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안개를 사랑하게 되었어 그 자리에 놓여진 것들 탐내지 않고 손끝 하나 다치지 않게 하고 부드럽게 감싸안을 줄 아는 안개를 사랑하게 되었어 처음에는 더듬거리고 막막해 하다가 한 걸음씩 고개 숙여 걸어가다 보면 엷은 슬픔의 축축한 옷 안개의 속마음을 알게 되지 껴안을수록 나의 두 손은 허허로운 가슴께로 모두어지고 헤쳐나가면 나갈수록 무겁게 다가서는 생을 사랑하게 되었어 한걸음 벗어난 아득한 벼랑 너머에도 하늘과 땅 밑에도 길이 있음을 눈감고 알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