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랑호 전경. 잔잔한 호수 너머로 동해 바다의 파란 물결이 넘실거린다.
북쪽부터 꼽아 보자면 고성의 화진포, 속초의 영랑호, 양양의 낙산사, 강릉의 소금강과 경포대, 동해의 무릉계곡, 삼척의 죽서루와 환선·대금굴이 그것이다. 이름만 들어도 엉덩이가 들썩거려지는 ‘동해안 팔경’. 마침 여름휴가에 여행 일정을 맞춘다면 비교적 여유롭게 여덟 군데의 명소를 모두 둘러볼 수 있을 것이다. 2박3일 일정으로 아침 일찍 떠났을 경우, 첫날은 화진포·영랑호를 둘러보고 낙산사 근처에서 하룻밤 묵는다. 이튿날은 낙산 의상대 일출을 감상하고 소금강의 계곡미를 즐긴 뒤 경포대를 한 바퀴 돌면서 예향 강릉을 만끽한 다음 무릉계곡에서 탁족하며 더위를 식힐 수 있다. 마지막 날에는 비록 동해안 팔경에는 속하지 않지만 빼놓으면 서운한, 추암 일출을 구경한 다음 죽서루와 환선·대금굴에 들렀다가 귀갓길에 오르면 된다.
제1경 고성 화진포
서울·경기 등 중부지방에서 강원도 동해안으로 빠지는 고갯길은 많다. 북쪽에서부터 진부령, 미시령, 한계령, 구룡령, 대관령……. 그래서 동해안으로 가려면 어느 고개를 넘어야 할지 고민하게 마련인데, ‘낭만가도’의 대표 절경인 강원도 팔경을 하나의 코스로 엮어 둘러보려면 44번 국도와 46번 국도를 이용해 북쪽의 진부령을 넘은 뒤 고성 화진포를 먼저 들르는 게 가장 경제적인 동선이라 할 수 있다.
▲ 푸른 물결이 인상적인 화진포. 앞바다에 떠있는 섬은 금구도인데, 최근 광개토대왕의 능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화진포는 동해안 팔경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한 명소다. 미시령을 넘어 화진포로 가는 길은 늘 가슴이 아릿하다. 아마 가장 먼 곳이라는 지리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바로 화진포가 남북 분단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호수이기 때문이다.
동해안 팔경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화진포는 20세기 중반에 남북한 최고 통치자들이 휴양지로 삼았던 곳이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8년부터 한국전쟁 이전까지 매년 여름마다 처 김정숙, 아들 김정일, 딸 김경희 등 가족과 함께 화진포를 찾았고, 전쟁이 끝난 뒤 화진포가 남한 영토에 편입되자 이번에는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이 여기에 별장을 짓고 여름휴가를 보냈다.
▲ 김일성 별장에서 내려다본 화진포. 세 개의 별장 중에서 조망이 가장 빼어나다.
화진포 호수는 동해안에 즐비한 10여 개의 석호(모래가 만의 입구를 막으면서 생긴 호수)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뿐만 아니라 호수 주변에 오염원이 거의 없는 까닭에 비교적 양호한 자연생태계를 잘 유지하고 있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의 발길도 잦았다고 하는데, 같은 석호로서 금강산을 끼고 있는 삼일포나 설악산을 품고 있는 영랑·청초호 등에 비해 인기는 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세인의 관심을 끌다가 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유명세를 탔고, 결국 이번에 강원도 동해안 팔경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안보역사전시관으로 꾸며진 이승만별장과 김일성별장 등 남북한 최고통치자의 휴양시설을 둘러본 다음에는 반드시 화진포 백사장을 거닐어 보자. 길이 1.7km, 폭 70m의 백사장은 모래 빛깔이 하얗기로 유명하고 밟는 감촉도 매우 부드럽다. 백사장에 피는 붉은 해당화는 ‘평사해당(平沙海棠)’이라 하여 ‘화진포 팔경’에 꼽힌다.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를 희롱하다 눈을 들면 바다 건너에 거북섬이라고도 불리는 금구도(金龜島)가 눈망울에 맺힌다. 신라시대에는 저 섬에 수군기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섬 북쪽에 석축 흔적이 남아 있고 중심부에서는 와편과 주춧돌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저 금구도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능이라는 이야기가 고성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한 연구가가 발견했다는 고서적을 근거로 그리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금구도가 보이는 화진포 해양박물관 앞 해변에는 ‘금구도가 광개토대왕의 능’임을 설명하는 안내 팻말이 설치돼 있다.
▲ 화진포 호수 안쪽에 자리한 이승만 별장. 유족이 기증한 유품들이 전시돼 있다.
화진포의 백사장 산책은 좋지만 호수 둘레는 그리 걷기 좋은 편이 아니다. 빼어난 경관임에도 군사지역이라는 이유 때문인지 아쉽게도 산책 코스가 마땅치 않다. 2002년 화진포 호숫가에 설치된 2.9km의 자전거 도로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실정. 강릉의 경포호나 속초의 영랑호처럼 화진포 호수 주변에도 산책 코스나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주민과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관광객들은 보통 남북한 최고통치자들의 별장을 둘러본 뒤 모래 고운 백사장을 거닐며 파도를 희롱하다 승용차로 호수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화진포 주변에는 화진포 해양박물관, 금강산 자연사박물관 등 볼거리가 있는데, 각각 1시간씩만 잡아도 최소 2시간이 필요하다. 거기에 금강산이 보이는 통일안보공원까지 다녀오려면 역시 1~2시간을 더 잡아야 한다. 즉 화진포 주변을 제대로 둘러보려면 적어도 5시간 정도가 필요하다.
▲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 이승만 별장과 김일성 별장 사이의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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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진포해수욕장에 화진포콘도(033-682-0500)가 있지만 육군 휴양시설이라 성수기에는 일반인 이용이 불가능하다. 화진포 남쪽에 금강산화진포별장(033-682-1290), 화포리132펜션(033-682-1223), 반암콘도형민박(033-682-3558) 등이 있다.
화진포 근처에서 묵으려면 일반적으로 거진해수욕장에 있는 오션빌(010-9554-4894), 조나단모텔(033-682-5252), 바다랑우리랑(016-791-6899) 등의 숙박시설을 이용한다. 또 화진포 북쪽과 붙어 있는 초도해수욕장 근처에도 만금펜션(033-682-0361), 겨울바다펜션(033-682-779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좀 더 북쪽의 통일안보공원 근처 마차진해수욕장의 금강산콘도(033-680-7800)는 일반인도 이용이 가능하다.
제2경 속초 영랑호
고성에서 화진포를 감상한 뒤 7번 국도를 따라 남진하며 송지호 전설을 듣고 왕곡마을을 거닐며 양통집을 둘러본 뒤 길을 재촉하면 설악산 그림자가 가까워질 무렵 자그마한 정자 하나가 발길을 잡는다. 바로 청간정. 동해와 만나는 작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는 이 정자는 동해는 물론 멀리 울산바위와 권금성 조망이 빼어나 관동팔경에 속했던 명소이건만 아쉽게도 동해안 팔경에 들진 못했다.
청간정을 나와 울산바위를 올려다보면 이내 속초 영랑호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뻗어 내려온 백두대간이 최고의 미모를 뽐내는 금강산을 빚고, 그 여세를 몰아 남한 땅에 정성을 다해 세운 설악산을 자신의 수면에 담고 있는 영랑호. 호수 너머로 울산바위가 펼쳐진 설악산이 손에 잡힐 듯 제 미모를 드러낼 땐 마치 설악의 품속에 안겨 있는 느낌이다.
▲ 영랑호에 세워져 있는 안축의 시비. ‘영랑호에 배 띄우고’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아주 오래전 이 풍광에 반한 인물이 있으니 바로 신라시대 유명한 화랑이었던 영랑(永郞)이다. 그는 동료인 술랑(述郞)·남랑(南郞)·안상(安祥)과 더불어 사선(四仙)으로 꼽혔는데, 그들과 함께 금강산에서 무예를 연마한 뒤 무술대회에 나가기 위해 경주로 가던 중 이 호수의 풍취에 매료되어 무술대회에 나가는 일조차 잊었다고 한다. 그래서 호수 이름도 영랑호가 됐다.
영랑호를 즐기는 법? 그건 바로 영랑처럼 걷는 것이다. 물론 자전거 여행도 괜찮다. 맑을 때뿐만이 아니라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운치가 넘치는 호수길이다. 특히 영랑호 남서쪽 호숫가에 잠겨 있는 큰 바윗덩이인 범바위는 영랑호를 찾는 사람이라면 꼭 올라 봐야 할 곳. 범바위에 세워져 있는 월랑정은 바위와 나무에 가려 전망이 좋지 않으므로 정자 뒤편으로 돌아 범바위 정상까지 올라가 보자. 바다, 산과 어우러진 호수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선의 지리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영랑호의 아름다움을 “구슬을 감춘 것 같다”고 표현했는데, 그 구슬이란 아마도 영랑호에 비친 설악의 풍광일 것이다. 영랑호 북쪽의 카누장 근처에는 자전거타기운동연합 속초지부에서 운영하는 자전거여행안내소가 있다. 영랑호를 한 바퀴 도는 데는 이것저것 구경을 한다 해도 자전거는 1시간30분, 걷는 데는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 영랑호 잔잔한 물결 너머로 설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는 설악산이 거느린 남매다. 항구로 이용되면서 늘 고깃배들이 드나드는 청초호가 활동적인 오빠라면 백사장에 가로막혀 조용하고 제법 호수다운 풍치를 간직하고 있는 영랑호는 어여쁜 누이동생이다. 이번에 동해안 팔경 선정 과정에서 남매 중에서 누이동생이 뽑힌 까닭은, 시내와 바싹 붙어 있어 현대식 건물이 즐비한 오라비보다 자연스런 모습이 더 잘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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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랑호 주변에는 콘도인 영랑호리조트(033-633-0001)와 대호장(033-633-3405), 동수장(033-632-3678), 청명장(033-631-5663), 영랑호 동쪽의 장사항에 에이스모텔(033-636-3626)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울산바위가 눈앞에 펼쳐진 노학동에는 사조설악콘도(033-631-6931), 설악금호리조트(033-636-8000), 설악파인리조트(033-635-5800), 연호콘도(033-631-5000), 코레스코(033-635-8040), 현대훼미리타운(033-635-9090) 등 콘도가 많다.
제3경 양양 낙산사
▲ 낙산사 해수관음상. 2005년 화재로 검게 그을렸으나 지금은 예전의 인자한 미소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속초에서 낙산사로 가는 길. 대포항과 물치항이 발길을 막는다. 두 군데 모두 횟감이 싸고 흥정하는 재미가 넘치는 시장이라 관광객들에게 제법 인기 있는 항구다. 시끌벅적한 바닷가 항구에서 흥겹게 흥정한 뒤 싱싱한 회 한 쌈 드는 맛. 이 즐거움이 없다면 대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이렇게 부둣가에서 회 한 쌈 맛보고 길을 나서면 곧 양양 낙산사다. 관동팔경뿐만 아니라 동해안 팔경 중에서도 유일한 사찰인 낙산사는 바다처럼 크고 너른 절집이다. 의상이 관음을 친견했다는 이 절집은 오늘날 우리나라 4대 관음성지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2005년 동해안 지역에 발생한 큰 산불로 화를 입었다. 이때 일주문과 홍예문 등 건물 16채가 순식간에 불에 타 버렸고, 아름드리 소나무로 울창하던 숲은 잿더미가 됐다. 보타전과 홍련암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기적이었다.
이후 다시 복원작업을 시작해 2006년 홍련암 요사체인 연화당의 상량식 봉행을 비롯해 화재로 녹아 버린 보물 제479호 동종(2005년 7월 보물 지정 해제)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해 제자리를 찾았다. 또한 홍예문 누각 복원, 칠층석탑·공중사리탑 보수처리공사 등의 불사를 거듭했고, 현재 천년고찰의 위용을 되찾기 위한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전통적으로 낙산사 최고의 일출 포인트는 의상대였고, 이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예로부터 많은 시인묵객이 이곳에서 해돋이를 감상하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려왔다.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낙산사 의상대에 올라 일출을 감상했고, 겸재 정선도 붉은 해가 떠오르는 동해를 배경으로 낙산사를 화폭에 담았다. 현대의 사진작가들도 “의상대 정자와 소나무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이 가장 빼어나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시도했을 낙산 일출 감상은 그리 만만치 않다. 날씨 탓인데, 이 길손 역시 오락가락하는 빗줄기 때문에 아쉽게도 회색의 바다만 바라봐야 했다. 그렇지만 날씨에 상관없이 언제나 들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홍련암의 해조음(海潮音)이 아니겠는가.
▲ 의상이 수도했다는 낙산사 의상대.
의상대에서 왼쪽의 짧은 해안길을 따르면 홍련암. 의상이 기도를 끝냈을 무렵 관음굴에서 갑자기 붉은 연꽃이 떠오르면서 관음보살이 나타났다는 곳이다. 훗날 의상대사가 수도한 절벽 위에 정자를 세워 의상대라 불렀고, 관음보살이 나타난 자리 옆에 절을 지어 홍련암이라 했다.
귀띔 하나 하자면, 낙산 일출을 보려면 아무래도 낙산사 주변에서 잠을 자야할 터. 템플스테이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잠자리도 해결하고 108배를 하며 1300여 년을 이어온 관음 신앙도 배우고 새벽에 일출도 구경할 수 있으니 일거삼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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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입구와 낙산해수욕장 사이에 낙산비치호텔(033-672-4000), 낙산모텔(033-671-4181), 낙산 파크랜드모텔(033-672-7760), 굿모닝모텔(033-671-8817), 페블비치(033-672-7722), 낙산둥지모텔(033-672-4055) 등 숙박업소가 아주 많다.
하조대해수욕장 입구에 하우스여관(033-672-2285), 굿모닝하조대(033-672-0089) 등의 여관이 있고, 민박을 치는 집도 여럿 있다.
▲ 청학동 소금강. 우리나라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됐다.
제4경 강릉 청학동 소금강
오대산 동쪽 기슭에 있는 청학동 소금강은 짙은 숲 속을 흐르는 맑은 계류와 불쑥불쑥 솟은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1970년에 명승지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강릉 소금강’ 혹은 ‘명주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하는 청학동 소금강. 그렇지만 동해안 팔경 리스트에서 이 청학동 소금강과 무릉계곡을 발견했을 땐 사실 좀 의외였다. 그건 둘의 경관이 함량미달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백두대간 기슭이라 해색(海色)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팔경에 당당히 속한 까닭은 이 둘이 동해안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청학동에 들어선 날은 굵은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차량으로 주차장은 가득 차 있었다. 기암괴석을 휘돌아 내려가는 계류는 수량이 늘어나 평소보다 더 우렁찼다. 청학동 소금강은 폭우가 내리면 입산을 통제하기도 한다. 관리사무소 직원은 “동해안 일대에 호우특보가 내리면 소금강은 입산이 통제된다”며 “야영장도 호우경보가 발령되면 안전을 위해 텐트를 철수시킨다”고 말한다. 다행히 호우경보도, 호우특보도 발령되지 않은 상황. 느긋하게 발길을 내딛는다.
청학동은 청학대피소 부근의 무릉계를 경계로 하류 쪽을 외소금강, 상류 쪽을 내소금강으로 구분한다. 외소금강에는 금강문·옥조대·십자소·옥수연 등 명소가 있고, 내소금강에는 식당암·구룡연·청심대·만물상 등이 절경을 이룬다. 이런 절경을 보며 만물상까지 왕복 3시간 정도 잡으면 된다. 산행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그 이상은 무리다.
지금이야 산길이 잘 다듬어져서 그렇지 원래 소금강 산길은 상당히 거칠다. 이 산길에 대한 최초 기록은 율곡 이이가 남겨 놓았다. 1569년(선조 2년) 벼슬에서 잠시 물러나 있던 율곡은 외할머니의 병환을 살피러 강릉에 왔다가 이곳이 비경이라는 지인의 말에 따라 시간을 내 탐승길에 나섰던 것이다. 이때 율곡은 <청학산기>에서 빼어난 산세가 마치 금강산을 축소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이곳을 소금강이라 불렀고, 소금강을 끼고 있는 산세는 마치 학이 날개를 편 듯한 형국이라 해서 청학산(靑鶴山)이라 이름 지었다. 지금도 금강사 앞 영춘대에는 율곡이 직접 썼다고 전해오는 ‘小金剛’이란 글씨도 새겨져 있다.
▲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다섯 개의 달을 노래한 경포대.
<청학산기>를 뒤적여 보면 율곡은 청학동 소금강의 아름다움을 학자다운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44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느낌은 어찌 이리 똑같을까.
“사방을 두루 돌아보니, 모두 석산(石山)이 솟아 있고 푸른 잣나무와 키 작은 소나무가 그 틈바구니를 누비고 있었다. 석산이 양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가운데 냇물의 근원이 매우 먼데, 수세(水勢)가 거센 곳에 폭포를 이루어 맑은 하늘에 천둥소리가 계곡을 뒤흔드는 듯하였다. 물이 고인 곳에는 못이 되어 차가운 거울에 얼이 없는 듯하는가 하면, 깊고 맑고 아름답고 푸르러 낙엽이 붙지 못하고 휘돌아 흐르는 구비마다 암석 모양이 천변만화하였고, 산그늘과 나무 그림자에 이내가 섞여 어스레하여 햇빛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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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강 입구에 있는 오토캠핑장(033-661-4161)은 선착순으로 운영한다. 사용료는 개인당 어른 2,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1,000원. 근처에는 월산민박(033-661-4104), 송천농원(033-661-4371), 청학산막(033-661-0550) 등 숙식을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마운틴밸리(010-3304-7348 http://m-v.co.kr) 펜션도 괜찮다.
제5경 강릉 경포대
경포대로 유명한 경포호는 그리 넓지 않으나 오랜 옛날부터 동해안 석호의 대명사로서 이름을 널리 날렸다. 만약 강릉에 경포대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강릉 사람들은 대부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대답한다. 경포대가 강릉 사람들의 내면에 차지하고 있는 위상은 상상 이상이다. 무형문화유산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단오제, 유형문화재는 오죽헌, 그리고 자연은 경포대. 강릉의 ‘3대 보물’이다.
▲ 연못과 정자가 잘 어울리는 선교장. 예전에는 경포호의 범위가 이곳까지였다고 한다.
속초의 영랑호와 마찬가지로 이 호수를 제대로 즐기려면 한 바퀴 돌아봐야 한다. 걸어서. 예술과 문화의 향기가 철철 넘치는 경포대 호수길은 강릉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산책 코스다. 그들은 이른 아침 호수길을 걷거나 달리면서 건강을 챙기고 자연스레 문학·역사와 호흡하니 참으로 보배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는 경포대 호수길 산책 코스, 그리고 오죽헌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간략히 소개한다. 경포대해수욕장 백사장에서 일출이나 바다를 감상한 다음, 도로를 건너면 경포호.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묵객이 아름다움을 예찬한 곳으로 호수가 거울처럼 맑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호수 한가운데 떠 있는 새바위에는 월파정이 고운 자태로 앉아 있다.
경포대해수욕장에서 방해정·금란정 등 고풍스런 건축물을 구경하며 20분쯤 걸으면 참소리박물관. 세계 최대 규모의 오디오 전문박물관이다. 그 너머 오른쪽 언덕으로 경포대가 보인다. 조선의 명문장인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으로 알 수 있듯 시인묵객들로부터 크나큰 사랑을 받아온 곳이다. 당시 풍류객들은 달이 뜨는 밤이면 이 경포대에서 달을 보며 즐겼다. 경포대의 달은 하늘에 떠 있는 달, 출렁이는 호수 물결에 춤추는 달, 파도에 반사되어 어른거리는 달, 정자에서 벗과 나누어 마시는 술잔 속의 달, 벗의 눈동자에 깃든 달……. 이렇게 모두 다섯 개나 된다. 마침 달이 뜨는 밤이라면 정취는 곱절이 될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에는 달밤에 산책을 즐기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름철에는 무더위도 피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경포대에서 내려서면 산책길은 호수 서쪽을 돌아 남쪽으로 이어진다. 서쪽 끝에 있는 3·1독립만세운동기념탑을 지나면 중간 중간 시비 산책길, 홍길동 캐릭터 산책길 등이 반긴다. 조선시대에 중국에까지 필명을 드날렸던 천재 시인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년)의 생가는 호수 남쪽의 아름드리 솔밭 안쪽에 남아 있다. 허난설헌 생가는 소나무와 벚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전통 가옥의 운치가 제법 넘친다.
▲ 경포호 남쪽 솔밭에 자리 잡은 허난설헌 생가.
허난설헌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은 교산 허균(蛟山 許筠·1569~1618년)의 누이다. 그녀는 8세에 상량문을 지어 신동이라는 칭송을 받고, 허균의 문장을 봐줄 정도로 출중한 솜씨를 지녔으나 14세에 결혼해 얻은 두 딸을 잃고 시름에 찬 세월을 보내다 27세에 요절한 불운한 천재다. 초당동 허난설헌 생가 입구에는 ‘허초희시비’를 비롯해 당대 허씨 5문장을 기리는 시비를 세워 문학거리가 조성돼 있다.
허난설헌 생가에서 호수로 되돌아 나와 동쪽으로 걸으며 경호교를 건너면 산책길 시작 지점인 경포대해수욕장 앞. 만약 호수길 산책만으로 성이 차지 않아 오죽헌 답사도 도보로 곁들이고 싶다면 경포호 서쪽 끄트머리의 3·1독립운동기념탑 주차장에서 서쪽으로 뻗은 경포로를 따르면 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걷다 보면 해운정을 지나 선교장(船橋莊·중요민속자료 제5호)이다. 3·1독립운동탑 앞에서 선교장까지의 거리는 1km. 선교장은 ‘배다릿집’이라는 뜻인데, 이는 경포호의 물이 이곳까지 차 있을 때 배가 드나들던 옛 지명인 ‘배다리마을’을 한자로 바꾼 것이다. 안채, 그리고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 별채인 동별당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열화당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가운데 “친척들과 더불어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며 즐긴다”는 구절에서 따왔다. 연못에는 1816년에 지은 아담한 정자 활래정(活來亭)이 돋보인다.
선교장에서 매월당김시습기념관을 지나 오죽헌(烏竹軒·보물 제165호)까지는 다시 1km 정도 걸어야 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1536~1584년)가 태어난 몽룡실(夢龍室)은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유명하다. 신사임당과 율곡이 직접 가꾸던 매화나무인 몽룡실 뒤꼍의 율곡매(栗谷梅)는 몇 년 전 천연기념물 제484호로 지정되었다. 율곡기념관에는 율곡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신사임당의 글씨·그림 등 율곡 선생 일가의 유품 6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 숙박
선교장 전통문화체험관(033-646-3270, www.knsgj.net)에서 체험형 숙박이 가능하다. 이 외에도 경포대 가까이에는 펜션라고(019-535-1030), 휴심(033-642-5075) 등의 숙박 시설이 있다. 경포해수욕장 근처의 르호텔경포비치(033-643-6699), 비치파크모텔(033-653-9111), 뉴그린모텔(033-644-1960), 씨에스타(033-651-8446) 등은 전망 좋은 숙박시설이다.
정동진역 앞에 모텔과 민박집이 많다. 썬크루즈리조트(033-610-7000 www.esuncruise.com)는 바닷가 절벽 위에 서있는 유람선 모양의 호텔.
▲ 널따란 반석이 일품인 동해 무릉계곡. 물 미끄럼을 타는 어린이가 참 부럽다.
제6경 동해 무릉계곡
백두대간 두타산(1,353m)이 품고 있는 무릉계곡은 맑은 계류를 따라 펼쳐진 널따란 반석과 기이한 모양으로 서 있는 바위들 덕분에 명성은 오래전부터 백두대간을 넘어 멀리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정선과 동해를 잇는 옛길로 많은 시인묵객이 지나갔고, 그들은 항상 이곳에 들러 흔적을 남겨 놓았다.
숲 그늘 짙은 계곡은 하얗게 빛난다. 무릉계곡의 백미로 손꼽히는 무릉반석(武陵盤石) 때문이다. 널따란 반석에는 온갖 시구가 빼곡하다. 예전부터 이곳에 들렀던 수많은 시인묵객이 남긴 흔적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글씨는 단연 조선의 명필 양사언이 초서로 쓴 구절이다. ‘武陵仙源(무릉선원), 中臺泉石(중대천석), 頭陀洞天(두타동천)’. 해석하면 ‘신선이 놀던 무릉도원 / 너른 암반 샘솟는 바위 / 번뇌조차 사라진 골짝’이란 뜻이다.
이렇게 빼어난 무릉계곡에서 꼭 해보고픈 일. 바로 탁족이다. 아이들은 완만한 경사의 반석 위로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며 물미끄럼을 타기도 한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광경. 따라해 볼까 하는 유혹도 생기지만 관리사무소 측에서는 혹시 모를 사고 때문에 물미끄럼을 막고 있으니 어른들은 체면 때문에 나서지도 못한다. 그래도 옛 선비들처럼 그냥 발을 담그고 탁족만 즐겨도 콧노래가 절로 나오니 이를 어이하랴.
무릉계곡 탁족이 아무리 좋아도 무릉계곡 전체를 감상하는 일을 빼놓으면 안 된다. 흔히 무릉계곡이라 하면 호암소부터 무릉반석·삼화사·학소대·옥류동·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과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약 4km 구간을 말한다. 계곡미? 가히 명불허전이니 걱정 붙들어 매도 좋다. 용추폭포까지 왕복 2시간30분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옥산이나 두타산 산행을 할 수 있지만 산행 준비를 단단히 하지 않았다면 이 정도에서 물러서도 괜찮다.
이처럼 무릉계곡은 오대산 소금강과 같은 계곡형임에도 넓을 뿐만 아니라 깊은 곳이 없어 매우 안전하다. 경관도 좋거니와 피서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지 싶다. 그러니 어린이가 딸린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며 피서하기에는 소금강보다는 이 무릉계곡이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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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계곡 입구에 무릉프라자모텔(033-534-8855), 청옥장(033-534-8866) 무릉반석(033-534-8382) 등의 숙박시설이 있다. 무릉계곡 야영장(033-534-7306~7)은 텐트 1동당 7,000원.
추암해수욕장에 동해파크장(033-522-4189), 유성장여관(033-521-2443), 추암바다횟집민박(033-521-6167) 등이 있고,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용캠프장인 망상오토캠프리조트(033-534-3110, www.campingkorea.or.kr)는 울창한 송림과 넓은 백사장,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자연친화적인 숙박시설이다.
▲ 오십천 건너편에서 바라본 죽서루.
제7경 삼척 죽서루
“진주관(眞珠館) 죽서루(竹西樓) 오십천 나린 물이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니.”
송강 정철은 관동별곡에서 죽서루를 이렇게 노래했다. 여기서 진주는 삼척의 옛 이름이고 진주관은 삼척의 객관이다. 죽서루는 진주관에 딸린 부속건물이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이 죽서루 주변으로 관아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중요한 임무를 띤 관리나 유람하는 시인묵객들은 이곳에 들러 시를 짓고 흥취에 빠져들곤 했다.
고려시대 처음 건립돼 조선 태종 때 재건된 2층 누각인 죽서루(보물 제213호)는 누각 동쪽 대나무 숲에 죽장사(竹欌寺)가 있어 죽서루라 불렸다 하고, 또 명기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집 서쪽에 있어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얼마나 이름이 높았나 하면, 고려 때 이승휴(李承休·1224~1300년)는 “이 고을은 높은 누각 때문에 매우 유명해졌구나” 하고 노래했고, 조선시대에는 삼척부사 허목(許穆·1595~1682년)이 “관동팔경 중에 죽서루가 으뜸”이라고 치켜세웠다.
죽서루는 동해안 팔경에서도 두 개의 계곡형 명소를 뺀다면 강가에 있는 유일한 명소다. 또한 영동지방에 누정은 셀 수 없이 많아도 나라에서 보물로 지정한 것은 삼척 죽서루와 강릉 경포대 근처의 해운정 두 곳뿐이다.
▲ 죽서루 위층 내부. 누각에 앉아 대숲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 옛 시인의 흥취가 부럽지 않다.
이렇게 명성을 드날렸던, 오십 굽이나 휘돌아 감으며 흘러간다는 오십천 물가 층암절벽 위에 지은 죽서루에 오르면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두 눈에 든다. 고려 때는 김극기를 비롯해 이승휴·안축 등이 흔적을 남겼고, 조선시대에는 이이·양사언·정철 등 내로라하는 당대 명사들이 이곳에서 남긴 시가 수백 편에 이른다. 물론 이제 세월이 변해 죽서루에 올라 시 읊는 나그네도 드물고, 진주관에서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객을 맞아주는 아리따운 삼척 명기들의 웃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도 2층 누각에 앉아 20개의 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댓잎 바람을 즐기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죽서루의 또 다른 감상 포인트는 오십천 건너편 강 언덕. 죽서루를 벗어나 엑스포타운으로 접근하면서 오십천 물가에서 한 번 죽서루를 올려다보는 일을 잊지 말자. 관동팔경을 화폭에 담은 겸재 정선도 여기에서 죽서루를 감상했다. 오십천 죽서루 근처에는 은어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낚시를 좋아한다면 낚싯대를 준비했다가 수박향 은은한 은어 잡이에 한번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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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 주변에는 숙박 시설이 없다. 삼척해수욕장의 낙원모텔(033-576-0811), 삼척비치여관(033-576-0163), 해변타운민박형콘도(033-576-0301), 맹방해수욕장의 덕산장(033-572-4753), 양지터민박(033-573-1365) 등 삼척의 유명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모텔이나 민박 등 숙박시설이 많다. 장호항 근처에 용화관광랜드모텔(033-573-6321), 모텔민박(033-572-9888) 등의 시설이 있다.
제8경 삼척 환선굴과 대금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삼척은 죽서루 때문에 유명세를 떨쳤지만 21세기에는 석회동굴, 특히 대금굴 덕분에 전국적으로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삼척 지역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동굴은 모두 50여 개. 그 중에서도 환선굴·대금굴·관음굴 등이 분포하고 있는 백두대간 덕항산 기슭의 대이리 동굴지대(천연기념물 제178호)는 삼척이 ‘동굴의 왕국’임을 알려주는 귀중한 보물이다. 현재 개방된 동굴은 환선굴과 대금굴 두 개뿐인데, 환선굴은 1997년 개방 이후 840만 명, 대금굴은 2007년 6월 개방 이후 2년 만에 약 46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고 한다. 특히 대금굴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 전혀 훼손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미학을 지닌 대금굴. 개인은 인터넷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드높다.<사진 삼척시청>
환선굴은 예약이 필요없지만 대금굴은 반드시 인터넷 예약을 해야만 관람이 가능하다. 두 개의 동굴을 모두 보려면 대금굴 예약 시간에 맞춰 일정을 조정하면 된다. 보통 때는 대금굴(어른 1만2,000원) 표를 끊으면 당일에 한해 환선굴(어른 4,000원) 무료입장이 가능했지만, 성수기인 7월 25일부터 8월 15일까지는 따로 표를 끊어야만 한다. 따라서 피서철에 둘을 모두 보려면 개인당 무려 1만6,000원이 든다. 4인 가족이라면 5만 원이 훌쩍 넘는 액수다.
이런 고가임에도 대금굴은 예약조차 쉽지 않다. 매월 1일 실시하는 다음달치 예매가 시작 5분 만에 매진되기 때문이다. 특히 가족 단위의 개인 손님이 주말에 표를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여행사나 주변 상가에서 단체표로 싹쓸이하는 탓이다. 이 때문에 개인 관광객들의 불만이 높지만 관리사무소 측은 “동굴 보호를 위해 인원을 제한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소연한다.
▲ 삼척 환선굴.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복잡한 구조를 지닌 석회동굴이다.
대금굴은 예로부터 알려져 있던 동굴이 아니다. 삼척시가 2000년 삼척 세계동굴엑스포를 앞두고 탐사작업을 벌여 그 존재를 확인한 뒤 7년 만인 2007년 개방했다. 무려 5억3000만 년이란 오랜 세월 어둠 속에 묻혀 있으면서 개방 전까지 사람의 손을 전혀 타지 않은 덕에 폭포와 종유석·석순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돼 있다.
‘은하열차’라 불리는 모노레일을 타면 동굴 외부는 인공통로를 따라 610m 달리고, 내부에서는 인공터널을 통해 140m 지점까지 들어간다. 모노레일에서 내리면 높이 8m의 거대한 폭포를 비롯해 크고 작은 폭포가 흘러내리는 ‘폭포 및 광장 지역’이다. 동굴폭포의 화려한 색상이 아름답지만 아직 놀라긴 이르다. 이어 ‘종유석 지역’에 들면 막대형·기형 종유석, 동굴방패, 동굴진주 등 다양한 종류의 석회동굴 생성물이 휘황찬란하다. 전혀 훼손되지 않은 덕에 감동은 곱절이 된다. 개방 구간의 마지막 코스는 ‘호수 지역’. 연장 60m, 수심이 8~9m에 이르는 동굴호수는 신기함과 두려움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관람시간은 모노레일 승차시간을 포함해 약 1시간30분. 동굴을 빠져나올 땐 마치 비밀의 극락세계를 엿본 느낌이다. 이래서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인기가 그리 높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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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선굴 입구에 신기파크(033-541-5600), 한성여관(033-541-9988)을 비롯해 골말민박(033-541-1554), 관음굴민박(033-541-1624), 통방아민박(033-541-1662), 형제민박(033-541-1640), 환선민박(033-541-1592) 등 십여 군데의 숙박시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