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그런 잠 / 이가림 (1943~2015)
오동꽃 저 혼자 피었다가
오동꽃 저 혼자 지는 마을
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버려진 옛집 마당에 서서
새삼스레 바라보는
아득한 조상들의 뒷동산
어릴 적 어머니의 젖무덤 같은
봉분 두 개
붕긋이 솟아 있다
저 아늑한 골짜기에 파묻혀
한나절 뒹굴다가
연한 뽕잎 배불리 먹은 누에처럼
둥그렇게 몸 구부려
사르르 잠들고 싶다
- 이가림 시집 <바람개비별> 2011
*
이농과 도시화로 버려진 옛 마을 뒷동산 조상의 묘소를 찾은
효령대군 22대손 이가림 시인은 둥그런 봉분 앞에 술 한 잔
올리고 어릴 적 기억에 잠긴다. 효성스러운 자손이다.
돌아가신 부모의 산소 곁에서 봉분처럼 둥그런 잠을 자고
싶은 것은 도시에서 늙어가는 아들의 저물녘 향수일 것이다.
/ 김광규 시인
투병통신投甁通信 1 / 이가림 (1943~2015)
이제
내 비소砒素 같은 그리움을
천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달빛 인광燐光 무수히 떠내려가는
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먼 훗날
부질없이 강가를 서성이는 이 있어
이 병을 건져 올릴지라도
그때엔 벌써
글자들이 물에 씻겨
사라져 버렸을 것을 믿는다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영원히 숨 쉬는 것
이제
내 비소 같은 그리움을
천년 종이에 싸
빈 술병에 넣어
일찍이 미친 사내 하나 빠져 죽은
달래강에 멀리 던진다
- 아르망 피에르 페르낭데즈(Armand Pierre Fernandez) 작
"모두를 위한 시간"
투병통신投甁通信 2 / 이가림 (1943~2015)
우리가 헤어진 건 생라자르역 광장, 아르망 페르낭데즈의
조각 <모두를 위한 시간> 앞에서였지. 여느 때처럼 “다음 주
토요일 정오에 여기서 만납시다” 라고 약속을 하고 무심히
헤어졌었지. 하지만 그게 영원히 다시 못 볼 삼도내의 작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운명의 시침時針이 너무 빨리 가는 시계를 찬 그대와 우연의
시침이 너무 늦게 가는 시계를 찬 내가 물의 도시 도빌행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한 건 몇억 광년의 세월 속에서 일어난
불가사의한 기적중의 기적이었지.
어느 낯선 거리 건널목에선가, 발을 헛디디는 아주 사소한
실수로 오토바이에 치여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는 어처구니 없는
우발사라도 그대에게 일어났던 것일까. 그날 이래 우리의
시계판은 납땜질 된 채 운행을 멈춰버리고 말았지. 되돌아올
길 없는 망각의 나락에 떨어진 그대는 아르망 페르낭데즈의
<모두를 위한 시간> 앞에 다시 올 수 없었고, 그것으로 우린
영영 엇갈린 행로를 밟을 수밖에 없었으니, 이는 심술궂은 시간의
신神의 질투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린 서로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다만 눈동자와 머리카락 빛깔과 목소리의 억양을
아는 것으로 이미 다정한 연인이 되어버렸지.
비록 지금 그대의 이름을 알지 못해 부를 수 없다 해도, 그대의
눈빛과 웃음소리와 머리칼 향기를 기억하는 한, 그대는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고, 그대 안에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오.
우린 '안녕히'란 차디찬 작별의 말을 입으로 말한 적이 없으므로
결코 헤어진 것이 아니오. 서로 다른 시간을 가리키고 있지만
누구도 틀린 것이 아닌 아르망 페르낭데즈의 <모두를 위한 시간>
앞에서 난 기어이 오고야 말 이 세상의 기적의 순간을
한사코 기다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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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기호 As로 표기되는 비소(砒素)는 구리나 납 아연 등의
금속을 제련할 때 생기는 부산물이다.
비소화합물은 방부제 살충제 매독 치료에도 사용된다.
중독이 되면 죽음에 까지 이른다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그리움이 얼마나 깊어 비소 같은 그리움인가. 끝내 말하지
못한 것이야말로 영원히 숨 쉬는 것이라니 썩지 않는
천년 종이에 싸서 빈병에 넣어 던져보면 훗날 이루지 못한
사랑을 누군가 기억해줄까. 그렇다면 시인은 그리움을 시로
적어 세상에 던져두고 천년이나 썩지 않기를 바라는 것인데,
그때는 글자들이 물에 씻겨 사라져 버렸을 것을 ‘믿는다’고
한다. ‘믿는다’는 ‘믿고 싶지 않다’로 읽어도 될 것이다.
죽음에 까지 이르게 하는 그리움으로 사모한 것들이 시집이라는
천년종이에 싸여 세상으로 던져지기 까지 일찍이 시에 미쳐
비워낸 술병은 얼마이며 달래강에 빠져죽은 적이 몇 번이던가.
시인에게 詩는 목숨과 같은 것, 잊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불멸의 사랑이다. 참으로 절실한 그리움이다.
광장이란 많은 사람이 모이는 넓은 빈터,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한 사람과의 인연은 마치
바람개비별을 발견한 것처럼 불가사의하고 기적적인 일이었다.
‘세상’이라는 광장에서 만난 사랑은 절대적 운명이었다.
파리 생라자르역 앞에 우뚝 서있는 <모두를 위한 시간>은
아르망이 크고 작은 벽시계로 탑을 세운 작품이다.
벽시계가 뒤엉킨 <모두를 위한 시간>은 각양각색의 멈춰버린
시간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각기 다른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바늘은 누군가 쓰다버린 시간들이며, 기억이 정지된 순간
심장이 멎어버린 시간들이다.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시공을
초월한 영원으로 이어지는 시간일 수도 있겠다.
프랑스 신사실주의 선구자 아르망 피에르 페르낭데즈(Armand
Pierre Fernandez)는 사물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아상블라주
(assemblage) 기법'과 일상에서 사용하는 물건들을 연속적으로
쌓아올리는 '집적(accumulation) 기법'을 사용, 도시인의
생활을 작품 속에 반영하는 프랑스 조각가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들, 악기 가구 자동차 시계
구두 톱, 틀니 등 물체를 반복해서 늘어뜨리거나 해체시켜 쌓는
방법으로 그 물체가 가진 원래 쓰임새나 성격과는 전혀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데, 그 힘은 가히 사납고 폭력적이다.
일상에서 소비되는 물체들을 빽빽하게 쌓아 과소비가 넘치는
고도의 물질문명에 대한 경고를 서슴지 않는다. 쉽게 폐기처분되는
물건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실을 비판하고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역, 광장은 기쁨과
슬픔이 시계바늘처럼 교차하는 곳. 시계들이 엉켜있는 모습에서
한 치의 여백도 없이 아옹다옹 등을 떠미는 현시대의 자화상과
희비에 뒤엉켜 흘러가는 세상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인파가 몰려들고 밀려가는 역 광장, 시침과 분침이 만나는 때,
하나가 되는 지점을 인연이라고 불러도 무리는 없겠다.
파리 생라자르역 광장 앞 <모두를 위한 시간>을 택한 이유도
어쩌면 그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모두 다 바쁘게 흘러가고
흘러가는 광장에서 유독 혼자만 느리게 걷는 이가림 시인.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돌의 언어>로 가작으로 입선,
196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빙하기>가 당선되었으니
어림잡아 시력 40년이 넘는 이가림 시인의 행보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 것이다. <갓길에 앉아서>라는 시편에서도 시인이
걷고자 하는 보폭을 보여준다. <내 마음의 협궤열차> 이후
십년 터울로 태어난 <바람개비별>은 빠르게 달려가는 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시인의 품에 맞게 욕심 없이 걸어왔다.
절제된 언어를 고르고 그 언어가 발효되기 까지 신중하고
진중하게 기다린 것이다. 오랜 침묵을 <바람개비별>이라는
시집에 공들여 담았다. 시인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지 말을
낭비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가림 시인은 “진실의 과녁을
정확히 꿰뚫기 위해 언어의 탄환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고
아무 것에나 쉽사리 방아쇠를 당기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경림 시인 역시 추천글에서 이렇게 적었다.
“역설 같지만 이가림의 시인의 시는 말이 끝나는데서 시작되는
것 같다. 누항의 모든 말들이 진실에 다가서지 못하여 마침내
침묵할 때, 비로소 그의 시는 시작된다. 그래서 그의 시는
외롭지만 아름답고 쓸쓸하지만 눈부시다. 모든 시들이 온통
저자거리에 나앉아 “날 좀 보소”와 “싸구려”를 외치는 판에
그만이 말을 아끼고 진실을 찾는 시의 정도를 걷고 있어
그의 시가 더욱 빛나는 대목도 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시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가를 호소력 있게 말해주는
것이 이가림의 시들이다.”
생략함으로 더 많은 말을 하는 시, 말이 끝나는 데서 시작하는
시는 상상력을 확대시켜 파장이 크다는 것. 침묵함으로
더 많은 이미지를 파생시키고 감동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시란 이런 것이 아닌가. 언제부턴가 말을 아끼고 진실을
찾는 시의 正道에서 벗어나 시들이 수다스럽고 어지럽다.
때로는 황당해서 무슨 암호를 풀듯 시를 해독해야 할 때도 있다.
너도 나도 목청을 높이고 시를 장식하는데 시인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았다. 간결하고 나지막한 어조에 悲壯美가 흐르는
<투병통신投甁通信 2>는 함부로 사랑을 남발하고 기다림을
모르는 성급한 이 시대의 사랑법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기실 막막한 기다림이란 그만큼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것,
<투병통신投甁通信 1>에서 보여주는 절망감이란 뼈가
시리는 슬픔이다.
/ 마경덕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