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2021, 10, 31)
제목 : 야베스의 기도
성경 : 역상 4 : 9-10
코로나 터지기 전에 한때 텔레비전에서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무명의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 실력을 겨루어 가수로 데뷔하는 TV 프로그램입니다.
수퍼스타K(Mnet), K 팝스타(SBS), 위대한 탄생(MBC)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우승자는 실력뿐만 아니라 삶의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 우승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똑 같은 실력을 가진 두 사람이 있다고 할 때 어려운 가정사를 겪은 사람을 시청자들은 더 응원하고 그 사람에게 표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우승자가 되면 인생역전을 한 그 사람과 함께 감격스러워하며 감동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불우한 환경에서 인생 역전을 한 사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로 야베스입니다.
9절에 보면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
옛날 개역 성경에는 존귀한 자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야베스가 처음부터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귀중한 자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태어나면서부터 불행 가운데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이름을 야베스 라고 지었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히브리어로 고통이라는 뜻의 ‘야차브’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따라서 야베스는 ‘고통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9절 하반절에 보면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로 이름 지은 이유가 나옵니다.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난산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성경시대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의료 기술이 발달이 되지 않아 부인들이 아이 낳다가 많이 죽었습니다. 아마도 야베스의 어머니도 야베스를 낳다고 죽을 뻔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야베스는 고통으로 시작된 인생이었습니다.
또 9절을 잘 연구해 보면 야베스에게는 아버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회는 철저하게 남성 중심의 사회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 기적을 베푸실 때도 남자만 계수되었습니다.
그래서 보통 아들을 낳으면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야베스의 어머니가 이름을 지은 것을 보면 아버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 아버지가 없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다면 멀리 떠나 있든지 아니면 죽었든지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좀 심하게 말하면 야베스는 아비 없는 자식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더군다나 어머니나 그의 형제들이나 동네 사람들이 야베스라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는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의 뜻이 ‘고통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는 자기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는 이런 생각도 했을 것입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인가?’
‘나는 태어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자존감이 지극히 낮은 사람으로 자랐을 것입니다.
제가 상담 공부를 해보니까 어려서 받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도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저도 보면 우리 어머니에게 칭찬을 별로 못 받고 자란 것 같습니다.
우리 어머니를 생각하면 혼난 것 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그렇다보니 성인이 되었는데도 저도 남 앞에 나서는 것을 잘 못합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예전 우리 주안이가 5,6 세 되었을 때 함께 대형 식당에 간 적이 있습니다.
보통 대형 식당에는 아이들의 놀이 공간이 있습니다.
그 식당에는 게임기 같은 것을 가져다 놓았는데 어떤 모양을 조합하여 만드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주안이가 그 게임을 했는데 주변에 구경하는 아이들이 세 네 명이 있었습니다.
저는 누가 보고 있으면 위축이 되어 잘 못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주안 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그 게임을 하는 것을 보고 “나와는 많이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고통의 아들로 태어난 아베스는 그가 성장해서도 그의 고통이 결코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장해서도 여전히 환란과 근심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야베스가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매우 좁은 공간에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그의 삶이 매우 옹색하고 가난했다고도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보통 사람이 이런 상황이 되면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거나 환경과 사람을 원망하고 좌절하는 것이 일반적인 반응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야베스가 자신의 운명을 한탄했다거나 환경이나 사람을 원망했다거나 좌절하고 절망했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믿고 의지할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제 점심을 먹으러 교회에서 집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같은 동에 사는지 두 4-50대로 보이는 여자 두 분이 같이 탔습니다.
제가 보니까 자매 같은데 제가 있는데도 둘이 막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여자는 어려운 일을 겪은 것을 서로 이야기 하면서 하는 말이 “그때 나도 자살하려고 했어”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어려움을 당하면 자살부터 먼저 생각하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10절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 ‘아뢰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라’인데 ‘부르짖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야베스가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언제 기도가 간절해집니까?
환난 때입니다. 근심 때 입니다.
중대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의 기도가 절실해 지고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지난 번 주안이 변리사 1차, 2차 시험을 앞두고 우리 사모와 함께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솔직히 시험이 끝나고 나니까 정말 기도가 좀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 환난과 시련이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때야 말로 하나님을 간절히 찾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기 때문입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야베스가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10절을 읽겠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야베스는 첫째 복을 구했습니다.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옛날 개역 성경에는 “복에 복을 더하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째 지역을 넓혀달라고 했습니다.
지역을 넓혀달라는 의미는 자신의 삶의 삶의 영역을 확대해 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을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셋째 주의 손으로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주의 손이 도와주시면 가정도, 사업도, 교회도, 주의 사역도 다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행11: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넷째 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야베스의 기도를 하나님이 다 허락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하나님이 야베스의 기도를 허락하신 것은 그 기도가 합당한 기도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야베스는 이 기도로 인해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인생 역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요? 그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평범한 사람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불행한 사람에서 축복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비천한 사람에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어떻게 야베스와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삭이 가나안의 흉년을 피해 블레셋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서 농사하여 백배나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를 시기하여 아브라함의 종들이 판 우물들을 다 흙으로 메우고 이삭에게 떠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어디가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거하게 되었는데 중동 지방에서 물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을 얻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만약 물을 얻지 못하면 딸린 식솔들과 가축 전체가 죽을 위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때 이삭이 취한 행동은 새로 우물을 파지 않고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판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창26:18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가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엘리야 선지자는 수제자 엘리사 선지자와 함께 요단강을 건너려고 서 있습니다.
이제 요단강을 건너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를 불 말과 불 수레로 데려 가시게 됩니다.
두 사람이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을까요?
엘리야 선지자가 겉옷을 말아 요단강 물을 치니 물이 이리 저리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넜습니다.(왕하2:8)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물 말과 불 수레를 따고 하늘로 승천하였습니다.
그때 땅에 남은 엘리사 선지자는 엘리야 선지자가 던져준 겉옷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도 역시 요단강 물에 섰습니다.
그리고 엘리야 선지가가 한 것처럼 똑 같이 따라 했습니다.
즉 엘리야 선지자가 준 그 겉옷을 말아서 요단 강물을 친 것입니다.
그랬더니 동일하게 요단강 물이 이리 저리 가라져 건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왕하2:14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야베스와 같은 축복을 받는 비결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미 응답받은 기도를 따라서 하면 됩니다.
야베스의 기도야말로 이미 응답받은 검증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야베스처럼 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삶의 매 순간에 주의 손이 함께 해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뿐만 아니라 환난과 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을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야베스에게 허락하신 복을 저와 여러분에게 동일하게 내려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