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총-대한조선학회 공동포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8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지난 9월에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사참위)의 종합 조사보고서가 발간됐다. 이 과정에서 대한조선학회(회장 이신형)는 올해 초부터 사참위의 요청으로 종합 보고서 채택을 위한 조사보고서 검토 의뢰를 받아 의견서를 제출했으며, 사참위 전원위원회에 참가해 발표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의견을 개진했다. 이어 10월 27일에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 회장 이우일)와 ‘세월호 침몰 참사-과학적 재난 분석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공동포럼을 개최했다. 이신형 대한조선학회 회장은 “세월호 침몰 사고의 조사과정에서 어떤 것이 문제였고 앞으로 해난사고의 조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완결돼야 하며,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울 때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고자 한다”며 “특히 예단한 결론에 원인을 짜 맞추는 비과학적인 조사는 지양돼야 한다”고 포럼의 취지를 밝혔다.
이우일 과총 회장은 인사말에서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임에도 대한조선학회는 그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면서 “다시는 비극적 재난이 반복되지 않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진단과 대책, 이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수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전했다.
조상래 명예교수, “충돌 사고 시나리오는 사고 원인 후보에서 이제는 빠져야”
“해양 사고의 원인 규명은 유사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의 첫걸음이자 해양사고 감축의 첫걸음이다.” 조상래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는 ‘해양사고 원인 규명을 위한 과학적 접근’이라는 첫 번째 주제발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조 교수는 먼저 2건의 해양사고 조사 사례를 들었다. 17만 3천 톤의 화물을 실을 수 있는 산적화물선, 영국의 더비셔(Derbyshire)호는 1980년 일본 시코쿠 남단에서 4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침몰했다. 영국 정부는 5번에 걸친 조사 끝에 잔해를 근거로 창구덮개(해치커버)가 붕괴로 발생한 사고라고 최종적인 결론을 내렸다. 조 교수는 “1980년대 빈번히 발생한 산적화물선 침몰사고는 창구덮개 붕괴강도를 기존의 42kPa에서 83kPa로 2배 가까이 높였고, 그 의견은 국제선급연합(IACS) 규정에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일본의 컨테이너운반선 몰컴포트(MAL Comport)호는 2013년 예멘의 해안에서 200리 떨어진 곳에서 선체 중앙 선저부에 크랙이 발생한 후 선수와 선미로 쪼개진 채 침몰했다. 조 교수는 “중앙선저부의 좌굴/탄소성 붕괴가 가장 가능성이 높은 사고 시나리오로 채택됐는데, 실제 조사를 해보니 배가 견딜 수 있는 능력(최종종강도)은 추정된 하중보다 현저히 커서 붕괴될 수 없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설계변수의 불확실성을 고려해서 접근해야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 IACS의 방법에 따르면 실제보다 선박이 견딜 수 있는 능력은 과대평가되고, 하중은 과소평가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조 교수는 “세월호는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고다. 선진국형 해양사고는 타이타닉호, 더비셔호, 몰컴포트호처럼 준수해야 할 법규, 규정, 기준을 다 준수했지만 선박의 대형화 추세에 설계기준과 지침이 따라가지 못해 발생한 사고인 반면, 후진국형 사고는 그런 것들을 잘 안 지켜서 발생한 사고다”라면서 “선진국형 사고는 아무도 벌을 받지 않으므로 사고조사가 쉽지만 후진국형 사고는 사고조사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세월호는 재화 중량이 987톤임에도 불구하고 2,213톤을 적재했고, 평형수를 1,703톤을 실어야 함에도 절반도 안 되는 800톤 미만으로 실었다”면서 “화물을 고정하는 고박 상태도 불량했고, 비상 상황에 승객들을 대상으로 한 긴급 집합 장소(muster station)에 대한 교육도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해양안전심판원 특별조사보고서(2014)에 따르면 ‘복원력 부족’이다. 반면 2018년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복원력 부족(내인설)과 수중체 충돌설(열린안)을 원인으로 지목한 각기 다른 2편의 종합보고서를 내놓았다. 끝으로 최근의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 교수는 “핵심은 충돌사고가 있었느냐 없었느냐의 문제다. 충돌사고가 생기면 (선체 외부의) 손상이 분명히 있다. 지금까지 선체를 인양하고 직립시켜서 선체를 조사했지만 충돌 흔적은 없었다. 사참위 진상규명 소위원회 보고서에 실린 것과 같은 파이프 구조물과의 충돌 흔적은 찾을 수 없다”며 “충돌 사고는 이제부터 사고 시나리오 후보에서 빠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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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래 울산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명예교수 발제, 대한조선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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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의 원인은 선회 중 복원력 부족
다음으로 한순흥 KAIST 해양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가 ‘세월호 복원성 검토’라는 주제로 두 번째 주제발표를 진행했다. 한 교수는 먼저 “사참위 보고서는 외부 충돌 가능성에 집중해서 준비되었는데, 대한조선학회와는 의견 차이가 있어서 그 부분을 전달했고, 이에 대해 조사국의 반론이 있어 재반론을 폈다”고 경과를 보고했다. 해난사고 조사 전문기관인 ‘브룩스 벨’에서 나온 보고서(2018)는 ‘개조작업으로 인해 화물운반 능력이 1,450톤에서 987톤으로 감소했고 1,703톤의 최저 평형수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한국선급의 요구였지만, 사고 당시 세월호에는 2,142톤의 화물이 실려있어 복원력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또 네덜란드 선박 연구소인 ‘마린’이 낸 보고서(2022)에 따르면 ‘모형실험을 실시한 결과, 낮은 복원성 지표, 방향타 사용, 고박 안된 화물의 이동이 세월호의 급격한 선회와 극단적인 경사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한 교수는 “사참위 보고서는 주로 외부충돌 가능성에 집중해서 입증하기 위한 실험과 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성과가 있었던 것은 인양 후 발견한 CCTV 영상으로부터 전화선, 쇠사슬의 기울기를 이용해서 배 전체의 횡경사 커브를 시간에 따라 구한 것”이라면서 “이로부터 대한조선학회는 잠수함 충돌 가능성은 낮다고 의견을 냈는데, 사참위 조사국은 반론을 폈다”고 전했다. 그는 또 “2014년부터 발표된 각종 보고서를 살펴보면 복원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화물무게중심(KG)와 선박무게중심(KG)이 보고서가 발표될 때마다 자꾸 늘어나고 있다. 아직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지만 거의 근접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한 교수는 “내인설, 열린안, 사참위의 GoM(보정된 복원력 지표) 값들은 충분히 작은 값이어서, 그 값만으로도 빠른 선회 시의 원심력을 이겨낼 수 없어 쓰러질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특히 원심력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하기 때문에 과적 상태의 트럭이라도 회전을 천천히 하면 전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과적을 하여 무게중심(KG)가 올라가면 GZ(복원력) 커브 전체가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효과가 발생하고, KG가 한계값을 넘으면 급횡경사와 전복사고로 이어진다”며 “이런 이유로 자동차운반선들은 신규 선박이라도 사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 해난조사국에서 나온 보고서(2015) 또한 ‘조타 과정에서 나온 복원성 상실’을 세월호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 교수는 “앞으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화물을 적재한 상태에서 출항 전에 자동 경사시험으로 무게중심(KG)을 측정하여 복원성 성능(GZ 커브)를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선회 시 최대 횡경사를 제한해야 한다. 최근 ‘마린’에서는 최대 횡경사각을 15도로 제한하자고 제안했는데 우리도 같이 국제 공동으로 제한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또 “GoM(보정된 복원력 지표)을 보정할 때 사용하는 자유표면 효과(FSM)의 계산 규정은 액체 탱크의 충전 레벨이 98%인 경우 (100%인 것으로 간주하여) 자유표면 효과를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되어 있는데, 위험한 배들은 작은 차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면제되는 경우 없이 계산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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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순흥 카이스트 해양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 발제, 대한조선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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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참위의 보고서에 대한 분석과 대한조선학회의 반론
이어서 대한조선학회 해양안전위원장을 맡은 정준모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가 마지막 발제자로 나서 ‘세월호 손상 원인 검토’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정 교수는 “침몰 원인으로서 손상 분석 과정이 과학적이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침몰 원인과 손상 원인의 인과성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통해 유력한 가설을 채택해야 하고, 그 채택 가설에 대해서 (손상 원인 분석을 위한) 시나리오를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하며, 수립 시나리오를 검증할 수 있는 합리적 기술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조선학회는 당초 공식 의견서를 통해 3가지 침몰 원인을 제시했다. 정 교수는 “첫째 원인은 좌초설인데, 인양 후 선체 검사를 통해 좌초 손상을 발견하지 못해 기각했다”면서 “잠수함과 추돌/충돌하여 침몰했다는 외력설은 전시가 아닌 상황에서 맹골수도를 잠수함이 잠항할 가능성은 0%이므로 잠수함 추돌에 의한 전복은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매우 강한 잠수함이 선체 측면을 충돌하는 경우라면 선체 전복이 가능하지만, 인양된 선체에 그런 손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세월호 자체의 복원력이 부족하여 전복 및 침몰했다는 내인설이 가장 과학적인 원인으로 꼽힌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 교수는 “세월호의 손상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 얼마나 체계적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갔는지 분석한 결과, △착저 손상(침몰 후 착저 과정에서 해저면과 외판이 접촉하면서 발생), △관입 손상(핀 안정기가 관입된 후 표류로 인해 핀 안정기에 발생한 과변형), △인양 손상(인양 과정에서 발생한 외판 손상)에 대해서는 사참위가 조사했지만, △직립 손상(인양 후 선체 직립 과정에서 발생)은 조사되지 않았고, 선조위에서 자세한 보고서를 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관입 손상과 관련한 사참위 조사 내용을 보면 외팔보 구조인 ‘핀 안정기’는 굽힘력에 취약한데도 강체로 가정하여 회전력만을 평가했기 때문에 이 결과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또 “인양 손상 분석도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다. 세월호의 선체 중앙부에 리프팅 빔의 인양력이 집중되어 인양 중 선체 파손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 선저 만곡부에 큰 손상들이 많이 발생했다. 손상 해석과 같은 좀 더 진보적인 분석기법이 필요했다”고 전했다. 손상 해석은 유동 응력(재료를 소성적으로 계속 변형시키는 데에 필요한 외부 변형력)의 정확한 추정에서부터 출발했어야 하는데, 유동 응력은 커녕 선체를 탄성체로 가정해서 응력(물체가 외부 힘의 작용에 저항하여 원형을 지키려는 힘)을 비교하는 수준에서 조사가 됐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고서는 잠수함의 추돌 해석, 추돌 후 선체 변형 해석을 하고는 이 변형이 실제와 유사하다는 결론을 냈는데, 이것은 어떤 인과성을 찾기 어려운 굉장히 납득하기 어려운 결론”이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정 교수는 “마린, 브룩스벨 등 해외 전문기관은 ‘사고 원인은 복원력 부족으로 인한 침몰’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이 거듭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형 해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국가 기구가 필요하고, 해난사고가 일어났을 때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전임조사관의 교육과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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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모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교수 발제, 대한조선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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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참위 실증 실험의 한계
주제발표에 이은 패널토론에서는 이정일 변호사(전 선조위 사무처장, 전 세월호 유가족 법률대리인), 전치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사참위 종합보고서 집필위원), 공길영 한국해양대학교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먼저 이정일 변호사는 “내인설에 의하면 세월호가 오른쪽으로 선회한 원인은 조타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에 고착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참위는 당시 10시 경 방향타가 좌현 8도까지 돌아간 현상까지 일관되게 설명해야 한다며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하지만 이를 입증하기 위한 사참위의 타기 펌프 실증 실험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치형 KAIST 교수는 “사참위는 대한조선학회에서 ‘제시한 외부 물체 충돌 가능성은 비과학적이며 공학적 검토를 통해 기각할 수 있다’는 입장을 100% 받아들이지 못하고 ‘외력이 침몰의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공식 결론을 냈다”며 “위원들의 합의와 표결을 통해 최종 결론을 내는 위원회의 운영방식과 과학자들의 작업 및 대화 방식이 달라서 양측의 의견을 수용하고 대화하는 경험이 없는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공길영 한국해양대학교 교수는 “사고 원인에 근거한 사고 방지 대책을 세웠는가?”라고 물으며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과 미봉책으로 이전에 발표된 대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해양 안전 관리, 연안 해역의 안전 관리 체계는 여전히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으며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