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삼대
석야 신웅순
“얘들아, 학교 가자.”
내가 초등학교 학예회 무대에서 세상 처음으로 말한 대사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나는 다른 아이보다 일찍 입학했다. 키가 작고 예쁘장하고 얼굴이 유난히도 하앴다. 귀공자 타입에 가방까지 멨으니 얼마나 귀여웠을까. 이 대사 하나로 나는 일약 학교 스타(?)덤에 올랐다. 학예회 첫 번째 순서, 첫출연의 한 장면 단역이었던 그것이 아이들에게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이것이 화제가 되어 얼마간 나는 5,6학년 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내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얘들아 학교 가자”하며 놀려댔다. 5, 6학년 학생들은 귀엽다는 풍신이 나를 못살게 굴었다. 바지를 잡고 끌어 내리는 짖궂은 짓까지 했다.
4살 때인가 유치원 학예회 시간에 큰 딸의 무용과 노래 발표가 있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를 닮은 것 같았다. 그것이 감명 깊었다. 무언가를 이룰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큰 딸은 공부도 잘 했고 그림도 잘 그렸다. 공부하기를 바랐지만 딸은 화가의 길을 걸었다.
며칠 전 큰애의 딸, 손녀가 유아원 꿈자람 축제가 있었다. 손녀가 발표한다 해서 나와 아내는 서울로 공연을 보러 갔다. 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손주의 공연을 보러 경상도 강원도 멀리에서 오기도 했다.
일거수일투족 최선을 다하는 손녀를 보았다. 일점도 틀리지 않았다. 그 엄마에 그 딸이라더니 똑 소리가 났다. 옛날 제 엄마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손녀도 내 큰 딸을 닮아 무언가를 해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 2세 반도 있었는데 무대에서 엉엉 울기도 하고 아예 누워버리는 아이도 있었다. 어렸을 적 나도 무언가가 안 되면 곧잘 울었었다. 담임 선생님이 “이 아이는 자주 우는 경향이 있으니 지도 바랍니다.” 라고 통지표에다 쓸 정도였다. 이 버릇은 한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 해결이 되었다.
그 어린 아이가 커서 대학교수가 되고 시인이 되었다. 무언가 마음대로 안 되거나 하면 우는 것이 아이들답다. 나는 어렸을 때를 떠올리며 우는 애기들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분명 큰 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갈 아이들이다. 세상이 어지럽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정직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차세대엔 거짓 없는 깨끗한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날은 손녀의 생일이었다. 사돈어른들도 오셨다. 모처럼 손녀, 아이 엄마 아빠, 친외 할머니 할아버지 다 함께 모여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날은 공연도 보고 선물까지 주었다. 손녀에겐 잊을 수 없는 생일 추억이 되었으리라.
어린이가 할아버지가 되기까지 딸이 엄마가 되기까지 각자의 생애가 여기까지 왔다. 나는 인생 무대의 뒤로 물러났고 딸은 지금 인생 무대에서 어린 딸과 함께 현역으로 뛰고 있다. 그들에게 앞으로 어떤 무대가 펼쳐질까. 과도한 욕심 부리지 말며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는가.
어렸을 적 나와 공연을 보며 나를 닮은 큰 딸, 큰 딸을 닮은 손녀의 연극 삼대는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었다. 육신은 고되었으나 마음은 행복했다.
- 2024.1.25.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