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10억 잔디 어쩌나"…축구팬 우려 속 끝난 잼버리 K팝 콘서트 [연계소문]
김수영입력 2023. 8. 12. 07:22수정 2023. 8. 12. 08:14
[김수영의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잼버리 K팝 콘서트' 장소에 축구 팬들 반발
리그 중인 잔디 위에 무대·좌석 설치
4만명 이상 수용할 공연장 없는 현실
"스포츠-공연 상생 시스템 구축해야"
11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K팝 슈퍼 라이브 콘서트’에서 대원들이 공연을 즐기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2023 새만금 세계잼버리의 대미를 장식할 K팝 콘서트의 장소가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결정된 후 축구 팬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터져 나왔다. 10억원을 들여 구축한 하이브리드 잔디 그라운드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일정·장소 변경에 4만여명의 관객을 급히 수용해야 했고, 1000대가 넘는 차량 이동까지 감안해야 했다. 선택지가 많지 않은 가운데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낙점되자 한창 K리그를 즐기고 있는 축구 팬들은 "날벼락"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서울시설관리공단은 무려 10억원을 들여 지난 2021년 10월 천연잔디 95%와 인조 잔디 5%를 섞은 하이브리드 잔디를 새롭게 깔았다. 덕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상태에 비판이 쏟아지던 흑역사를 씻어내고 선수들이 뛰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잔디 상태는 경기력을 좌우하기 때문에 팬들 역시 훼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평소 축구 팬으로 잘 알려진 가수 임영웅이 지난 4월 시축과 하프타임 공연을 선보이며 잔디 보호를 위해 축구화를 착용한 사례가 이를 대변한다.
지난 4월 가수 임영웅이 시축 및 하프타임 공연에 나서며 축구화를 신어 화제가 됐다. /사진=연합뉴스
축구 경기장은 잔디 훼손 가능성이 있는 행사는 시즌 중 대관을 피하는데, 무대 세팅에 객석까지 설치되는 대규모 K팝 공연은 특히 지양한다. '잼버리 K팝 콘서트'의 경우도 무대 설치 외에 그라운드 위에 6000석의 좌석을 깔았다. 하이브리드 잔디로 바꾼 이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단 한 번도 대형 콘서트가 열리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축구 팬들의 우려가 충분히 공감되는 상황이다.
'잼버리 K팝 콘서트' 현장에는 잔디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 잔디 보호 매트가 깔렸다. 그럼에도 훼손을 100% 막을 수는 없는 바 공연이 끝난 후 축구 팬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이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상암 잔디 때문에 우울하다", "잼버리 공연 한 번 하고 잔디는 끝났네", "선수들 경기하면서 다치지나 말았으면", "당장 다음 주에 홈 경기인데 어쩌냐", "시즌 중에 잔디 망가지면 대체 누가 책임지냐", "하이브리드 잔디 덕에 축구가 더 재밌었는데"라며 속상해했다.
인파가 몰려나간 후 각종 비품과 쓰레기와 널브러져 있는 사진을 공개하며 "실시간 우리들의 홈 구장. 그냥 박살났다는 표현이 맞는 듯"이라고 하소연한 이도 있었다.
'잼버리 K팝 콘서트' 후 인파가 빠져나간 서울월드컵경기장의 모습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하지만 일각에서는 국격 회복의 대안으로까지 언급된 K팝의 '갈 곳 없는 현실'도 안타깝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에는 대중음악 공연을 전문으로 하는 아레나급(1만~2만) 이상의 공연장이 없다. 아이돌은 주로 고척돔(1만7000~2만석), 올림픽체조경기장(KSPO DOME·1만5000석), 잠실실내체육관(5000석) 등에서 공연한다.
이번 경우처럼 4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곳은 더욱 손에 꼽는다. 지난해 회차당 4만명 이상의 관객이 몰린 아이유 콘서트를 비롯해 올해 회차당 3만5000명이 운집한 조용필·싸이, 5만명을 동원한 브루노 마스의 공연은 모두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진행됐다. 최근 주경기장이 리모델링에 들어감에 따라 업계에서는 대규모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엔터 업계 한 관계자는 "K팝 공연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어나는데 공연장 잡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면서 "공간의 용도에 맞게 스포츠 경기를 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곳들이 많다 보니 의도치 않게 서로 불편한 상황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유명 팝가수들의 내한 공연을 다수 진행한 라이브네이션코리아의 김형일 대표는 "공연장의 필요성은 항상 느낀다"면서도 "공연장을 새로 짓는 데에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고, 특히 2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전문 공연장을 만든다면 실질적으로 그만큼 모객할 아티스트가 많은지, 또 그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자주 할 것인지 등의 문제도 있을 것"이라며 가용성에 대한 물음표를 남겼다.
그는 "미국이나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봐도 테일러 스위프트, 콜드플레이 등의 대규모 공연은 모두 경기가 진행되는 스타디움에서 한다. 결국 운동 경기와 공연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 것"이라며 "전문적으로 잔디를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국내에서도 스포츠계와 음악계가 상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더 빠른 길"이라고 전했다.
강정원 문화체육관광부 대변인은 이번 '잼버리 K팝 콘서트'와 관련해 "잔디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대 설치에 유의했다"면서 훼손 우려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복원될 수 있도록 확보된 예산을 통해 축구 경기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힌 상태다.
인스파이어 아레나 조감도
한편 K팝의 인기가 급증하며 국내에서도 1~2만명 규모의 아레나를 짓기 위한 시도는 이루어지고 있다. 연말에 인천 영종도에 '인스파이어 아레나'가 들어서며 '한국의 첫 K팝 전용 아레나' 타이틀을 가져갈 예정이다. 이 밖에도 서울 창동에 '서울 아레나', 경기 고양시에 'CJ라이브시티' 등이 예고된 상태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경기장과 전문 공연장은 음향, 객석 컨디션 등에서 차이가 난다. 또 돔구장이 아닌 곳에서 공연하면 날씨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면서 "관객들이 양질의 공연을 더 좋은 환경에서 오롯이 느껴볼 기회가 많이 생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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