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텔라의 마음공부 >
오래된 가구에 대한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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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달러까지 치솟은 셰비시크 화장대
글 | 스텔라 박
먼저 박형준 시인(1966-)의 <가구의 힘>이라는 긴 시의 일부를 소개한다. 얼마 전에 졸부가 된 외삼촌의 집에 여러 번 초대받았지만 시인은 그 집에 가기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
시인의 어머니는 방마다 TV가 있는 것을 무척 부러워 한다.
아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아파하면서 “그 집이 뭐 여관인가?
빈방에도 TV가 있게?”라고 응수한다. 졸부 외삼촌 집의 책장에는 세계문학전집이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눌려 있다. 다음은 그 시의 한 구절이다. 지면을 아끼기 위해 행은 편집했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나는 여러 번 이사를 갔었지만 그때마다 장롱에 생채기가 새로 하나씩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집의 기억을 그 생채기가 끌고 왔던 것이다.
새로 산 가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이 달라졌다는 것만 봐도 금방 초라해지는 여자처럼 사람의 손길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먼지 가득 뒤집어쓴 다리 부러진 가구가, 고물이 된 금성라디오를 잘못 틀었다가 우연히 맑은 소리를 만났을 때만큼이나 상심한 가슴을 덥힐 때가 있는 법이다.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시인의 어휘력보다 더 크게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가 오래된 가구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서이다.
“가구란 그런 것이 아니지.
서랍을 열 때마다 몹쓸 기억이건 좋았던 시절들이,
하얀 벌레가 기어 나오는 오래된 책처럼
펼칠 때마다 항상 떠올라야 하거든...
가구란 추억의 힘이기 때문이다.
세월에 닦여 그 집에 길들기 때문이다.”
– 박형준 시인
남들이 쓰다 버린 슬픈 가구…
가능하면 널찍한 공간을 즐기는 것이 좋아 가구를 구입하지 않고 살았더니 세월과 함께 늘어가는 옷가지, 책, 그릇, 화장품이 도대체 정리가 되지 않는다.
가구 한 점은 그 각각의 기능성과 함께 공간을 살갑게 채워주는 존재이다. 고양이 예삐로 인해, 팔자에 없는 이사를 결정한 나는 이왕 이사가는 새 집, 필요한 가구들을 채워넣기로 결정했다.
여러 날, 오랜 시간을 투자해 인터넷 쇼핑을 해봤지만 도저히 마음에 드는 가구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요즘 가구들은 소재들도 합판 나무들이거나 알루미늄 등이라 도저히 정감이 가지 않는다. 하기야 가구가 원목이어야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출발한 견해일까. 인류의 오랜 습을 고스란히 유전자로 물려받은 탓일까.
지나치게 단순한 디자인은 뭔가 멋스러움이 없어보였고, 허세 가득하게 과장된 스타일은 거북스럽게 느껴졌다. 공장에서 막 출시된 반짝반짝한 가구에는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천박함이 흐른다. 에고, 한참 멀었다. 어쩜 이렇게도 상이 많고,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지…
내 안식이 좋아하는 가구들
예삐라는 고양이에게 한 눈에 반한 나의 안식에는 약간 생채기가 난 듯, 앤티크 분위기가 나면서 튀지 않는 톤의 흰색 또는 터키석 칼라나 올리브색 가구가 예뻐보인다. 그런데 이런 느낌의 가구들은 한 점에 천(1,000) 달러가 고가에 판매되고 있었다. 내 형편에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뼈대가 그럴싸한 중고가구를 구입해 내가 손잡이 등 적절한 장식품을 달고 페인트칠도 하고 그림도 그려넣자는 것이었다.
알아보니 대표적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ebay) 외에도 러브시트닷컴(Loveseat.com) 등이 있었고 중고가구 마켓플레이스인 오퍼업(Offup),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 엣치(Esty.com) 등도 있었다. 특히 엣치닷컴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멋스러운 가구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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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가 짧아 나를 고민에 빠지게 한 서랍 달린 식탁
행… 고통의 시작
이런 저런 사이트를 매일 저녁 방문하기를 거의 한 달째, 나는 드디어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러브시트닷컴의 중고가 구 경매에 참여한 것이다. 온라인으로 하는 경매였는데 내가 평소 그렇게도 갖고 싶어했던 셰비시크(Shabby Chic) 스타일의 장미꽃 그려진 화장대와 접혀지는 세크리터리 데스크(Secretary Desk) 등의 아이템에 눈이 확 돌아갔다. 물론 그냥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샌딩머신으로 거칠어진 표면을 다듬고 초크페인트를 칠한다면 완벽해질 것들이었다.
드디어 경매 당일, 나는 숨을 가다듬고 10달러에서 시작된 경매에 참여했다. 중간에 가격을 올리는 건 경매의 하수들이나 하는 행위. 나는 고수답게 경매 마감 4초 전에 지금까지의 최고 금액보다 5달러를 더 써서 올렸다. 그런데 러브시트닷컴의 경매 체제는 그럴 경우 4분간의 보너스 시간을 더 주는 것이었고 그럴 때마다 괜찮은 가구에는 꼭 또 다른 경쟁자가 나보다 5-10달러의 금액을 더 올렸다. 결국 그 가구를 꼭 가지려면 더 많은 금액을 불러야 했다. 그러다보니 셰비시크 화장대의 경구 10달러에서 시작해 결국은 650달러에 낙찰이 됐다. 끼약… 엄청난 금액이다.
나는 계속 지르다가 150달러가 넘으면서 포기했다. 운반비도 계산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승용차로는 어림도 없는 크기여서 트럭을 빌려야 했고, 내가 힘이 좀 좋기는 하지만 여자 혼자서 옮긴다는 건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얘기였기에 일용직 남성 한 명은 고용해야 하니, 운반에만 150달러는 족히 써야했다.
어쨌든 나는 두 번의 경매를 통해 토머스빌이라는 상당히 괜찮은 가구 브랜드의 화장대와 나잇스탠드 서랍장을 샀고, 그릇들을 넣어놓는 차이나 캐비넷도 구입했고 서랍이 달린 식탁
도 구입했다.
트럭을 빌려 가면서 나는 그야말로 지옥을 경험했다. 차라리 하루 종일 사용해도 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것이지, 좀 쌀 것 같아 시간 당 요금제를 선택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무슨 차가 그리 막히는지… 나는 그야말로 똥줄이 타는 것 같았다.
막상 가구가 보관된 웨어하우스에 가서 내가 낙점한 가구를 직접 봤더니, 사진으로 짐작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던데, 아마도 내가 사진으로 표현된 진실을 보려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식탁은 다리가 너무 짧아, 그곳에 앉아 밥을 먹으려면 의자의 다리 몽둥이를 분질르든, 뭔가 특단을 내려야 할 처지였다.
나는 나의 선택이 기가 막혔지만 그 상황에서도 현재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며 내 선택에 책임질 차선을 생각했다. “그래 가구 다리를 연결하면 되지, 뭐.”
그렇게 일용직 노동자와 가구를 싣고 와서 페티오에 내려놓고서는 이제 이 가구들을 어떻게 고치는 게 좋을까, 고민을 시작했다. 일단 저 짤막한 식탁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했는데, 쓸만한 원목 가구 다리를 알아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이걸 어떻게 한다지, 아직까지도 깊은 고민 중이다.
아침 저녁으로 수행하러 방석 위에 앉아서도 마음 속에 가구들이 오가는 것을 경험했다. 아, 마음이 방황하고 있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의 경험에 집중…. 아, 뭐 이런 번잡한 일을 시작했다지? 후회감… 아 마음이 과거로 갔구나, 알아차리고 다시 현재에 집중… 홈디포 말고, 좀 더 괜찮은 다리를 구입할 수 있는 사이트는 없을까? … 이런 마음이 미래로 갔구나…. 다시 알아차리고 현재로 돌아오고…
나를 다독이며…
나는 나의 행으로 인한 마음의 번잡함, 걱정과 후회의 감정을 오가며 오온의 윤회를 철저하게 경험한다. 그냥 놀이로 생각하자. 실제가 그렇다. 맨처음 마음으로, 즐겁게 유희로 여기며 고쳐봐.. 망쳐도 돼…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걸음마를 배우는 아가는 없잖아. 마찬가지야. 너의 선택에 대해 신뢰를 가져. 괜찮아. 별 일 아냐. 고작 물건이야. 언제든 처리할 수 있어.
플러그만 뽑으면 되는데 그것에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해 게임에 지는 것으로 괴로워하는 게이머나 누가 시키지도 않은 중고가구 사다가 쟁여놓고 온갖 지옥을 경험하는 나나, 참 혀를 끌끌 차게 되는 상황이다.
정리 좀 해보겠다는 의도로 가구를 구입했다가 집안꼴은 더 엉망이 되었다. 워낙 정리에 재주가 잼병이다 보니 아마도 가구 리폼 마치는 시점이 되려면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올 때 라야 할 지도 모르겠다.
사람도 물건도… 아름다운 이별을…
그래도 예전에 내가 고쳐 놓은 가구 한 점을 보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인도에서 구입해온 도자기로 된 문고리를 달아 장식하고 광택 없는 흰 페인트로 색칠한 장롱은 나의 옷가지와 이불들을 잘 정리하게 해주며 볼 때마다 흐뭇함을 선사했었으니까.
이사를 준비하며 깨달았다. 정말 징하게 많은 것들을 끼고 살았구나. 물건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늘 생각만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과감하게 정리하려 한다. 이 세상 모든 것과 마찬 가지로 사람도, 물건도 만날 때가 있었으니 헤어질 때도 있는 것. 내게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필요한 이들에게 잘 떠나보내는 것이 아름다운 이별을 준비하는 것일 게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보내고 남은 텅빈 공간…. 이 세상 떠나는 날, 그렇게 텅빈 공간에서 만났던 모든 것들과의 인연에 감사하며 머문는 바 없이 알아차림과 함께 현재의 순간으로 다가올 죽음을 껴안는 연습…. 그 연습도 매일 해야 막상 그 순간이 다가왔을 때 잘 할 수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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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꽃이 그려진 병풍. 득템에 성공하긴 했는데
살펴보니 나무 판에 종이 바른 가짜. 허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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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와 헝겊으로 단장해 새로 태어난 고가구.
이런 것을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