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회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
“과거 마약 밀수의 경유지였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최종 소비지가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10월 28일 ‘생활 주변에 파고든 마약, 국민 안전 어떻게 지키나?’라는 주제로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이하 자문단)이 개최한 제48회 국민생활과학기술포럼에서 정은주 자문단 생활화학물질분과위원장(안전성평가연구소 소장)이 내놓은 진단이다. 정 위원장은 이어 “최근에는 마약 성분을 함유한 버섯을 청소년이 재배했다가 적발되는 일도 있었다. 유명인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생활 주변에까지 깊숙이 파고든 마약으로 인해 ‘마약 청정국’이라는 표현이 무색해지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에 이날 포럼에서는 우리의 생활 주변으로 스며들고 있는 마약으로부터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심도깊은 논의가 펼쳐졌다.
이우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환영사에서 “2021년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2017년 14,123명이었던 국내 마약류 범죄 사범은 2021년 16,153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유학, 여행 등 해외 생활을 경험한 인구가 크게 늘었고, 텔레그램, 트위터 등 인터넷 플랫폼을 통한 마약 거래가 빈번하게 이뤄지는 탓에 단속도 쉽지 않다”며 “온라인을 통한 마약 거래는 20~30대 젊은 층의 중독을 양산한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고, 여기에 10대의 투약 비중도 급증하는 추세라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전했다.
하수도 이용한 불법 마약 사용 조사‥내년 결과 발표
김일수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마약정책과장은 ‘국내 마약류 관리 현황’이라는 주제로 첫 번째 발제를 진행했다. 식약처는 국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관장하고 있으며, 14개 부처가 참여하는 정부 마약류 안전관리 체계를 총괄하는 부서다. 김 과장은 “우리나라는 마약류를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 등 크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식약처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을 따르지 않은 모든 마약류의 사용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며 “다만 (예외적으로) 공무, 학술연구, 의료목적으로 마약을 취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식약처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또 “우리나라는 향정신성의약품 가운데 식욕억제제의 남용이 상당하다. 소비량이 전 세계 2~3위”라면서 “2020년에 식욕억제제 제조 및 수입량 관리 강화 법안을 만들어서 기존에 허가된 제품 외에 신규 허용을 제한하고, 식욕억제제를 위해성 관리계획 제출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했으며, 환자가 3년간 평균 사용량 이상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남용을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마 성분은 ‘게이트드럭’(gate drug, 입문 마약)으로 상용되는 경우가 많고 전 세계적으로 대마 사용량이 증가하고 있으며, 더 센 마약으로 중독되는 비율이 높아서 과연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대마는 그간 일체 취급행위가 금지되었으나, 의료목적의 사용을 인정하는 국제적 흐름과 희귀/난치질환자의 치료권 확대를 위해 에피디올렉스, 사티벡스 2종의 의약품에 한해 수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과장은 “현재 불법 마약류 외에 의료용 마약류의 불법, 과다, 중복 처방 등으로 인한 부작용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의료용 마약류를 사용하는 인구는 2021년 기준으로 1,884만여 명으로 국민 2.7명당 1명이다. 종류별로는 ①마취제(프로포폴), ②최면진정제, ③항불안제, ④진통제(펜타닐), ⑤식욕억제제(나비약)의 순으로 나타났다. 김 과장은 “2018년도부터는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을 운영하면서 빅데이터를 활용해 수입, 판매에서부터 최종소비자인 환자에 이르는 각 단계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선별, 집중 감시하고 있다”며 “의료용 마약류에 있어서 과다처방의 문제는 마약류 의료쇼핑 방지정보망을 만들어 의사들이 처방을 제한하거나 거절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아직 활성화되지는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마약에 대한 지나친 경계심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과 같이 인류 건강 증진이라는 목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과한 조치는 삼갈 필요가 있다. 마약은 잘만 쓰면 상당히 효과가 있는 약이므로 오남용만 없다면 의료용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신종 불법 마약류와 관련해서는 2020년 ‘하수역학’을 시범사업으로 시작하여 마약류 사용량을 모니터링 및 연구하고 있다. 하수역학이란 하수처리장에서 시료를 채취해 전문 장비로 잔류 마약의 종류와 양을 분석하고 하수유량과 하수 차집지역 내 인구수, 인체 대사율 등을 고려하여 인구 대비 마약류 사용량을 추정하는 방법이다. 김 과장은 “2018~2019년도 버닝썬 사건을 계기로 예산을 확보하였고, 일부 대학에서 관련 실험에 성공했다는 실증사례에 따라 올해 3년 차 사업을 하고 있다. 불법 마약은 다 숨어 있으므로 사용을 알 수 없지만, 사용된 마약은 소변 등으로 배출될 테니 하수도를 조사하는 것”이라며 “2020년에는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전국 52개소에서 불법 및 합법 마약류 16종을 모니터링했는데, 필로폰은 전국에서 검출됐고 의료용 마약 5종과 함께 불법 마약류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전했다. 특히 “지역별로는 인천, 부산 등 항만과 유흥시설 주변에서 검출량이 많았고, 계절별로는 봄, 여름보다는 가을, 겨울이 많이 검출됐다”고도 덧붙였다. 아울러 김 과장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조사로서는 국내 처음이며 지난해까지는 구체적 수치나 지역별 현황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내년에 3년 차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공개할 예정이며 검찰과 경찰에도 제공해서 수사나 단속에도 활용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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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수 식품의약품안전처 마약정책과장 발제 (클릭 시 해당부분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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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중독자는 처벌의 대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환자’
다음으로 최화경 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위원이 ‘마약중독의 이해를 통한 대응방안 제시’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제를 맡아 진행했다. 최 위원은 “한 번이라도 마약을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7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48.4%가 ‘호기심’이라고 응답했고 그 뒤를 이어서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나쁜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서’,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결국 현실이 힘들었는데 탈피했다던가, 고통스러운 상황이 없어지는 듯했다는 등 본인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사람들은 마약을 계속 사용했다”며 “이러한 향정신물질은 우리 몸에 들어와서 기분과 사고를 다르게 하고, 감각적 지각에 왜곡을 일으키며, 행동까지도 변화를 일으킨다. 이는 판단, 의사결정, 학습, 기억, 행동 통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뇌의 부위가 물리적으로 변하면서 해당 기능이 망가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상습적으로 약물을 남용하면 뇌 신경구조가 기능적, 해부학적 변형을 일으켜, 원래대로 회복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만족하는 능력, 행복을 느끼는 능력 마비 ▲인지기능 손상으로 인한 판단력 장애 ▲정서적 의사소통 장애로 인한 사회성 저하 등이 발생한다. 최 의원은 “과거에는 약물중독을 도덕성 결함, 의지력 부족이라고 낙인 찍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1980년대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중독을 뇌가 구조적, 생물학적으로 변형이 된 질환으로 보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인식이 개선됐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 위원은 “누구도 처음부터 중독될 것을 계획하고 마약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지만 중독은 진행성 질환으로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더 심화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약물 사용의 진행은 단계적으로 심화된다. 1단계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잘하면서도, 마약이 너무 좋고 몸이 원하며 할수록 재미에 푹 빠지고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2단계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반 정도밖에 못 하고, 습관이 되고 무감각해져서 예전만큼 좋지는 않지만 몸이 원해서 사용량과 빈도가 늘어나고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3단계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도 못 하고 마약이 꼴도 보기 싫다고 하지만 안 하면 몸이 금단증상을 일으켜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최 의원은 “메트암페타민(히로뽕)에 의한 뇌 손상 부위를 보면, 가장 손상이 심한 부위는 보상을 담당하는 보상회로이고,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 전두엽도 많이 손상됐다”며 “약물 사용자와 비사용자의 뇌를 비교해보면, 비사용자의 뇌가 더 커서 약물을 사용하면 뇌가 쪼그라드는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대마도 마찬가지 결과를 나타내는 것으로 연구됐다. 그러면서 “중독이라는 뇌 질환은 더 이상 약물 복용 여부를 내 맘대로 조절할 수 없게 하고, 충동, 분노 관리, 대인관계 대처 능력 등의 자기 조절을 할 수 없게 하며,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걸리며 성격과 인격까지도 변화시킨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최 의원은 “중독은 굉장히 복잡한 질환으로 아직까지 명확하게 중독의 모든 기전이 밝혀져 있지 않다. 이는 중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유전적 취약성,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 10대 때의 친구와 동료들, 물질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사회 문화적 환경 등 여러 가지라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한 번 중독이 되고 나면 고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마약류 중독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중독인지 아닌지 선별해서 조기에 개입을 받고 올바른 평가를 받아서 치료와 재활을 하고 사회에 복귀를 해야 효과적으로 중독이 퇴치되는 것”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최 의원은 “마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에 단 한번도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정신적인 아픔이 있을 때도 치료를 받아야 중독의 위험을 예방할 수 있다. 또 중독에 취약한 가족력이 있으면 중독성이 강한 치료 약물도 사용하지 말아야 하며, 중독자는 처벌의 대상이 아닌 치료가 필요한 환자이기 때문에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지지와 지원체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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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화경 마약퇴치운동본부 전문위원 발제 (클릭 시 해당 부분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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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해외배송, SNS 등 온라인 기반 유통‥남용 연령의 하향화
발제에 이은 패널토론에서는 정희선 성균관대 석좌교수(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초대원장)을 좌장으로 이영권 서울경찰청 팀장, 최혜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실장, 한은영 덕성여대 교수,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 박영덕 마약퇴치운동본부 상담실 실장,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가 패널로 참여했다.
이영권 서울경찰청 팀장은 “2021년 마약류 범죄 유형별 검거 현황을 보면 투약이 52.8%(8,522명), 매매가 20%(3,299명) 등을 차지한다. 특히 20~30대 사범이 늘고 있는데 다크웹을 통해 대금을 가상자산으로 지불하며 판매, 구매라는 추세”라며 “환각 상태에서 가족이나 수사관을 살해하는 2차 강력범죄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혜영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실장은 “2019년부터는 법령을 빠져나가는 새로운 남용물질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다. 물질의 구조를 밝히고 마약류 유사체, 임시마약류로 지정하는 사이에 이 마약들이 퍼져나갈 수 있다”며 “즉시 효력이 발생하도록 법률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하고 신종마약을 탐색하는 전문 역량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은영 덕성여대 교수는 “올해 1~7월까지 만 20세 미만 청소년 마약사범이 총 395명에 달한다. 2018년 74명과 비교하면 약 5배 증가했고, 최근 10년 새 11배가 증가했다”며 “인터넷 모니터링을 통해 예방하고, 학생 대상 약물 오남용 교육을 강화하며, 청소년과 부모의 마약류에 대한 인식과 경각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예전에는 환자들이 40~50대 남성 중심이었으나, 최근 10~30대 젊은 층으로 확산됐다는 것을 느낀다. (저희 병원에서) 2016년 61명이었던 마약류 중독 외래환자는 2021년 696명으로 10배 늘었다”며 “마약을 처음 접한 것은 당사자의 잘못이지만 중독은 치료해야 할 뇌의 병이다. 궁극적으로는 치료와 재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단순 검거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영덕 마약퇴치운동본부 상담실 실장은 “점점 마약값이 저렴해지면서, 10대가 마약을 싸게 살 수 있는 위험에 처해있다. 유치원에서 담배에 대해서도 교육하는 것처럼 마약에 대해서도 전국적으로 교육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마약을 들어오고 마약 사범이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너무 많다”는 점도 지적했다.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는 “젊은 층으로의 확산 원인이 의사들의 향정신성 의약품 처방에 따른 내부적인 것인지, 외국에서 접하고 들어오는 외부적인 것인지 따져서 찾아내야 한다. 또 마약사범이 통제가 안 되어 일반인에게 미치는 위험성은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도 논의해야 한다”며 “마약 김밥, 마약 떡볶이뿐 아니라 마약을 다룬 드라마와 영화도 청소년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짚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