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몇년전일거야. 프로스포츠 경기장에 직접 다녀오는 숙제 아닌 숙제가 있던 이유가 컸겠지만 애들중에 부천이라는 팀을 좋아하는 녀석이 하나 있어서, 그 녀석을 중심으로 모여서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천 경기장에 가보기로 했어. 그때는 기타가 상암에 입성하고 인천에 시민구단이 생기기 전이어서 서울에서 가까운 구장은 부천하고 안양, 수원이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부천에 가게 되었지.
그때가 나에게는 처음이었어. 부산에 살 때는 아주 어린 내가 아빠를 따라서 롯데를 보러 야구장에 몇 번 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긴 하지만 축구장을 직접 가본건 처음이었어. 경기장에서 소사역까지 걸어가기에는 꽤나 먼 거리였지만, 다른 서포터들에게 이끌려 그 먼 거리를 걸어가면서 이런 저런 구경도 하고, 축구장 가는게 이런 재미구나하는 생각을 했어.
그렇게 처음 가보았던게 크나큰 계기가 되어서 그 이후에도 축구장에 곧잘 찾아가게 되었어. 가끔씩 주말 경기가 있는 날에는 부천을 열렬히 좋아하고 응원하던 그 녀석과 그 녀석과 나와 모두 친했던 녀석 하나 더, 그렇게 셋이서 경기장에 찾아갔지. 경기가 아무리 답답해도 상관없었어, 우리에겐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목이 터져라 응원할 팀이 있고, 선수들이 있고, 같이 응원하는 서포터분들이 있었으니까.
그러다가 언젠가 한번은 애들에게 이끌려서 구단 스토어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동안 3만원을 웃도는 가격이라 혼자서 사기에는 여유가 없었던 유니폼을 만원에 판다는 거야. 그래서 혹한 마음에 가지고 있던 돈을 털어 덜컹 사버렸지. 근데 그게 알고보니 유니폼 스폰서가 휠라에서 푸마로 바뀌면서 지난 시즌의 유니폼 남은 재고를 싸게 처분하고 있던 거드라구. 그치만 유니폼이야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나름대로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라 오랫동안 그걸 입고 응원하러 다녔어. 물론 엄마에게는 산게 아니라 선수들에게 받은거라고 둘러댔지만.
그렇게 경기장에서 가만히 앉아서 경기를 보다 가는게 아니라 90분 내내 서서 소리도 지르면서 응원하다보니 어느새 나도 부천FC를 서포팅하게 되었어. 처음 가보게 된 축구장이었고, 처음으로 직접 본 경기를 그들의 응원속에서 보았으니까 이상할게 없는 일이었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감독은 해임설에 시달리고, 관중들이 그리 많이 오는건 아니더라도 그냥 마냥 좋았어. 부천FC의 서포터들에게는 무언가 열정이라는게 느껴졌고, 선수들도 마찬가지였어. 잘하나 못하나, 미우나 고우나 우리팀, 이런거 말이지.
경기가 끝나면 끝나기가 무섭게 뛰어 내려가서 선수들이 경기 후에 나와 버스에 타는 곳에 가서 기다렸지. 이건 우리 뿐만이 아니라 서포터들 대부분이 마찬가지였어. 거기서 나오는 선수들을 보고 싸인도 요청하고 이긴 날에는 축하를, 진 날에는 격려를 해주고 그랬어. 그런 팬들을 막느라 경호원들도 고생이었지. 언젠가 한번은 터키에서 외국인 감독이 와 있었는데, 그 감독이 당시 성적이 굉장히 안좋아서 해임설에 시달리고 있었어. 그 감독에게 어떤 과격한 팬이 큰소리로 욕을 하고 안전요원들이 황급히 감독을 버스에 태우고 떠나던 일이 기억에 아직도 남아 있어.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학교가 달라지는 바람에 그 녀석들과도 연락이 뜸해지게 되고, 축구장 갈 일이 없어질 수도 있었지만 나는 유럽축구에 흥미를 붙이면서 여전히 축구에 대한 열정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고, 축구를 정말 좋아한다면 가까운 축구장에라도 가야지하는 생각에 계속 부천 종합운동장에 가게 되었어. 부천이 아무리 꼴찌를 면치 못하더라도, 홈구장에서도 제대로 몇번 이기지 못하는 약한 팀이라도 상관없었어, 내겐 유일하고 소중했던 서포팅 팀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겐 같이 갈만한 마음 맞는 친구가 없었어. 국가대표 경기만 챙겨보고 가끔씩 중계해주는 유럽축구 경기밖에 볼 줄 모르는 녀석들이 K리그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었지. 더군다나 성적도 초라하고 관중수도 많지 않은 부천에 축구보러 가자고 말하기가 껄끄럽더라고. 할 수 없지, 그럼 혼자 가야지. 다행히도 나는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걸 잘하는 녀석이었으니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
홈경기가 있는 날, 경기 시작 몇시간 전부터 소사역에서 경기장까지 무료로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었어. 그 셔틀버스를 타면 편하게 경기장까지 갈 수 있었지. 셔틀버스 안에는 부천을 응원하는 서포터들 외에 그날 경기의 상대팀 서포터들도 많이들 타는데, 그 서포터분들이 하는 이런저런 얘기도 하면서 상대팀 욕도 하고 오늘은 꼭 이겨야 한다 이런 얘기를 듣는게 엄청 재밌기도 했어. 이런게 프로축구라는 생각 말이야.
그렇게 경기장에 자주 갈 수 있었던건 아니지만 경기장엔 가지 못하더라도 꼬박꼬박 리그 경기결과를 챙겨보면서 가장 관심이 갔던건 역시 부천이 어떻게 되었느냐 하는거였어. 마음속으로나마 부천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은 언제나 변함없었지. 괜히 부천이 지면 아쉽고, 극적으로 이기면 좋아하고 그런거 아니겠어.
내게 부천은 그런 팀이었어. 특별한 이유도, 사연도 없는건 아니지만 K리그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은 저마다 응원하는 팀이 있기 마련이고, 내게는 부천이 그런 팀이었고 그거면 된거야. 아무리 성적이 실망스럽더라도, 부진에 허덕이더라도 나를 포함한 서포터들은 언제나 부천의 편이었으니까. 경기가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목이 터져라 불러대던 그 응원가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그런데, 그런데... 오늘 그 팀이 연고지를 제주도로 옮긴다고 하더라? 나는 설마 했지, 또 누가 '낚시'하는건 아닌가 하고, 아니 '낚시'이길 바라고 사실이 아니길 바랬어. 근데 낚시일리가 없었어. 정말 부천이 제주도로 연고지를 옮긴다네? 그럼 어떻게 되는거지, 부천FC는 없어지는거야?
부천FC가 없어졌다고? 이제 더이상 K리그에 부천이란 팀은 없다고? 소사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부천종합운동장에 이젠 리그 경기가 열리지 않는다고? 정해성 감독님 이하 선수들이 이젠 부천에서 더이상 뛰지 않는다고? 아니야, 거짓말일거야. 이렇게 한순간에 없어질 수 있는거야? 그런거였어?
리그 꼴찌에서 허덕일 때도 꼬박꼬박 경기장, 심지어 많은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원정 경기장까지 찾아가며,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저 부천이라는 팀 하나가 좋아서 목이 터져라 응원해주던 서포터들은 이제 어떡하라고? 부천은 기업구단이었고, 프로축구는 돈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웃기지마. 내게 축구는 그런게 아니었어. 부천FC밖에 모르던 서포터들에게 축구는 그런게 아니었어.
부천SK가 제주로 연고지를 옮겨서 새롭게 태어난다고? 웃기지마. 부천은 죽었어. 부천FC는 죽었어. 너희들의 말대로 축구가 돈의 논리대로 움직인다면, 구단 운영에 있어서 그 '돈'의 가장 중요한 원천인 팬들에게 일언반구의 말도 없이 뒤에서 준비하다가 뒤통수를 쳐버리는 것처럼 확정하고 발표하고 죄송하다는 말만 남긴 오늘, 부천FC는 죽었어. 부천을 목이 터져라 외치던 서포터들이 가지고 있던 부천의 영혼은 이제 사그라들었어.
너무 아쉬워서,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일이어서 네이버에서 부천FC를 쳐봤어. 부천SK가 아니라, 서포터들에겐 자부심이었고 축구 그 자체였던 자랑스러운 이름 부천FC를 말이야. 그런데 벌써 부천FC에서 제주유나이티드FC라고 바뀌었더라? 빠르기도 하지. 이제 부천FC의 흔적도 찾을 수 없게 되어버렸네. 정말로 죽었어, 부천FC는.
이럴줄 알았으면, 부천FC가 없어질 줄 알았다면 진작에 경기장 한 번이라도 더 가볼걸 그랬네. 괜히 후회가 들어. 마지막으로 가본 경기가 언제였는지, 상대는 누구였는지, 이겼는지 졌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그동안 참 많이 웃고 울었지만 너희가 있어서 축구장 가는게 즐거웠고 K리그를 보는 이유가 있었어. 그런 부천FC라는 이름이 없는 K리그는 이제 볼 이유가 없어져버렸네. 하하..
첫댓글 왜요.. 내년에 오셔야죠!
그냥 막 속상해지네요.. 날씨도 우중충한데 소주생각나는군요..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