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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나타났으니, 보라, 커다란 붉은 용 한 마리가 있는데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 머리들 위에는 일곱 왕관이 있더라.
이번 이적은 땅에 있는 어떤 대상을 하늘에 투영한 존재가 아닌 순전히 우주 공간(둘째 하늘)상에 실제 존재하는 사탄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분이 성경에 묘사된 바 사탄의 실체, 그의 뿌리와 현재와 미래에 대해 알고자 한다면 욥기, 에스겔서, 이사야서, 요한계시록에서 사탄에 관련된 구절들을 집중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성경에는 단수 "마귀"가 있고 복수 "마귀들"이 있는데 사탄은 자신의 실체를 감추고 그의 암흑의 역사를 보다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마귀들을 동원해서 연막을 친다. 사탄에 미혹된 희생자들은 그 자의 실체를 모르면서 따라가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대표적으로 사탄에 심히 미혹된 멍청이들은 은사주의 교회에 속한 목사와 교인들이다.
사탄에 가장 무지한 부흥사들 중에서는 "사탄들"이라는 표현까지 쓰는 경우가 있다. "사탄들"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수 사탄이다. 그가 성경에 "사탄"이라는 호칭으로 거명된 모든 구절들에서 한 번도 복수로 쓰인 적이 없다.
사탄이라 불리는 이 마귀는 모든 마귀들의 대장이며 군주이고 또 그는 사탄의 영적 자식들인 죄인들의 아비이기도 하다. 그는 여러 형태로 자신을 감추고 위장할 수 있지만 그 자의 본질적 모습은 하늘에 있는 "커다란 붉은 용"이다.
네가 갈고리로 리비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또한 끈으로 그의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네가 갈고리를 그의 코에다 넣을 수 있겠느냐? 가시로 그의 턱을 꿸 수 있겠느냐?(욥 41:1-2).
여러분이 사탄의 실체를 직접 보지 못해서 우습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는 이 우주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강력한 통치자요 대적자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는 리비야단이라고도 불리는데 이 자는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붉은 용으로서 중국 전설에 나오는 용들처럼 진짜로 입에서 불과 물, 그 외 여러가지를 토해내는 존재이다.
지구상의 어떤 용사도, 어떤 강대국의 군대도 사탄을 대적할 수 없다. 그가 자기 실체를 드러내게 될 때는 대환란 중의 어느 시점인데 그때 사람들은 하늘에 나타난 큰 이적을 보게 될 것이고 사탄과 그의 무리들이 번개처럼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이 하늘에서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눅 10:18).
위 구절에서 사탄의 추락을 과거형으로 기술하고 있다 해서 밀턴의 실낙원을 섣불리 대입시켜서 이것이 사탄의 과거 타락을 설명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물론 사탄은 창세기 1:1-2 사이의 어느 시점에 반역을 저지르고 둘째 하늘로 추락한 적이 있다. 그때 우주적 물심판이 있었고 사탄과 그의 천사들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분리되어 우주라는 흑암 중에 거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이 말씀하시는 위 장면은 그 태초의 타락이 아닌 계 12장에 있을 미래적 사건이다.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고 그 머리들 위에는 일곱 왕관이 있더라. 여러분이 사실과 상징이 혼재되어 있는 이러한 본문에 맞닥뜨렸을 때 취해야 할 자세는 이것이다. 여러분은 선호하는 것만 받아들이려 해서는 안 되고 본문이 제시하는 전부를 수용해야 한다.
즉, 사탄의 외모를 묘사한 이 내용은 문자적, 물리적, 현상적으로 100% 그대로라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사탄이라는 존재는 실제로 이렇게 생겼고 여러분이 "설마, 저런 괴상한 존재가 하늘에 있다는 걸 믿으라고?"라고 반문할지언정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을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 기초적인 허들을 뛰어넘지 못한 실격자들이 자유주의, 현대주의, 신정통주의자들로서 그들은 자기들의 자연인적 상식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계시들이 성경에 나오면 그것들을 애써 무시하고 넘어가거나 성경의 그런 부분들을 신화적이고 모호한 상징이라고 깔아뭉개고 간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신화가 아니며 전설이나 이솝 우화도 아니다. 성경의 나머지 책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요한계시록도 기본적으로는 문자적 해석을 통해서 충분히 해석하고 믿을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이 문자적 해석을 건너뛴 채로 "일곱 머리와 열 뿔은 그 무언가에 대한 상징이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건전한 해석이 아닌 사상누각의 교리를 세우게 되어 있다.
나는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상징적 의미 또한 담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여기에 의미가 없다고 한 적이 없다. 일곱 머리는 인류 역사 6천 년을 주름잡은 일곱 개의 주요 세계 제국을 가리키는 것이며 열 뿔은 마지막 세계 제국을 다스릴 열 명의 통치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성경에 나타난 일곱 제국의 일곱 군주에 대해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1. 님롯: 쿠스가 또 님롯을 낳았으니,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힘센 자가 되었더라. 그가 주 앞에서 힘센 사냥꾼이었으므로,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 앞에 님롯 같은 힘센 사냥꾼이라.” 하더라(창 10:8-9).
2. 파라오(출애굽 때의 파라오): 파라오는 님롯의 고대 바빌론에 이어서 세계를 주름잡은 최대의 제국인 이집트의 통치자이다.
3. 산헤립: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은 왕상 18장에서 볼 때 대환란의 전조 격으로 유다 왕국을 침공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자로 등장한다.
4. 느부캇넷살: 다니엘서 3장은 바빌론 제국이 당대 최고의 세계 패권임을 증거하고 있다.
5. 다리오: 메데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은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인물인데 그는 전3년 반의 죄의 사람을 예표한다.
6. 알렉산더 대왕: 성경에 직접적으로 존재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거친 수염소로 다니엘서에 나온 자로서 그는 명실상부 인류 역사 최대의 제국 중 하나인 헬라 제국의 건설자이다.
7. 카이사: 알렉산더의 헬라 제국을 무너뜨리고 차기 세계 권세가 된 세력은 바로 로마인데 로마는 동로마, 서로마로 갈라져 결국 멸망했지만 로마는 대환란 때 부활할 여덟번째 권세가 된다.
전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을 따라 행하였으니(엡 2:2).
사탄은 적그리스도라는 그의 실질적 화신을 등장시켜 전세계를 직할 통치하기 이전에 인류 역사 6천 년을 통해 이와 같이 최소 7명의 예표적 왕들을 통해 자기가 할 일들을 미리 보여준 바 있다. 물론 신구약에는 더 많은 적그리스도의 예표적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 대표적인 자들이 저기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두 권세 하에 놓여진 채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하나는 이 세상을 물리적, 정치적, 군사적으로 장악하고 통제하는 공중 권세의 통치자의 세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 세상을 물리적, 정치적으로 지배하지 않으며 영적으로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라의 권세이다. 전자의 권세 하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이 자연적으로 출생하면서부터 되는 것이고 후자의 권세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야 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적그리스도의 왕국이 수립되는 대환란 이전까지 모든 인류는 두 왕국 사이에 끼어서 살아가면서 대부분은 양다리를 걸치고 여기 순종하다가 저기 순종하다가 하며 살아간다. 무슨 말인고 하면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대다수가 헌신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세상의 정욕에도 굽히고 하나님의 나라에도 참여한 채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을 "미지근한 자들"이라 부를 만 한데 20-21세기의 인간들이 바로 계 3장에 적나라하게 묘사된 바 토해낼 정도의 미지근한 인간들이다. 그들은 물론 상당수가 거듭나지 못한 기독교인일 뿐이지만 거듭난 성도들조차도 과거 시대의 성도들처럼 세상과 성별되어 있지 않고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면서 세상을 누리고 즐기는 자들로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혼잡된 시대는 대환란이 오기 전까지만 통하는 것이고 일단 휴거가 있고 대환란이 시작된다면 그때부터는 모든 것이 흑과 백으로 확실하게 나뉜다. <도 아니면 모>. 대환란 때가 되면 지상의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아니면 마귀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길거리에 나가서 전도지를 나눠주고 설교할 때 사람들에게 항시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하나님과 마귀 중에 확실히 선택하라"는 것이다. 물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새삼 마귀를 선택하지 않아도 그 상태대로 죽으면 지옥에 간다. 내 말은 거듭남과 함께 그 죄인은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에 복종하며 살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결단의 의무와 자격"이 생긴다는 말이다.
마귀도 하나님도 선택하지 않은 채 단지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 붙잡고 살겠다고 하는 것은 라오디케아인들의 선호하는 생활 양식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의 군사로 인정하지 않으신다.
4 그런데 그의 꼬리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또 그 용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키려고 출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더라.
4절에서 우리가 부딛치는 해석상의 난해함은 이 구절과 7절이 같은 내용의 동어 반복이냐, 아니면 별개의 사건 서술이냐 하는 부분이다. 기본적인 세대주의적 해석의 경향은 4, 7절의 내용이 같은 것이고 두 번 서술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이야기를 더 전개하겠다.
우선,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을 문자적인 행성이나 항성들로 받아들일 시에 이것은 물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내용이 된다. 이 구절을 대하는 자세 중에서 최악의 경우는 자유주의나 회의주의자들이 내리는 결론처럼 "사도 요한에게는 현대 천문학적 지식이 없었기에 그는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이 땅에 쏟아질 수 있다고 믿었다"이다. 물론 성경은 현대의 천문학 지식보다 훨씬 우월한 하나님의 관조로 기록되었기에 어떤 비과학적 오류가 있을 수 없다. 이 구절의 하늘의 별이 문자적 별이 아닌 그 어떤 상징적 별들이라는 점은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계시록을 읽는 성경 독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점을 곤혹스러워하는 줄 안다. 그들은 어디까지가 상징이고 어디까지를 문자적으로 해석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해서 머리를 긁적이곤 한다. 내가 충고하는 것은 이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구절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되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 없고 모순에 봉착하는 그런 부분은 상징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여러분이 이 구절의 별을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과학적으로 하늘의 별 삼분의 일이 지표면에 낙하할 수 없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성경에서 별이라는 존재가 영적 존재인 천사들로 자주 묘사되기 때문이다.
네가 본 것은 나의 오른손 위의 일곱 별과 일곱 금촛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네가 본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계 1:20).
여기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지 다시 보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어떤 무자격 성경 해석가들이 주접을 떠는 대로 "저 천사들은 요한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목사님들입니다"라는 해석을 받아들이지 말고 똑바로 현상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성경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이지 약장수 신학자들의 이론을 갖고 성경을 조작하는 게 아니다.
여러분은 지역 교회의 목사들이 "천사"이거나 "별들"이라고 생각해 본 적 있는가? 그 엉터리 신학 박사님들은 그렇다면 신학교나 교회 강단에 설 때 이마팍이나 가슴에 은박 은박 별을 붙이고 서는가? 4성 장군의 으리으리한 별 같이 별을 달고 다니냐는 것이다. 목사와 별이 무슨 상관인가, 또 목사와 천사가 무슨 상관인가? 멍청한 해석은 접어두고 성경이 알려주는 사실이나 제대로 접수하라. 천사는 별, 별은 천사, 두 가지는 서로 교환, 통용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4절은 7절과 직결되는 구절이며 같은 이야기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다른 관점인지에 대해서는 7절을 설명하면서 다루는 것으로 하고 이 별들이 결국 천사라고 하면 천사들 중 1/3이 땅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는 것이다.
천사들의 구체적인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무척 많다는 것은 별들의 숫자가 거의 무한대에 가깝도록 많다는 점에 비추어 볼때 짐작 가능하다. 천문학적인 숫자 중에서 1/3이라 할지라도 지구상의 인구보다는 월등히 많으리라 추정된다. 사실 1/3의 그 타락 천사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우리의 핵심 관심사가 아니며 그 자들이 왜 여기로 내려오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천사들은 모두 구원의 상속자가 될 자들을 위하여 섬기도록 보내심을 받은 섬기는 영들이 아니냐?(히 1:14).
구원의 상속자, 곧 환란 시대에 구원받을 유대인과 이방인들에게는 천사들이 와서 섬기고 보호할 것이다. 이것이 어떤 신비주의자들이 생각하는 바 <수호 천사>의 개념과는 상관이 없는데 그들은 지금 교회시대에 천사들이 성도들에게 와서 섬긴다, 심지어 각종 의사 전달과 교류를 하고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드문 사례이지만 크리스찬들이 특정한 상황에서 천사를 목격할 때가 있고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교회 시대인 지금도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위해 간혹 천사들을 직접 보내시는 경우가 있다는 증거이지 그런 현상이 아주 보편적, 일반적이어서 크리스찬만 되면 수호 천사가 따라 붙는다는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이 이야기를 한 것은 사람들이 천사에 대해 너무 막연하게 생각하고 또 비성경적인 왜곡된 이교적 관념들을 가져와서 성경과 믹스시키려 하는 것 때문이다. 특히 로마 카톨릭과 은사주의자들이 천사 미신을 많이 부추긴다. 지금은 천사 숭배가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크리스찬들이 천사들을 만나겠다고 수상한 미신적인 행위를 하면 마귀를 만나지만 대환란 때는 성도들이 천사를 부르지 않아도 그들이 와서 성도들을 먼저 도와줄 것이다.
성도들만 천사를 빈번히 접하는 게 아니라 환란 시대의 불신자들 또한 천사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불신자들이 만날 천사들은 선한 하나님의 천사가 아니라 계 12장의 과정을 거쳐 이 땅에 쫓겨 내려온 악한 마귀의 천사들이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의 재앙인 것이다. 그들에게 내려온 악한 천사들은 도와주는 게 아니라 악령들처럼 그들을 핍박하고 괴롭힐 것이다.
또 그 용이 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삼키려고 출산하려는 그 여인 앞에 서 있더라. 이제 더 어려운 본문으로 접어들었는데 용과 여인의 대치 국면이 묘사되고 있다. 용은 사탄이고 여인은 이스라엘 민족이다. 용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중요한 사람들인지 알기에 나타나자마자 제거하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산>이 어떤 의미인지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일단 내가 대전제를 내려놓겠는데 나는 아이를 <14만4천>이라고 아예 단정하고 시작할 것이다. 다른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나 나는 14만4천이라고 강력하게 추정한다. 적어도 이 사내 아이라는 존재가 주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아니다. 또 대환란 때 재림할 두 증인(모세와 엘리야)도 아니며 구약 선지자들 중 다른 누구도 아니다. 그들은 14만4천인 것이다.
<출산>은 사내 아이, 그러니까 14만4천으로 추정되는 그 자들의 등장, 출현을 뜻하는 것이라 보는 게 맞겠다.
누가 그러한 일을 들었으리요? 누가 그러한 일들을 보았으리요? 땅이 하루에 생겨날 수 있으며, 한 민족이 순식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자마자 그 자녀들을 낳았도다(사 66:8).
나는 사 66:8이 대환란 14만4천의 출현 자체를 계시한 것이거나 적어도 그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내용이라 보고 있다. 여기서는 "한 민족이 순식간에", "진통하자마자"라는 묘사를 곁들여서 어떤 백성의 무리가 갑자기 등장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러한 추정이 맞다면 계 12장의 이 여인이 14만4천을 임신, 출산하는 일은 상당 기간(아마 10개월)을 거쳐서 되는 게 아니라 "느닷없이" 일어날 수도 있겠다. 즉, 7년 환란 전에 교회가 휴거된 후 "느닷없이" 14만4천이 출현하고 그들은 전3년 반의 사역을 펼칠 것이란 얘기다. 그 사람들이 어딘가에 집단 합숙하면서 스파르타 선교 훈련을 받고 수료증을 받아서 1년 만에 졸업하고 그런 게 아니다.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이 그들은 바람과 함께 나타난다.
그러면 4절의 상황이 1/3의 별(천사)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 직후를 말하고 있고 동시에 14만4천이 전3년 반 사역을 위해 나타나니까 4절은 7년 환란의 시작 지점이 될 수 밖에 없다. 4절과 7절이 동시 타임이 될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생긴 것이다. 7절은 7년 환란의 중간을 가리키고 있고 그 때에 이스라엘의 일부 백성들이 페트라로 도피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4절에서 1/3의 수상한 "별"이 떨어지는 일은 그러면 7년 환란이 시작할 때 선발대 격으로 어떤 천사들이 먼저 내려와서 적그리스도의 체제 수립을 돕는다는 뜻이 될까? 그럴 수 있다. 반면 7절에서는 본대에 해당하는 또 다른 천사들이 미카엘과의 <스타 워즈>에 패배한 후 땅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추정이 맞다고 하면 많은 신학자들이 통상적으로 알고 있는 타락 천사의 비율에 대한 개념이 틀렸을 수 있다. 많은 주석가들이 하늘의 천사들 중 1/3이 타락해서 마귀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 보고 있는 바와 같이 타락 천사는 1/3이 아니라 그 비율을 훨씬 상회한다. 물론 창세기 6장에서 먼저 타락해서 인간의 딸들과 불법을 저지른 그 천사들도 추가해야 하니 1/3이라는 타락 천사만 존재하는 것은 전혀 아닌 게 분명하다.
5 그녀가 사내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는 모든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릴 자라. 그녀의 아이가 하나님과 그의 보좌 앞으로 들려 올라가더라.
4절에서 "아이"(child)로 언급되던 존재가 "사내 아이"(man child)라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14만4천에 대해서 이단 종파들이 제기하는 거짓 교리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인 것이다. 그들이 뭐라 주장하건 여자들은 14만4천에 포함될 수 없다. 남자여야만 14만4천이 될 기본 조건을 갖춘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계 7장이 설명하고 있듯이 까다롭고 구체적인 조건들, 남자이면서 유대인이고 이스라엘 각 지파들의 혈통을 물려받아야 되는 것들이 있다. 유대인과 무관한 이단 교파들이 14만4천을 자처해 보아야 먼지만 날릴 뿐이다.
"모든 민족들을 철장으로" 다스린다는 이 표현 때문에 사람들은 이것은 예수님에 대한 언급이 분명하다고 단정내린다. 성경을 제발 좀 깊이 있게 공부하기 바란다. 예수님"만" 철장 통치를 하시는 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수많은 신약 크리스찬들, 환란 성도들도 철장 통치를 한다.
이기고 나의 일들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요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리니, 그들이 질그릇같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리라. 나도 나의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계 2:26-27).
14만4천은 환란 성도들 가운데 첫열매들인데 그들이 철장 통치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사실만 부각시켜 나열하고 있으며 <출산>과 <들어올림> 사이에 있는 모종의 과정에 대해 완전히 생략되어 있다. 우리가 14만4천이 등장하는 계 7, 14장을 상세히 들여다볼지라도 마찬가지 현상이 발견된다. 그들이 어떠 어떠한 사역을 한다, 어떻게 순교를 한다던지 그런 연대기적 서술이 전혀 없다. 7장에서는 그 자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어떤 소속과 출신이다, 그 얘기로 끝난다. 14장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다, 즉 하늘에 있다는 묘사만 있을 뿐이다. 그들이 맡은 바 사역을 어떻게 수행했다 하는 부분은 빠져 있다.
동일한 현상이 이 구절에서도 발견되는데 이 사내 아이는 출산된 후에 그냥 휴거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그 행간에 생략된 의미를 읽어야지 단순하게 "아, 사내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별 일도 안하고 그냥 올라가는 거구나"라고 생각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이 아이는...자라" 여러분이 상식의 끈을 놓지 말고 이 맥락을 자세히 보기 바란다. 하나님께서 천년왕국의 철장 통치권을 이 사내 아이라 특정된 인사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그들이 아무것도 안 했는데 공짜로 거저 주시겠는가? 이 사람들이 그냥 받느냐 말이다. 그러니까 이들의 활약상에 관해 본문에 생략된 것이 있다고 내가 강조했던 것이다.
교회 시대인 지금도 구원은 은혜로 거저 받지만 면류관과 관련된 하늘의 보상들은 거저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몸으로 행한 바"에 따라 적법하게 받는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이든지 각자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고후 5:10).
선이든지 악이든지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돌려주신다. 어떤 사람은 통치권을 싹쓸이하고 다른 사람은 손가락만 빨아야 할 수도 있다. 구원은 같은 구원이지만 누리는 것이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이 구절의 사내 아이를 "예수 그리스도"라 간주하는 자들의 논리에 기대어 한번 본문을 해석해 보자. 어떤 모순과 껄끄러움이 발견되는지 보자. 이게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이라 치고 예수님의 승천이 또한 묘사되었다고 간주한다 치자.
뭐가 이상하지 않은가 말이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백미"요 "완성"이 어디에 가 있는지 다들 아실 것이다. 바로 갈보리 십자가 사건이다. 주님은 이 땅에 죄의 대속물로 죽으시기 위해 오신 분이다. 그래서 주님의 죽으심을 빼놓고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온전한 설명이 되지를 않는다. 거기에 그 분의 부활하심까지 합쳐져야 예수 그리스도라는 존재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그런데 사내 아이가 예수님이라면 왜 죽으심이나 부활하심이라는 중차대한 본질이 행간으로 숨어 버리고 단지 주님의 승천이라는 피날레만 나와 있나 말이다. 사도 바울의 은혜 복음에 대한 개념 정의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는지 한번 보기 바란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달하였나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셔서 게바에게 보이시고 그후에 열두 사도에게 보이신 것이라. 그후에는 오백 명이 넘는 형제들에게 일시에 보이셨는데 그들 중 대부분은 지금도 살아 있으나 더러는 잠들었느니라. 그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고 그후에는 모든 사도에게(고전 15:3-7).
요약하자면 복음의 골자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장사되시고, "살아나시고", "보이신" 것까지이다. 어라, 그런데 왜 주님의 승천은 산입되어 있지 않은 것인가? 올리브 산 승천은 복음의 서술에서 오히려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 여러분이 계 12장의 저 사내 아이를 예수님이라 해석해서 되겠는가 말이다. 그 아이는 예수님이 될 수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단지 철장을 들고 다스린다고 해서 예수님으로 단정짓지 말고 앞뒤 분간하고 따져 보기 바란다.
위 장면은 분명 휴거를 가리키고 있고 많은 해석가들이 이것을 교회의 휴거로 해석하고 있다. 즉, 사내 아이에 대한 해석의 경향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뉘는데 어떤 것들인가 하면.
1. 사내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
2. 사내 아이는 크리스찬들을 뜻한다.
3. 사내 아이는 두 증인이다.
4. 사내 아이는 14만4천이다.
5. 사내 아이는 대환란 때의 어떤 이스라엘 지도자이다(애 4:20).
그 중 1, 2번이 가장 선호되는 해석이고 소수의 해석가들이 3번을, 더 소수의 해석가들이 4번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이것들을 서로 중첩해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즉, 예수 그리스도일 수도 있고 크리스찬일 수도 있다라던지 두 증인일 수도 있고 14만4천일 수도 있다와 같은 해석이다.
피터 럭크만 박사 역시 4번이라고 유력하게 추정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5번 해석, 곧 사내 아이가 어떤 한 선지자일 수도 있다고 이야기한다. 럭크만 박사는 1-2번에 대해서는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편인데, 럭크만을 제외한 다른 세대주의자들은 오히려 1번을 많이 이야기한다. 럭크만 박사가 지적한 5번은 어떤 내용인가?
우리 콧구멍의 호흡인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가 그들의 구덩이들에 빠졌도다. 우리가 그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의 그늘 아래서 우리가 이방 가운데 살리라.” 하였도다(애 4:20).
예레미야애가 4:20에는 흡사 이 사내 아이를 가리키는 것 같은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는 대환란 때 이스라엘의 의지할 수 있는 지도자인 것처럼 보인다. 그는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로서 예수님 자신은 아니지만 메시야적 사명을 받고 이스라엘을 이끄는 자이다. 혹시 그가 대환란 때의 두 증인 중 하나인 모세가 아니냐 할지 모르겠는데 모세는 단독으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엘리야와 한 조를 이루어 사역하기 때문에 여기서 단수 한 사람으로 나타나는 이 사람은 모세는 아닌 게 분명하다.
그래서 럭크만 박사는 누군지는 알 수 없으나 7년 환란 때 이스라엘을 이끌 민족적 리더가 있는데 그가 곤경에 빠져서 죽는 것을 계 12장에서 묘사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게 추정해 본 것이다. 물론 애 4:20 이 구절 하나로서 더 이상 이야기를 전개하기는 어렵고 나는 럭크만 박사의 그 추정에 대해서는 좀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
내 생각에는 5번과 4번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즉, 저 "주의 기름부음 받은 이"가 선지자 한 명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왜 그런가, "구덩이들"이 복수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어떻게 많은 구덩이들에 빠질 수 있겠는가? 이 복수 문제 때문에 기름부음 받은 이는 한 사람이 아닌 어떤 집단, 이를테면 14만4천을 의미하는 쪽이라고 나는 본다. 14만4천이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이스라엘의 "의지할 대상"이 사라지는 것을 뜻한다면 그 14만4천 명은 이스라엘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로부터 막아주고 지켜주는 보호막 구실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구덩이들에 빠지면, 즉 포로 잡히거나 죽임당하면 이스라엘도 보호막을 상실하고 적그리스도에게 짓밟히는 후3년 반을 맞게 될 것이다. 이야기는 그렇게 연결될 수 있다. 예레미야 자체도 유다 왕국이 포로 잡혀가기 직전 최후로 경고한 선지자로서 그는 반대파의 미움을 사서 구덩이 감옥에 갇혀서 죽을 뻔 하기도 했다. 예레미야라는 선지자 자체가 14만4천의 강력한 예표적 인물이기도 하다.
6 그 여인은 광야로 도망하였는데 그곳에는 그들이 그녀를 일천이백육십 일 동안 부양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녀를 위하여 마련해 놓으신 곳이 있더라.
자, 이제 사내 아이는 자신의 가야 할 길로 갔고 남은 존재는 그 아이를 낳은 여인이다. 사내 아이를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한 사람들은 5-6절의 시간적 단절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예수님이 승천하신 후에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있었고 주님의 지상 왕국은 사도들의 당대에 도래하지 않았으며, 휴거나 대환란도 그 당시 오지 않았다. 오히려 2천 년간의 교회 시대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저 아이가 예수님이 맞다면 5절과 6절 사이에 교회 시대라는 거대한 간격이 숨어 있다고 간주해야 한다. 예수님의 승천을 말하다가 곧바로 2천 년을 점프해서 대환란 때 광야로 도망가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이유가 뭔지 설명이 필요하다. 물론, 성경의 예언적 구절들은 시간적 간격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1-2천년 정도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기술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계 12장은 밀집되어 짜여진 시간적 구조 속에서 연쇄 고리를 물고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묘사이다. 2천 년이라는 서사가 끼어들어갈 만한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초림과 재림을 12장에 혼재시켜서 보려고 하면 그것은 본문의 정확한 해석을 저해하고 혼돈시키는 잘못된 해석이므로 그것을 포기하고 배제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여인은 12장에서 시종일관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뜻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여인이 광야로 간다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로 도망간다는 얘기다. 여기서는 어떤 광야인지 좌표를 지정하고 있지 않으나 우리가 시편의 "셀라"라는 암구호를 통해서 미루어 짐작하는 바로는 유대인들이 가게 될 광야는 40년 동안 그들의 조상들이 떠돌았던 광야 인근인 요르단 지역의 광야가 될 것이며 정확히 말해 현재 페트라 국립 공원으로 지정된 그 구역이다.
대환란 히브리인들에게 교리적 실행적 지침을 제시하는 히브리서에서는 그래서 40년 광야 생활과 대환란 광야 생활을 쌍으로 놓고 비교하고 있는 구절들이 나오는 것이다. 모세 때와 같이 유대인들은 또 한번 광야로 가서 시험을 겪어야 할 것이다. 모세 때 만나가 내려서 그들을 부양했듯이 대환란 때도 다시 만나가 내려서 유대인 피난자들을 부양할 것이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주어서 먹게 하리라. 또 그에게 흰 돌을 주리니, 그 돌에는 새로운 이름이 기록되어서 그것을 받는 자 외에는 아는 사람이 없으리라(계 2:17).
그래서 계시록에는 또 다시 "만나"가 모습을 보이는 것인데 나는 여러분이 잊었을까 해서 계 2:17의 "감추어진 만나"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만나는 영원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현재 "감추어진" 상태로 어떤 사람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다.
그 유대인 피난자들이 3년 반 동안 광야에서 만나를 먹는 게 맞다면, 그들은 순전히 초자연적 수단으로 부양되는 것이지 어떤 자연적인 빵이나 비상 식량을 먹고 사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 남쪽으로 해서 요르단 페트라까지 쭉 내려가 보면 그 전반적인 구간이 황무한 땅이고 사람이 거의살지 않는 유목민 지역이다. 페트라 국립공원 자체도 깊은 협곡과 고대 나바테아 왕국 유적으로 이어진 돌과 먼지 투성이 광야일 뿐이다. 어떤 크리스찬들은 셀라-페트라가 장차 유대인의 대환란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거기에 장차 올 유대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생필품과 비상 식량 등을 몰래 조금씩 비축해 놓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무의미한 정성이라고 보는 이유가 우선 몇 명의 피난자들이 거기에 도착할지 나도 너도 모르고 아무도 모른다. 도착할 피난민이 10만 명인데 천 명 분의 물자만 비축되어 있다면 그건 코끼리 코에 비스킷이나 같다. 하나님께서 그 자들을 위해 적절하게 예비하고 계시므로 우리는 장차 대환란 때 페트라가 유대인의 피난처가 된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리니, (읽는 자는 깨달으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들로 도망하라. 지붕 위에 있는 사람은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고, 들에 있는 사람은 자기 옷을 가지러 돌아가지 말라. 그 날들에는 아이를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 있으리라! 너희는 피난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15-20).
마 24장에 그 피난의 장면에 대해 더 자세한 서술이 나오는데 7년 환란 중반에 펼쳐질 본토 유대인들의 광야 소개 작전은 매우 신속하게 이루어짐을 볼 수 있다. 유대인들 전부나 대다수가 도망치지는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왜 그런가 하면 탈락자들이 누구이며 어째서 탈락하는지 이유가 나오기 때문이다. "아이를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은 도망치지 못하고 적그리스도에게 붙들릴 것이다. 그들은 매우 신속하게 생업과 삶의 현장에서 이탈하여 지정된 집합 장소로 가야만 피난이 가능하다. 영어 킹제임스 성경은 20절의 "피난하는 일"을 flight로 번역했다. 직역하자면 <너희의 비행(your flight)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있지 않도록 기도하라>가 된다. 1611년에 flight라는 용어가 피난이라는 용례에 일반적으로 쓰였던 것 같지는 않은데 물론 특정 상황, 즉 아주 꽁지 빠지게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가는 묘사의 맥락에서 flight를 썼다, 추측은 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 시대 뿐 아니라 라이트 형제가 비행을 시작한 이래 여객기가 상용화된 20-21세기에 사는 우리들을 위해서 성령께서 이 단어를 거기에 집어넣으셨다고 여기는 것은 성경이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확신하는 우리 바이블빌리버들의 믿음이다. 14절에서는 여인이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서 날아간다고 말씀하고 있다. 독수리는 여러 나라에서 공군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고 나치스의 공군(루프트바페)도 독수리 마크를 달고 유럽의 하늘을 누볐었다. 러시아의 안토노프 수송기 중 매머드급 괴물 수송기들은 일반적인 캐리어보다 몇 배의 물자를 실어나를 수 있다. 이스라엘의 피난은 페트라 국립 공원으로 가는 수학여행 나들이가 아니라 "민간인 소개 작전"이고 군 수송기들이 총동원되는 형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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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요한은 계시록의 일곱교회에 편지씁니다.
그 수신자가 일곱교회의 앙겔로스이지요^^
천사또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일곱교회의 별은 일곱교회의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천사라면 편지를 쓸 필요한 없지요.....
영계에서 천사들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데 인간이 쓰는 편지를 활용하나요??
어처구니 없는 해석인 겁니다^^
일곱교회의 앙겔로스는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사자,,,종들로 보아야 정확한 해석이 되며,
하지만, 성경에서 흔히 별을 지칭할때는 천사로 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별1/3은 천사의 타락이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