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서원(院長 金永元)에서는 정해년춘향사(丁亥年春享祀)를 2007년 4월 3일(음 2월 16일) 11:00부터 연산면 임리 소재 돈암서원 숭례사에서 성균관,안동하회마을 풍류댁에서 초목등 경향 각지에서 유림 후손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봉행되었다. (존칭생락)
돈암서원 숭례사에는 문원공사계(文元公沙溪)선생, 문경공신독재(文敬公愼獨齋)선생. 문정공우암(文正公尤巖)선생, 문정공동춘당(桐春堂)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었다.이날 시간이 되자 양성당 앞에서 박성기(朴聖琪) 집례의 사회로 국민의례에 이어 홀기순서대로 초헌관에 신방현(辛邦鉉). 아헌관에 김두한(金斗漢), 종헌관에 고석희(高錫喜),대축에 김용웅(金容雄),알자에 하영향(河榮香) 등 여러집사들이 수고하는 가운데 질서 정연하게 봉행되어 음복례 망요례를 끝으로 모든 일정을 마무리 했다.
조선시대 8대서원 중의 하나인 돈암서원은 기호학파의 적통이며 예학의 대가이신 사계 김장생선생의 학덕을 기리는 서원으로 본래 현 위치에서 1,5km 떨어진 숲말에 있었으나 침수가 잦아 1880년(고종 17년) 현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93년 11월 8일 사적 383호로 지정받았다.
호계천을 바라보고 전당후묘식(前堂後廟式)으로 지어진 돈암서원은 주차장에서 내리면 복원중건된 웅장한 산앙루(山仰樓)가 맞으며 입덕문(入德門)이 있고, 입덕문을 지나면 학생들이 공부했던 양성당(養性堂)이 동재(東齋), 서재(西齋)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 좌측에는 고직사(庫直舍)와 전사청(典祠廳)이 있으며, 우측으로는 숲말에서 이건한 응도당(凝道堂)이 있으며 그 뒤로 정회당(靜會堂),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藏版閣)이 이있으며, 내삼문을 지나면 숭례사(崇禮祠)가 그 옆 담장에 전자체로된 글귀가 있다.
이날 오전 고암/준일일가와 좀 여유있게 도착한 필자는 곧바로 서울에서 지곡 지암 일행이 두한 대종회장님을 모시고 관광버스편으로 합류하여 오랜만에 상봉 인사를 나눈후 미리와서 대기중인 구면인 하동 풍류댁 초목 일행을 만나 상견례를 나눈후 향사봉행을 참례후 준비된 식사를 마치고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하고 귀향했다. 오늘 그동안 지곡/양중과 초목/류영일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400여년만에 풍류문중과의 교류가 이루어짐이 가장 뜻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되고 앞으로 두 문중의 화합이 국민화합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단초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사진설명 우로부터 김영원돈암서원장. 초헌관 신방현, 아헌관 김두한,종헌관 고석희. 집례 박성기, 대축 김용웅
좌로부터 창옥/근중. 고암/준일. 초목/류영일. 류한승. 지곡/양중. 류한욱. 대종회전사무국장 용배. 지암/선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