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그때 그 시절
먼 길을 걸어온 나그네가 쉼터에 앉아 아픈 다리를 쉬며 ‘아- , 나는 참 멀리도 왔구나. 지난 길들은 아름답기도 하였지’라고 말 할 때와 같은 심정으로 나는 64여 년 전 대학시절을 회상 한다.
나의 대학 시절은 모두가 가난으로 살기가 어려웠기에 행복한 시대라고는 말 할 수 없다. 1950년 후반에서 1960년에 걸친 그즈음은 전후 변두리, 전쟁의 상흔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굶주림이 없는 잘 살아보는 나라의 건설이 최고의 명제였던 그런 시절이었다.
따라서 대학생들의 주머니도 가난해 보고 싶은 책을 구하기 위해서는 헌책방을 뒤져야 했고 그책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아껴야만 했다. 남학생들은 교복을 착용하거나 검정 물을 드린 군복을 입는 학생들이 대부분 이였고, 여학생들은 팻숀 하고는 거리가 먼 수수 하면서도 깨끗하고 단정한 옷들을 입었다. 어렵게 입학을 했으면서도 등록을 하지 못해 휴학을 하거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당시 중앙대학교는 지방에서 유학으로 올라온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그들은 자취나 하숙을 하며 고생스럽게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의에 죽고 참에 살자는” 교훈의 교육정신을 배우며, 교정 뒤에는 관악산이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넓고 푸른 하늘이 있는 중앙캠퍼스에서 꿈의 파랑새를 날리며 내실을 다지는 학생들이였다.
대학 1 학년 때 4. 19 혁명이 있었다. 그때 우리는 어깨동무를 한 긴 행렬을 이루며 교문을 박차고 거리로 뛰어 나아갔다. 그때 유탄에 맞아 부상을 입은 학생들도 있었다. 우리는 많은 것을 보고 느낀 혁명의 현장에 있었던 산 증인이다. 4 . 19 혁명은 순열한 항쟁이었고 순정한 의거 였다.
지난 일들을 하나하나 회상해 보면 모두가 소중한 보물 같은 추억들이지만, 나에게 크게 부각되어 잊혀 지지 않는 그리운 추억은 역시 문학과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이다. 60년대의 대학가 주변은 요새처럼 번화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을 고객으로 하는 상점들이나 음식점, 찻집들이 학교를 중심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정겨운 학교 촌을 이루고 있었다. 그 가운데 명수다방이 있었다. 명수다방은 교문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서 시장입구 골목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단층 목조 건물의 찻집 이였는데 한가한 어촌 분위기를 연상케 했던 그 찻집에는 화분 한개도 없었고 , 생화 한 송이도 꽂혀 있지 않은 실내에, 음악만을 온종일 틀어 주던 그야말로 음악으로 열려있던 그런 다방이었다. 지적이고 쎈스 있는 주인마담의 친절은 우리들을 명수다방에 단골손님이 되게 했다.
외국사람들의 애창곡이었던 로렐라이의 노래, 솔베이지송, 나폴리, 돌아오라 쏘렌토로, 아름다운 푸른 다뉴브, 오 솔레미오 등등의 가곡 외에도 쌕스폰 연주의 대니보이, 그 당시 유행했던 팝 음악들을 언제든지 찻집 문만 열고 들어서면 들을 수 있어서 음악에 도취된 젊은 학생들의 출입이 꽤나 잦았던 대학가 다방 이였다. 떠돌이 같은 우리의 심사는 아무 일 없이도 그냥 서로의 얼굴과 목소리가 그리워 나를 포함한 과 친구들, 또 선후배 문학도들은 명수다방을 우리들의 만남의 장소로 지정해 놓고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20대의 화려한 방황, 그 열화 같은 시절을 음악이 있는 그 찻집에서 때로는 혼자서 때로는 뭉쳐서 보냈다.
찻집에서 듣는 음악들은 우리들의 젊은 가슴을 흔들어 놓으며 푸른 꿈을 갖게 했다. 노래 속에 있는 고장들을 동경하며 그 고장에 대한 여행의 꿈을 키웠고, 노래를 들으며 아도니스를 닮은 순결한 청년과 인연이 닿아 죽음보다 강한 사랑을 갈망했다. 또 인생과, 사랑, 문학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토론하기도 했다. 노래를 들으며 애송시를 낭송했고, 깊은 고독과 사색에 빠지며 두뇌의 불꽃이 타오르는 문학 수업을 계속 했다. 계절 따라 시화전이다, 문학의 밤이다, 연극이다 하는 문화축제의 행사를 여는 즐거움도 여간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되고 싶어 우리들이 갈고 딲는 작품의 세계를 발표하며 평가 받는 행사는 언제나 성공적 이였다.
잠시라도 헤어지고 나면 곧 보고 싶어지는 친구들. 참으로 끈질기고 기이한 그리움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들 마음속에 새기고 나누는 우정이란 사랑이 깊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4년의 세월을 함께 몰려다니던 우리들은 졸업과 함께 헤어지는 아픔을 남기며 대학의 캠퍼스를 떠나 뿔뿔이 사회인으로 흩어져 지금은 이 땅의 어디선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고 또 노년을 지내고 있을 한시절의 청목들, 그리운 중앙대학 나의 동창생들이다.
아_ , 올해의 신록 속에서도 중앙 캠퍼스 안에는 젊은 남녀 대학생들이 미래의 꿈을 키우고 있을 것이다. 문학과 친구, 꿈과 낭만이 있었던 내 대학시절, 이 지상에서는 두 번 다시 누려 볼길이 없는 우리들의 젊은 날, 가슴에 묻어둔 그 시절의 그리움 꺼내 돌아보면 이제는 아득한 저- 편의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이다.
첫댓글 마음 안에 있는 그리움은 색이 변치 않잖아요.
아름다운 그림 한 장 새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