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예상치 못했던 야구와의 이별
1994-95 시즌이 시작되며 시카고 불스 구단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바로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시카고 스터디움을 허물고 유나이티드 센터라는 새 구장을 건설한 것입니다. 은퇴했지만, 여전히 불스의 아이콘이었던 마이클 조던도 이 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조던은 이 날 유나이티드 센터 개장 행사에 참여해 불스 구단의 새로운 구장도 보았고, 또 그 구장 앞에 세워진 자신의 동상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등번호인 23번이 영구결번되는 것도 지켜 보았습니다.
이 모든 행사들은 불스에서 청춘을 바쳐 세 번의 우승을 일구어낸 마이클 조던에게 그야말로 큰 감동을 선사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당장 야구를 그만두고 농구 코트로 돌아올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야구를 즐기고 있었고, 계속해서 아버지가 내주신 새로운 도전과제를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던은 야구 선수로서의 실력은 여전히 부족했지만, 계속해서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고, 조금만 더 성장하면 메이저 리그로 콜업될 가능성도 보이던 때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야구에 매진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습니다. 바로 MLB 리그 선수들이 파업을 하며 시즌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던 겁니다.
그렇게 파업이 계속되던 어느 날, 경기가 없어져 졸지에 실업자(?)가 된 ‘야구 선수’ 조던은 결국 1995년 3월 2일, 화이트 삭스 스프링 캠프를 떠났습니다. 그리고는 이후, 두번 다시 조던은 야구 필드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2장 I’m Back
한때 농구 선수였다가, 바로 얼마 전까지는 야구 선수였던, 하지만 이제는 그냥 Just ’실업자’인 조던은 어느날, 과거 불스 팀메이트였던 BJ 암스트롱에게 한 통의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식사나 하자”
둘은 그렇게 만났습니다. 그 날 암스트롱은 트레이닝복을, 조던은 정장을 차려 입고 레스토랑에서 만났는데,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흘러나온 농구 이야기에 조던은 웃으며 암스트롱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스 연습 시간 전에 가서 장난이나 좀 칠까?”
이 말을 들은 BJ 암스트롱은 빙긋 웃었고, 곧 그들은 결국 식사를 다 마치지도 못한채 불스 연습장으로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곧 이어 트레이닝복을 입은 ‘현역 NBA 선수’와 정장을 입은 ‘30대 실업자 아저씨’의 1:1 슛 대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 조던은 암스트롱에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네가 날 막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그 말에 슛 대결은 곧 격렬한 1:1 대결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둘은 마치 실전을 방불케 하는 1:1 대결을 즐겼습니다.
이 날 이후 조던은 시카고 불스 연습 시간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불스 구단 선수들은 그저 “아 MLB가 파업이라 그냥 놀러왔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조던은 옛 동료들과 섞여서 코트에서 연습 게임을 즐겼고, 그렇게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여전히 ‘야구 선수’ 마이클 조던이 불스 '농구 연습장'에 출근하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부터 불스 구단 선수들은 조던이 진지하게 코트에 복귀하려 하는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룩 롱리는 말했습니다.
“(그가 복귀하려 하는구나라는 건)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게임을 즐기고, 또 게임에 졌을 때 ‘열받아’ 하는 걸 보니 말입니다.”
롱리의 말대로 조던은 농구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뜨겁게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한때 최고의 자리에 올라 더 도전할 과제를 찾지 못해 열정을 잃었던 그 스포츠에, 조던은 또 다시 매료되고 있었던 겁니다. 입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조던은 농구 선수로서 다시 코트에 돌아와 최고의 자리를 놓고 경쟁하기를 원했고, 다시 자신의 팀을 리그 최고의 자리에 올려 놓고 싶어했습니다.
조던의 연습 참여는 당시 3연패의 주역 중 한 명이었던 호레이스 그랜트를 떠나 보내고, 성적이 떨어져 하위 시드로 플레이 오프에 나가기 위해 노력하던 시카고 불스 팀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연습 벌레 조던 덕분에 불스의 연습 시간은 더 길어졌고, 터프해졌으며, 팀에도 생기가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먼저 나서서 조던에게 “자네 코트에 복귀하려는가?”라고 묻는 이는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묵묵히 ‘전직’ 농구 황제의 코트 복귀를 위한 도전을 계속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조던이 다시 코트로 복귀하는 것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언론에도 돌 때 쯤, 스카티 피펜은 아주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건 바로 피펜이 경기 중 자신이 신고 있던 에어 조던 10을 카메라에 대고 점프맨 로고를 가리키며 돌아오라고 손짓했던 사건이었습니다. 피펜은 말 한 마디 하지 않았지만, 전 세계 사람들은 그 손짓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웃음기 가득한 피펜의 그 장난어린 손짓 한번에 전 세계는 '묘한 흥분'으로 가득해졌습니다.
'설마....'
이 분위기에 심지어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 대통령 조차도 가세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 도중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고 난 이후 이번 정권에서 610만개의 일자리가 생겼습니다. 만약 마이클 조던이 불스로 돌아간다면 610만 1개의 일자리가 생기는 셈입니다”
실업자 신세인 30대 국민 한 사람까지도 걱정해주고 일자리까지 추천해준 친절한 대통령님 덕분에 온 세상은 마이클 조던의 코트 복귀에 대한 염원으로 더욱 가득해져갔습니다.
“정말 농구 황제가 다시 돌아오려는가!? 정말?! 우린 다시 그를 코트에서 볼 수 있는가?!” 그렇게 온 세상의 모든 미디어들과 전 세계 농구 팬들이 기대감과 흥분으로 가득해져 갈 때쯤, 드디어 한 장의 팩스가 언론에 전달되었습니다.
"I’m Back" -MJ
3장 두 얼굴의 얼룩말
조던의 코트 복귀 소식을 듣자마자 나이키 역시 바빠졌습니다. 나이키는 경기를 준비하는 마이클 조던에게 급하게 에어 조던 10을 준비해서 가져다 주었습니다. 조던 라커룸에 다시 나이키에서 배달된 신제품 에어 조던 박스들이 채워졌습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그리워했던 풍경이었던가.
이렇게 다시 코트로 복귀하는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을 위해 준비된 에어 조던의 새 시리즈는 바로 에어 조던 10이었습니다. 사실 에어 조던 10은 조던의 복귀 이전에 출시되어 다른 NBA 선수들이 이미 신고 있던 농구화였기에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고, 또 조던의 은퇴 시기에 출시된 농구화였기에 사실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에어 조던 10은 그만의 매력을 충분히 가진 아주 괜찮은 제품입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죠.
에어 조던 10은 지난 에어 조던 9의 디자인적 연장선 상에 있는 모델입니다. 차분하고 얌전했던 에어 조던 9의 디자인은 10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게 되었는데, 에어 조던 10은 여기에 ‘개성’이라는 장점도 함께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단 에어 조던 10에 ‘개성’을 부여한 장치는 바로 ‘스판덱스 밴드’입니다.
발등에 위치한 스판덱스 밴드는 발을 조여주는 기능을 했는데, 레트로 모델이 아닌 오리지널 모델들의 경우 신발끈을 당기지 않고 스판덱스 밴드에만 의지해 농구화를 착용하는 사람들 마저 있을 정도로 스판덱스는 강력했습니다. (이후 레트로 모델들의 경우는 스판덱스가 많이 약해져서 끈을 꽉 묶으면 위로 붕 뜨는 등 다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스판덱스 밴드는 기능뿐 아니라 디자인적인 측면에서도 에어 조던 10의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어 주었는데, 흰검 모델의 경우 스판덱스 밴드 부분이 마치 ‘얼룩말’처럼 보였기 때문에 에어 조던 10은 한국에선 특히 ‘얼룩말’이란 애칭으로도 널리 불리게 되었습니다.
에어 조던 10은 쿠셔닝에도 많은 발전을 가지게 된 모델입니다. 햇필드는 에어 조던 시리즈 중 최초로 에어 조던 10에 파일런 미드솔을 사용했는데, 이 부드러운 파일런 미드솔과 함께 내장된 에어솔의 조합 덕분에 에어 조던 10은 매우 민감하고도 부드러운 앞축과 편안한 쿠셔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에어 조던 10은 사실 겉으로 보기엔 다소 둥그렇고 둔해 보이는 외관을 가졌지만, 실제로 신어 보면 앞축이 매우 민감하고 부드러운 ‘천상 가드용 농구화’임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팅커 햇필드는 에어 조던 9에 이어 에어 조던 10에도 아웃솔에 글귀들을 새겨 넣어 특별함을 더했는데, 이번에는 마이클 조던의 간략한 업적들을 아웃솔에 새겨 넣었습니다. 이는 스판덱스 밴드와 함께 에어 조던 10의 가장 큰 디자인적 요소를 차지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보기에는 멋져보였지만, 아쉽게도 이 글씨들은 아스팔트에서는 신고 조금만 플레이를 하면 쉽게 닳아 없어져 버리고, 곧 접지력을 잃게 되어 에어 조던 10을 ’미끄러운 농구화’라는 오명을 가지게만든 요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보기에는 정말 멋지죠)
농구화의 무게는 이전 시리즈들보다는 훨씬 더 가벼워져서 매우 상큼한 가드용 농구화로서의 면모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착화감도 부드럽고, 쿠셔닝도 민감하고 부드러운데 농구화 자체의 무게까지 가벼웠기 때문에 에어 조던 10은 당시 리그의 가드들로 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면 지지대가 없어 발을 잘 잡아주거나 버텨주는 맛은 느낄 수가 없는 편입니다. 게다가 발목을 잡아 주는 부분도 V자 모양으로 깊게 파여져 있어서 발을 잘 잡아주고 버텨주길 원하는 포스트 플레이어들에게는 그다지 적합한 농구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저는 에어 조던10을 좋아합니다. V자로 깊이 파인 발목은 자유로움과 함께 매우 ‘특이한’ 착화감을 선물해주고 있는데, 스판덱스 밴드 덕분에 발을 감싸는 독특한 느낌마저 더해져 개인적으로는 매우 애정하는 시리즈 중 하나가 바로 이 에어 조던 10이었습니다.
하지만 고가의 농구화치고는 내구성 면에서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는 제품은 아닙니다. 특히 초기 출시된 에어 조던 10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 출시된 에어 조던 10들은 발가락 부분을 감싸는 '이중 토캡' 부분이 생략되어 출시되었기에, 특히 킥스톱이 많은 가드들이 사용하기에 발가락 부분의 내구성이 많이 아쉬운 농구화가 되었습니다.
에어 조던 10의 매력은 뭘까요? 저는 ‘두 얼굴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어 조던 10의 외관은 심플한 듯 하지만 개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스판덱스 밴드 덕에 발을 강하게 잡아주는 듯 하지만, 발목은 또 자유롭습니다. 쿠셔닝과 무게는 가볍고 상큼하지만, 외관은 그것과는 반대로 다소 투박한 매력을 지닌 시리즈였습니다.
이렇듯 에어 조던 10은 겉과 속이 조금씩 다른 두 얼굴의 매력을 많이 가진 그런 제품이었습니다.
야구선수였던 남자가 갑자기 농구 코트로 복귀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4장 1995.03.19
1995년 3월 19일, 불스 대 페이서스 전.
전 세계인들의 폭발적인 기대 속에서 마이클 조던은 농구 코트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당시 상황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습니다. 조던이 보낸 “내가 돌아왔다” 팩스 이후, 온 미디어에서는 조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방영하기 시작했고, 모든 뉴스, 미디어에서는 마이클 조던의 코트 복귀 기사들을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카고 불스는 '그저 그런 한 물간 팀’에서 다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는 ‘최고의 인기팀’이 되었고, NBA의 인기도 덩달아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이 모든 것은 ‘마이클 조던 효과’였습니다.
복귀 경기를 준비하는 조던과 시카고 불스 구단 라커룸에서도 재밌는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마이클 조던의 빈 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불스의 주전슈팅 가드는 마이어스였는데, 필 잭슨은 라커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를 보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마이클이 주전 멤버로 출전을 할 거야”
사실 마이어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이어스는 속으로 ‘뭐 그런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내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장난을 섞어서 잭슨 감독에게 “아니, 정말 그럴 거에요?! 정말 내게 이럴 거냐고요!?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필 잭슨은 마이어스를 빤히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그냥 여기서 꺼져! (질척대지마!)”
그렇게 둘은 유쾌하게 웃었고, 불스 구단은 조던의 복귀를 환영했습니다. 하지만 조던의 복귀를 환영한 것은 비단 불스 구단과 그들의 팬들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마이클 조던은 단지 불스 구단에 소속된 ‘한 명의 NBA 선수’ 정도로만 얘기하기엔 너무나 특별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전 세계 농구인들의 꿈이었고, 어린아이들의 롤 모델이었습니다. 이는 라이벌 팀이었던 인디애나 도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비록 적진이었지만, 그 날 관중석은 레지 밀러 보다는 조던을 보러 온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어린아이부터 심지어 할머니까지도 당시 코트로 복귀한 마이클 조던을 보고자 경기장을 찾았습니다. 롱리는 추억합니다.
“마치 파이널 같았다.”
경기 시작 전 부터 관중석은 꽉 들어 차있었고, 양팀 선수들과 심지어 심판진들 조차도 뭔가 더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경기장을 가득채운 팬들이 뿜어내는 열기와 어마어마한 함성에 경기장은 마치 폭발할 것만 같았습니다.
드디어 조던이 차에서 내렸고, 경기장으로 들어섰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장면들은 모두 생중계 되었고, 그렇게 농구 황제는 다시 코트로 돌아왔습니다.
5장 더블니클
조던이 선택한 백넘버는 ’45’번이었습니다. 당시 ’23’번이 영구 결번되었기에 ’23’번을 못 달았다고 생각하시는 계신 분들도 계신데, 사실 마이클 조던은 ’23’번을 달 수 있었습니다. 그가 ’45’번을 단 것은 오로지 그의 ‘의지’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께서 지켜보시던, 자신이 농구 선수로서 은퇴 전에 달았던 등번호를 다시 달기를 원하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마지막으로 내주신 도전과제(야구)를 수행했을 때 달았던 등번호인 45번을 달고 코트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아직은 어색한’ 45번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소개되었습니다. 그러자 인디애나 ‘적진’의 팬들 조차도 엄청난 환대로 그를 맞아 주었습니다. 조던은 그렇게 복귀 첫 경기를 ‘적진인듯, 적진 아닌, 적진 같은’ 인디애나에서 치루었습니다.
시청률과 광고 효과, 또 유니폼 판매는 어마어마했지만, 사실 조던의 복귀 첫 경기는 그렇게 빛나지는 못했습니다. 조던은 28개의 슛 중 겨우 7개만을 넣었을 뿐이었고, 무엇보다 움직임이 과거의 Black Cat,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조던은 자신의 복귀 첫 경기를 연장전 끝에 96 대 103으로 패배했고, 팬들은 다소 실망했지만 조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잘 했다면 더 좋았겠지만, 사실 조던 스스로도 사람들의 기대치에 자신이 당장은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었었기 때문입니다. 감독인 필 잭슨 역시 그랬기 때문에 그가 플레이오프가 아닌 정규 시즌에 미리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NBA는 만만한 무대가 아닙니다. 몇 년간 야구만 하던 사람이 돌아와 당장 정복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만만한 무대가 아닙니다. 확실히 야구를 하던 조던의 몸은 상체 근육이 많이 발달해서 농구를 바로 하기에는 밸런스가 잘 맞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어쨌건 조던은 그렇게 복귀 첫 경기를 마친 후 곧 서서히 다시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가기 시작했습니다. 조던은 복귀 3일 후에 벌어진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단 26분만을 출전하면서도 27득점을 올렸고, 3리바운드 3어시스트 2스틸 1블록도 함께 기록했습니다. 효율도 좋았습니다. 조던은 경기 내내 단 하나의 실책도 저지르지 않으면서도 52.9%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고, 상대로 부터 얻어낸 8개의 자유투 모두를 림으로 꽂아 넣었습니다. 말 그대로 “Perfect!”였습니다. 사람들은 조던이 서서히 농구라는 스포츠에 다시 적응해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마이클 조던이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준 경기는 1995년 3월 25일, 복귀 네번째 경기인 애틀란타 호크스와의 경기에서였습니다. 조던은 이 날 43분을 뛰며 코트를 누볐는데, 무려 53.8%의 필드골 성공률로 32득점을 폭격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32득점도 물론 좋은 기록이었지만, 사실 이 날 하이라이트는 바로 뻔하디 뻔한(?) ’조던표 클러치 퍼포먼스’였습니다.
https://youtu.be/Jw8dsxSWh9Q
당시 상황을 좀 추억해 보자면, 불스는 1점차로 지고 있었고 조던은 이 날 마지막 공격을 5.9초가 남은 상태에서 시작했습니다. 인바운드 패스를 받은 조던은 주저 없이 상대 코트로 넘어갔습니다. 사실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슛을 누가 던질지. 이런 상황은 사실 이미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난 2년 동안 코트를 떠나 있던 선수가 돌아와 다시 예전처럼 팀을 어려움에서 구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대와 우려가 섞인 마지막 공격에서 조던은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상대 진영으로 넘어온 조던은 상대 수비수를 앞에 두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좌우로 중심을 흔들며 상대 수비수를 흔들어 놓았고, 그 위로 유유하고 깔끔한 역전 점퍼를 성공시킨 것이었습니다.
BANG!!!
슛이 들어가는 순간 해설진들은 ‘폭발’했고, 관중들도 ‘폭발’했습니다. (분명... 애틀란타 적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슛을 성공시킨 조던은 코트 바닥을 주먹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자신이 ‘돌아왔음’을 알렸습니다. 농구황제가 정말 돌아온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각본 없는 드라마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드라마는 바로 다음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 날 조던은 자신의 안방(닉스팬님들 죄송합니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39분을 뛰며 무려 55득점(!)을 올렸습니다. 2년이나 쉬다가 온 선수가, 게다가 그 사이 농구라고는 마이너 리그 소속팀 선수들과 간단한 픽업 게임을 한 게 전부였던 30대 아저씨가 뉴욕 홈구장에서 또 다시 50득점을 넘긴 것이었습니다.
필드골 성공률은 56.8%에 달했고, 3점슛 성공률 마저도 75.0% 자유투 성공률도 90.9%를 기록했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승부를 결정짓는 플레이 역시 그의 몫이었습니다. 두 경기 연속 그는 그렇게 자신이 완전히 돌아왔음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이렇게 조던은 ’45’번 백넘버를 달고, 복귀 ‘5’경기 만에 ’55’득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조던 브랜드는 마이클 조던의 이 경기를 기념하며 당시 그가 신었던 컬러의 에어 조던 10에 당시 조던의 백넘버였던 45번을 새겨 ‘더블니클’이라는 별칭으로 레트로하기도 했습다. (‘니클’은 미국의 5센트 짜리 동전을 지칭하는데, 그래서 더블니클은 ‘55득점’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화려하게 복귀한 마이클 조던은 3월 한 달 동안 29.5득점 5.3리바운드 4.5어시스트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팀을 4승 2패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조던은 더 가속도를 붙여 자신이 버저비터를 터트렸던 애틀란타 경기 부터 1995년 4월 23일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14경기 동안 27.9득점 7.4리바운드 5.2어시스트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하며 팀을 12승 2패로 이끌었습니다. 플레이오프 하위 시드를 놓고 힘겹게 경쟁하던 불스는 조던의 합류로 그야말로 단숨에 강팀으로 부상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당시 마이클 조던은 분명 '은퇴 이전의 조던' 보다는 경기 지배력이 다소 부족했고, 한 마디로 ’인간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농구를 하는데 적합한’ 몸을 제대로 만들고 오지 않은 상태였음을 감안하다면, 이는 매우 놀라운 활약이었습니다. 과연 조던 이외에 누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조던과 불스는 그렇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습니다.
6장 새 시대
불스의 최종 성적은 47승 35패. 조던의 합류로 당당하게 플레이오프에 진출한 불스의 첫 상대는 샬럿 호넷츠였습니다. 리그에서 가장 터프한 골밑 듀오였던 알론조 모닝, 래리 존슨, 그리고 최단신 가드였던 먹시 보그스, 그리고 리그에서 손 꼽히는 3점 슈터였던 델 커리(현 리그 최고 선수인 스테픈 커리의 아버지) 등이 포진해 있던 ‘신생강호’ 샬럿 호넷츠는 당시 어떻게든 마이클 조던을 잡으려고 열을 올렸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마이클 조던은 2년 만에 돌아온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무려 48득점(!!!!) 9리바운드 8어시스트라는 (진짜 헐...) NBA 2K 게임 같은 기록을 작성해내며(56.3% 필드골) 샬럿 호네츠를 말 그대로 부셔!! 버렸습니다. 조던은 단 네 경기 만에 샬럿을 집으로 돌려 보냈는데, 그 네 경기 동안 조던은 32.3득점 6.5리바운드 5.8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필드골 역시 50%에 육박했습니다.
“도대체 2년을 쉬었다 돌아온 선수가 맞는가?“라는 의문이 드는 무지막지한 활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조던과 불스 앞에는 새로운 라이벌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조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리그를 슬며시 장악해가고 있던 신생 세력, 올랜도 매직이었습니다. 매직은 참으로 매력적인 라인업을 갖춘 팀이었습니다. 이미 조던이 은퇴 전 조우했던바 있던 괴물 센터 샤킬 오닐은 여전히 골밑을 부수고 있었고, '제 2의 매직 존슨'이면서 또 동시에 '제 2의 마이클 조던'이었던 장신 포인트 가드 페니 하더웨이는 코트 전체를 휘집고 다니며, 상대 선수들이 쉽사리 오닐에게 더블팀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그들 곁에는 과거 조던의 동료이기도 했던 리그 최고의 블루 컬러 워커 호레이스 그랜트가 수비와 리바운드 등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닐과 페니로 부터 파생되는 2차 공격 기회들은 닉 앤더슨과 데니스 스캇이라는 리그 최고의 양궁 듀오가 공략했습니다.
이 조합은 실로 무서웠고, 두 말할 것도 없이 오닐과 하더웨이 콤비는 ’NBA의 미래’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새 시대의 압둘자바와 매직 존슨이었는데, 이들을 상대하게 된 조던과 불스는 첫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플레이했지만 결국 그들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마이클 조던이 36.4%의 저조한 필드골을 기록하며 19득점에 그친 이 날, 샤킬 오닐은 63.6%의 필드골을 기록하며 26득점을 터트렸습니다. 거기에 닉 앤더슨은 3점슛 50%의 확률로 20득점을 터트렸고, 페니와 호레이스 그랜트도 각각 16점씩을 보탰습니다. 반면 스카티 피펜은 44분이나 뛰었지만 18.2%라는 극악한 필드골 성공률로 고작 7득점을 기록하는 데 그쳤고, 불스 팀 그 어느 누구도 20득점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더 큰 충격은 이 날의 패배가 바로 ‘마이클 조던 때문’이었다는데 있었습니다. 조던은 이 날 마지막 18초를 남기고 1점차로 앞선 상황에서 닉 앤더슨에게 '어이없게' 스틸을 당하며 패배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조던이 뺏긴 볼은 '새 시대'의 선두 주자인 페니 하더웨이에게 전해졌고, 다시 그 볼은 조던의 과거 파트너, 호레이스 그랜트의 역전 덩크로 이어졌기에 그 아픔은 더했습니다.
이후 다시 한번 찾아온 기회에서도 조던은 6.2초를 남기고 역전 슛을 넣을 기회를 맞았지만, 그는 평소 그답지 않게 '슛'이 아닌 피펜에게 '패스'하는 것을 택했고, 그 패스가 -결과론적이지만- 실패로 끝나며 그렇게 경기는 끝나버렸습니다. 이 경기는 여러 면에서 '45번 조던'에게 매우 뼈 아프고, 상징적인 경기가 되었습니다.
조던 답지 않았던, 지극히 인간 다웠던 이 날 경기가 끝난 후, 피펜은 “마이클도 인간이다”라는 말을 남겼고, 닉 앤더슨은 “등번호 45번의 조던은 내가 알던 그 조던이 아니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당연히 이 말에 조던은 크게 자극을 받았고, 이후 벌금을 내면서까지 다시 예전 등번호인 23번을 달고 경기에 나와 38득점, 40득점을 터트리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결국 올랜도 매직을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조던과 불스는 6차전에서 108 대 102로 패배하며 다음 시즌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복귀한 농구 황제에게 첫 패배를 안긴 그들. 그들은 그렇게 황제에게 이젠 시대가 바뀌었음을 알렸던 것입니다. (한편 시카고 불스를 무너 뜨리고 파이널에 진출한 올랜도 매직은 그 해 파이널에서 하킴 올라주원의 휴스턴 로케츠에게 4-0 패배를 당하며 준우승에 그치게 됩니다.)
90년대 승리자가된 이후 처음으로 패배를 맞본 조던과 불스. 조던은 과거 매직 존슨이 조던에게 패배하며 정상의 자리에서 물러났던 것처럼, 이렇게 정상에서 멀어지고 마는 걸까요?
과연 조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7장 에어 조던 10에 대해 알고 있으면 좋은 몇가지 사실들
1. 에어 조던 10은 지난 에어 조던 9과 마찬가지로 야구화로도 제작된 시리즈입니다. 다만 정식 출시는 되지 않았습니다.
2. 나이키는 은퇴로 코트를 비운 조던을 대신해 에어 조던 10을 닉 앤더슨, 라트렐 스프리웰, 미치 리치몬드, 헤롤드 마이너, 휴버트 데이비스 등에게 착용시키며 굉장히 다양한 색상의 버전으로 발표했습니다. 나이키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제리 스택하우스에게도 에어 조던 10을 지급했는데, 이후 에어 조던 10은 이 선수들이 각자 착용했던 다양한 색상의 각종 도시 버전으로 레트로되기도 했습니다.
3. 1994년 11월에 출시된 오리지널 버전의 에어 조던 10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출시 초기 제품에는 발가락 부분을 두 겹으로 감싸는 '이중 토캡'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후 짙은 회색 제품부터는 토캡이 삭제되어 출시되었는데, 이는 사실 조던의 요청 때문이었습니다.
이중 토캡은 팅커 햇필드의 아이디어였는데, 당시 야구를 하고 있던 조던은 햇필드와 이전 처럼 자주 대화를 나눌 수 없었고, 또 자신이 직접 신을 모델도 아니었기에 조던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출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조던은 이중 토캡이 아무래도 영 마음에 들지 않아 햇필드에게 디자인 수정을 재차 요구했고, 결국 에어 조던 10은 오리지널 모델이 출시된 후 디자인을 다시 바꾸게된 아주 특이한 이력의 주인공으로 남게된 것입니다.
어쨌건 이렇게 탄생한 에어 조던 10의 새로운 디자인은 분명 보기엔 더 멋졌지만, 덕분에 내구성은 더 안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4. 에어 조던 10은 일상화인 오토 클레이브 버전으로도 출시되었습니다.
5. 에어 포스 1과의 퓨전 모델인 AJF10도 역시 출시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론 AJF 시리즈들 중에서도 매우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6. 에어 조던 9과 10의 퓨전 모델인 ‘9.5팀’이라는 모델도 출시된바 있습니다. 당시 크리스 폴 등 팀 조던 멤버들이 착용하는 모델이었는데, 이 모델에서는 ‘에어’가 생략된 채로 출시되어 다소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역시 판매고는 매우 높았습니다.
7. 토니 로튼이란 NBA 선수는 과거 경기 중 에어 조던 10을 신고 뛰다가 농구화가 폭파(?)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이후 로튼은 인터뷰에서 “조던이 직접 내 에이전트에게 전화해 사과를 했다”라고 말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훗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로튼은 그저 농담으로 한 말인데 그 말을 기자들이 기사에 인용할 줄은 몰랐다고 다소 어이없는 해명을 하고 사과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8. 시카고 불스 출신 선수이자, 현 NBA 최고 스타 중 한 명인 앤써니 데이비스는 켄터키 대학 시절에 에어 조던 10을 팀 농구화로 신었다고 밝힌바 있습니다. 유니폼 색상과 잘 맞아 선택했다고 하는데, 시카고 출신인 앤써니 데이비스는 놀랍게도 어릴적 부터 자신의 농구 인생에서 실제 착용했던 에어 조던 시리즈는 오로지 에어 조던 10 뿐이었다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던바 있습니다.
이유는 자신이 코트에서 에어 조던을 신어 마이클 조던에게 누(?)를 끼치기 싫었고, 또 동네에서 에어 조던을 신고 농구를 하다 실수라도 하면 쏟아지는 엄청난 야유를 견디기 힘들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9. 한때 시카고 불스에서 슈팅 가드로 뛰기도 했던 조던 브랜드 소속 스타 플레이어 지미 버틀러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에어 조던 시리즈로 에어 조던 10을 꼽았던바 있습니다. 평상시 캐쥬얼하게 신기에도, 진지한 농구 경기에 신기에도 모두 적합하다고.
10. 마이클 조던이 닉 앤더슨에게 통한의 스틸을 당할 때 상대 선수였던 닉 앤더슨이 착용했던 모델이 바로 에어 조던 10이었습니다. 당시 마이클 조던은 미리 지급된 에어 조던 11을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에어 조던 11이라.. 드디어 '그 녀석'이 왔네요.
역대 최고의 농구화라고 불리우는 에어 조던 11과 그 뒷이야기. 기대되시나요?
8장 에필로그
당시 마이클 조던의 에이전트였던 데이빗 포크는 A4지 한 장을 가득 채운 분량의 초안들을 가져와 조던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은 데이빗 포크가 작성한 마이클 조던의 복귀 보도 자료들이었습니다. 포크는 나름 ‘조던의 입장에서’ 최대한 좋은 단어들과 글귀들을 골라 이런저런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적어 왔습니다. 최대한 팬들이 감동하도록. 그리고 최대한 조던이 돋보이도록.
작위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게 에이전트의 역할이고 세상은 드라마를 원하니까. 하지만 포크가 작성해온 여러 초안들을 보고 있던 조던은 말했습니다.
“맘에 안 들어. 그냥 내가 써볼게”
그리고 조던은 구석에 있는 테이블로 가서 앉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몇 분간의 긴(?) 고민 후 “됐어 이거면 충분해”라고 말하며 데이빗 포크에게 자신이 직접 쓴 보도 자료를 가져왔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I’m back”
글을 본 데이빗 포크는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 거렸습니다. “헐! 터미네이터인 줄....” 그러나 조던이 직접 적은 “내가 돌아왔다”라는 글귀는 그 해 최고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