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3도 사람이 각각 자기 동네 쪽으로 돌을 던져
돌무더기가 많이 쌓이기를 원했다고 하는데
돌이 높이 쌓인 지역이 대길(大吉)한다는 전설 때문이었다
지금은 그 돌무더기를 없애고
대신 삼도(三道)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높이 2.6m의 기념탑을 세웠다
[삼도대화합탑(三道大和合塔)과 자태가 아름다운 석기봉]
그리고 1989년부터 이곳 삼도봉에서
'만남의 날' 행사를 거행하기 시작한 삼도(三道) 사람들,
이 기념탑은 장수를 기원하는 3마리 거북(龜)을 기단으로 하여
삼도의 영원한 발전을 상징한 세 마리의 용(龍)이 조각된 탑신부,
둥근 해와 달을 표현해 대화합을 뜻하는 원구(圓球)를 상륜부에 올려,
2회 행사 시점인 1990년 10월 10일에 탑을 준공하여
해마다 10월10일이면 해묵은 지역감정을 일소하고
지역주민 간의 대화합을 기원하는 '3도 화합의 장'을 연다
[경북 가야산 방향 조망]
김천의 황악산이 북동으로 보이고
동남으로는 합천의 가야산이
남동으로는 백두대간 줄기인 대덕산이 고개를 살며시 내밀고
멀리 지리의 주능선이 꿈결처럼 아득히 보이며
남쪽으로는 무주 덕유산이 손에 잡힐듯 하고
서남으로는 진안 마이산의 두 귀가 아련히 보이며
북쪽 물한계곡 언저리의 마을이 고요히 자리잡고 있다
[백두대간 능선 저멀리 살짝 고개내민 대덕산(1,290m)]
[백두대간 상의 대덕산(1,290m)과 우측의 덕유산, 먼 산엔 지리 주능선이 아득하다]
삼도봉은
백두대간 제7구간 중간지점에 위치한 육산(肉山)으로
충북,전북,경북 三道民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정담을 나누는 화합의 장이 되고, 사방이 탁 트여
천상에 온 기분으로 사위를 둘러 볼 수 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객이면 한번쯤 이 山을 지났으리라,
나 또한 이 산길을 순백의 설경속에 하얗게 피어난 상고대를 보면서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속을 러쎌로 헤치며 걸었었다
생각만 해도 벅차고.. 가슴 떨리는.. 백두대간을
내 발자국 남기며.. 걸었었다
[덕유산 우측 언저리와 석기봉 조망]
[석기봉, 민주지산, 각호산 조망]
[삼도대화합탑(三道大和合塔) 언저리 풍경]
[삼도봉(三道峰 1,177m) 정상]
[삼도봉을 내려서며 바라본 삼마골재(1,020m)와 황악산으로 뻗어나간 백두대간 길]
<부항 해인리 2.3km, 황룡사 3.5km, 삼도봉 0.9km>
고갯마루인 삼마골재는
삼도봉, 우두령, 괘방령, 추풍령 등
영동을 지나는 백두대간 선상에 위치하여
백두대간 종주 시 중요 기준점으로 삼는 곳이다
[삼마골재에서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덱]
물한계곡으로 내려서는 덱을 지나서
굴참나무, 조릿대, 싸리나무 등이 우거진 가운데
전나무, 소나무, 잣나무가 간간히 군락을 이루며 자라는
원시의 숲길을 걷는다
[삼도봉에서 2km 지점으로 돌탑과 약수터 표지목이 서 있는 계곡]
돌탑과 약수터 표지목이 서 있고
막돌로 정갈하게 쌓여진 축대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작은 암자나 정자가 있었을
운치 있는 계곡을 지난다
[음주암폭포]
계곡을 건너고
또 다시 계곡을 건너며 고요함에 잠긴 산길을 따르노라면
우람한 굉음과 함께 하얀 포말을 날리며 떨어져 내리는
음주암폭포가 있어 가던 길을 멈춘다
삼도봉과 석기봉 사이의 계곡 음주암골,
폭포 이름이 음주암폭포고 계곡의 이름도 음주암골이니,
이 근처 어딘가에도 어여쁜 암자(庵子) 하나 있었으리라,
[음주암폭포(0.1km) 삼거리]
음주암폭포 삼거리에서 약 200여m 내려서면
석기봉(2.3km)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안내 표지판도 없는 폭포, 그 물내림 소리가 우렁차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사진 한장 남긴다
20m 정도의 높이에서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
떨어져 네 굽이 다섯 굽이를 맴돌며 흘러내려
운치를 더하는 이 폭포가
혹여 의용골폭포가 아닌지..
산길을 돌아드니
폭포 떨어지는 소리가 계곡을 가득 메우면서
폭포 하나가 더 있다
철조망 속에서 2단으로 떨어지는 이 폭포가
혹여 옥소폭포?
[잣나무 숲]<민주지산 2.8km, 삼도봉 3.5km, 석기봉 5km>
이어 솔바람 낭랑한
운치 있는 잣나무 숲길을 지나면
키 큰 전나무 숲이 나오고
완만한 내리막 산길은 고즈넉하다
소리가 있다면
전나무 사이를 맴도는 바람 소리 뿐이요,
보이는 건 전나무 뿐, 깊은 적막이 감돌아
숨소리 조차 소음이 될 것 같은 고요가, 숲속에 퍼져 있다
[황룡사(凰龍寺). 대웅전 뒤 山神閣 앞에 큰바위 2개가 보인다]
황룡사(凰龍寺) 다리 위에 선다
노을빛이 곱다. 바람도 자고..
작은 절, 황룡사에 들어섰다. 창건이 1972년,
절집을 돌아보니 전통 절은 아니나
민주지산 자락에 오직 이 절 하나뿐이니
아마도 사람들에게 이정표 역활을 하는 것 같다
이 작은 절 산신각 앞에는
둘레 5m, 높이 2m쯤 되는 큰바위 2개가 있고
요사 앞에도 큰바위가 있는데 이를 장군바위라 한다
이 바위로 인해 이 골짜기를 '뛰엄박골'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옛날 한 장군이 이 큰바위 앞 뒤를 건너 뛰면서
무술을 연마해 이름 붙었다고 한다
[물한계곡(勿閑溪谷) 표지석]
속세의 찌든 때 다 내려놓고
빈 마음으로 산길을 내려설 수 있음은
정상을 오른자만이 누릴 수 있는 여유일까,
민주지산 아름다운 산길을 걸으면서
나를 성찰 할 수 있었던 하루.. 모두 버리고 간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우아한 척, 고상한 척,
허식 그리고 가식을 벗어버리고..
민주지산(岷周之山)은
한반도의 등줄기인 태백산맥에서 분기하여
남서로 뻗어내린 소백산맥이 추풍령에서 잠시 내려섰다가
다시 기개를 일으켜 형성된 산으로
충북, 경북, 전북의 3도에 걸쳐 있으며
동으로는 석기봉과 삼도봉,
북으로는 각호산이 우뚝 솟아나 웅장한 기상을 펼치고
백두대간을 굽어보며 해발 1,000가 넘는 고봉들이 병풍처럼 둘러 싸
20여 km의 깊은 골을 만들었다
그곳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물이 차다'고 하여 이름 붙은 한천(寒泉)마을 상류부터
상도대리까지 12.8km에 이르는 긴 계곡을 일컬어
'맑은 물이 끝없이 흐르는 계곡'이라 하여
'물한계곡(勿閑溪谷)'이라 부른다
물한계곡은 네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합쳐져
수량이 풍부하고 경관이 수려하다
특히 음주암폭포에서 황룡사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오늘
하얀 설경을 꿈꾸며 산에 들었던 것처럼,
이 산에 하얀 눈 소복이 쌓이는 날
연분홍 진달래를 꿈꾸며 걸어보고 싶다
8km에 이르는 주능선엔 진달래 흐드러지고
먼 산엔 하얀 운무가 무릉도원처럼 펼쳐지는 곳,
백두대간 유려한 산줄기는 넉넉한 품으로 하늘금을 긋고
단아한 물내림으로 선경을 이루는 물한계곡 그 찬물에 탁족을 즐기며
한편의 동양화 같은 숲길을
신선처럼 거닐고 싶다
구절양장 춤을 추면서
시시로 시선을 묶어 두었던 운무..
그 풍경 하도 조화로워
오늘도 행복 하나를 심었다
이런 선계를
1년에 몇번이나 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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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슈토님 세세하게 구석구석을 사진 찍어 오셨네. 편집도 너무 잘되었고 수요일 을 기다렸는데 좀 늦었네여산행을 하면서 슈토님의 발걸음을 보면서 군인 시절 우리 정보하사가 천리행군을 하면서 사전 지역을 정보 염탐하며 부대원을 인솔하는 모습을 연상 했습니다 .앞으로 텔타부대 정보처장으로 임명할까 합니다 산행기 쓰신다고 고생 했는데 형님이 저녁을 한번 살께요 상남동에서 폰번호 아시죠 산행기 감하고 갑니다
2살 아래, 아우님이 자꾸 형님이라 하니.. 이를 어쩌지..? ㅎㅎㅎ 함께 산행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정성껏 올리신 후기 감사합니다... 이번에도 슈토벤님의 후기로 못간 아쉬움을 대신하렵니다.. 이쁜 음악까지 즐감하고 갑니다~!!
안개비님은, 지리산엘 가야만 뵐 수 있는 것 같네요.. 누가 저보고 '지리산 마니아'라고 하던데.. 그게 안개비님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네요. 아닌가? ㅎㅎㅎ 늘 달아주시는 댓글에 힘을 얻습니다. 감사..
슈토벤님의 상세한 산행기에 민주지산 내공이 채워집니다....항상 감사합니다....
저도 늘 감사드립니다.
민주지산의 내력을 상세히 기록해 낫네예 멋찐 산행기 잘보심니더 감사하니더
언제 또 버스에서 나누어 주는 과자 맛을 볼 수 있을지.. 입이 심심하네요.
슈토벤님!! 좋은 추억의 한페이지를 내가 산행한것 보다도 더 상세하게 설명과 더불어 아름다운 사진까지 정말 완벽합니다
혼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좋게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석기봉에서 점심식사중 마애불 이야기를듣고 아쉬웠는데.... 사진으로보니 더 아쉬움이 남네요 감요
제이님도 문화재를 많이 좋아하시나보네요, 바위에 올라가는 것만 좋아하시는 줄 알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