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페북} 내 담벼락에서 옮기는 글들이다. 시간대는 생략한다.
자아도취
“겉 사람은 날마다 후패해 가나 속 사람은 날마다 새로워져 간다.”(고후 4:16 하) 이 말씀은 거울을 보면서 종종 떠올리는, 내가 좋아하는 말씀이다. ㅡ속 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져 감을 느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ㅡ
지난 토요일이었다. 서재 의자에 앉아 컴퓨터 모니터를 보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말했다. 지난 4월 회사에서 퇴근 때 서00 차장에게 “목사 같네.”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 나를 기분 좋게 만든 말이었다.
“집에서 계속 잠만 자고 회사 안 나가서 그런지, 지성미가 살아났네.”
지난 4월 어느 금요일이었다. 검은 자켓과 파란 청바지로 갈아입고 ‘두꺼운 검은색 지갑 겸 스마트폰 케이스’를 들고 가는 나에게 서00 차장은 “손에 든 것 성경책이야?” 물으며 “뒷모습이 완전히 목사 같네.” 말했다.
이마에 모래가 계속 생기고 목 부위까지 퍼져 여드름 종류로 알고 오늘 오전에 피부과에 갔다. 여의사는 “노화로 피부 면역력이 떨어져 생긴 사마귀, 심하면 쥐젖으로 커지는 사마귀이자 검버섯으로 가는 사마귀”라고 말했다. 검버섯, 사마귀, 쥐젖 제거 시술비 견적을 받았다. 50만 원 정도가 나왔다. 겉 사람은 날마다 썩어가는 게 순리고, 이른바 “노가다”라서 수염 깎는 것도 귀찮아하는, 외모에 그리 신경 쓰지 않은 편이라서 내키지 않았다.
아래 첫째 사진은 지난해 봄 무렵에 아내가 “오늘이 가장 젊은 날”이라며 찍어 준 사진이다.
둘째 사진은 지난 7월 19일에 내가 예뻐하는 젊은 직원 성수가 찍어 준 사진이다.
셋째 사진은 지난 7월 20일에 성수가 찍어 준 사진이다.
덧말: 피부과에 다녀온 뒤, 아래 사진들을 내 담벼락에 올린다고 하자. 아내가 말했다. “나르시시스트의 자아도취야. 내가 찍어 준 사진만 올리고 올리지 마. 많이 늙은 할아버지야.”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자폭하는 건데, 자아도취야?”
…(사진들 생략)…
댓글
Stephen Hwang
환갑 지나셨는데 미남이십니다.
朴埰同
미남이라고 하셔서 자폭이 아닌 자아도취가 돼 버렸습니다.
…(댓글들 중략)…
Stephen Hwang
제 눈에는 이분과 많이 닮았습니다. 누군지 아시는지요?
朴埰同
사진으로 본 제 선친 청년 때 눈매와 제 딸내미 어릴 때 눈매가 보이는 분이시네요.
혹시나 해서 제 아내가 좋아하는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신가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봤습니다.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은 아니신 것 같은데, 누구십니까?
제 아내가 읽은 번역 서적은 몇 권 안 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목사님께서 번역하신 ‘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내 최고봉}’입니다. 인터넷에서 목사님 글을 몇 편 읽고 아내가 직접 산 책입니다.
코로나 뒤 재택근무를 하는 아내에게 방금 위 사진을 보여줬더니, 웃으며 “완전히 당신이다.” 말했습니다.
Stephen Hwang
네드 스톤하우스입니다 ~~
朴埰同
처음 듣는 이름이라서 인터넷 검색을 하니,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 때 그레샴 메이천 목사님과 합류하신 목사님이시네요.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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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도취 ②: 붕어빵
지금은 이른바 “이국적 이미지”가 많이 사라졌지만, 어릴 때 내 별명은 ‘양키’, ‘미국 놈’이었다. 중학교 때 별명은 친구들이 지어준 ‘알랭들롱’, ‘클린트 이스트우드’, 서부영화를 단체관람한 뒤 지어준 ‘찬 손 부르튼 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께서 아시면 큰일 날 ‘한미합작’도 있었다. 내가 지은 별명이었다. 청년 시절에 사촌 여동생들이 지어준 별명은 ‘제임스 딘’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인터넷 사이트 {목포고등학교 30회}가 있었다. 나는 이곳에 <붕어빵>이라는 제목으로 딸내미 사진과 내 사진을 올렸다. 동창들은 깔깔대며 동의했다. 운영자로 활동했던 {다음} 카페 {목포제일교회 7080 사랑방}에도 이 사진들을 올린 것 같다. 그런데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한 뒤 아이디 통합으로 {목포제일교회 7080 사랑방}에 들어갈 수 없다.
1991년 광주대학교 문리대학 영어과 3학년 영미소설 숙제, ‘캐더린 맨스필드 <카나리아>’에 관한 문학비평 보고서를 쓰면서 서울 종로서적에서 구입한 책, 1, 2차 자료들 가운데 두 권이 ‘앤토니 앨퍼스 {캐더린 맨스필드 전기: 그리운 행복} 이태동, 오하린 역 (서울: 도서출판 친우, 1990)’과 단편소설 모음집 ‘캐더린 맨스필드 {녹색 드레스} 이명제, 홍인지 역 (서울: 도서출판 친우, 1990)였다. 그리고 광주 충장로 나라서적에서 1, 2차 자료들을 찾다가 발견한 책이 {캐더린 맨스필드 전기: 그리운 행복} 원본인 ‘Antony Alpers {The Life of Katherine Mansfield}(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3)’였다.
{캐더린 맨스필드 전기: 그리운 행복}에 실린 맨스필드 사진을 본 나는 소름이 돋았다. 20대 초반 내 얼굴을 봤기 때문이다. 착각인가 생각해 전남대학교 음악대학 뒤편 자취방에서 함께 자취하던 목포제일교회 3 년 후배 경일(가명)이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며 “누구 닮았냐?” 물었다. 경일이는 곧바로 “와, 형 닮았네!” 말했다. 아래 첫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딸내미를 낳고, 아내는 딸내미 눈을 가지고 “아빠 눈을 닮은 세모 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외할머니 눈을 닮은 올챙이 눈”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딸내미가 큰 뒤 인터넷에서 ‘캐더린 맨스필드’를 검색한 적이 있었다. 아래 둘째 사진이 있었다. 이 사진에서 나는 딸내미 얼굴을 봤다.
이 글은 스데반 황 목사님께서 내 글 <자아도취>에 “제 눈에는 이분과 많이 닮았습니다.” 하시며 미국 웨스트민스터신학교 설립 때 그레샴 메이천 목사님과 합류하신 신약 신학자 ‘네드 버나드 스톤하우스’ 목사님 젊은 시절 사진을 올려주셔서 쓰는 글이다. 아래 셋째 사진이 스데반 황 목사님께서 올려주신 사진이다.
아래 댓글란에 글 하나 링크한다.
댓글
朴埰同
https://cafe.daum.net/reformedcafe/HylQ/19
김00
동일한 이미지가 있습니다~^^ 자아도취만은 아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