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1. 흙의 날.
아이들이 쓴 시를 정리했다. 오탈자만 연필로 고쳐놓았다.
영어시험
박○근
영어시험은 어렵다
하나도 모르겠다
영어시험이 국어처럼
쉬웠으면 좋겠다.
시쓰기 어려워
박○근
시는 쓰기 어렵다
영어시험 같다
잘 들리지 않는 영어처럼 어렵다.
D-15
이○윤
크리스마스까지 15일
산타할아버지 오시기까지 15일
선물받기까지 15일
캐롤이 울려 퍼지기까지 15일
행복한 상상중
형이 하는 짧은 한 마디
“산타 없어.”
“……”
감
정○훈
나는 왜 인기가 없는감
나는 왜 솔로인감
나는 왜 게임을 못할감
오늘은 금요일
한○준
등교하는데 상쾌한 날
왜일까?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게임할 수 있는 날
자는 게 아깝지 않는 날
오늘은 금요일
아 맞다!
학습지 하는 날
그래도
오늘은 금요일
우리집 개와 친해지는 방법
한○규
우리집 개는 항상 짖는다
우리집 개는 까칠하다
하지만 우리집 개와 친해지는
방법은 쉽다
달달한 고구마 간식
길가의 민들레
함○훈
나는 혼자 길을 걷고 있다
그때 콘크리트 금 간 곳에
눈에 띄는 꽃 하나
민들레
둥근 머리가 온통 하얗다
이제 씨를 뿌리나 보다
갑자기 바람이 분다
하얀씨가 날아간다
바람이 씨 태우러 왔나보다
하얀 씨는 바람 타고 날아가
예쁜 꽃을 틔우나 보다.
하고 싶다.
남○아
오늘은 수요일
동생은
4교시 하는 날
하지만
우리 5학년들은 5교시
창밖으로
하교하는 동생들 보면
저 책가방에
우리 집 고양이처럼 숨어서
따라가고 싶다.
창작의 고통
박○은
선생님이 시를 쓰라고
준 시간
모두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내며
시를 쓰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빈종이
앞만 보는 기차가 되고 싶을 때
박○원
앞만보는 기차가 되고 싶을 때가 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나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앞만 보는 기차가 되고 싶다.
처음엔 다 그렇다
정○진
아빠와 떨어지는 첫날
오빠가 시험보는 첫날
앞머리 자른 첫날
모두 다 어색해
처음엔 다 그럴거야.
오빠 기분 좋게 만드는 방법
정○진
“오빠 천원 줄게!”
바로 친해지는 남매
너
박○우
너는 정말 신기해
너는 착한 사람이기도 하고
너는 화산같기도 해
너는 비 같기도 하고
너는 겁쟁이기도 하지
이 모든 걸 합쳐서
너는 너야.
쓴 시를 읽어본다. 걱정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 그리고 빛나는 상상과 매력적인 말들이 가득하다. 시를 보니 아이가 새롭게 보인다.
영어 수업 때마다 제일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서 “쌤, 책이 없어요, 안 가면 안 돼요.” 하던 녀석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은이가 창작의 고통을 겪을 때 나는 무얼 했을까.
“쌤, 그대로예요. 못 썼어요.”
“어렵지, 지금 든 생각을 그대로 쓸 수 있을까?”
“음, 모르겠어요.”
“그래? 괜찮아.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잘 생각해 보자.”
“…….”
“음, 이제 알겠어요. 마음에 생기는 일이죠?”
“그렇지.”
한참 후에
“다 썼어요. 쌤.”
“수고했어. 은아.”
“은이 잘 썼어요. 제목이 좋아요!”
친구 말에 고개만 살짝 끄덕이던 아이
은이를 칭찬해 주는 원이가 있어 다행이다.
‘앞만 보는 기차가 되고 싶을 때’를 읽으니 원이가 더 멋져 보인다. 원이와 함께 했던 11월의 아이들. 좋았다. 영감을 떠 올리기 위해 하늘 보며 걷기를 한 우, 표고버섯 맛을 잘 표현한 건이, 마니또에게 주는 다정한 시를 쓴 유....
다들 시인이다. 시인의 탄생을 지켜보는 교사의 자리를 생각한다.
편집 후기 겸 편지를 쓰고, 다른 원고도 정리해서 제본을 맡겨야겠다.
첫댓글 5학년 영어가 좀 어려운가봐요. 학원에서 보충을 못하면 따라가기 어려운지요?
오빠 기분 좋게하는 방법 두 줄이면 되네요 ㅎ
네. 그렇습니다. 요즘 엄마들 말로 영어는 체중이고 수학은 키 크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만큼 영어와 수학에 드는 공력이 어마어마합니다. 하지만 저희 반 아이들은 따로 영어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학습지 정도 하는데 우리 근이는 이것도 어려운 형편이라 영어가 힘겹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