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씨 부인 안진현씨 별세
“올해 초 완쾌되면 이집트 여행을 함께 가려고 했는데….”
‘작은 거인’ 조용필(53)이 ‘10년 사랑’을 떠나보내며 끝내
굵은 눈물을 흘렸다. 지난해 8월부터 심장질환으로 투병하던 조용필의 부인 안진현씨가 6일 오전 8시10분(이하 한국시간) 영면했다.
향년 54세. 안진현씨는 지난해
12월9일 미국 클리블랜드 병원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후 메릴랜드
포토맥 집에서 요양해왔다. 한때
회복기미를 보였으나 안씨는 이날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져 워싱턴 DC 조지워싱턴대학 응급실로
옮겨지던 중 심장마비로 눈을 감았다.
4일 오전 11시30분 인천공항을 통해 워싱턴으로 떠난 조용필은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을 눈물로 지켰다. 조용필은 응급실 의료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아내가 숨을 거두자 한동안 통곡했다. 안씨의 여동생은 6일 오후 2시쯤 포토맥 안씨의 집에서 스투와의 국제전화를
통해 “충격과 슬픔에 잠긴 형부(조용필)가 눈물을 너무 많이 흘려 기진맥진한 상태”라며 “누구와도 통화할 상황이 아니니 나중에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동생은 또 “심장수술을 받은 후 언니의 병세가 호전돼 형부의 충격이 더욱 큰 것 같다. 지금은 장례절차를 밟고
있다”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남편을 보살핀 아내의 정성도,아내를 위해 연말 콘서트를 혼신을 다해 끝마친 남편의 노력도 추억 속의 구슬픈 가락으로 남게 됐다. 지난 94년 3월 백년가약을 맺은 조용필-안진현 커플은 그동안 남다른 금실을 자랑해온 터라 팬들의 충격도 크다.
그동안 조용필은 국내 공연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미국에 있는 아내와 하루 10여통 이상씩 국제전화를 주고받았다. 특히 지난해 8월 심장질환으로 다리 마비증세를 호소하는 아내의 통증을 풀어주느라 밤샘을 하면서도 조용필은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아 안씨 가족을 감동시켰다.
지난해 12월9일 안씨가 수술을 받던 날,조용필은 서울 공연을 끝낸
뒤 가진 안씨와의 전화통화에서 “모든 것이 잘 됐다”는 말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아내가 이렇게 먼저 세상을 떠날 줄 몰랐다고 탄식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슈퍼스타’의 아내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
안진현씨. “왜 이제야 만났을까”라는 후회가 들 정도로 고마운 조용필의 영원한 ‘모나리자’였다. 9녀1남의 장녀로 집안에서도 가장
노릇을 톡톡히 해온 그녀는 지난해 8월 심장질환으로 투병생활을 시작하기 전까지 워싱턴에서 J&J컨설팅 CEO로 활동했다. 그녀는 조용필의 노래 중 ‘꿈’ ‘친구여’를 좋아했으며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 정도로 내조에 남다른 기쁨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조용필은 불교신자인 아내의 바람대로 집 인근 사찰에서 3일장으로
장례식을 마친 뒤 10일 오후 5시40분 KE094편으로 아내의 유해와 함께 귀국할 예정이다. 이보다 하루 앞선 9일 서울 강남성모병원에는 별도의 빈소가 마련된다. 발인은 오는 11일 예정이며 고인의 장지는 남편 조용필의 선산인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저리다.
아내여∼끝내 날 두고 갔는가
■조용필 부부 10년
‘…/한순간 스쳐가는 그 세월을/내 곁에 머물도록 하여주오/….’(조용필의 노래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중에서)
‘국민가수’ 조용필은 아내 안진현씨를 그렇게 떠나보냈다. 6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아내를
떠나보내는 고통스러운 순간에
어쩌면 조용필은 아내와 보낸 지난 10년의 세월을 그렇게 자신의
곁에 머물게 하고 싶었을 터.
지난해 12월7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펼쳐진 조용필의 콘서트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무대는 생전 안씨에게
남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하지만 남편과의 이별을 예감이라도
한 것일까. 해마다 연말 조용필이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할 때마다
찾아가 1층 객석 한쪽에서 뜨거운 박수로 무대 위의 남편과 사랑을 교감한 안씨는 안타깝게도 이번
콘서트를 지켜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대 긴 밤을 지샌 별처럼/사랑의 그림자되어 그 곁에 살리라’고 노래하며 아내의 부재에 대해 울고 있는 조용필의 아쉬움은 끝 간 데 없이 큰 아픔이 돼버렸다.
조용필에게 이제 그 커다란 아픔이자 ‘한순간 스쳐가는 세월’이 돼버린 지난 10년의 시간. 지난 93년 처음 만나 서로의 시선을 맞춘 뒤로 꼬박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조용필은 지난 99년 12월 모 여성월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점쟁이
얘기가 나는 나무고 와이프는 흙이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천생연분’이란 말이 딱 들어맞을 법한 사랑을 쌓은 두 사람. 지난 93년 6월 미국 공연 당시 조용필의 둘째 누나 소개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듬해 3월25일 백년가약을 맺었다. 오로지 음악만이
전부일 것 같은 조용필의 결혼소식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각기 이별의 아픔을 경험한 두 사람은 여느 부부 못지않은 정으로 서로에게 스며들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뭇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고도
남았다. 요리를 잘하기로 소문난 안씨가 술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따뜻한 국 한 그릇을 떠주는 모습이 TV 토크쇼를 통해
비쳐질 때,남편의 콘서트 연습현장에 찾아가 무대 및 음향시설 등을
꼬치꼬치 점검하는 모습을 볼 때,지난 99년 결혼 5주년을 맞아 미국과 아프리카 유럽 남미 등을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하고 돌아와 행복에
겨운 인생을 자랑삼아 늘어놓을 때 사람들은 ‘천생연분’이 무슨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지난해 12월 초 공연을 앞두고 새해를 맞아 아내와 여행할 계획을 세운 조용필. 그리고 오는 2004년에는 아내와 함께 이집트 여행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는 말 없이 남편의 곁을 떠났다.
하지만 아내를 가슴에 묻은 남편에게 이제 그 꿈은 단지 꺼진 꿈으로만 남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피를 토해내듯 노래할 것이다. 조용필의 불멸의 명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을/사랑은 영원히 남아/언제나 내 곁에’라는 노랫말처럼.
안진현씨는 누구?
6일 54세로 별세한 안진현씨(아명 안문신)는 지난 94년 3월 슈퍼스타 조용필과 결혼했다.
안석균씨와 이병육씨 사이의 1남9녀 중 맏딸로 정신여고 재학 중이던
15세 때 가족과 함께 이민을 떠나 텍사스대 회계학과를 졸업한 후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에서 국제경영학을 전공했다. 버지니아 제일은행의 회계감사관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으며,연방정부 주택도시개발부(HUD)의 예산분석관(국장급)까지 승진했다.
지난 1985년 경영자문회사인 웨덜리 컴퍼니(Weatherly & Company)사를 설립했으며 현대자동차가 미국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정도로 로비스트로도 활약해왔다. 결혼 당시에는 부동산관계회사인 햄든주식회사 폰스 드 리온 리조트 앤 컨벤션센터,홀리데인 익스프레스 조지타운 휴양소 등의 대표로 활동했다. 조지워싱턴 대학의
재단이사와 클린턴 자문회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한국과 일본 그리스 도미니카공화국 등 20여개국 기업의 로비와 경제자문을 맡았다. 결혼 이후 미국과 한국을 1년에 절반씩 오간 안진현씨는 한국에선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고 조용히 아내 자리만 지켰지만
미국에서는 최근까지 로비스트와 비즈니스우먼으로 활동했다.
안진현씨의 여동생인 안진영씨의 남편은 미국 공화당 소속의 3선 의원을 지낸 김창준씨로 조용필과는 동서지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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