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26회
노장공은 신하들을 소집하여 제나라의 혼사 문제를 상의하였다. 시백이 말했다.
“우리나라에 세 가지 수치(羞恥)가 있는데, 주군께서는 아십니까?”
장공이 말했다.
“무엇이 세 가지 수치요?”
“선군께서는 이제 돌아가셨지만 은공을 시해했다는 악명이 아직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첫번째 수치입니다. 군부인께서 제나라에 머물러 있으면서 돌아오지 않고 있어 사람들의 쑥덕공론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것이 두번째 수치입니다. 제나라는 원수인데도, 주군께서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그 혼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거절하면 왕명을 거역하는 것이 되고, 거절하지 않으면 남들의 비웃음을 사게 됩니다. 그것이 세번째 수치입니다.”
[제14회에, 공자 휘가 은공을 시해하고 은공의 아우인 공자 궤(환공)를 옹립하였다.]
장공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그 세 가지 수치를 어떻게 하면 면할 수 있겠소?”
시백이 말했다.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 아름다워야 하며, 남에게 의심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선군께서 군위에 오르셨지만 왕명을 받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번에 혼사를 주관하는 기회에 주왕실로부터 명을 받음으로써 그 영예가 구천에까지 이르게 되면, 첫 번째 수치를 면할 수 있습니다.
제나라에 계신 군부인을 예로서 모시고 옴으로써 주군의 효성을 이루게 되면, 두 번째 수치를 면할 수 있습니다. 다만 혼사를 주관하는 일은 양쪽을 모두 온전히 하기가 어려운데, 그래도 계책은 있습니다.”
“그 계책이 무엇이오?”
“교외에 관사를 짓고 상대부를 주왕실로 보내 왕녀를 그곳으로 맞이해 온 다음, 제나라로 모시고 가면 됩니다. 그리고 주군께서는 상중이라는 이유로 사양하십시오. 그리하면 위로는 왕명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 되고, 아래로는 대국의 감정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되며, 가운데로는 주군께서 거상(居喪)의 예의를 잃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하면 세 번째 수치 역시 면할 수 있습니다.”
“신수가 말하기를, 그대는 지혜가 넘쳐난다고 하더니, 과연 그렇구료!”
마침내 장공은 시백의 계책대로 하나하나 행하였다.
노장공은 대부 전손생을 주왕실로 보내 왕녀를 모시고 옴과 동시에, 이미 고인이 된 노환공의 영예를 위하여 제후의 예복과 규벽(圭璧)을 청하였다. 주장왕은 노나라의 청을 허락하고 ‘환공’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사신을 노나라에 보내기로 하였다.
[‘규벽’은 서옥(瑞玉)과 둥근 옥으로 천자가 봉작의 증거로 제후에게 주는 것이다.]
주공 흑견이 사신으로 가기를 원했으나, 장왕은 허락하지 않고 대부 영숙(榮叔)을 보냈다. 원래 장왕의 아우 왕자 극은 선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선왕이 임종 시에 주공 흑견에게 극을 부탁했었다. 장왕은, 흑견이 딴 마음을 품고서 다른 나라와 몰래 교류하여 왕자 극의 도당을 만들까 봐 두려워 사신으로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제12회에, 제족은 왕자 극이 왕의 총애를 받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빼앗는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제22회에, 주환왕은 임종 시에 흑견에게 타(장왕)가 죽거든 극이 그 뒤를 잇게 하라고 부탁했었다.]
흑견은 장왕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는 것을 알고, 밤중에 왕자 극의 집을 찾아가 상의하였다. 왕녀가 출가하는 날을 기회로 삼아,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켜 장왕을 시해하고 왕자 극을 옹립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대부 신백(辛伯)이 그 음모를 알아내고 장왕에게 고하였다. 장왕은 흑견을 죽이고 왕자 극을 축출하였다. 왕자 극은 연나라로 달아났다.
노나라 사신 전손생은 왕녀를 모시고 노나라에 왔다가 다시 제나라로 모시고 갔다. 그리고 노장공의 명을 받들어 군부인 문강을 노나라로 모시고 가겠다고 제양공에게 청하였다. 제양공은 문강을 보내기가 아쉬웠지만, 공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허락하였다.
문강은 떠나면서 양공의 소매를 붙잡고 차마 놓지 못하면서 말했다.
“보중하십시오. 만날 날이 있겠지요.”
두 사람은 눈물을 뿌리며 작별하였다. 문강은 양공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한데다 인륜을 저버린 부끄러움 때문에 노나라로 돌아가는 걸음이 느려졌다. 수레가 작(禚) 땅에 이르러 보니, 행관(行館)이 아주 정결하였다. 문강은 탄식하며 말했다.
“여기는 노나라도 아니고 제나라도 아니니, 내가 살 곳은 여기다.”
문강은 종자를 불러 분부하였다.
“너는 노나라로 돌아가서 노후께 이렇게 아뢰어라. 미망인(未亡人)은 한가하게 지내기를 원하여 궁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나는 죽어서야 노나라로 돌아갈 것이다.”
[‘미망인’은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을 따라 죽지 않은 과부(寡婦)를 가리킨다. 순장(殉葬)의 풍습에 따라 마땅히 죽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사용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문강의 말을 전해들은 노장공은, 모후가 귀국할 면목이 없어 그런 줄을 알고, 축구(祝邱) 땅에 집을 지어 살게 해주었다. 문강은 두 나라를 오가며 살았고, 노장공은 필요한 물품을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공급해 주었다.
후에 사관들이 의논하기를, 노장공의 입장에서 문강을 볼 때, 정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낳아준 생모이면서 의로써 말하자면 부친의 원수라고 하였다. 따라서 만약 문강이 노나라로 돌아갔다면 도리어 난처한 일이 될 뻔했는데, 두 나라를 오감으로써 노장공이 효도를 온전하게 할 수 있었다고 하였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弒夫無面返東蒙 남편을 죽게 하여 노나라로 돌아갈 면목 없어
禚地徘徊齊魯中 작 땅에서 齊와 魯를 오고갔네.
若使靦顏歸故國 만약 뻔뻔하게 고국(故國)으로 돌아갔다면
親仇兩字怎融通 부모와 원수 양면을 어떻게 융통했을까?
한편, 제양공이 노환공을 살해한 후 제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齊侯가 무도하여 음란한 짓을 저지르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자행했다.”
양공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움을 느끼고, 급히 왕녀를 맞이하여 혼인했다. 하지만 제나라 사람들의 비난은 그치지 않았다.
양공은 한두 가지 의로운 일을 행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복종시키려고 하였다.
“정나라에서는 군주를 시해하였고, 위나라에서는 군주를 축출하였다. 두 사건은 모두 큰 사건이다. 단 위나라 공자 검모는 주왕의 사위이며 지금 막 왕녀와 혼인하였으므로, 지금 검모를 상대할 수는 없다. 먼저 정나라의 죄를 물어 토벌하면, 제후들이 필시 두려워하여 복종할 것이다.”
[제24회에, 정나라에서는 고거미가 소공을 시해하고 공자 미를 옹립했었다. 또 위나라에서는 위혜공 삭이 정나라 토벌을 나간 사이에 공자 직과 공자 설이 공자 검모를 옹립하였고, 삭은 제나라로 달아났었다.]
하지만 양공은 군대를 일으켜 정나라를 토벌한다 하더라도 승부를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정나라에 사신을 보내 공자 미와 수지(首止) 땅에서 만나 동맹을 맺자고 요청하였다.
제양공의 동맹 요청을 받은 정나라 공자 미는 크게 기뻐하면서 말했다.
“제나라와 동맹을 맺게 되면, 우리나라는 태산처럼 편안해질 것이다!”
공자 미는 고거미·제족과 함께 가려고 했는데, 제족은 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았다.
원번이 은밀히 제족에게 말했다.
“신군이 제후와 우호를 맺고자 하는데, 상군께서는 따라가서 보좌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가지 않습니까?”
제족이 말했다.
“제후는 사납고 잔인한 자로서, 대국을 물려받아 분수에 넘치게 패자가 될 야심을 갖고 있소. 게다가 선군 소공께서 제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것을 제나라는 잊지 않고 있을 것이오. 무릇 대국은 예측하기 어렵소. 대국이 소국과 동맹을 맺자고 하는 것은, 필시 간사한 음모가 있는 것이오. 이번에 가면 군주와 신하가 모두 죽음을 당할 것이오.”
[제16회에, 북융이 제나라를 침공했을 때 세자 홀(소공)이 원병을 이끌고 가서 융병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다.]
“상군의 말씀대로 된다면, 정나라는 누구에게 속하게 됩니까?”
“필시 공자 의에게 속하게 될 것이오. 그는 군주의 상(相)을 지니고 있다고, 일찍이 선군 장공께서 말씀하신 바가 있소.”
[제20회에, 정장공이 임종 시에 제족에게 말하기를, 세자 홀 외에도 돌, 미, 의가 모두 귀하게 될 상이라고 말했다. 홀, 돌, 미는 이미 군주가 되었는데, 의도 과연 군주가 될 수 있을까?]
원번이 말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상군께서는 지혜가 많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지 이번에 제가 지켜보겠습니다.”
[제8회에, 공자 여가 ‘제족은 참으로 귀신같다.’고 탄복했었다.]
약속한 날이 되자, 제양공은 왕자 성보(成父)와 관지보(管至父) 두 장수에게 각각 무사 백여 명씩을 거느리고 좌우를 호위하게 하고, 역사 석지분여로 하여금 뒤를 바짝 따르게 하였다.
[왕자 성보는 앞서 언급되지 않았지만, 주장왕의 아우이다. 왕자 극이 반란에 실패하고 연나라로 달아났을 때 성보는 제나라로 달아났었다.]
고거미는 공자 미를 인도하여 함께 맹단(盟壇)에 올라가, 제양공과 인사를 마쳤다. 제양공의 총신 맹양(孟陽)이 무릎을 꿇고 피가 담긴 그릇을 받쳐 들고 삽혈하기를 청하였다. 그때 제양공이 눈짓을 하자, 맹양이 벌떡 일어났다. 제양공이 공자 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선군 소공께서는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공자 미는 안색이 변하면서 깜짝 놀라 몸이 떨려 말도 하지 못했다. 고거미가 대신 대답하였다.
“선군께서는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군후께서는 번거롭게 왜 물으십니까?”
제양공이 말했다.
“소공은 증제를 지내러 갔다가 도적들에게 죽음을 당했다고 들었소. 병으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잖소?”
고거미는 숨기지 못하고 대답했다.
“원래 한질(寒疾)이 있었는데, 도적들을 만나 놀라는 바람에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군주가 행차하면 반드시 경비가 삼엄했을 것인데, 그 도적들은 대체 어디서 왔단 말이오?”
“적자와 서자 간에 군위를 다툰 것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각자가 사당(私黨)을 거느리고 있어, 기회를 틈타 몰래 도발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그 도적들은 붙잡았소?”
“지금까지 수색하고 있는 중인데, 종적을 알 수 없습니다.”
제양공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도적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뭐 하러 번거롭게 수색한단 말인가? 너는 국가에서 작위를 받고서도 사적인 원한으로 주군을 시해하였다. 과인의 면전에 와서도 감히 말로 얼버무리려 하느냐! 과인이 오늘 네 선군의 원수를 갚겠다!”
제양공은 역사 석지분여에게 명했다.
“저놈을 포박하라!”
고거미는 감히 더 이상 변명할 수가 없었다. 석지분여가 먼저 고거미를 포박하자, 공자 미는 머리를 조아리며 애걸하였다.
“저는 그 일과 관계없습니다. 모두 고거미가 저지른 짓입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제양공이 말했다.
“고거미가 한 짓인 줄 알았다면, 어찌하여 그를 처벌하지 않았는가? 너는 이제 지하에 가서 변명해라.”
제양공이 손을 들어 신호하자, 왕자 성보와 관지보가 무사 백여 명을 이끌고 일제히 단상으로 올라와, 공자 미를 난도질하였다. 공자 미는 그렇게 비명에 죽었다. 정나라의 수행원들은 제나라 사람들의 기세가 대단한 것을 보고,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모두 흩어져 달아나 버렸다.
제양공이 고거미에게 말했다.
“너의 주군은 이미 죽었는데, 너는 살기를 바라느냐?”
고거미가 대답했다.
“저의 죄가 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죽여주십시오!”
“너를 단칼에 죽이는 것은, 너를 너무 편하게 해주는 것이다!”
제양공은 고거미를 제나라로 데려가서 남문에서 거열형(車裂刑)에 처하였다. 거열형이란 죄인의 머리와 사지를 다섯 대의 수레에 묶고 소에 채찍질을 하여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게 함으로써 사람의 몸을 다섯 조각으로 찢어 버리는 형벌을 말한다. 속언으로 ‘오우분시(五牛分屍)’라고 하는 것으로, 극형에 해당한다. 제양공은 제후들에게 자신이 의로운 일을 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런 극형을 사용했던 것이다.
고거미를 극형에 처한 후, 제양공은 그 수급을 남문에 효수하고 그 옆에 방을 붙였다.
“역신(逆臣)들은 이를 똑똑히 보아라!”
다른 한편 제양공은 공자 미의 시신을 수습하여 짚으로 싸서 동쪽 교외에 매장하게 하였다. 그리고 사신을 정나라에 보내 고하게 하였다.
제나라 사신이 정나라에 가서 말했다.
“주나라에는 적신(賊臣)과 역자(逆子)를 처벌하는 법이 있습니다. 정나라의 고거미는 주군을 시해하고 서자를 멋대로 옹립하였습니다. 과군께서는 정나라 선군의 죽음에 조문하지 못한 것을 애통하게 여겨, 정나라를 위해 그를 죽였습니다. 이제 새로 신군을 옹립하여, 예전의 우호를 회복하기 바랍니다.”
원번은 그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제족의 지혜는, 내가 따라가지 못하겠구나!”
여러 대부들이 신군을 옹립할 일을 의논하였는데, 숙첨(叔詹)이 말했다.
“옛 군주가 역 땅에 계신데, 어찌하여 맞이하지 않습니까?”
[제24회에, 정여공은 정나라의 역성을 점거했었다.]
제족이 말했다.
“망명한 군주를 다시 맞이하는 것은 종묘를 두 번 욕보이는 것이오. 차라리 공자 의를 옹립하는 것이 좋겠소.”
원번 역시 찬성하였다.
그리하여 陳나라에 있는 공자 의를 영접해 와서 군위에 옹립하였다. 제족은 상대부가 되고, 숙첨은 중대부가 되었으며, 원번은 하대부가 되었다.
[제20회에, 제족이 소공(홀)을 축출하고 공자 돌(여공)을 옹립할 때 공자 의는 陳나라로 달아났었다.]
공자 의는 즉위하자, 국정을 제족에게 맡겼다.
[제20회에, 정장공이 임종 시에 제족에게 말하기를, 세자 홀 외에도 돌, 미, 의가 모두 귀하게 될 상이라고 말했다. 결국 네 공자가 모두 군위에 오르게 되었다. 제족은 장공 때부터 공자 의까지 다섯 군주를 섬기면서 국정을 도맡는다. 실로 귀신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정나라는 백성을 구휼하고 나라를 재정비하였으며, 제나라와 陳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 사신을 보내 우호를 맺었다. 다른 한편 정나라는 초나라의 압박을 받아 매년 조공을 바치기로 하고, 영원히 속국(屬國)이 되기로 하였다.
역성을 점거하고 있는 정여공은 기회를 엿볼 틈이 없었다. 이로부터 정나라는 조금씩 안정되어 갔다.
첫댓글 ㅡ 남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 아름다워야 하며, 남에게 의심받지 않으려면 반드시 먼저 스스로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ㅡ
이 대목 가슴에 담아갑니다.
살부생모 문강의 앞날은 어찌될런지요?
난세를 이끌어가는
영웅들의 독특한 면모가 보이네여
잘보고갑니다
헷갈린다 헷갈려.
고거미(정 소공 살해),제족---정나라 사람들
위혜공 삭(선강의 못된 아들)은 공자 직과 설에 의해서
폐위되고 검모가 위나라 군주가 됨 ----삭,제나라로 망명.
화독이 송상공과 공보가를 죽이자 공보가
아들이 노나라로 망명---공자6대조.
송장공 즉위
노장공--- 죽은 노환공의 아들,어머니는 문강
제양공---- 삼강오륜 무시한 호남방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