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뭇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다가 그가 자라나신 고향인 나사렛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소문을 들은 동네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고 회당에 모여들어
예수님을 단상에 모시고 이사야의 글을 드리면서 기대가 부풀었습니다.
회당 장내는 말씀을 듣기 위해 잔잔한 침묵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메시야)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사 61:1-2)
위 말씀은 당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기쁘고 신나는
성경요절로서 성경의 하이라이트 입니다. 회당에서 낭독할 때마다 특히
“신원의 날” 대목에서는 “아멘 할렐루야~!!” 환성이 크게 터져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신원’이란 복수의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위 말씀을 읽으시면서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로 마치고
“신원의 날”을 읽지 않은 채 책을 덮고 내려가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며 예수님을 “다 주목하여 보니라” (눅 4:18-20)
예수님께서 왜 ‘신원의 날’을 생략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교회에서 잘못 이해하고 잘못 가르친 오류 신학에 대해
예수님께서 정면 도전하신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
자손인 선민으로서 구원은 무조건 따 논 당상이었고, 이제 메시아가 오면
자기들을 괴롭히는 로마를 비롯해 주변 원수들에게 복수해주고 평안과
안식을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은 메시아가 이 땅에
오시는 목적과 사명을 오해한 것입니다. 하여 예수님께서 그들이 오해
하지 않도록 “신원의 날”을 읽지 않고 빼버리신 것입니다.
메시아의 사명은 유대인들을 괴롭히는 원수나 나라를 복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또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사는 태평성대를 이루어주시기
위함도 아닙니다.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용서와 구원과 은혜를
전파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당시 유대교의 잘못된 신학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드리지 않았습니다.
메시아의 사역은 …. .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은 육적으로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마 5:3)
복음은 심령이 가난한 자, 내 지식과 경험 또 내 이기적인 뜻과
편견을 다 버리고 순수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이 됩니다. 사실 우리가 배고프고 목말라야 무슨 음식이든 주는
대로(말씀하신 대로) 기쁨으로 받아먹지 않습니까 … . 하여 복음은
마음이 가난한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롬 1:16)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마귀(죄)의 포로가 되어 죄에 끌려 다니며
종 노릇 하는 자들을 진정 해방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히 2:14-15)
거짓 자유 함으로 방종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죄에서 벗어나는
진정한 평강과 자유 함을 주시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러한 메시아
사역의 때가 하나님께서 호의를 베푸시는 바로 “은혜의 해” 입니다.
“신원의 날”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마지막 때의 심판으로서, 마귀(죄)의
종이 되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메시아의 사명을 오해한 자들에게
쏟아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입니다.(계 6:10) 곧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고
무조건 평강과 안식(구원)을 누리게 해주는 날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는 날입니다. (살후 1:8)
구약에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섞여나옵니다.
마귀는, 예수님 초림 당시에는 유대인들의 인본적인 소원을 부추겨 재림
메시아를 믿게 만들어 멸망으로 이끌었고, 오늘날은 반대로 심판 주로
오시는 주님이 아니라 초림 때의 사랑의 주님에만 초점을 맞춰 십자가와
은혜만 강조하는 인본적인 신학으로 신자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드리면서도 자기 생각과
판단과 고집대로 성경을 믿습니다. 그렇게 이기적이 되면 아무리 바른
진리를 전해도 자기 편견에 사로잡혀 들으려 하지 않고, 그저 귀에
듣기 좋은 이야기를 하는 선생과 교리에 미혹 당하게 됩니다.(딤후 4:3-4)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10-12)
만일 복음이 나를 무조건 용서하고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이라면 … .
나 자신을 정직하고 바르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천국이라면 나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입니다. 거기에서도 죄 가운데
탐욕, 자존심, 교만이 그리고 형제들에 대해 시기, 원망, 불평, 다툼 등이
내 안에 그대로 살아있다면 그게 어디 천국이겠습니까 … .
우리가 완전하진 못해도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 품성이
온전히 갖춰져야 마귀(죄)의 영향력이 없는 천국에서 주님 뜻대로 행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혹 천국에 가면 내 품성을 그 즉시 바꾸어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만일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는 에덴에서 내쫓고 언제는
말만 잘 하면(입술 시인) 구원해주는, 곧 병 주고 약 주는 아주 고약한
분으로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은혜의 해가 끝나가고 신원의 날이 다가오는 오늘날 … .
심판 주로 오시는 공의의 주님을 오해하여 사랑과 은혜의 주님만을
기대하다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송전서 (다움카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 드립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9.15 01:14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3.09.15 01:33
아멘
아멘~!! 감사 드립니다.
아멘~
아멘~!! 감사 드립니다.
아멘아멘 은혜의글 감사합니다 ^^
할렐루야~!! 감사 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복음은 나를 죽이고 다시 새생명을 주어 살아나게 하는것인데 오늘날의 썩고 퇴색한 복음은 내가 사는것에 방향이 맞춰져있습니다
자기들로 펄펄 살아있어 생명력이 넘치는듯하나 실제로는 헐벗고 죽었음을 모릅니다 (계시록 3:17)
종이 주인보다 나을 수 없다하셨듯, 죽기위해 이땅에 오신 구세주의 삶만 보더라도 나는 이땅으로부터 온전히 죽어야합니다
이땅은 그저 천국을 준비하기 위한곳임을 안다면 이생에 소망두지 않을 것입니다
선악과는 크고 탐스러워 보암직했지만 에덴에서(천국) 쭃겨나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땅에 소망을 놓치 않게끔 잡아끄는 숱한 유혹들 모두가 에덴의 선악과임을 잊어서는 안되지요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내가 이 땅에 것들에 미련을
가지면 그것들이 아주 매혹적으로 보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한 것은 내가
죽어야한다는 말이지요.
내가 죽지 않고 주님을 따르려니 안 되니까
이런 저런 이론들이 많아집니다.
아멘~아멘~아멘.
귀한 글 잘 보았습니다.
많이 묵상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순종 하심과 노력에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에 축복합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감사 드립니다.
아멘~!!
아멘~!! 감사 드립니다.
아멘!! 감사드립니다. 제가 예전에 그랬지요. 거짓된 은혜주의에 물들어 누군가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겉으로만 끄덕거리고 속으로는 외면했지요. 제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눈빛을 보내던 그분이 생각나네요. 저는 지금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처지라 어쩌다 다른 카페에 들러 복음을 댓글로 전하면 그냥 외면해버리더군요. 저의 옛날 모습이 생각나서 원망되지는 않지만 씁쓸하더군요. 답답한 노릇이고요. 한 사람 구원받는 것이 이렇게 힘들어요.
아멘 할렐루야~!!
우리가 가난해 배고프고 목마르지 않으면
뭐든지 주는 대로(말씀하신 대로) 먹지 않고
그저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을 골라먹으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바른 진리에 대해 아는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관심이 없습니다.
사탄이 사주한 거짓 교리가 교인들을 안일하게
만들어 멸망으로 끌고 갑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아멘~ 할랠루야~
구약시대 선생들이나 이 시대 선생들이나
주님의 말씀을 3차원 육적으로 해석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육적 차원은 영에 대적되는 매우 위험한 관점입니다.
마귀로부터의 해방을 로마로부터의 해방이라 해석하고,
메시아를 자기들만을 위하는 이기적 메시아로 만들었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도에 대해
뭔 짓을 해도 무조건 용서하는 십자가로 만들었습니다.
정말 정신차려야 합니다.
초림 예수님은 회개시키러 오셨지만,
재림 예수님은 회개가 아닌, 냉정한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재림 때 무조건 용서의 하나님이라 인식하며 육으로 살던 자들은
주님의 단호하고 냉정한 공의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천국이 육을 버리지 못해도
은혜와 사랑만 앞세워 그런 자들이 갈 수 있다면
그 천국은 오염된 지옥이 될 것이겠지만...
사실 죄를 가지고는 천국의 강한 빛(주님의 빛)을 견디지 못해
천국에 들어갈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죄를 버리지 않고 은혜와 사랑만 입혀지길 바라는 자들은
천국에서 못 살고 지옥으로 자동 떨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부력이 전혀 없는 돌맹이는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저절로 물에 가라앉듯 말입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이사야서나 에레미야서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재앙과 축복이 한 장에서도
섞여 기록되었습니다. 그것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왜 재앙이 오고 또 어떻게 해서
축복이 오는지 주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인본적인 이기심으로 성경을 해석하다
보니 허황된 소리들이 나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끕니다.
세상이 갈수록 더욱 사탄에게 점령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법에 의해 사는 자들이겠죠. 나를 고치시고 자유롭게 하실 주님을 찾고 바랍니다. 글 감사드립니다!
아멘 할렐루야~!!
그렇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 법대로
살지 않아도 된다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불순종해도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는지 넘 뻔뻔스럽습니다. 그것이 교만이요
이기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들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 입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