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구·용산구·서대문구’의 마을버스가 다니는 중구
[뉴스포스트=강대호] 명동 일대는 한때 서울은 물론 우리나라의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서울 강북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명동은 서울의 중앙을 뜻하는 행정구역인 중구(中區)에 속한다. 그런데 대중교통의 모세혈관인 마을버스가 중구에는 없다.
서울역 서부를 지나는 마을버스 '서대문06'. 서대문구 북아현동에서 출발해 중구 중림동을 지나는 마을버스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중구, 서울의 중심?
서울시 중구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처럼 서울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서울 행정을 총괄하는 서울시청이 있고 전국 철도의 출발점과 종착지인 서울역이 있다. 지하철 노선 8개가 지나는 중구에는 서울의 여러 부도심과 연결되는 주요 간선도로들이 지나기도 한다. 그런 만큼 중구는 서울 전역으로 연결되는 시내버스는 물론 경기도 광역버스가 다닌다.
행정구역으로서 중구는 1943년 경성부에 구(區)제도가 도입되며 신설되었다. 지금의 중구 영역은 1975년 서대문구에서 중림동 등을, 성동구에서 신당동 등을 편입하며 완성되었다.
하지만 중구에 사는 인구는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래서 중구에 자리한 사립학교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가 하면 국회의원 선거를 다른 자치구의 선거구와 통합해 치르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렇듯 중구의 주민이 줄어드는 이유로, 어쩌면 서울 강북 도심 중앙에 자리한 입지라서, 그래서 다양한 대중교통이 중구를 지나기 때문에 ‘중구 마을버스’, 즉 서울시 중구에 등록된 마을버스가 없는지도 모른다. 그 대신 중구와 인접한 용산구와 서대문구, 그리고 성동구의 마을버스가 중구를 지난다.
서울역 서부
많은 이가 서울역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로 서울역 광장과 근대 건축물인 옛 서울역 역사를 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울역의 서부역도 한때 지방과 서울을 연결하는 열차를 탈 수 있어 승객들로 붐볐었다.
과거 서부역에서는 경의선과 교외선 열차를 이용할 수 있었다. 완행열차인 비둘기호가 주로 다녔었는데 서울역 북쪽에 있는 육교를 통해서 건너가거나 아예 처음부터 청파로를 이용해야 서부역에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서부역을 서울역 뒤편으로 부르기도 했다.
서울역 서부 인근에서 대기 중인 마을버스 '용산04'. 중구의 중림동이 기점이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하지만 2004년 4월에 교외선은 영업을 중지했고, 경의선은 복선 전철화되었다. 그래서 지금 서부역은 ‘서울역 서부’라는 서쪽 출구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그 서부역으로 마을버스 용산04와 서대문06이 다닌다. 용산04는 서울역 서부와 용산구의 효창동과 청파동을 연결하고, 서대문06은 북아현동에서 서대문을 거쳐 서부역으로 온다.
두 마을버스는 모두 중구의 중림동을 지난다. 중림동은 숭례문 쪽에서 바라보면 서울역의 뒤편, 그러니까 서소문에서 염천교를 지나면 나오는 언덕 위에 자리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치며 서민들이 많이 살았던 지역으로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 된 동네다.
중림동 약현성당에서 바라본 숭례문 방향. 좌측 중앙의 녹지는 서소문공원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한 장소다. 공원에 성지 박물관이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중림동은 골목 사진으로 유명한 김기찬 작가가 즐겨 촬영한 지역이기도 하다. 김기찬이 촬영한 중림동 골목 사진에는 서울역 뒤편, 즉 서부역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그의 사진을 보면 중림동 언덕에서 촬영한 사진이 많은데 중림동의 약현성당도 언덕에 자리한다.
약현(藥峴)은 만리동에서 충정로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에 약초를 재배하는 밭이 있던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약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성당이다. 성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소문공원은 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당한 순교지이다.
천주교 성지 박물관이 있는 서소문공원에는 일제 강점기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수산물과 청과물을 취급하는 도매시장이 있었다. 지금은, 새벽부터 오전까지 장사하는 새벽시장인 중림시장이 옛 도매시장의 명맥을 잇고 있다.
신당동과 약수동
중구에 자리한 신당역과 약수역에는 성동구의 마을버스가 지난다. 신당역에는 성동01이, 약수역에는 성동05, 성동07, 성동12가 다닌다.
중구의 신당역과 성동구의 옥수동을 연결하는 '성동01'.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성동01은 성동구의 옥수동을 출발해 금호동과 왕십리를 거쳐 중구의 신당역으로 향한다. 신당동은 도성에서 광희문을 나가면 나오는 곳에 자리한 동네다. 광희문은 조선시대에 시신을 도성 밖으로 운구하는 문으로 쓰이기도 했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 신당동의 구릉지에는 공동묘지가 형성되기도 했고, 일본인 전용 화장장이 있었다.
신당동(新堂洞) 지명의 유래는, 공동묘지 주변으로 무당들이 신을 모시던 당집이 모여있어 신당(神堂)이라 불렸었는데, 갑오개혁 때 한자를 ‘새로운 신(新)’으로 바꾸어 신당(新堂)으로 표기하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성동05와 성동07은 성동구의 금호동과 중구의 약수역을 연결하고, 성동12는 성동구의 옥수동과 약수역을 연결한다. 약수동은 원래 신당동에 속했던 마을 이름이었다. 남산 줄기인 응봉 기슭의 버티고개에 있던 약수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신당동과 약수동 구릉 지대는 한국 전쟁 이후 월남민들이 많이 살았다. 재개발되어 아파트단지로 변한 곳도 있지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골목 마을도 있다.
중구의 약수역과 성동구의 금호동을 연결하는 마을버스 '성동05'.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한편, 신당동과 약수동은 성동구에 속했었는데 1975년 중구로 편입되었다. 서대문구에 속했던 중림동도 1975년에 중구가 되었다.
이렇듯 중구는 한때 같은 생활 영역을 공유했던 지역과 인접해 있다. 그래서인지 교통망과 상업 시설 등 인프라를 다른 자치구와 공유하는 게 많다. 중구에 다른 자치구의 마을버스 노선이 많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등록된 마을버스가 없지만 대중교통망이 발달한 중구는 서울 곳곳을 연결하는 환승지로 제격이다.
첫댓글 중구는 환승터니 없지라. 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