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마이너리그, 프로야구 2군 | | | 야구발전소 |
2006.07.13 1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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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군 경기장을 찾는 관중은 얼마나 될까. 6월 27일 SK와 롯데의 2군 경기가 열린 인천 도원구장 공식 관중수는 0명이었다. 아예 일반인에게 경기장을 개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장 관리를 맡은 인천시 시설관리공단은 ‘관리상 난점’을 들어 출입구를 봉쇄했다. “그냥 야구가 생각나서 도원구장을 찾았다”는 한 팬은 “입장할 수 없다니 말이 되느냐”며 발길을 되돌렸다.
관중이 없는 2군 야구장. 없는 것은 그 외에도 많다. 우선 기자들이 없다. 도원구장은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스부터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 그리고 지금의 현대와 SK가 홈구장으로 사용해온 역사적인 곳이다. 그러나 지금 이곳 보도실에는 어느 기자도 찾지 않는다. 언론사용 전화기도 모두 철거돼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명의 경기운영위원을 두고 경기를 감독하게 하고 있다. 이 가운데 4명은 1군 경기를 맡는다. 나머지 1명이 2군 경기를 전담한다. 사람 몸이 4개가 아닌 이상 한 명이 2군 경기를 모두 따라붙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날 도원구장에는 운영위원이 없었다.
1군 경기에는 구단 단장에 간혹 사장까지 출동하지만 2군 경기에는 매니저 1명과 운영팀 직원 1명이 동행할 뿐이다. 그럼 경기 기록은 누가 할까. 공식 기록은 KBO 2군 기록원, 구단 자체 기록은 그날 ‘경기 조’에 속하지 않은 선수들이 한다. 심지어 구장 전광판 관리도 홈 팀 신참 선수들의 몫이다.
이날은 SK의 2년차 선수 1명과 신인 2명이 기록실에 앉아 있었다. 1명은 경기 기록지, 다른 1명은 타구 방향 기록지 작성을 맡았다. 나머지 1명은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2군 기록도 전산 처리되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전광판에 볼카운트와 아웃카운트, 스코어를 게시하는 겁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전광판 불빛은 1군 경기보다 약했다. “경기에 지장을 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선수 이름보다 포수는 2번, 1루수는 3번, 2루수는 4번 등으로 적힌 포지션 숫자 불빛이 더 강했다. ‘2군 선수는 이름도 없나’라는 비애를 잠시 느꼈던 것은 다만 기자의 시력이 나빴기 때문이었을까.
프로야구 8개 구단은 지난해 2군 경기를 팀 당 76경기씩 치렀다. 올해는 경찰청팀 창단으로 남부리그는 78경기, 북부리그는 종전대로 76경기씩이다. 최초의 프로야구 2군 경기는 1987년 5월 16일 열렸다. 대구구장에서 홈팀 삼성과 원정팀 OB가 대결했다. 당시 야구전문 주간지 <주간야구>는 특집기사로 ‘2군, 시기상조인가, 아닌가’라는 기사를 실었다. 시기상조라고 주장한 전문가들도 있었다. 효과로만 보면 그럴 지도 모른다. 메이저리그 스타들은 마이너리그를 거쳐 성장한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의 스타들은 대개 신인이나 2년차 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찬 선수들이다.
2군에서 3~4년 이상을 보낸 뒤 스타로 발돋움한 선수를 찾기는 쉽지 않다. 특히 야수들은 그렇다. 그래서 2군 운영 이유로 전력 강화 차원 외에 ‘아마추어 야구를 살리기 위해서’를 꼽는 이들도 있다.
기자실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SK의 조범현 감독. 이날 인천에서 1군 홈 경기가 열린 탓에 2군 경기를 찾은 것이다. 더불어 왼쪽 팔 부상에 시달리다 이날 처음으로 실전 등판한 선발투수 이승호의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승호는 1999년 고졸 신인으로 데뷔한 뒤 10승 이상 3회, 14승 이상 2회를 기록한 투수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부상 때문에 3경기에만 구원 등판했다. 올해도 스프링캠프 때 통증이 재발해 등판하지 못했다.
이날 이승호는 공 17개로 1이닝을 마친 뒤 마운드에서 물러났다. 조감독은 “아직 몇 경기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덕아웃 뒤에서 만난 이승호는 “통증이 없기 때문에 7월 초에는 1군에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OK 사인이 떨어지기 위해서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36km였다.
2회에는 엄정욱이 등판했다. 역시 부상 때문에 이 경기가 올해 2번째 실전 등판이다. 엄정욱은 볼넷 2개와 몸맞는공으로 만루 위기를 자초했지만 무실점으로 어렵게 이닝을 마쳤다. 3회에도 선두타자 황성용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강판됐지만 구원투수 김선규의 선방으로 실점은 없었다. 최고 구속은 시속 151km. 나름대로 완급 조절을 하느라 처음에는 공을 슬슬 던졌다. 그러자 컨트롤은 오히려 더 나빠져 줄줄이 볼넷이 나왔다. 시속 150km짜리 강속구를 던질 때 컨트롤이 오히려 더 좋았다.
조 감독은 3회를 마친 뒤 굳은 표정으로 구장을 나섰다. 그에게는 만족스럽지 않은 시찰이었다. 이승호에 대해서는 “아직 공에 힘이 없다. 몇 경기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승호의 1군 복귀 시기는 아마도 올스타전 전후일 것이다.
롯데 선발투수는 이정민. 지난해에는 마무리 노장진 바로 앞에 등판한 롯데 주력 셋업맨이었다. 올해는 6월 16일 사직 현대전 등판을 끝으로 2군에 내려와 있다. 이날 성적은 5이닝 6안타 4실점(2자책). 1군 무대였다면 중간은 가는 성적이다. 그러나 2군 기록을 신뢰하는 코칭스태프는 드물다. 이날 직구는 최고 시속 144km였지만 변화구 컨트롤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프로야구는 매년 날짜를 정해 해고자를 발표하는 악덕 직장이다. 매년 11월 30일에는 보류선수명단이 공시된다. 여기에 포함되지 못하면 자동 해고다. 지난해에는 44명이 이 명단에서 탈락했다. 대다수가 1군 출전 경험이 적은 2군 선수들이다. 이 선수들에게 붙여진 이름은 자유계약선수. 같은 이름이지만 1군에서 9시즌을 보낸 뒤 ‘대박’을 맞는 자유계약선수와는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KBO 규약에서도 전자를 ‘자유계약선수’, 후자를 ‘프리에이전트(FA)’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같은 말이다. 어느 구단으로도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지만 ‘자유계약선수’는 불러주는 데가 없고 ‘프리에이전트’는 수요자가 넘칠 뿐이다.
11월 30일이 아닌데도 해고의 비운을 맞는 선수들은 있다. SK는 6월 26일 외야수 조경환을 웨이버 공시했다. 아마추어 국가대표 출신 조경환은 롯데 시절인 2000~2001년에 2년 연속 25홈런 이상을 쳐내며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지금 그의 자리는 1군에도, 2군에도 없다.
조경환은 웨이버 공시 뒤 7일 안에 영입 희망 구단이 나타나면 이적할 수 있다. 이 경우 올시즌 남은 연봉은 새 구단이 부담한다. 그러나 영입 희망 구단 없이 7일이 지나면 임의탈퇴선수가 돼 유니폼을 벗어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라면 조경환은 자유계약선수가 돼 어떤 구단과도 자유롭게 협상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 규약은 웨이버 공시 뒤 임의탈퇴된 선수는 그 시즌에는 어떤 구단에도 입단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선수의 앞길을 가로막는 몹쓸 규정이다. 임의탈퇴는 메이저리그 규약의 ‘Voluntary Retirement’의 번역어다. 뜻은 ‘자진 은퇴’. 그러나 구단이 필요없다고 버린 선수더러 ‘자진 은퇴했다’고 하는 것은 부당하며, 올바른 언어 습관도 아니다.
그나마 과거 실적이 있는 조경환은 이적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더 있다. SK는 이날 조경환 외에 연습생, 즉 신고선수로 입단한 2명을 더 방출했다. 이들의 이름은 구단 홈페이지에도, KBO 보도자료에도 없다.
마이너리그를 다룬 야구영화 <불 더햄>(국내 개봉명 <19번째 남자>)에는 선수에게 방출을 통고하는 감독의 대사가 2번 나온다. 대사는 똑같이 “이건 감독이 가장 하기 싫은 일이지만…”으로 시작한다.
한국 구단에서 방출 통보는 구단 프런트가 전담한다. 악역은 피하지만 2군 감독들도 비애를 겪는다. SK 김대진 2군 감독은 웨이버 공시 하루 전인 6월 25일 조경환 등 3명으로부터 작별 인사를 받았다. 1983년 삼미 슈퍼스타스 선수로 프로야구에 데뷔했던 김감독은 올해로 51세다. “아들같은 선수들이다. 내 아들이 직장에서 쫓겨난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는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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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SK 스카우트팀의 진상봉 팀장과 허정욱 과장도 도원구장을 찾았다. 스카우트한 선수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는지 관찰하기 위해 온 것이다. 허과장은 “2군에서 선수를 육성한다지만, 결국 선수가 크는 곳은 1군”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마이너리그와 한국 2군은 비슷해 보이지만 매우 다르다. 마이너리그는 새파란 신인들이 뛰는 루키리그부터 메이저리그 백업 요원들의 무대인 트리플A까지 위계화돼 있다. 그러나 한국 2군에는 고졸 신인과 1군에서 강등된 고참이 같은 팀에서 뛰고 있다. 신인들은 새로운 기술을 익혀야 한다. 반면 베테랑들은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한다. 다양한 선수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용할 지가 2군 감독들이 겪는 공통적인 고민이다. SK 김감독은 “경기 수가 늘어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제한된 예산 아래서 경기를 무작정 늘릴 수도 없는 일이다. SK가 연봉 9.000만 원인 조경환을 방출한 이유는 유망주들이 뛸 기회를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스탠드에는 관중이 전무했지만 아들을 보러 온 2군 선수 가족들은 있었다. 인천이 고향인 롯데 신인 김정환의 아버지 김동문씨는 기록실 옆 부스에서 “오늘은 정환이가 출전하지 않을 것 같다”며 입맛을 다셨다. 김정환은 올해 1군 경기에 4차례 등판해 방어율 7.86을 기록한 뒤 다시 2군에 내려와 있다. 이날은 등판 스케줄이 없어 백스톱 뒤에서 기록을 맡았다. 김정환은 1군 경험에 대해 “마운드에 서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더라”고 말했다. 김정환은 야구장에서 보낸 시간이 10년이 넘는 선수다.
SK 신인 투수 김용태의 아버지 김종만씨도 함께 구장을 찾았다. 김용태는 SK가 장기적인 안목으로 키우는 선수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김용태는 인천고 시절 동산고의 류현진과 맞대결해 한번도 진 적이 없다. 고교 시절 라이벌의 활약을 바라봐야 하는 신인 선수는 조급해진다. 김용태의 소원은 ‘2군에서라도 많이 던졌으면 좋겠다’다. 그러나 쉽지 않다. 프로 구단은 70명 안팎으로 선수단을 운영한다. 1군 정원, 즉 현역선수명단은 26명으로 제한된다. 재활 선수를 제외하더라도 30~40명이 출전 기회를 두고 다투는 곳이 2군이다.
SK는 2군 선수를 1군 백업, 육성군A, 육성군B 등 3그룹으로 나눠 관리한다. A는 1, 2차 지명 선수, B는 신고선수다. 김감독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승부를 통해 배우는 게 더 많다”고 말한다. 그러나 2군 경기에서 승패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훈련의 연장이라는 성격이 더 강하다. 선수들의 수준도 다르다.
중·고교 때부터 기본기를 몸에 익힌 선수는 운이 좋은 경우다. 지도자를 잘못 만나 나쁜 폼이 몸에 밴 선수를 처음부터 새로 가르치기는 쉽지 않다. 김감독은 “이런 선수들은 단점을 고치기 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쪽으로 지도한다”고 말한다.
메이저리그에는 40인 로스터(보류선수명단) 제도가 있다. 여기에 포함된 선수는 마이너리그에서 뛰더라도 메이저리그 구단 소속이다. SK도 자체적으로 40인 로스터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40인 로스터와는 의미가 다른 ‘핵심 선수’ 개념이다. 이와는 별도로 2군 선수들을 포지션 별로 순위를 매긴다. 1군에 올릴 순위로, 2주마다 업데이트된다. 이 명단과 순위표는 선수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다.
백업 요원에서 올해 현대 간판타자로 발돋움한 이택근은 2군 선수들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나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말하겠다. 비주전 선수들은 ‘차라리 팀이 졌으면’이라는 생각까지 할 때가 있다. 그래야 주전들이 물갈이되고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 때문이다. 1군에서 주전으로 계속 뛰는 것은 체력적으로 힘들다. 컨디션이 나쁘다고 트레이너에게 말해 하루이틀 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 빈 자리에 누가 치고 들어올 것이고, 주전 자리를 빼앗길지 알 수 없다”
첫댓글 wbc 환호 뒤에는, 이러한 좋지 않은 환경 1부 리그가 아닌, 2부 리그, 냉정한 경쟁, 낙후된 시스템이 있습니다. 빨간 글씨는, 진보정당 시스템과, 잘못 배운 정치운동...야구와 정치가 서로 다르지만, 동일한 현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