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장 6-1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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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인 의사 최명기씨는 『게으름도 습관이다』라는 책에서, 늑장 부리고 후회하는 나에 대해서 말하면서, 게으름의 문제를 개개인의 감정에서 찾습니다. 최명기 원장에 따르면 게으름은 의지력이 아닌 ‘감정’의 문제라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무기력과 작심삼일의 문제를 오로지 개인의 ‘의지력’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습관적 게으름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실은 불안이나 분노, 외로움 등 감정적인 문제를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책에서 게으름을 부르는 9가지 감정을 소개하는데, 불안감, 동기부족, 자기방어, 자기조절불능, 의욕의상실, 분노, 예민함, 외로움, 불만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감정의 문제를 해결한 뒤에는 의지력을 좀먹는 장애물을 없애야 한다고 합니다. 게으름을 불러일으키는 장애물은, 지루함(반복일상, 일), 방해하는 인간(무엇 하려고만 꼭 나타남), 조급한 성격, 남 탓하는 버릇, 선택 장애, 너무 센 고집, 목표 이후의 나태함, 잠이 최고다(더 생각하기) 등이 있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감정들을 갖고 계시고, 어떤 장애물들을 가지고 계십니까? 저도 게으름, 나태함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이 많은데, 책에 나온9가지 감정 뿐이 아니라 추가로 90가지는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게으름을 불러오는 장애물도 책에서 소개하는 내용들이 꼭 저를 꼭 집어서 말하는 것처럼 찔리는 말들입니다. 게으르면 가난해진다고 하죠. 게으름과 가난이 불가분의 관계인데도, 게으르기는 것은 한 없이 게으른데, 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리인 것 같습니다. 참고적으로 부자들은 다 아침형 인간이었다고 합니다. 부자 되고 싶으시면 새벽을 깨우셔서 새벽기도부터 출발하면 성공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말할 때 ‘게으름’이 항상 거론 됩니다. 임박한 종말론(재림이 금방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이 횡행했던 데살로니가교회는 온통 게으름에 빠져서 “예수님 곧 오실 텐데 일하지 말자, 놀자, 먹자, 마시자, 즐기자”라는 사상이 교회 안과 밖에서 만연 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잘못을 바로 잡기 위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단호한 한 마디를 던집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10절)고 합니다. 아무리 봐도 명언입니다. 밥 먹고 싶으면 일을 해야죠. 일은 하지 아니하고 밥만 많이 먹는 사람을 낮잡아서 ‘밥벌레’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은 일 열심히 하고, 잘 먹고, 잠 푹 자면 됩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반대로 신앙생활 열심히 하시고, 사회에서도 성실하게 일하며 인정받으며 살아가십니다. 바울의 말처럼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아야 하고,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이 살아간다면 더 가지려고 아등바등 살지 말고, 주신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6절에서, 게으름에 빠진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입니다.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말씀을 보면, 교회 내에서 예수님이 금방 재림 하실 것이기 때문에 먹고 마시자고 하는 사람들이, 제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어서 자꾸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들과 상대조차하지 말고 떠나라고 합니다. 매우 단호합니다. 게으른 사람들과의 만남과 교제는 일절 단절 하는 것이 상책이긴 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게으름 병에 걸린 사람들과 어울리면 나도 그 분위기에 물들어서 게으름 병에 빠지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신앙생활도, 내가 어떤 사람과 상대하는 가에 따라서 믿음이 상승하느냐, 혹은 하락하느냐가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내가 배울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들, 나보다 훨씬 믿음이 좋고, 부지런하고, 겸손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보고, 듣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과 많이 교류하다보면, 믿음과 신앙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 주변 환경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 개인도, 공동체도 건강하고 거룩한 새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있습니다.
주변을 잘 정리 하십시오. 자주 만나야 할 사람, 거리를 두어야 할 사람을 잘 구분 하십시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가까이 가려고 하시고, 나에게 게으름과 나태함을 옮겨주는 사람들은 멀~리 하시고 늘 경계 하십시오. 성경이 가르쳐준 믿음, 소망, 사랑 가운데 거하는 사람들과 접촉하며 사는 것이, 주님 안에서 형제자매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과 그 일행(실라와 디모데 등)이 데살로니가 지역을 처음 방문해서 복음을 전할 때에,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몸소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들이 말로, 몸으로(행동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보여준 것은, ① 무질서하게 행동하지 않았고, ② 음식을 공짜로 얻어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③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주야로 일을 했다고 합니다.(7,8절) 바울은, 자신들이 복음을 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수고하고 애쓰므로), 밥 좀 얻어먹고, 이동하는데 드는 여비도 좀 요구할 수 있는 충분한 권리가 있음에도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기 한 이유는, 스스로 일하여서 수고한 것으로 밥을 먹고, 전도하는 일에 모범을 보여주어, 그 모습을 보는 전도 대상자들이 그대로 본을 따라 살아가게 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9절) 지도자는 말에 앞서 본을 보이는 것이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바울 일행이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한 행동은, 예수님이 하셨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사역 하시면서, 돕는 손길이 많았습니다. 쉴 곳도, 먹을 것도, 사역하는 비용도 제공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먹고 마시는 것들이 풍족하다거나, 나아가서 사역하는 비용을 노골적으로 요구하거나, 사역을 빌미로 이권(돈)을 취하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병자를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 내주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일을 하셨음에도, 그로 인해 권력을 누리거나 이권을 챙기려는 얄팍한 행동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권리를 주장하셨다면, 선으로 사역하셨던 모든 일들이 빛을 바랬을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도 사람이 취하는 꼴이 되었을 겁니다. 예수님은 권리를 주장하기는커녕, 낮은 자로, 겸손하게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범을 일일이 보여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일입니다. 몸소 모범을 보이신 예수님은, “너희도 나와 같이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를 내 제자인줄 알리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말보다는 행동을 보이신 예수님의 모습을, 바울 일행이 그대로 재현한 것입니다.
10절에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1차 복음을 전할 때 바울 일행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행동으로 본을 보여주고, 말로 가르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 했다고 합니다. 바울과 함께 있을 때는 이 말을 잘 지켰는데, 바울 일행이 떠나고, 데살로니가에 교회가 설립되고, 공동체가 세워져 나가면서, 바울의 말을 다 잊어버리고,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졌습니다. 어떤 조직도 중심적인 인물이 빠져 나가면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조직이라는 것이 곧 사람 중심의 단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회 공동체는 개인 친목 단체나, 직장과 같은 사회 조직이 아닙니다.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머리가 되시고, 하나님이 주인 이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설립 된지 얼마 안 된 신생 교회였기 때문에, 사람의 지도력에 많은 부분을 의존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의 능력이 교회를 제대로 지탱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도 굳건한 공동체 의식이 갖추어지지 않았고, 개인적 취향이 강했습니다. 바울이 떠난 자리가 큰 구멍으로 작용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의 말이 교회를 이끌어 가면 그 교회는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이 금세 허물어집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게으름에 빠져 일도 안하고, 공동체내의 질서를 흐트러트리고, 개인행동을 일삼는다는 말을 듣고, 편지를 빌어 다시 한 번 가르치는 말을 전합니다. 12절입니다. “우리(바울, 디모데, 실루아노)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명령하고, 권(면)하면서, 강약을 조절하여 말합니다. 복음전도자들은 명령을 통한 강압적인 방법으로라도 교회가 빨리 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으로는 자연스럽게 일자리로 다시 돌아가라고 격려해 줍니다.
교회 내의 권면은 잘잘못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게 해서 문제를 스스로 떼어내 버리도록 도와주는 곳이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2장 3절에서 자신들의 ‘권면’에 대해 말하기를,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하는 권면은 성령의 역사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을 교훈으로 가르치기보다 책망하는 것을 앞세웠다면 분란이 일어났을 겁니다. 게으름은 자기 의지가 약해진 것이기 때문에 책망하면 할수록 더욱더 회복이 불가능 합니다. 채찍과 당근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권면자입니다.
현실에서도 게으름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원래부터 게으른 사람은 없습니다. 다 이유와 사연이 있습니다. 노숙자들을 보십시오. 노숙자가 되기까지 제일 큰 원인은 낙심이고, 그 다음으로는 사회적인 냉대와, 개인적인 체력의 허약함 때문에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으름은 후천적인 자기 쇠약증이기 때문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고,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은 여러 편지에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이곳에서도 권면을 통해 온전케 회복되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 때문에 상처 입고, 복음을 저러버리고 교회를 떠나는 실족함(잃어버린 어린 양)이 없도록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실족하거나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였고, 만약에 실족한 사람이 있다면,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 사람을 회복시켜 놓아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 신념이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었습니다.
13절이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해 내보이는 애정의 표현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선을 행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데살로니가 교회는 얼마 안 된 교회였지만 믿음으로 전국 각처에 소문난 교회였습니다. 다른 지방에서는 데살로니가 교회를 본받자 라는 소문이 퍼져나갈 정도였습니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성장, 그리고 복음의 열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게으름병에 걸려 손을 놓고 있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교회 전체가 흔들리는 일은 없어야 하겠기에, “낙심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합니다.
게으른 사람은 권면으로 가르치는 것이 시급하지만,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동체 내에서 맡겨진 일을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해 주고 보호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잃어버린 어린양을 찾기는 해야 하겠으나, 그렇다고 남아있는 아흔 아홉 마리의 순전한 양들을 방치해 둘 수는 없습니다. 게으름을 퍼트리는 사람들 때문에 잘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운 빠지고, 실망감이 들어서 낙심하는 마음이 들어올까 심히 걱정하는 바울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짝 신앙을 주의 하라는 것입니다. 대개는 어떤 일을 하려는 초기에는 굉장히 열정을 보이다가, 점점 의지박약한 모습으로 바뀌다가 결국 포기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저도 시작은 잘하는데 마무리가 안 되는 일을 많이 만듭니다. 무대책으로 벌리기만 하고 정리가 안 되는 일이 여러 개 있습니다. 반짝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일을 마무리 하지도 못하면서, 누가 어떤 일을 하자고 제안하면 솔깃해서 이일 저일 쉽게 손을 댑니다. 신앙은 인내하고, 기다리고, 오래 참는 가운데 열매를 맺어 갑니다. 안하게 만들고, 못하게 만드는 낙심의 마음을 불어넣는 것은 사탄의 오래된 전략입니다. 낙심이 커지면 불순종과 불신앙의 모습을 보이면서 하나님과 점점 멀어지는 사이가 됩니다. 낙심의 마음이 들어오면, “사탄의 계략이구나”라고 분별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에게 낙심의 마음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는 말씀의 또 다른 의미 하나는, 내 자신이 낙심을 퍼트리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함에 심하게 중독된 사람은, 주변사람들을 자기편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버립니다. “머, 그거 되지 않는 일을 그렇게 열심히 해, 효과도 없잖아, 그만해?” 라고 잘하고 있는 사람들을 건드립니다. “오늘 나하고 다른 거 할까?”라고 유혹해서 시간을 빼앗고, 마음을 흐트러트립니다. 나만 게으르고, 나만, 나태하고, 나만 딱딱하게 굳어지면 괜찮은데, 자꾸 옆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어 공동체를 어지럽히는 주범으로 무섭게 변질 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슬슬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의 신앙경력이 오래되면 될수록 그와 비례해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잘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낙심을 주는 마음을 주는 원인제공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복음의 통로가 되어 영혼들을 이끌어 오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지만, 복음의 통로를 막아 버리고, 오히려 울타리 안에 있는 양들을 실족하게 하는 사람을 반드시 기억하고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바울은, 명령하고, 권면하는 말을 했지만, 두 가지 다 강제적으로 몰아 부치지는 않습니다. 현재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진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도 제안해 줍니다. 14, 15절입니다.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 권면에 순종하지 아니한 사람을 “사귀지도 말라”고 합니다. 연을 끊으라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마음이 오염될까봐 스스로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부끄럽게 하라”는 것은 창피를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일해서 스스로 먹는 것이 어떠냐?”라고 말해 주어서, 양심이 움직이게 하라는 말입니다. 끝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들도 형제라는 생각을 잊지 말고, “원수와 같이 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원수의 반대말인 사랑으로 그들을 대하면, 마음이 움직이며 돌이키는 시간이 오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 속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게으른 사람들이 혹시 내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신앙생활은 기나긴 여정이기 때문에, 그리고 척박하고 고단한 삶의 무게들 때문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심한 낙심에 빠진 분들은, “지긋지긋한 인생, 빨리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갔으면 좋겠다, 주님이 지금 오시면 좋겠다”라는 하소연을 합니다. 이런 말이 답답한 마음을 잠시나마 풀어 줄지는 모르겠으나, 낙심이라는 마음을 더욱더 쌓아가는 의지력 저하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말, 낙심의 말이 나오려면 입을 닫아 버리고, 긍정의 말, 희망과 소망의 말만 하면서 내 의지를 지켜가야 합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의지를 잃지 않도록 주님이 언제나 옆에서 도와주고 계십니다.
꽃길만 걸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 는 말씀이,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꽃길만 걸어가라는 말씀으로 들으십시오. 주님은 이미 우리의 낙심의 마음을 온전케 회복할 수 있는 꽃길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 우리가 걸어가면 게으름과 낙심은 전혀 나에게 침투하지 못합니다. 사탄을 물리친 승리의 길이 꽃길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잠시 흔들 수는 있으나 그 누구도 우리 마음 안에 계신 예수님을 빼앗아 가지 못합니다.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 무엇과도 승리의 예수님과 바꿀 수 없습니다.
인생 중에 낙심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낙심을 이기기 위해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선을 행하는 것은 우리 믿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복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예수 충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사랑의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서 게으름과 낙심을 깨끗하게 물리치고, 주님 가신 꽃길, 승리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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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 “선을 행하다 낙심하지 말라”는 권면과 가르침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낙심의 마음을 물리칠 수 있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시고, 선을 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 승리의 그날 까지 쉬지 않고 전진해 나가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선을 행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고, 낙심을 물리칠 수 있는 믿음을 날마다 새롭게 하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