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35회
주이왕(周釐王) 원년 봄 정월이었다.
[제33회에, 주장왕 15년에 왕이 병이 나서 붕어하고, 태자 호제가 즉위하니, 그가 희왕(僖王)이라고 했었다. 희왕과 이왕은 동일 인물이다. 두 개의 시호가 병칭되었다. 이 해에 남궁장만이 송민공을 시해하고 민공의 사촌아우인 공자 유를 군위에 세웠는데, 민공의 동복아우인 공자 어열이 남궁장만을 쫓아내고 다시 군위에 올랐다. 그가 송환공이다.]
제환공은 조회를 열고 신하들의 하례를 받은 다음, 관중에게 물었다.
“과인은 중부의 가르침을 받아 국정을 개혁하였습니다. 이제 나라의 병사는 정예하고 양식도 풍족하며 백성들은 모두 예의를 알게 되었습니다. 과인은 동맹을 결성하여 패업을 성취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관중이 대답했다.
“지금 제후국 중에는 제나라보다 강한 나라가 많습니다. 남방에는 초나라가 있고, 서방에는 秦나라와 晉나라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 영웅을 자처하여 주왕(周王)을 받들 줄을 모르기 때문에 패업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왕실이 비록 쇠미하였다 하나 그래도 아직은 천하의 종주국입니다. 주왕실이 동천한 이래로 제후들은 조례를 드리지도 않고 공물도 바치지 않고 있습니다. 예전에 鄭伯은 환왕의 어깨를 활로 쏘아 맞혔으며, 다섯 나라가 장왕의 명을 거역하였습니다.
[제18회에, 주환왕이 정나라를 토벌하러 갔다가, 정장공의 장수 축담이 쏜 화살에 어깨를 맞았다. 제27회에, 제양공이 위혜공 삭을 복위시키기 위해 제·송·노·陳·채 5국 군대가 위나라로 쳐들어갔다. 위나라의 구원 요청을 받은 주장왕이 자돌에게 병거 2백승을 주어 위나라를 구원하러 보냈는데, 5국 군대에게 몰살을 당했다.]
그리하여 열국의 신자(臣子)들이 군부(君父)를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초나라의 웅통은 왕호를 참칭하였고, 송나라와 정나라는 주군을 시해하였습니다. 그런 일이 상습적으로 되어 버렸기 때문에 정토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제20회에, 초나라 웅통이 칭왕하여 스스로 초무왕이라고 하였다. 제15회에, 태재 화독이 송상공을 시해하고 공장 풍(장공)을 옹립하였고, 제33회에 남궁장만이 송민공을 시해하고 공자 유를 옹립하였다. 대숙피의 계책으로 낭궁장만이 패하여 陳나라로 달아나고, 공자 유는 병사들에게 살해당했으며, 공자 어열(환공)이 즉위하였다. 제20회에, 제족이 정소공을 폐위시키고 공자 돌(정여공)을 옹립했고, 제22회에 제족은 정여공을 폐위시키고 다시 정소공을 복위시켰다. 제24회에, 고거미가 정소공을 시해하고 공자 미를 옹립하였고, 제26회에 제양공이 공자 미와 고거미를 죽이고 제족이 공자 의를 옹립하였다.]
이제 장왕이 붕어하고 신왕이 즉위하였습니다. 송나라는 최근에 남궁장만의 변란을 당하여, 역적은 비록 죽었으나 군위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주군께서는 사신을 보내 주왕실에 조례하고 천자의 성지(聖旨)를 청하여 제후들을 모아 송나라의 군위를 정하십시오.
그런 뒤에 천자를 받들어 제후를 호령하고, 안으로는 주왕실을 존중하며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물리치십시오. 열국 가운데 쇠약한 자는 일으켜 세우고 횡포한 자는 억제하며, 혼란한 틈을 타서 명을 어기는 자는 제후들을 인솔하여 토벌하십시오.
[‘안으로는 주왕실을 존중하며 밖으로는 사이(四夷)를 물리치는 것’을 ‘존왕양이(尊王攘夷)’라고 한다. 제32회에도 나왔었다.]
그리하여 해내(海內)의 제후들이 모두 우리의 공평무사(公平無私)함을 알게 되면, 반드시 우리 제나라에 조공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군사를 일으키지 않고도 패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환공은 크게 기뻐하였다.
제환공은 사신을 낙양에ㆍ 보내, 주이왕에게 조례하였다. 그리고 왕명을 받들어 제후들을 회맹하여 송나라의 군위를 정하겠다고 청하였다. 주이왕이 말했다.
“백구(伯舅)가 주왕실을 잊지 않고 있으니, 짐으로서는 다행입니다. 사수(泗水) 부근의 제후들을 백구가 잘 다스려주고 있으니, 짐이 어찌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백구’는 천자가 이성(異姓)의 제후를 존경하여 부르는 호칭이다. 동성의 제후는 ‘숙부(叔父)’라 칭한다. ‘사수’는 산동을 흐르는 강이므로, 사수 주변의 제후국이란 제·노를 비롯하여 기·거·등·담 등의 동쪽 나라들을 일컫는다.]
사신이 돌아와서 보고하자, 제환공은 宋·魯·陳·蔡·衛·鄭·曹·邾 등 여러 나라에 왕명을 포고하고, 3월 초하룻날 북행(北杏)에서 회맹하자고 알렸다.
환공이 관중에게 물었다.
“이번 회맹에 갈 때에는 병거를 얼마나 거느리고 가면 되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주군께서 왕명을 받들어 제후들에게 임하시는데 어찌 병거를 사용하려 하십니까? 의상지회(衣裳之會)를 여십시오.”
[‘의상지회’는 갑옷이 아닌 평복을 입은 평화적인 회합을 말한다.]
“알겠습니다.”
환공은 군사들을 시켜 높이 3장의 3층 단을 쌓게 하고, 왼쪽에는 종을 매달고 오른쪽에는 북을 매달았다. 먼저 맨 위에 천자의 빈자리를 마련하고, 옆에 반점(反坫)과 옥과 비단으로 된 기구들을 주위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또한 관사를 미리 곳곳에 마련하고 높이와 넓이 등이 모두 격식에 맞게 하였다.
[‘반점’은 제후들의 회견에서 헌수(獻酬)한 술잔을 되돌려 놓던 받침대이다.]
약속한 날이 되자 송환공 어열이 맨 먼저 도착하여 제환공을 만나, 자신의 군위를 인정해 준 것에 대해 사례하였다. 다음날 진선공(陳宣公) 저구가 도착하고, 뒤를 이어 주자(邾子) 극(克)과 채애후 헌무가 도착하였다. 채애후는 초나라에 붙잡혀갔던 일에 한을 품고 이곳 회맹으로 온 것이었다.
[제34회에, 식후가 초문왕을 끌어들여 채애후를 사로잡게 하였고, 채애후는 초나라에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 돌아왔다.]
네 군후는 제나라의 병거가 한 대도 없는 것을 보고 서로 돌아보며 말했다.
“齊侯는 참으로 성심으로 사람을 대하니, 이렇게까지 하는군요.”
이에 네 군후는 각국의 병거를 20리 밖으로 물렸다.
2월이 끝날 무렵, 환공이 관중에게 말했다.
“제후들이 아직 다 모이지 않았으니 기일을 연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관중이 말했다.
“삼인성중(三人成衆)이라 했습니다. 지금 네 나라가 왔으니 충분합니다. 만약 기일을 연기한다면 그것은 신의를 잃는 것이고, 기다렸는데도 오지 않으면 그것은 왕명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이제 처음 제후들을 모았는데 신망을 얻지 못하고 또한 왕명을 욕되게 한다면 어찌 패업을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삼인성중’은 세 사람만 모여도 다수가 되어 모임이 성립할 수 있다는 말이다.]
“동맹을 맺을까요? 아니면 그냥 모임으로 할까요?”
“인심이 아직 하나가 되지는 못했지만, 이처럼 모여서 흩어지지 않았으니, 동맹으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좋습니다.”
3월 초하룻날 동틀 무렵, 다섯 나라 제후들이 단 아래에 모여 상견례를 마치자, 제환공은 두 손을 맞잡고 제후들에게 고했다.
“왕정이 피폐한 지 오래되어 반란이 계속 일어나니, 과인이 천자의 명을 받들어 여러 제후들을 모아 왕실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오늘의 일은 반드시 한 사람을 추대하여 맹주로 삼은 연후에 그에게 권한을 맡겨 정령을 천하에 시행해야 할 것입니다.”
제후들은 의견이 분분하였다. 제나라를 추대하고자 하니, 송나라의 작위는 상공(上公)인데 비해 제나라의 작위는 후(侯)에 지나지 않아, 존비의 서열이 있었다. 또 송나라를 추대하고자 하니, 송공은 새로 군위에 올라 제나라에 의뢰하여 군위를 정하고자 하는 때인지라, 감히 나설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사재양난(事在兩難)이었다.
[‘사재양난’은 이쪽저쪽으로 다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진선공 저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천자께서 제후를 규합하라는 명을 齊侯에게 내렸으니, 감히 누가 대신하겠습니까? 마땅히 齊侯를 맹주로 추대해야 할 것입니다.”
제후(諸侯)들이 모두 말했다.
“齊侯가 아니고서는 이 일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니, 진후의 말이 옳습니다.”
제환공은 거듭 사양하다가 단 위로 올라갔다. 齊侯가 맹주가 되고, 다음으로는 송공, 진후, 채후, 주자의 순으로 자리가 정해졌다. 종을 울리고 북을 쳐 먼저 천자의 자리에 예를 올리고 난 다음 서로 절하며 형제의 의를 맺었다.
중손추가 상자에서 죽간을 꺼내 무릎을 꿇고 읽었다.
모년 모월 모일에 제 소백, 송 어열, 진 저구, 채 헌무, 주 극은 천자의 명에 따라 북행에서 회맹을 갖노라. 함께 왕실을 받들어 약한 자를 돕고 쓰러지는 자를 일으켜 주기로 한다. 맹약을 어기는 자는 열국이 함께 정벌할 것이다.
제후들은 두 손을 맞잡고 명을 받았다.
논어(論語)에, 환공이 제후를 규합한 일을 칭송하고 있는데, 이것이 첫 번째 회맹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환공이 제후를 규합한 일을 관중의 공으로 칭송하고 있다. 제31회에 소개했었다.]
염옹이 시를 읊었다.
濟濟冠裳集五君 의관을 정제하고 다섯 군주 모았으니
臨淄事業赫然新 임치의 사업이 새롭게 빛나도다.
局中先著誰能識 국면을 먼저 알아차린 자 누구인가?
只為推尊第一人 첫 번째 사람을 맹주로 추대할 뿐이로다.
[임치(臨淄)는 제나라 도성이다.]
제후들이 술잔을 주고받은 다음, 관중이 계단을 올라와 말했다.
“魯·衛·鄭·曹가 왕명을 고의로 어기고 회맹에 오지 않았으니, 토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제환공이 손을 들고 네 군후에게 말했다.
“폐읍에 병거가 부족하니, 여러 군후들께서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陳·蔡·邾 세 군후가 일제히 응답했다.
“폐읍의 군대를 이끌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송환공만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송환공은 객관으로 돌아와 대부 대숙피에게 말했다.
“齊侯가 망자존재(妄自尊大)하여 서열을 뛰어넘어 맹주가 되더니, 각국의 군대를 징발하려고 하오. 이대로 가면 장차 우리나라는 그 명령을 따르다가 피폐해질 것이오.”
[‘망자존대’는 망령되게 함부로 자신을 높이고 잘난 체한다는 뜻이다.]
대숙피가 말했다.
“제후들이 齊侯를 따르는 자와 어기는 자가 반반이니, 제나라의 기세가 아직 결집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노나라와 정나라를 정복한다면 패업을 성취하겠지만, 제나라의 패업은 우리 송나라에게는 복이 아닙니다. 회맹에 참석한 네 나라 가운데 우리 송나라만 대국이니, 우리가 따르지 않으면 세 나라도 해체될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가 이번에 온 목적은 단지 왕명을 받아 군위를 확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군주의 반열에 올랐으니, 또 무엇을 기다리겠습니까? 차라리 먼저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송환공은 그 말에 따라, 새벽에 수레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제환공은 송환공이 회맹을 배반하고 도망하듯 귀국했다는 것을 듣고 크게 노하여, 중손추로 하여금 추격케 하고자 하였다. 관중이 말했다.
“추격하는 것은 의롭지 못합니다. 왕군(王軍)을 청하여 정벌해야 명분이 섭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급한 일이 있습니다.”
제환공이 말했다.
“무슨 일이 이보다 더 급하단 말입니까?
“송나라는 멀고 노나라는 가깝습니다. 게다가 노나라는 왕실의 종맹(宗盟)입니다. 먼저 노나라를 굴복시키지 못하면 송나라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종맹’은 동성국의 우두머리를 말한다. 노나라의 시조는 무왕의 아우 주공이다.]
“노나라를 정벌하려면 어느 길을 취해야 합니까?”
“제수(濟水) 동북쪽에 수(遂)나라가 있는데, 노나라의 부용(附庸)으로서 나라가 작고 약합니다. 겨우 네 성(姓)이 모여 살고 있을 뿐입니다. 만약 대군으로 압박하면 항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수나라가 항복하면, 노나라도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사신을 보내 회맹에 참석하지 않은 죄를 문책하면 됩니다.
그리고 노부인(魯夫人; 문강)에게 서신을 보내십시오. 노부인은 그 아들이 외가와 가까워지기를 바라니 분명히 힘써 권할 것입니다. 魯侯는 안으로는 모후의 명령에 눌리고 밖으로는 우리 군대의 위세에 눌려 반드시 동맹을 청하게 될 것입니다. 저쪽에서 동맹을 청해 오면 못 이기는 척 허락하십시오. 노나라를 평정한 후에 군사를 송나라로 돌려 왕명으로 임하면 됩니다. 이것이 바로 파죽지세(破竹之勢)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제환공은 친히 군대를 거느리고 수나라 도성으로 가서, 일고(一鼓)에 항복을 받고 군대를 제수 가에 주둔시켰다.
[‘일고(一鼓)’는 북 한 번 울리는 사이이다.]
과연 노장공은 두려워하여, 신하들을 불러 모아 계책을 물었다. 공자 경보가 말했다.
“제군은 두 번이나 우리나라에 왔다가 한 번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신이 출병하여 그들을 물리치겠습니다.”
[제32회에 포숙아가 노나라를 침공했다가, 장작에서 조귀에게 패전하였다. 또 제33회에 포숙아가 송나라와 연합하여 노나라를 침공했다가, 송군이 먼저 패하는 바람에 그대로 회군하였다.]
그때 반열 중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했다.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장공이 보니, 시백이었다. 장공이 말했다.
“그대는 어떤 계책을 내려고 하오?”
시백이 말했다.
“일찍이 신이 말씀드린 대로 관자는 천하의 기재(奇才)입니다. 그가 이제 제나라의 정권을 잡아 군대가 절제가 있으니, 그것이 안 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이번 북행의 회맹은 왕명을 받들어 왕실을 존중하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으며, 지금 왕명을 어겼음을 문책하고 있습니다. 이치로 보아서 잘못은 우리에게 있으니, 그것이 안 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공자 규를 죽임으로써 주군께서는 제나라에 공이 있고, 왕녀와의 혼사를 주관함으로써 주군께서는 제나라를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이제 과거의 공로를 버리고 장래의 원한을 맺으려 하시니, 이것이 안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지금은 화해를 하여 동맹을 청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싸우지 않고 물러갈 것입니다.”
[제31회에, 노장공은 제환공의 압박으로 공자 규를 죽였다. 제33회에, 제환공은 왕녀와 혼인했는데, 그때 노장공이 혼사를 주관했다.]
조귀가 말했다.
“신의 뜻도 역시 그와 같습니다.”
[제32회에, 포숙아가 노나라를 침공했을 때 조귀가 장작 땅에서 제군을 격파했다. 제33회에, 포숙아가 다시 노나라를 침공했을 때, 조귀는 등장하지 않았다. 여기서 다시 등장한 것을 보면, 포숙아의 두 번째 침공 때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 더욱 이상하다.]
의논을 하고 있는 중에 제환공의 서신이 도착하였다. 장공이 읽어 보니,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과인은 군후와 함께 주왕실을 섬기고 있으니, 정으로 형제와 같고 또 혼인을 맺은 인척입니다. 그런데 북행의 회맹에 군후께서 참석하지 않았으니, 과인은 그 까닭을 묻고자 합니다. 만약 두 마음을 품고 있다면 오직 왕명을 따를 뿐입니다.
제환공은 또 다른 서신 한 통을 문강에게 보냈다. 문강은 노장공을 불러 말했다.
“제나라와 노나라는 대대로 인척 관계를 맺어 왔소. 그런데 지금 그들이 우리를 미워하게 만들면, 장차 우호가 필요할 때 어떻게 하겠소?”
노장공은 ‘예’ ‘예’ 대답하고 물러나, 시백으로 하여금 답서를 쓰게 하였다.
과인은 몸이 아파서 왕명에 달려가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군후께서 대의로써 질책하시니 과인의 죄를 알겠습니다. 그러나 성하지맹(城下之盟)은 과인으로서 심히 수치스런 일이오니, 만약 국경 밖으로 물러나 주신다면 예물을 바치고 명에 따르겠습니다.
[‘성하지맹’은 성 아래에서의 맹세라는 뜻으로, 압도적인 승리와 패배를 의미하므로 당하는 쪽은 견디기 어려운 굴욕이 된다.]
제환공은 서신을 읽고 매우 기뻐하며 군사를 가(柯) 땅까지 후퇴시켰다.
노장공은 제환공을 만나러 가기로 하고, 여러 신하들에게 물었다.
“누가 따라가겠소?”
장군 조말이 따라가기를 청하자, 노장공이 조말에게 말했다.
“그대는 제나라에 세 번이나 패한 사람이 아니오? 제나라 사람들이 비웃을 것을 생각지 않소?”
[제30회에, 제나라와 노나라는 건시에서 싸웠는데, 조말은 두 번의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패전하였다. 왜 ‘세 번’이라 했을까?]
조말이 말했다.
“세 번이나 패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가기를 원합니다. 이번에는 단번에 설욕(雪辱)하겠습니다.”
“어떻게 설욕하겠다는 것이오?”
“주군께서 齊侯를 상대하실 때, 신은 그 신하를 상대하겠습니다.”
“과인이 국경을 넘어 동맹을 청하러 가는 것은 다시 한 번 패하는 것과 같소. 그런데도 설욕할 수 있겠소? 그렇다면 그대의 말을 들으리라.”
노장공은 조말과 함께 가 땅으로 갔다. 제환공은 흙으로 단을 쌓고 기다리고 있었다. 노환공은 먼저 사신을 보내 사죄하고, 동맹을 청하였다. 제환공 역시 사신을 보내 회맹할 날짜를 정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자, 제환공은 단 아래에 병사들을 웅장하게 벌여놓고, 청·홍·흑·백의 깃발을 동남서북 사방에 세워 놓고 네 장수가 각각 부대를 거느리고 지키게 하였다. 그리고 중손추로 하여금 관장하게 하였다.
계단은 7층이었는데, 각 층마다 장사들이 황기를 쥐고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단상에는 큰 황기를 세웠는데, 그 위에 ‘방백(方伯)’이란 두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그 옆에는 큰 북이 놓여 있고, 왕자 성보가 지키고 있었다.
단 중앙에는 향안(香案)이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삽혈할 때 쓸 희생의 피를 담는 옥으로 만든 주발이 붉은 쟁반 위에 놓여 있는데, 습붕이 관장하고 있었다. 또 그 양쪽 옆에는 반점(反坫)과 금으로 만든 술통과 옥으로 만든 술잔이 놓여 있는데, 내시 수초가 관장하고 있었다.
[‘향안’은 향로나 향합 등을 올려놓은 상이다.]
단의 서쪽에는 돌기둥 두 개가 서 있는데, 검은 소와 백마가 매어 있고, 백정이 도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거기는 요리사인 역아가 관장하고 있었다. 동곽아는 접객인으로 계단 아래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관중은 재상으로서 모든 의식을 주관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기상이 매우 엄숙하였다.
첫댓글 열국지 하고 삼국지 하고 모가 다른가여
정말 몰라서 ㅋㅋ
등장인물들도 비숫한거 같아서여
삼국지는 200년 초에서 300년 초까지 이야기.
열국지 현재 연대는 BC 약 630년 정도 추정.
시차가 무려 900년입니다.
@곡즉전 그러면 서로 다른배경 이겠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