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THE WILD
6월9일~ 6월13일, 캄보디아 다섯번째 이야기
다시 프놈펜으로 간다.
달콤한 추억을 만든 씨하누크빌을 뒤로 한다.
어느 한 곳에서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을 뒤로 하고 떠날땐
약간의 서글픔과 진한 아쉬움, 그리고 또 다시 만나게 될
인연에 대한 설레임등 복합적인 감정이 스치게 된다. 만남과 헤어짐, 또 새로운 만남
어디서 무슨일이 생길지 모르는 의외성의 톡쏘는 맛이 혼자하는 여행의 재미랄 수 있다.
뭐 우리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겠지만..
씨하누크빌에서 프놈펜으로 가는 중 휴게소에 들려
음료수와 만두 1개를 먹고 있는데 검둥이 녀석이 무릎앞에 서서 빤히 쳐다보고 있다.
아주 곧은자세로 서서 미동도 없이!
어찌나 빤히 쳐다보고 있는지 내게 만두를 조금 떼 주지 않음 절대가지 않겠다는 기세다.
버스는 4시간을 달려서 프놈펜에 도착한다.
프놈펜의 방깍 호수 주변으로 저렴한 숙소와 레스토랑,여행사등이 늘어서있는
소위 말하는 배낭여행자 거리가 형성되어있는데
나는 호수 바로옆에 위치한 'lazy fish(게으른 물고기)'란
재미난 이름을 가진 게스트하우스에 여정을 풀었다. 100% 나무로 만들어진 집이고
호수 바로 옆,아니 호수 위에 지어진 집이라 통풍이 잘되 시원한 곳이다. 가격도 4달러로 저렴하다.
일단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빠른 걸음으로 뚝뚝을 잡아타고 재영이가 머무는 빌라로 향한다.
8일만에 재회하는 나의 애마 '개토'를 생각하니 설레는 마음 감출 수가 없다.
관리인에게 말해 창고에 맡겨놓은 패니어 2개를 찾고나서 건물 1층의 구석에
수줍은 듯이 서 있는 개토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녀석이 그동안 비를 맞았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다.
내일은 깨끗이 아주 깨끗이 정성스레 샤워를 시켜주어야 겠다.
lazy fish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일본인 히로씨와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 마이
히로씨는 이곳 프놈펜에서 2달째 머물고 있다고 한다.
나이가 58세인데 부인과 사별후 일본을 떠나 중국과 동남아를 1년째 여행중이다.
그런데 히로씨는 배낭여행자라기 보다는
장기간 한곳에 머무르며 여행하는 상주하는 여행자에 가깝다.
실제 히로씨의 하루일과는 게스트하우스에서 tv보고 당구치고 중국어,영어공부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게으른 물고기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한 가격과 시원하다는 것 말고도 장점이 더 있는데
당구대가 놓여져 있는 탁 트인 로비가 굉장히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이곳에 머무는 여행자는 방안에 있기 보다
주로 로비의 의자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다른 여행자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이다.
저녁이 되면 넓직한 로비의 한편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맥주를 마시곤 했다.
왼쪽의 비키와 톰은 영국에서 온 커플여행자로서
원월드 티켓을 발권해서 약 10개월 동안 세계여행을 할 것이라 하고
가운데 다라는 프랑스인인데 부모님은 캄보디아 사람이다.
그러니까 캄보디아 혈통을 가진 프랑스인인 것이다.
다라는 자신의 모국의 역사와 문화와 현실을 직접 몸으로 생생하게 체험하고 싶어서
프랑스를 떠나 이곳 프놈펜에서 6개월동안 거주하고 있다.
오른쪽의 데이빗 또한 영국인인데 입이 조금 거칠어서 대화중 퍽을 연발하곤 했다.
대화의 주제는 주로 여행이야기에서 정치,전쟁,종교 이야기로 옮겨가곤 했다.
톰과 비키,데이빗은 영국인이니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인 다라도 영어가 굉장히 능통해서
우리 다섯명이 대화를 할땐 어쩔 수 없이 내가 말 수가 적은 편이었다.
영어권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를 할땐 속도가 너무 빨라 리스닝이 어렵다.
이중에선 비키만이 나를 배려해서 정확한 발음으로 천천히 또렷하게 말을 하곤 했다.
특히 정치이야기를 할땐 말이 빠르고 단어또한 어려워서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친구들의 대화를 경청하곤 했는데
비키와 톰은 내가 왠지 소외감 느낄까봐 '훈, 니 생각은 어때?'라고 천천히 다시 되묻곤 했다.
lazy fish게스트하우스는 이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곳으로
너무 조용하고 편안해서 여기오는 모든 여행자는 게으른 물고기로 변신하는 곳이다.
해먹에 누워 있거나 의자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포켓볼을 한게임 치거나
저녁에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차가운 맥주를 자연스럽게 따서 들이키게 되는 그런 곳이다.
프놈펜이란 혼돈의 도시에서 이렇게 저렴하고 조용하고
쉬기 좋은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게 놀라웠다.
방깍 호수 주변의 여행자 거리.
6월의 프놈펜은 정말 무더웠다.
태양이 프놈펜 하늘위 100미터위로 떠 있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뜨거웠다!
10분만 걸어도 땀이 이마에 줄줄 흘러내렸다.
때문에 주로 태양이 두려운 오후1시에서 4시사이엔 리버사이드의 카페에서 시원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면서 무선 인터넷을 사용하곤 했다.
반 바지가 하나밖에 없어서 러시안 마켓이란 대규모 시장에 쇼핑을 하러갔다.
러시아 마켓은 골동품 가게와 옷가게,cd와 vcd가게들이 빡빡하게 늘어선 실내 재래시장인데
이름이 어떤 연유로 러시아 마켓인지는 모르겠다.
여튼 간에 5불을 지불하고 카키색깔의 반 바지를 한벌 구입하고
시장 옆에 프놈펜에서 최고의 아이스커피를 만든다는 커피숍에서
커피가 아닌 신맛의 오렌지 쥬스를 한잔 마시고
뚜엉슬렝 박물관으로 향했다.
뚜엉슬렝 박물관은 캄보디아 현대사의 비극이 서려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은 뚜엉슬렝 브레아 고등학교였던 곳을 크메르 루즈가
제 21 보안대 본부 건물로 바꾸어 사용하던 곳이다.
전 정권의 관리들에 대한 심문장소와 고문장소
그리고 정적들을 숙청하기 위한 장소로 이용하던 곳이다.
크메르 루즈 통치기간 1975년 4월에서 1979년 1월까지 2000만명이
들어가서 불과 6명이 살아나온 악명높은 장소라 한다.
2000만명이나 되는 동족들을 살상했다니 그 숫자가 믿기지가 않는다.
건물은 수십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방안에는
당시 사용했던 고문기구와 침대가 그대로 놓여져 있고
벽면에는 당시 학살의 사진이 걸려져 있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이다.
매우 음산한 곳이면서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아서 귀신의 집 체험 현장에 관광온 느낌도 들었다.
잔인한 사진들이 너무 많아서 사진기 셔터를 누르기가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이곳에서 처절하게 생을 마감한 영혼들에게도 미안함과 송구스러움을 가져야 할 터.
자신들의 아픈 역사(무척이나 잔인한)를 관광수입을 위한 도구로 사용해도 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억울하게 죽어간 영혼들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
오후에는 LAZY FISH의 백만불짜리 내츄럴 로비에서 톰과 비키와 만나
음료수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톰과 비키는 오늘 음식과 과자,사탕등등을 잔뜩 사들고
프놈펜 외곽의 고아원을 방문해 캄보디아 어린이들과 뜻깊고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사실 유적지나 명소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지만 이처럼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에서
어린이들에게 자그마한 도움을 주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는 건
더없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이곳은 프놈펜 대낮의 뜨거움에 질려서 피신해 있엇던 리버사이드의 카페.
무선 인터넷이 가능해서 아이스티나 커피를 주문하고 2,3시간 동안 죽치고 앉아
웹 서핑을 하고 여행기를 올리곤 했다.
방깍호수 주변으로 형성되 있는 여행자 거리엔 웨스턴 푸드를 만드는 투어리스트 레스토랑이 많지만,
어느 나라의 어느 곳이든 서양인을 타켓으로한 웨스턴 푸드를 만드는 레스토랑은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나는 천막밑에서 현지인들과 눈빛을 주고 받으며 먹는 로컬 푸드를 즐겼다.
캄보디아는 주변 국가인 태국과 베트남에 비해서 음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한편이라
그네들 만의 전통음식이 많지 않다.
베트남,태국의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스트리트 푸드나 로컬 식당이 드물다.
그리고 프놈펜의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도 태국과 베트남, 중국 음식을
표방해서 캄보디아 식으로 만드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하여튼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10분정도 걸어나가면 천막밑의 몇몇 길거리 음식점이 있는데
볶음밥과 볶음면등이 입맛에 맞았다.
특히 볶음면(프라이드 누들이라고 하는데 노란색깔의 면에 야채와 소스,치킨,소고기등을
넣고 볶아서 만드는 면)은 상당히 맛있었다.
바로 이곳인데 이곳은 오후 5시이후에 장사를 시작하는데
프라이드 누들과 볶음밥을 기가 막히게 만드는 곳이다.
조금 무뚝뚝하고 불친절한 아줌마가 요리를 하고
아줌마의 아들로 보이는 소년 두명이 서빙을 하는 곳으로
저녁시간이 되면 현지인과 외국인들로 붐벼 자리 맡기가 힘들다.
여행자 거리 한복판에 위치한 모스크
이곳 배낭여행자 거리에서도 프놈펜 서민들의 생활모습이 자연스럽게 어울러진다.
좁은 골목이 아주 길고 꼬불꼬불하게 연결되는 여행자 거리가 나쁘지가 않다.
(방콕 카오산 로드의 혼잡함,혼돈,무질서 보다는 훨씬 좋았다)
이녀석은 게스트하우스의 직원인데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조금 건방진 녀석이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조카뻘 되는 녀석인데 하루종일 빈둥빈둥거리면서 일을 한다.
미용에 상당히 관심히 많은 녀석으로 눈썹을 다듬고
콧수염을 손질하고 얼굴에 비비크림 비스무레한 것을
바르는 것에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는 그런 녀석이다.
히로씨와 톰과 자주 게임을 했던 로비의 저 당구대가 그립다.
앙코르 비어, 당구 한 게임, 시원한 바람과 석양, 여행자간에 오고가는 대화
화려하진 않지만 기억에 남을 게스트하우스이다. 'lazy fish'
기타를 연주하는 톰.
이곳은 다라의 방. 빛이 들어오지 않는 내 방과는 다르게
다라의 방은 햇볕이 잘 들어와 아늑한 느낌이 든다.
다라(34세,캄보디아계 프랑스인)는 내겐 상당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느껴졌다.
그리 잘생기진 않았지만 표정이나 말투 행동 하나하나에 그 사람 특유의 매력과 '간지'가 흘렀다.
다라의 간지는 억지로 꾸며댄 그런 간지가 아닌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져 나오는 그런 간지였다.
담배를 피고 있는 다라.
다라는 아티스트적 기질이 다분한 사람으로 색소폰과 기타연주를 즐기며
드로잉과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아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며
이것저것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스케치를 한다.
그리고 단편소설과 시나리오도 취미로 쓰고 있다고 한다.
음악적인 식견도 상당히 높아 함께 음악이야기를 자주 하곤 했다.
그의 빨간 일렉기타.
프놈펜의 밤거리.
이쯤에서 프놈펜의 오토바이 드라이버의 멍청함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여행자들이 많은 프놈펜은 도심곳곳에 모또(오토바이 택시)나 뚝뚝 기사들이 호객행위를 하는데,
나는 프놈펜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자주 애용하곤 했다(뚝뚝보다 가격이 싸기 때문).
허나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할 때 마다 뒷골이 확 땡길 때가 많았는데
일단 목적지를 말하고 가격협상을 하는데 예를 들어 내가 '러시아 마켓'을
1달러에 가기로 합의를 하고 오토바이를 탄다.
대부분 처음에는 '노 프로플럼'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한참을 가다가 이 길이 아닌가 싶어
제대로 가고 있는가 물으면 자기도 잘 몰라서 다른 오토바이나 뚝뚝기사에게 다시 되묻는다.
'러시아 마켓이 어디요?'라고.
러시아 마켓이든 뚜엉슬렝이든 리버사이드든 일단 알겠다고
문제없다고 이야기 하고는 길을 헤매는 것이다.
그러다가 목적지에 도착하면 길을 헤맸다고 요금을 더 달라는 식이다.
한번은 내가 머무는 숙소에서 오토바이로 10분거리의 클럽 '허트 오브 다크니스'를
무려 40분간이나 헤매어 겨우 도착한적이 있다.
그 기사도 '노 프로블럼! 아이 노우!'라고 외쳐놓고는 길을 몰라 헤매는 것이다.
다른 모또나 뚝뚝기사,길거리의 사람들에게 묻고 물어 겨우 도착했을 정도니
내가 직접 오토바이타고 찾아가는게 더 빠를 것이다.
그런데 가장 이해가 안되는건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크기밖에 안되는 프놈펜에서
그것도 본토 토박이들이 '러시아 마켓'이나 가장 유명한 클럽
'허트 오브 다크니스'를 모르는게 이해가 안되는 것이다.
일주일만 오토바이 타고 프놈펜 곳곳을 돌아다니면 내가 그네들보다 더 잘할 것이라 확신한다!
처음엔 문맹률이 높아서 내가 말하는 목적지를 못알아들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는데 지도를 꺼내어 정확하게
콕 찍어주어도 헤매는건 똑같으니 이건 뭐 더 이상 할말이 없다.
인도의 오토릭샤기사들,베트남과 태국의 뚝뚝과 오토바이 드라이버들은
캄보디아 프놈펜의 기사들에 비하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이다.
걷는거라면 일가견 있는 나도 프놈펜의 육중한 태양아래에선 기가 팍 죽는다.
때문에 대낮에는 주로 오토바이 택시를 이용하고 오후5시 이후에
해가 조금 가라앉으면 걸어다니곤 했다.
위 사진들은 석양이 질 무렵 리버사이드에서 방깍 호수의 숙소로 걸어가면서 찍은 사진들이다.
오후5~6시 사이에 찍은 사진들을 보면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빛을 감싸안고 있기 때문에
의외의 매력을 발산하는 사진을 종종 건질 수 있다.
길거리에서 숯을 판매하는 상인.
프놈펜을 떠나기 전날,
프놈펜에서 씨엠립은 330km가 소요되는 먼거리이기 때문에
장거리 라이딩의 워밍업도 할겸 자전거를 이용해 킬링 필드를 가보기로 한다.
킬링필드는 프놈펜에서 약 15km정도의 거리이다.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패니어와 배낭의 무게에서 해방되어서 기분좋은 라이딩을 할 수 있었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말로 '쯔응 아익'이라고 부르는 곳인데
뚜엉슬렝의 사람들을 고문후 처형하던 장소였다.
8900여구의 시신이 집단매장되어있던 것이 1980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위 사진은 크레르 양식으로 지어진 위령탑으로 폴 폿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훈센 정부가
해골만 모아서 80여미터의 탑을 만들어 해골을 전시한 곳이다.
그러나 캄보디아의 불교도들은 훈센의 이러한 행위를 좋지 않게 여긴다고 한다.
불교도들은 화장하지 않고 그렇게 두면 극락에 가지 않고 구천을 떠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또한 캄보디아 정부의 이런 행위가 좋게 보이진 않는다.
억울하게 죽은 것도 모자라 죽어서도 묻히지 못하고(또는 화장되거나)
해골이 각국 관광객을 위한 전시용품으로 전시되고 있으니!
킬링필드와 뚜엉슬렝 박물관은 프놈펜을 여행하는 여행객들에게는 'must see'관광장소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뚜엉슬렝이나 킬링필드를 보면서 숙연함과 비통함을 느낄 것이지만,
캄보디아 정부는 굳이 자신들의 아픈 역사의 현장을
관광객을 모으기 위한 상술로 이용하는 것은 너무하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총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쇠막대기나 팜나무 줄기를 이용해 처형했다고 한다.
아래사진은 유골들이 발견된 장소로 얼마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죽었는지 정확한 숫자가 표기되어 있다.
뒤편으로는 위령탑이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숲길이 있었다.
그길을 따라 걸었다. 별 생각없이..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저녁엔 매일 가던 길거리 음식점에서 프라이드 누들을 먹었다.
내일 씨엠립으로 떠날것이므로 톰과 비키,데이빗,다라와 작별인사를 하고는 프놈펜에서의
마지막 밤 앙코르 비어 한병과 진토닉으로 알코올을 보충하고 잠이 든다.
70년대 프놈펜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많은 영혼들이
구천을 헤매지 않고 안락을 취할 수 있길 바라며....
그리고 앙코르 왓이란 찬란한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는 나라 캄보디아가
과거의 영광에만 취해 있지 말고
현실을 직시하며 좋은 지도자를 만나 모두 노력해서 더 살기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생각했다.
더 이상 이런 비극은 없을 것이지만 해맑은 어린아이들이
가난에 허우적대면서 힘들 게 자라지 않았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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