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34-1917)는 발레를 자주 관찰한 나머지 관음증 환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1879년에 그린 ‘압생트 한잔’은 그가 일상의 모습을 얼마나 섬세하게 관찰했는지 알 수 있다. 담배를 태우고 있는 남성의 표정에는 인생무상이 느껴지며, 옆의 여성은 압생트 한잔을 앞에 놓은 채 실연당한 표정으로 멍을 때리는 모습이다.
압생트Absinthe는 프랑스인들이 ‘초록 요정’이라고 부르는 증류주이다. 약쑥의 라틴어 학명인 아르테미시아 앱신튬에서 이름이 비롯되었다. 고흐, 랭보 등이 즐겨 마시던 독주이다. 알코올 함량이 70퍼센트에 달하는 데다 주재료인 쑥의 쌉싸름한 향기 때문에 접근하기는 어려운 주종이라고 한다.
경쟁은 치열한 노력에 따른 결실이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순위, 선택에 의한 차별과 열등감 조성이라는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한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 그림을 통해 화려하기만 했을 것 같은 발레의 이면을 보았다.
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날아가는 화살은 정지해 있다”고 했다. 날아가는 화살은 공간을 이동하는 지속적인 움직임이 있지만 각각 개별의 시간에는 하나의 위치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이 영원한 순간들의 합이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발레ballet는 ‘춤추다’라는 라틴어 ballare, 이탈리아어 ‘춤ballo’에서 변형되어 오늘날의 발레가 되었다고 한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는데, 기존의 전통춤을 발전시킨 춤이다. 현대의 우아한 발레와 달리 남자의 전유물이었다고 한다. 여성은 발레리나, 남성은 발레리노라고 한다.
발레리노와 발레리나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발레리노는 토슈즈를 신지 않는다. 대신에 훨씬 더 강한 점프, 테크닉, 턴을 한다. 발레리나가 아름다운 선을 만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끝으로 서 있을 때 발레리노가 발레리나를 더 아름답게, 더 빛나게 해주기 위해 서포트를 기도 한다. 발레리노는 테크닉, 발레리나는 아름다움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자 표기가 Ballet라서 발렛 또는 발레트라고 발음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끝의 자음은 발음하지 않는 프랑스어에서 비롯된 것이라서 ‘발레’라고 발음하는 것이 맞는다.
발레 파킹은Valet parking은 시종을 뜻하는 프랑스어 ‘valet’와 영어 ‘parking’으로 이루어진 단어이다. 주차장에 직접 주차하지 않고 지정된 주차장 관리 요원이 대신 차를 운전하여 주차하는 서비스이다.
발레는 15세기 이탈리아 귀족사회에서 추던 춤이었다. 16세기경 프랑스로 시집간 카트린 드 메디시스 왕비에 의해 프랑스에 전래되었다. 루이 14세는 발레에 열광했다고 한다. 춤을 배우고 공연의 주역까지 맡을 만큼 열정이 대단했다. 1661년 왕립 발레 아카데미도 설립하기도 했다.
루이 14세의 관심은 귀족사회에 영향을 미쳤다. 왕이 출연하는 발레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귀족사회에 발레 강습이 시작되었다. 전문적인 테크닉을 사용하는 발레리노들이 등장하면서 귀족과 왕이 직접 공연하는 것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발레는 귀족사회의 필수교양으로 유지되었다.
발레는 남자들의 춤이었다. 여성의 참여는 금지되었다. 당시 발레 공연에는 남자가 여성으로 분장해서 상대 역을 맡았다. 발레리나는 17세기 ‘사랑의 승리’라는 공연에서 최초로 등장했다고 한다.
발레는 인간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춤이다.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기에 때로는 비현실적이다. 중력을 거스르는 점프를 하는 동안 바닥에서 하기도 힘든 동작인 다리를 일자로 찢고 그 상태로 발끝을 포인point 한다.
어찌 보면 모든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이다. 그러한 찰나의 순간에 허락된 모습을 통해 감동을 받고 아름다움을 인식하고 약간의 자유를 만끽한다.
발레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예술이다. 아름다운 선율에 따라 하나의 동작이 펼쳐질 때마다 세포는 춤을 추고, 맥박은 리듬을 탄다.
김예은 님이 달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김예은 님과 목례할 때마다 발레리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토슈즈를 신고 높이 점프하는 듯한 김예은 님을 오랜 동안 보았다. 그런 김예은 님이 우승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햇살을 향해 얼굴을 내민 새싹들이 자잘한 웃음소리를 내며 번져가는 듯한 싱그런 계절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흐뭇하다.