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宗廟社稷)- 앞 시대 임금님의 사당과 토지 신과 곡식 신을 모신 단
필자의 전공이 우리나라나 중국의 역사와 관련이 있으니까, 아는 사람들을 만나면 역사를 다룬 사극(史劇)을 좋아하고 자주 볼 것으로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필자는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극을 보는 일이 전혀 없다. 왜냐하면 하도 거짓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대상으로 한 사극은 그래도 30% 정도는 사실이지만, 고구려나 신라, 백제 등을 대상으로 한 사극은 거의 90% 이상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주몽(朱蒙)이나 선덕여왕(善德女王), 궁예(弓裔) 등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이 수십 회, 어떤 것은 백 회 가까이 계속되는데, 그 사극의 근원이 되는 역사기록은 사실 몇 페이지에 불과하다. 몇 페이지밖에 안되는 기록을 가지고, 이렇게 긴 사극을 이어나가니, 극작가의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 할 수 있겠다.
지금 우리나라 학교교육에서 국사를 거의 가르치지 않는 실정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의 국사 지식은 대부분 사극에 의지하고 있다.
사극에서 주고받는 대화도 대부분 상투적이다. 그리고 사극을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 자주 쓰는 말인데도 정확한 뜻을 모르고 그냥 쓰는가 보다 하고 지나고 만다. 어느 사극에서나 거의 안 빠지고 등장하는 ‘종묘사직(宗廟社稷)’이라는 말이 있다.
사극 대사 가운데 “종묘사직을 지키시옵소서”, “종묘사직이 위태롭습니다” 등등의 말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종묘사직이 곧 ‘국가’라는 뜻인 줄 안다.
나라가 망하면 종묘사직이 존속할 수가 없지만, 종묘사직이 바로 국가라는 뜻은 아니다.
종묘는 어떤 나라 임금들의 조상 임금들의 신주(神主)를 모셔 놓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당대의 임금이 나라를 창건한 것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과 어려움을 잊지 않고 나라를 오래도록 잘 지켜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제사를 지낸다.
사직은 사(社)와 직(稷)을 합친 것인데, 사는 이 세상 만물을 생산해 주고 모든 만물을 실어 주는 토지의 신에게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고, 직은 사람을 먹고 살게 해주는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단이다.
종묘사직은 지금부터 3500년 전인 은(殷)나라 때부터 있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高句麗) 때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을 사옥(社屋)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단(壇)으로 된 사직을 나라가 망하면 해를 볼 수 없도록 위에 집을 지어 가려버린다. 그래서 사옥이 되는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삼키고 나서 사직단을 공원으로 만들어 사직의 기능을 없애버렸다. 곧 나라로서 더 이상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해방 이후에도 일본인들의 저의를 모르고 그대로 방치했다가, 사직단은 2012년 2월에야 일본에 의해서 훼손된 것을 복원해 본래 모습을 되찾았다.
종묘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유산으로 등록이 되었고, 옛날 종묘제례를 그대로 거행하고 있다. 중국은 그냥 건물만 남아 있는데, 우리는 종묘와 사직에서 옛날에 행하던 제사의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宗 : 마루(으뜸) 종. * 廟 : 사당 묘. * 社 : 사직 사. * 稷 : 피 직.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