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일 것이다. 그런데 만나고 사는 사람들 중 몇몇은 오히려 만나고 싶지 않고 만났으면 금세 헤어졌으면 싶은 사람도 있다. 지식의 얕고, 깊은 것이나, 정이 가고 안 가고가 아니며, 가진 것이 있고 없고, 같은 것은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라고 딱히 설명할 수가 없는 일이지만 굳이 설명해야 한다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가, 아니면 믿을 수 없는가? 그것이 제일 중요한 일이지 않은가 싶다. 중국의 사상가 순자는 <순자> ‘정론正論’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풀이했다.
“얕은 것과는 더불어 깊은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어리석은 자와는 더불어 지혜를 꾀할 수 없으며, 우물 안 개구리와는 동해東海의 즐거움을 말할 수 없다.“
동시대에 사는 70십 몇 억이라는 사람들 중 억겁의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 중 몇 사람만이라도 마음이 통하고, 말이 통한다면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덴마크의 철학자인 키르케고르가 <유혹자의 일기>에서 말한 ‘적절한 대답은 달콤한 키스와도 같다“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지도 모른다.
“자네와 하룻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10년 동안 책을 읽는 것과 같네.”
이런 글도 있다.
동성同性이나 이성異性을 막론하고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큰 복이 아닐까?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많았던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사방 주위에는 지기지우知己之友뿐, 눈에 거슬릴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다.“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이고 가능한 일이 아닐 것이다. 너무 정이 도타운 지기가 많은 것은 어쩌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한두 사람의 진실 된 지기만 있다면 그 또한 복 받은 인생이리라.
“달에 차고 기움이 있고, 꽃에 피고 짐이 있고, 그리운 사람은 서로 항상 만나기가 어렵다.”
이것이 인생일 것이다. 그래도 가끔씩 만나서 며칠씩 같이 걷고 호흡하며 바라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