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장, 자식들
성열이는 자랄수록 안하무인이 되어간다.
공부는 뒷전이고 하고 한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돈을 쓰고 다니면서 멋을 내고 부잣집 아들 행세를 하고 다니고 있었다.
성열이의 키는 남들보다 훤출하게 자라고 인물 또한 아주 출중하다.
그런 자신의 외모에 자부심을 가지면서 모든 누나들이 자신을 위해서 하는 희생들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을 하면서 자란다.
모든 누나들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함부로 대하는 성열이는 바로 위의 누나인 정남이에게만은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정남이는 누가 뭐하고 하든 성열이의 잘못을 지적을 해 주면서 할머니의 미움을 받는다.
그러나 정남이는 성열이의 모든 행동들을 그때그때 지적을 하곤 한다.
그런 정남이의 성격 때문인지 성열이는 정남이에게만은 함부로 하지를 못한다.
다행히 집안 형편이 나아진 것도 있지만 정남이는 딸들 중에서 유일하게 여고를 다니고 있었다.
그것은 정남이의 고집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제 늙고 병이 들어버린 할머니의 영향력이 이 집안에서 그리 커다란 힘을 발휘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교만은 정남이를 보낼 수가 없다.
성열이를 보내야 하기 때문에 정남이는 자연히 대학을 포기 해야만 했던 것이다.
정남은 아예 일직감치 집에서 나와서 독립을 한다.
고등학교 다니면서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놓은 돈이 있었다.
한 푼도 축내지 않고 그대로 저축을 해 놓은 돈으로 정남은 방을 얻는다.
윤병숙은 그런 막내딸을 말리고 싶었지만 막내딸의 꿈을 이루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서 심하게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남이 방을 얻어서 혼자 독립을 할 날을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남편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술에 만취를 해서 남과 사소한 시비가 죽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시어머니의 충격은 너무나 컸던지 그날로 자리에 눕고는 그길로 그만 시어머니마저 세상을 등지게 된다.
그러나 윤병숙은 그렇게 갑작스런 일을 두 번을 당해도 그녀의 눈에선 눈물이 나오지를 않는다.
오히려 가슴 한쪽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낀다.
이제 자신이 낳은 자식들과 오손 도손 살아갈 일만이 그녀의 앞날에 대한 희망이었다.
딸들도 세 명이나 결혼을 했다.
그러나 큰 딸인 정희는 결혼할 생각이 없는지 맞선조차 보지도 않고 집안을 위해서 아직도 자신을 헌신하고 있었다.
윤병숙은 맏딸이 결혼하기를 학수고대 한다.
그러나 맏딸인 정희는 남자를 사귀지도 않고 결혼에는 영 관심조차 없다.
“정희야!
이제 네 나이도 금년이면 벌써 삼십 중반을 넘어선다.
그러니 이제는 총각 중매보다도 재혼자리만 나서니 어쩌니?“
“엄마!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지요!
결혼을 해서 궁상맞게 사느니 차라리 이대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아가는 것이 더 좋아요.“
“그래도 인생을 어떻게 그렇게 혼자서 살아 갈 수가 있니?
더구나 여자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다.
지금이라도 마땅한 사람이 나서면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결혼을 하거라!“
“엄마처럼 살게 될까봐 정말 결혼을 하기 싫어요.”
“네가 왜 나처럼 살아가겠니?
네 동생들도 결혼을 해서 아들들만 낳고 재미있게 잘 살아가고 있지 않니?
나처럼 그렇게 내리 딸들만 낳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정희는 엄마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를 않는다.
정희의 억척스러움으로 인해서 윤병숙은 집을 두 채가 가지게 된다.
아주 허름한 집을 사서 정희는 새로 집을 지어서 월세를 놓게 한다.
살고 있는 집도 삼층으로 새로 지어서 방을 모두 월세를 놓으면서 집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엄마가 다니는 직장을 그만 두게 한 것도 정희의 힘이었다.
정희는 가난이 너무나 싫다.
어려서부터 너무나 가난한 집안이 싫었고 딸들만 낳는다고 구박과 모진 서러움과 아버지로부터 무진 매를 맞으면서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이제 정희는 집안의 모든 시름들을 덜게 된 것이 한시름 잊게 된다.
결국 정희는 재혼자리로 시집을 가게 된다.
나이가 많아서 초혼은 나서지 않았지만 마침 같은 직장에 오래도록 함께 근무한 사람과 사랑이 싹터왔던 것이다.
커다란 부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다.
더구나 아들 하나를 낳고 부인과 사별을 한 사람이었다.
만일 자신이 결혼을 해서 엄마를 닮아서 딸들만 낳는다고 해도 아들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을 것만 같은 생각이 결혼을 결심하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정희는 결혼을 하자마자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은 것이다.
윤병숙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했다.
딸들이 모두 자신을 닮지 않고 결혼을 하는 대로 아들을 낳는 것을 보자 그동안 가슴속에 응어리진 모든 서러움들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이제 가족이라야 막내딸을 제외하고 두 딸들과 아들 그리고 자신만이 남은 단출한 가족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막내딸 정남은 혼자 독립을 해서 나가서 살면서도 집에 오는 횟수가 많지가 않다.
어쩌다 윤병숙이 찾아가도 반가워서 반기는 기색도 없다.
아들인 성열이는 대학을 두 번이나 낙방을 하고 삼수 만에야 겨우 대학을 입학한다.
자식 여덟 명중에서 유일하게 대학을 보낸 아들이다.
윤병숙의 눈에는 세상에서 어떤 사람보다도 잘 생기고 훌륭한 아들이다.
대학을 다니면서 성열이는 철이 들었는지 어려서보다도 남을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생기면서 누나들의 고생을 이해하는 것이다.
대학을 일 년 남기도 성열이는 군에 입대를 한다.
성열이가 군에 가 있는 동안 윤병숙은 시간이 나는 대로 면회를 다닌다.
그것은 아들의 안부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아들을 보지 않고는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을 하고 아들의 얼굴이라도 쓰다듬고 와야만 비로소 마음이 안정이 되고 살아가는 보람을 얻곤 하는 것이다.
윤병숙은 이제 생활의 궁핍을 느끼지 않고도 살아 갈 수가 있었다.
두 채의 집에서 나오는 수익금은 적지 않은 금액이다.
물론 이 두 채의 집이야 말로 딸들의 피와 땀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다.
제대로 입히지도 먹이지도 못하고 남들처럼 가르치지도 못한 딸들이다.
그러나 집안을 위해서 악착스럽게 돈을 벌어서 집안을 이만큼 일으켜 세우고 나서야 결혼들을 한 딸들이다.
이제 두 명의 딸들도 곧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하나하나 자신의 곁을 떠나가는 딸들을 볼 때 가슴이 너무나 아리다.
제대로 가르치기만 했어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딸들은 하나같이 미끈한 몸매에 아름다운 미모들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배운 것이 워낙에 모자란 딸들은 그저 아주 평범한 남자들을 만나서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간다.
큰 딸을 제외하곤 모두 남편과 함께 직장생활을 하던지 함께 나서서 장사를 하곤 하는 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고 쓰려온다.
그러나 막내 정남은 자신이 스스로 생활비와 학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막내 정남은 집안에 대해서 일체 무관심이다.
집안에 손을 벌리지도 않거니와 자신의 것을 집안에 내 놓지도 않으면서 집안과는 담을 쌓고 지내고 있는 것이다.
윤병숙은 오랜만에 정남을 찾아간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집에 있을 것만 같아서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길이다.
“마침 집에 있었구나!”
“이렇게 일찍 웬일이세요?”
정남은 엄마를 보면서도 반색을 하지 않는다.
“행여나 네가 나갈까봐 일찍 서둘러서 왔다.”
“왜요?
또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아니다!
네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밑반찬도 만들어서 가지고 온 것이다.“
“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말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밑반찬 정도는 저도 해 먹을 수가 있고요.“
“그래도 어미 마음이 어찌 그러냐?”
자식이 보고픈 마음이야 어느 어미인들 다를 수가 있겠니?“
“엄마는 언제 저를 그렇게 생각해 주신 적이 있었어요?”
“어미가 왜 너를 생각하지 않았겠니?
그때는 자식들 하나하나 보살피는 것이 마음처럼 그리 쉽지가 않았을 뿐이지!“
“아니요!
저는 살아남기 위해서 제 자신을 스스로 돌봐야만 했어요.
제 존재는 가족들 그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았었으니까요.“
“정남아!
네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이 어미가 왜 모르겠니?
허지만 이 어미의 마음도 네 마음보다 덜 하지 않을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이 자식 하나하나 마음이 쓰이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니?
다만, 산다는 것이 그리 힘이 들어서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었을 뿐이다.“
윤병숙은 이 막내딸을 대할 때마다 죄인 같다.
이 막내딸이 차라리 잘못되기를 바란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너무나 힘이 들어서 제때에 젖도 물릴 수가 없었다.
아기는 울다 울다 지치면 그대로 잠이 든다.
제때에 젖을 얻어먹지 못한 아기는 그대로 바짝 말라서 눈만 커다랗게 뜨고 있었다.
정남은 그래서 그런지 자라면서도 유난히 잔병치례가 많던 아이였다.
그랬기에 시부모님들도 유난하게 정남을 미워하곤 하셨다.
“정남아!
이제 그만 집으로 들어오는 것이 어떠니?
다음 달에 다섯째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내년 봄이면 네 바로 위인 여섯째가 결혼을 한다.
그리되면 집안이 그야말로 텅 비게 되니 너라도 들어오렴!“
“아니요!
전 절대로 다시는 그 집에 들어가 살지 않습니다.“
정남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말을 한다.
“에미가 그리도 싫으냐?”
“...............”
“그런게로구나!
허나 정남아!
너도 결혼을 해서 자식을 낳고 살게 되면 그때는 이 에미의 마음을 이해 할 것이다.“
“전 절대로 결혼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사 결혼을 한다고 해도 책임을 지을 수 없는 자식을 낳지도 않을 것이고요.
자식을 낳았으면 그 자식에 대한 책임은 부모가 지어야 합니다.
우리처럼 원망의 대상이 되고 미움의 상대가 되는 것이 결코 자식에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미안하구나!”
“저를 더 이상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엄마에게 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절대로 그렇게는 살지 않으렵니다.“
“그래!
네 마음을 알겠다.
허지만 이 어미는 네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이렇게 찾아온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이어미를 이해하고 마음이 풀릴 날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윤병숙은 정남의 집에서 나온다.
정남은 조그만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도 춥고 비좁았던 단칸방에 비하면 너무나 좋은 곳이다.
어떻게 무엇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그렇게 좋은 오피스텔을 얻을 수가 있었는지 엄마로서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도움을 주려고 해도 완강하게 거절을 하는 정남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정남이의 태도는 윤병숙을 서운하게 만든다.
정남은 윤병숙에겐 아픔이다.
다른 딸들보다 더 심한 아픔이 남아 있는 딸이다.
성열이를 낳고 나서 더 외면을 했고 무관심했던 딸이다.
그런 딸이기에 마음이 아픔은 다른 어느 딸들보다 더 컸던 것이다.
이제 모든 것들이 아무런 근심도 걱정도 없는 상황에서 그래도 어미라고 걱정을 해 주면은 그것을 매몰차게 걷어내는 딸이다.
집으로 돌아온 윤병숙은 이내 정남이 일을 잊는다.
이제 다섯째 딸의 혼사를 앞두고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 속에 묻혀서 막내딸에 대한 서운한 감정들을 품어 안고 있을 시간이 없다.
위로 결혼을 시킨 딸들은 그저 이름뿐인 혼수를 마련해서 보냈다.
그러나 이제 다섯째와 여섯째의 딸들에게는 남들이 하는 만큼을 해 주고 싶은 것이 어미의 마음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또한 그런 여력이 충분히 있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렇게라도 해주고 싶다.
윤병숙은 부지런히 물건들을 사 들이고 혼수를 장만한다.
다행히 다섯째의 시댁은 그래도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정도로 잘 사는 집이다.
또한 막내아들이기도 해서 결혼을 하면 곧 따로 살림을 날 수도 있는 집이다.
사위의 직장도 대 기업에 다니는 엘리트 사원으로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다.
처음에는 딸이 대학을 나오지 못한 것을 조금 꺼려했으나 아들이 워낙 사랑하고 있는 것을 확인한 그의 집안에서도 그다지 심한 반대를 하지 않고 결혼을 승낙한 것이었다.
그러나 여섯째는 장사를 하는 집안의 아들이다.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어물을 취급하고 있는 집안으로 결혼을 하면 신랑과 함께 장사를 해야만 하는 그런 집안이다.
그러나 그들 또한 서로가 사랑으로 맺어지는 사이였기에 윤병숙은 그다지 반대를 하지도 않고 승낙을 했던 것이다.
다섯째의 결혼식은 생각했던 대로 성대하게 치루어진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다섯째 딸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한 듯이 너무나 아름다운 딸의 모습이다.
“정원아!
너무나 아름답고 예쁘구나!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정말 이 어미의 딸이 맞니?“
다섯째 정원이는 엄마의 극진한 찬사에 행복한 모습이었다.
“엄마!
정말 내가 그렇게 예뻐요?“
“그럼!
예쁘다마다!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을 한다고 해도 지금의 우리 정원이처럼 아름답지는 못할 것이다.“
“엄마!
고마워요!
이렇게 이쁘고 아름답게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 드려요.“
정원이는 평소에도 자신의 미모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딸이다.
“그래!
난 이제 이 세상에 부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우리 딸들이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아름답고 엄마를 닮지 않아서 결혼을 하면 힘들이지 않고 아들을 낳고 있으니 내가 더 이상 무엇이 부럽고 아쉽겠느냐?“
“엄마!
나도 그럴 수 있겠지?“
“그럼!
너도 언니들처럼 아무런 문제도 없이 아들을 낳을 테니 걱정을 하지 말거라!“
정원이는 엄마의 말에 용기와 힘을 얻는다.
처음 둘째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나서 집안 식구들 모두가 가슴이 조마했었다.
행여나 엄마를 닮아서 또 딸들만 낳아서 엄마처럼 서러운 삶을 살게 되지나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둘째 언니는 아들만 둘을 낳고는 어깨에 힘을 실고서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 다른 언니들도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재혼자리로 결혼을 한 맨 큰 언니 역시 아들을 낳았던 것이다.
그 집 자매들의 불안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결혼에 대한 자신감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렇게 두 딸들을 보내고 나니 온 집안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횡덩그러한 집안이 너무나 컸고 썰렁하다.
이제 서 너 달만 지나면 아들 성열이가 제대를 해서 돌아온다.
윤병숙은 매일 달력에다 성열이의 제대 날짜를 기다리면서 하루하루 날짜를 지워가면서 기다리고 기다린다.
그렇게 아들 성열이는 삶의 목표였고 삶의 희망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