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장갑차 수출도 터졌다”…호주, 독일 대신 최고 성능 지닌 레드백 샀다 [박수찬의 軍]
박수찬입력 2023. 7. 28. 06:06
국산 장갑차의 해외 판매가 이뤄졌다.
27일 방위사업청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에 따르면, 호주는 궤도형 장갑차 129대를 도입하는 4억 호주달러(약 2조676억 원) 규모의 랜드 400 3단계 사업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 장갑차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제작한 레드백 장갑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호주의 정권 교체로 기존 물량(450여대)보다 감소했지만, 수출용으로 제작한 장갑차의 대규모 수출이 이뤄지면서 ‘K방산’의 세계 시장 경쟁력이 한층 강화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독일 라인메탈이 제안한 링스 KF41 장갑차의 입찰가가 더 낮았지만, 성능 면에서 레드백이 우수한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계약이 체결되면 호주군은 2027년 하반기부터 레드백 129대를 순차적으로 배치한다.
◆수주 요인, 성능과 현지화
당초 방산업계에서는 레드백의 호주 판매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2019년 9월 중형 장갑차를 도입하는 랜드 400 3단계 사업에서 미국 제너럴다이나믹스의 에이잭스, 영국 BAE시스템스의 CV90을 밀어내고 라인메탈의 링스 KF41과 더불어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수주를 확신하는 기류는 아니었다.
레드백 장갑차가 호주 현지에서 주행시험을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해당 사업은 지난해 상반기 우선협상대상자가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연기됐다. 지난해 5월 호주 정부가 바뀌면서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등장하자 분위기도 달라졌다.
새 정부가 장거리 타격력과 전략적 억제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국방전략을 재검토하면서 K9 자주포 2차 사업이 중단되는 등 국방획득사업이 조정됐다.
랜드 400 3단계 사업도 규모가 크게 줄어들었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라인메탈은 가격 등을 재산정해 호주에 다시 제안을 했다.
라인메탈은 ‘독일’이라는 국가 이미지와 더불어 KF41을 헝가리에 수출한 실적도 있었다. 반면 레드백은 별다른 이력이 없었다.
그럼에도 호주가 레드백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것은 성능과 경제·정치적 요소를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K21 보병전투차를 활용해 개발된 레드백은 검증된 기술과 신기술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레드백은 호주군의 요구에 맞게 개량해야 했던 링스 KF41과 달리 호주군 수요에 맞춰 개발했다.
42t 중량의 레드백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려면 강력한 엔진이 필수다. 이에 레드백은 1000마력짜리 K9 자주포 파워팩(엔진+변속기)을 탑재, 기술적 신뢰성을 확보했다. 호주가 K9을 도입하기로 한 만큼 파워팩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암 내장식 유기압 현수장치(ISU)는 기동성과 주행성능을 강화한다. ISU는 로드휠 지지대에 질소가스와 유압유를 내장해 중량과 체적을 절감하는 완충 장치다.
링스 KF41은 좌우 바퀴를 잇는 긴 쇠막대 형태의 토션바를 사용한다. ISU는 토션바보다 차량 하부 공간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고, 차체 경량화도 가능하다.
독일 라인메탈이 개발한 링스 KF41 장갑차. 라인메탈 제공
진동과 소음이 대폭 감소하고, 충격도 더 잘 흡수한다. 레드백이 궤도형 장갑차 중 승차감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철제 궤도 대신 캐나다산 복합소재 고무궤도를 채택한 것도 성능을 높여준다.
최상급 고무와 내열성 강화 합성섬유, 철선 등으로 구성된 복합소재 고무궤도는 철제 궤도보다 정숙한 주행과 기동성 향상, 내구성 증대 효과가 있다. 중량이 2t 이상 감소하면서 발생한 여유 중량을 장갑에 적용, 방호력을 높였다.
탐지와 방호력도 최신 개념을 반영했다. 차량 내부에서 지휘관이 특수 헬멧을 쓰면, 고글 화면을 통해 전차 외부 360도 전 방향을 감시할 수 있는 아이언 비전(Iron Vision) 헬멧 전시 기능, 능동위상배열레이더(AESA)로 대전차미사일 등을 사전에 포착해서 파괴하는 아이언 피스트(Iron Fist) 능동파괴장치 등을 갖췄다.
지뢰 등의 위협을 감안해 장갑차 전체의 방호력을 높이도록 요구받는 추세도 반영, 차체 하부에 폭발 완충장치도 설치했다.
Mk44S 부시마스터 II 30㎜ 기관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 사용하는 30㎜ 탄약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 유사시 일부 부품만 교체하면 40㎜ 기관포로 교체가 가능하다.
이스라엘 라파엘사가 개발한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은 전자광학 추적 장치와 적외선 센서 등을 정밀유도를 할 수 있다.
차량에 열상 위장막을 두르면 적의 열상 감시장비 탐지와 열추적 미사일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스텔스 차량으로 변신도 가능하다.
레드백은 현지화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호주의 무기 도입사업은 일자리 창출 등 경제적 요소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도 이를 감안, 레드백과 관련해 협력하는 해외 업체 9개 중에서 호주 기업이 6개에 달했다.
포탑은 이스라엘 엘빗사 기술을 토대로 호주 EOS사의 원격무장, 광학장치, 사격통제장치 등을 결합한 호주 버전의 T2000 모델이다. 이외에도 차량정보관리시스템, 발전기, 보조전원장치, 방호 덮개 등도 호주 업체가 담당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1년 12월 호주와 K9 수출 계약을 맺고, 호주 질롱시 아발론 공항 내 장갑차 생산시설(H-ACE)을 짓고 있다.
◆안보환경 등도 변수됐나
레드백이 우수한 성능을 지녔고 현지화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링스 KF41도 호주군의 요구성능을 충족했다. 호주가 앞서 도입한 독일산 박서 장갑차는 호주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호주의 정치·안보 환경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었다.
대형무기도입 사업은 고도의 국제정치적 계산이 함께 이뤄진다. 표면적으로는 전력증강 사업이지만, 구매국과 판매국이 서로 전략적 관계를 맺고 상호 간에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공감대가 없다면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호주의 랜드 400 3단계 사업에 참여한 레드백(왼쪽)과 링스 KF41 장갑차. 세계일보 자료사진
앞서 방산업계에서 링스 KF41이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 이유는 오커스(AUKUS)의 여파였다. 호주는 프랑스에서 디젤잠수함을 도입하기로 했으나 오커스를 통해 미국, 영국과 핵추진잠수함을 만드는 것으로 정책을 바꿨다.
이는 프랑스와의 관계 악화를 초래, 프랑스를 통한 유럽연합(EU)과의 외교와 안보협력을 어렵게 했다. 호주로서는 EU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독일과의 관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중국이 호주와 가까운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맺는 등 인도태평양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와의 협력 강화 필요성이 더 커졌다.
한국은 호주와 군사적으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해 호주에서 열린 피치 블랙 공군훈련에 KF-16 6대와 KC-330 다목적 공중급유수송기 1대를 함께 파견했다.
지난 2021년에는 호주에서 실시된 탈리스만 세이버 연합훈련에 병력 200여명과 4400t급 구축함을 보냈고, 올해는 해병대 대대급 병력과 K9, 천무 다연장로켓과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등을 파견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월 제1회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부 장관에게 호주 주도 다국적 연합훈련 ‘인도태평양 엔데버’, 태평양지역 수중 폭발물 제거사업 ‘렌더 세이프’에 한국군의 참여 의사를 밝혔다. 외교·국방장관이 참석하는 2+2 회의도 검토 중이다. 안보환경을 감안하면 호주는 독일보다 한국과의 관계를 더 의식할 수밖에 없다.
레드백 장갑차가 장애물을 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K방산 파급효과 크다
레드백은 수출을 위해 개발된 무기다. 수출용 무기가 세계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글로벌 고객의 요구에 맞춰 신속하게 장비와 부품을 체계통합하는 기술이 필수다. 이는 글로벌 차원의 공급망과 기획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레드백을 통해 국내 방산업계는 이같은 경험을 얻었다. 방산수출 과정에서 수출용 무기를 빠르게 개발해 판매할 때, 레드백의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 될 수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그동안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부문 수출은 K9에 집중되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자주포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기업의 경영 측면에서 단일 품목에 매출이 편중되어 있는 것은 개선해야 할 과제다. 천무 다연장로켓이 있지만, 수요가 한정적이다.
레드백이 성능은 우수하지만, 판매 이력이 없었다는 점은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었다. 호주가 레드백을 선정하면서 판매 이력도 확보한 만큼 추가 판매도 힘을 얻게 됐다. 이를 통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방산 포트폴리오도 변화할 수 있다.
세계 지상장비 시장에서 독일과 경쟁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긍정적인 요소다. 올해 초 노르웨이 전차 사업에서 현대로템의 K2 전차가 독일산 레오파르트2A7+에 패했다. 성능은 우수했지만, 노르웨이가 독일과의 관계를 고려한 결과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레드백의 수주는 독일에 계속 밀릴 수 있다는 우려를 씻어내는 효과가 있다.
레드백은 향후 세계 장갑차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 각국에서는 험지 돌파 능력과 방호력이 뛰어난 궤도형 장갑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레드백 장갑차가 도로 주행시험을 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제공
우크라이나처럼 넓은 평원에선 기관포를 탑재한 채 신속하게 이동하는 궤도형 장갑차가 화력지원과 병력 이동, 방어 측면에서 더 적절하다.
우크라이나군이 M113 장갑차나 험비 등으로 공격작전을 수행하다 큰 피해가 발생하자 서방 국가들이 브래들리, 마르더 등의 궤도형 장갑차를 공급한 것도 이같은 점을 재인식하게 한다.
이 때문에 신형 장갑차 도입사업이 유럽 각국에서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링스 KF41과 레드백이 또다시 맞붙을 수 있다. 이때 호주에서의 경험은 독일과의 경쟁에서 상당한 자산이 된다.
레드백의 호주 수출은 규모가 예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상장비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험을 지닌 독일 라인메탈을 꺾었다는 것은 향후 수출 시장에서 긍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장갑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 확대한다면, 국내 방위산업에도 파급효과가 적지 않을 전망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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